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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의인'에 대한 정의? 의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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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야기입니다. 주님의 '의인'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의인'('의인'이라야)이 천국 가는 것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잘 압니다.

그런데 막상 그 '의인'이라고 하면 서먹서먹한 마음이 있습니다.  난 의인이 되지 못할 걸 하는

미심적은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상 그 '의인'에 대한 연구 마져 꺼려하기도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성도들이기 때문에 '의인'에 대한 연구와 갈구에 즐거운 마음 가짐으로 반응

하기도 합니다. 잘한 일이죠. 아주 잘한 일이지요. 또한 알아야 하죠. 마땅히 말입니다.

로마서는 '믿음의 의'에 관한 책이지요. 그런데 어려워요. 그리고 이론적이어서 감이 쉬 오지 않지

요. 그런데 여기 좋은 길이 있습니다. 쉽게 알 수 있는 길 말입니다.

예수님이 정의한 '의인'은 번개불처럼 쉬 머리에 들어옵니다.

예수님의 수난주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잡히시기 2일 전에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난 의미

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마 26:1-2) 그때 이야기입니다.

 

 

 

잘 아시지요. 양과 염소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마 25:31-34) 주님이 오시는 날 목자가 양과 염소

를 가르듯 주님은 양을 오른편에 두고 염소를 왼편에 두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른 편은 영예

와 축복의 상징인 반면 왼편은 그것을 상실하게 되는 쪽 아닙니까. 

그런데 오른편에 있는 양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40)고.

그런데 37절에서 양, 곧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께 대하듯 한 사람이 '의인'이라고 했고 46절에서

이야기를 마치면서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하심으로 '구원'까지 확인해 주셨습니다.

'의인',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에게 하듯 한 사람, 사람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6-39)는 주님의 다른데 말씀과 꼭 일치하지요. 그렇지요!

이렇게 사는 자가 있다면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의인'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바로 이게 로마서에 나온 '믿음의 의'의 삶과 일치하는 삶이지요.

이렇게 잘 알고 보니까 '사마리아 사람'이 과연 '의인'인 것이 확실하지요. 확실해졌습니까? 그러

합니다.

 

 

 

4세기 경 신학자 어거스틴은 이 세상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4가지의 순을 밝혔습니다. 1) 사람 2

동물 3) 식물 4) 광물 순이라고 했습니다. 당연 그래야 하겠지요. 그런데 오늘날 그 순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1) 광물(보석, 돈), 2)동물(애완용), 3) 식물, 4) 사람 순으로 말입니다.

귀여운 개를 가슴에 안고 남편을 쫓아내는 아내를 보면 분명 동물이 사람 보다 위입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부부를 죽이는 것은 어떠하고요. 광물이 사람 얼마나 위이기에 그런 것입

니까!

지금의 세상 풍조는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입니다. 사람이 불쌍한 시대, 슬프고 외롭고 고독하고

마음도 몸도 아픈 현대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의 그 보편적인 말이 지금의 시대를 궤뚫어본 말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일찌기 말씀했습니다. 나에게 한 것처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자가 '의인'이라고요. 이

런 자가 천국에 간다라고요.

 

 

 

일찌기 퀘이커교도는 오늘의 교훈에 큰 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고 내면의 빛을

사모하는 것이 그들의 독특한 신앙의 특징이었습니다. 폭력을 반대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

와 공존을, 평등과 인권을 존중했습니다. '친절이 친절을 낳는다.'는 것이 그들의 진실하게 추구

하는 모토였습니다.

현재 기독교는 믿음과 사랑을 구호처럼 외치지만 종종 실망 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 뜻이 맞지

않다 하면 즉시 그리고 서슴없이 '이단'이라고 밀어붙입니다. 그리하고도 반성의 여지가 없습

니다.

이것은 진짜 믿음과 사랑주의가 아닌듯 합니다. 사람을 구원하려는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의 'love mercy'가 아닌듯 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생각하는 일에 거리가 먼듯 합니다. '의인'일까요?

우리는 주님의 '의인'설명을 들으면서 깨어나야만 합니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래야죠. 성령의 감동으로 새로운 활력소가 우리 속에서 용솟음쳐야만 할 것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베드로후서 1장 3-4절을 읽으면서 '의인'의 주제 명상에 잠깁니다.

 ' 신의 성품',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 '신기한 능력'이라는 말씀을 깊이 음미하노라면 절실하

게 우리가 변화하고 달라져야 할 품성의 변화를 봅니다.

정녕 '의인'은 하나님의 품성에 그 큰 고리를 매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의인'은 '신의 성품'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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