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니고데모의 예수와의 대화(요 3:1-21): 니고데모의 고백(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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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없음이니이다'(요 3:2)
사람이 사람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잘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면서 고백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이렇게 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왜 처음 만난 예수에게 이렇듯이 고백의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 우선 니
고데모의 의도한 바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니고데모의 고백이란 일단 진실 아니면 거짓 고백이나 경박한 위선일 수 있지 않을까 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찾아온 니고데모가 예수를 안다면 얼마나 알기에 아무런 대화도 나누어 보지도 않은
채 이렇게 매끈한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함의 의아함에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필시 그는 심중에 무
슨 다른 뜻이 있었던지 아니면 경박한 사람일 수 밖에 없다.
반면에 니고데모의 그 고백을 고백 그대로 진실하고도 진솔한 채로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다. 이. 지. 화잇의 시대의 소망에 의하면 충분하게 그런 정황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니고데모가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이미 예수
를 잘 알고 있었으며 자기의 동료인 관원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면서 니고데모뿐
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제사장들과 관원들)라고 말함으로써 사실 그의 진실을 내비치고 있다는 것이
다. 니고데모는 얼마 전에 예수가 성전을 정결케 하는 그 모습을 면밀하고도 자세하게 지켜보았다는
것이다.(요 2:13-22)
'그는 예수께서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실 때에 그 광경을 목도했다. 그는 하늘의 능력이 놀랍게 나타
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구주께서 가난한 자들을 받아들이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기쁜 표정을 보았으며 그들이 찬송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께
로서 오신 분이심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는 예수와 면담하기를 심히 원했다.'(시대의 소망)
니고데모는 '이상하게도 초라한 나사렛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다. 구주의 입에서 나오는 교훈들은 그
에게 큰 감명을 주었으며 그는 이 놀라운 진리에 대하여 더 많이 배우기를 원하였다.'(상동)
그리고 그는 '산헤드린 회의에서 예수에 대하여 취해야 할 조치를 간구하고 있을 때 니고데모는 주의
와 자세를 조언했다. 만일 예수께서 진실로 하나님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았다면 그의 경고를 거절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니고데모는 예수의 말씀을 듣은 이래로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을 열심히 연구했다. 연구하면 할수록
이분이 바로 오시기로 되어있었던 바로 그분임을 더욱 굳게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과 같이 그도 성전의 모독행위를 보고 크게 애통해 했었다.'(상동) 니고데모는 예수의 성전 정
결을 보고 믿었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요 2:23 참조)
'니고데모는 예수의 표적들이 인간 권위 보다 더 높은 신임장임을 인정했'기에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
인줄 아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하난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신 그런
표적들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본교회성경주석)
우리는 이런 정황을 주의깊게 살피면서 니고데모의 이야기 중에 있는 다음 대목이 매우 주요하고 중요
항 내용임을 포착하게 되어진다. '그러나 처음에는 자만심 때문에 그는 예수가 메시야일 수 있다는 내
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반응을 나라의 다른 지도자들의 반응과 비교해 볼 때 진리를 위한
그의 열망이 교만을 극복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상동)
'니고데모는 증거를 따라 논리적인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래서 니고데모는 예수를 찾은 것이다.
이래서 그는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니고데모의 예수께 대한 고백은 인간으로써 참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앙이 점진적인 것 같이 신
앙의 고백도 점진적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메시야로까지 고백하지 못한 그 고백이란 점잖은 바리새
인인 니고데모의 자만심에서 일어난 일종의 죄성이라면 마음을 들여다 보시는 예수에게 대화의 실마
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전 정결 당시 예수는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심으로'(요 2:24-25)
처신하신 분이셨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는 그 니고데모에게무슨 말을 할 것인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들은 각 시대 마다 있다. 무리들 마다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
라 해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 될만한 이들이 그 속에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사람을 하
나님께로 이끌 역활을 할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니고데모가 그러하고 바나바가 그러하고 사도 바울이 그러하다. 잘 보이지 않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증
가하는 것도 그러한 무리들의 역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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