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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왕조의 역사에서 가장 슬프고 유감스러운 페이지"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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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 유다의 여호사밧왕의 큰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람은 주로 역대하 21장 전체와 열왕기하의 4절(왕하 8:16-19)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의 통치는 북방 이스라엘 왕(동명이인) 여호람의 마지막 8년의 통치와 일치합니다.

그의 생애와 통치, 그리고 그의 아내 아달리야가 끼친 통치는 '다윗왕조의 역사에서 가장 슬프고

유감스러운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여호람이 그 부친의 위에 올라 세력을 얻은 후에 그 모든 아우와 이스라엘 방백 중에서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역대하 21:4-5)

그의 아우들은 아사랴, 여히엘, 스가랴, 아사랴, 미가엘, 스바댜, 이렇게 6 형제를 일시에 죽였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그가 그렇게 한 것이 그의 아내 아달랴의 간교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호람의 6형제와 이스라엘의 다른 방백들에 대한 암살을 꽤한 사람이 그 여자(아달랴-역자 주)였

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뭏든 통치 가문의 직계는 그의 통치 기간에 남자 자손 하나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호람 자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일에 개입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불레셋 사람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대하 22:16)다고 했습니다.

'그 무리가 올라와서 유다를 침노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음으로

말째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상동 16-17)

이 모든 일 후였습니다.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였음으로 여

러 날 후 이년 만에 그 창자가 그 병으로 인하여 빠져나오매 저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

.분향하지 아니하고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다윗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상동 22:18-20)

인생의 불쌍한 한 종말과 표본을 여기에서 봅니다!

 

 

 

그런데 여호람이 사망한 후 1년이 되기도 전에 그의 사악한 아내 아달랴(아달리야)는 손자 하나만

을 재외하고 여호람 남편의 모든 자손들을 암살하기로 계획하였다.'(왕하 11:1절 이하)는 것입니다.

여호람은 형제들을 모두 죽이더니 이젠 그의 아내 아달랴는 결국 요아스를 재외한 여호람의 모든

손자들을 살해했습니다.

일찍부터 "아달랴는 그의 모친 이세벨의 페니키아조상들이 섬기는 바알신 종교(다산 숭배 종교)

를 유다 왕실로 도입하였다. 그 결과 여호람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

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대하 21:6, 왕하 8:16-18)고 했습니다.

 

 

 

여호람은 '신앙으로부터의 이탈로 인하여 약속된 징벌이 보류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록 현명하고 경건할지라도 그릇된 결혼을 함으로써 이와 같은 가공할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인생의 불쌍한 한 종말과 표본을 여기에서 봅니다!

이는 일찌기 '이 모든 것들은 비참한 배교자 왕에게 보낸 엘리야의 예언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긴하게 역대하 21:12-20절을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 하나의 교훈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신 사실입니다.

다윗의 가문이 영원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삼하 7:12-16왕하 8:19)

모조리 죽이는 태풍이 여러번 지나갔으나 다윗 가문은 막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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