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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라오디기아교회 연구(계 3:14-22) :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1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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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라는 말씀은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하고

말씀하신 3중 말씀 중에 2번째 내용입니다.

'부족한 것이 없다는 자신들의 자랑과는 반대로 너무도 소름끼치게 두드러진 라오디기아인들

의 벌거벗음과는 대조적으로 제공되는 흰옷이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저들에게 '흰옷을 사

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벌거벗은 것 자체가 고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빈곤의 수치로 여겨졌습니다. 반면에 옷이 잘

입히우는 것은 무한한 영광과 존귀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라오디기아교인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기아

주변들의 산지에서는 많은 검은 양들이 길러졌고 검은 털로 옷감을 짜는 섬유공장들이 많이 있

었으며 이리하여 라오디기아인들은 '검은 색'의 좋은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라오디기

아인들에게 반대로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흰옷'을 입는다는 것은 상

징적으로 퍽 어려운 일입니다.

당시에만도 '흰옷'은 순결함과 의를 상징했습니다. (계 19:8, 슥 3:3-5) 로마에서 '흰옷'은 승리와

기쁨을 상징했으며 고관직의 후보자들이 입었습니다. 반면에 검은 옷은 슬픔 또는 패배를 상징

했으며 노예나 포로들이 입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사람이 어느 특별한 공헌을 했을 때 그가 입었던 옷은 벗겨지고 보다 화려하고 좋은 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높임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구약 당시에도 그러했습니다.(창 41:42,

단 2:29, 눅 15:22)

이와 같이 우리의 벌거벗은 몸에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갈 자는

흰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더러운 의가 그리스도의 흰옷으로 갈아입지 못하는 한 하늘에 있

을 그리스도의 사람일 수 없을 것입니다.

 

 

 

다음의 예언의 신들을 통해 '흰옷'인 그리스도의 '의의옷'을 진지하게 탐구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

고 변화함을 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흰옷은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부여되는 품성의 순결이다. 이것은 참으로 하늘의 직물로 짜

여진 옷으로써 즐겨 순종하는 생애를 위하여 그리스도에게서만 살 수 있다.'(교증 4. 88)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한 품성을 얻는 일이 쉬운 일이라는 보증을 주시지 않으셨다. 고상하고 모

든 면으로 원만한 품성은 선천적으로 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연히 받는 걷도 아니다. 고상

한 품성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통하여 개인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는 양쭝과 정신력을 주시고 우리는 품성을 형성하는 일을 한다. 품성은 자신과 더불어 맹열한 싸

움으로 형성된다. 선천적인 성벽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투쟁은 거듭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

리는 우리 자신을 면밀히 비판하고 좋지 못한 성벽은 하나라도 고치지 않은 채로 버려두어서는

안된다.'(실물교훈 339)

 

 

 

'품성은 남에게 나누어줄 수 없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

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

니라.' 품성은 위기에야 나타난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리고 졸던 처녀들

이 잠을 깰 때에 누가 준비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10처녀는 이 세상 역사의 저녁에 신랑

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한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듯

이 보이나 그중 다섯은 준비되지 못하였다. 그 다섯은 놀라고 당황하며 피로연회장 밖에 서 있

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432, 433)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나 사람이 죽을 때에 품성은 변화될 수 없다..'(목사에게 보내는 권

면 430)

 

 

'우리는 날마다 현세와 영원한 세상을 위하여 품성을 건설하고 있다.'(의료봉사 42) '우리가 은혜

의 시기 동안에 형성하는 것은 영원한 세월 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죽음이 우리의 몸을 분해한다

고 할찌라도 품성에는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우리의 품성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품성이 영원히 변하지 못하도록 고정시킬 뿐이다.'(교증 5. 466)

'우리의 품성건설에 있어서 종종 갈라진 틈이 보여지곤 한다. 이러한 결함이 수정되지 않는 한

시련의 폭풍이 닥칠 때에 그 집은 무너질 것이다.'(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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