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니고데모의 예수와의 대화(요 3:1-21):'니고데모의 예수와의 첫 만남'(C) > 신학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신학

{해설} 니고데모의 예수와의 대화(요 3:1-21):'니고데모의 예수와의 첫 만남'(C)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그가 밤에 예수께 나와 가로되 랍비여...'(2)

 

 

만남, 만남은 인간의 조직사회 속에서 빈번한 일이고 중요하다. 일상생활이나 특수생활 속에서 만남

은 반드시 소중한 일이다.

모든 일은 만남과 회견으로 진행되고 성사되고 그 만남은 역사를 이룩하며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해낸

다.

그런데 니고데모와 같은 하늘서 오신 분의 영원과의 입맞춤의 만남이란 이 세상 또 어디에 있을까!

니고데모의 예수와의 만남은 니고데모다운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니고데모 다움이란 역시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독특한 열망이었다.

 

 

그래서 늦은 밤에 어두운 기드론 골짜기길을 걸어 올라 때론 가파른 소로길로 겟세마네 여기 저기에

서 예수 있는 흔적을 두리번거리면서 찾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결코 밝은 낮이 아닌 밤을 선택했다. 이렇게 해서 예수를 만나는데는 니고데모에게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이. 지. 화잇은 '시대의소망'에서 밝히고 있다.

 

 

첫째, '그는 공공연하게 찾는 것을 꺼려했다. 유대인의 관원으로써 아직까지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는

일개 교사에게 공명하고 있음을 자인한다는 것은 너무나 굴욕적인 일이 될 것이었다.

둘째, '그가 찾아가는 것을 산헤드린에서 알게 되면 그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게 될 것이었다.

셋째, '자기가 공공연하게 찾아간다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모본을 쫓게 될 것이라는 근거 위에 자

기 가 은밀하게 회견하는 것을 변명하였다.'

'예수에 대한 지도자들의 전반적인 태도를 알고 있는 니고데모는 예수를 개인적으로 접견할만큼 중

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알림으로 자신의 명성이나 지위를 손상시키는 것이 지혜롭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했다.(본 교회 설경주석)

 

 

니고데모는 '천성적으로 신중한 사람'으로 이해된다. 매사에 사려깊은 이로 이해된다. 그의 생각하는

바는 합리적이었을뿐 아니라 제사장이나 관원들이나 다른 모든 이들처럼 예수를 개인적으로 만난다

는 사실이 당시로는 넘을 수 없는 하나의 장벽 같은 간격이 있을 것이겠고 더욱이 지금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수의 하는 일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열중하고 있는 처사를 니고데모가 잘 알고 있는 것

을 고려한다면 니고데모의 이 사려깊은 밤의 만남은 이해될만 하며 나아가서 대단한 용단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할찌라도 많은 이가 하는 일을 같이 하거나 따르는 일은 쉽고 보편적인 일이

된다. 그러나 모든 이가 하지 않고 따르지도 않는 일을 자기 홀로 생각하고 해낸다는 견해와 사상은

좋은 일일 경우(후에 판명되기도 함) 이런 일은 매우 특수하거나 귀감이 되기도 한다.

'밤에 와서', 홀로 '밤'에 '왔다'는 사실이 비범한 일이며 창조적인 일인 것이다. 니고데모는 '감란산

의 구주의 휴식 장소를 특별히 물어서 안 다음에 그는 도시가 밤이 들어 조용해질 때까지를 기다렸

다가 예수를 찾았다.'(시대의 소망)

오늘날도 이런 발걸음은 이런 생각이 자아내는 소중한 발걸음이 되어지고 흔히 자신의 삶을 탈바

꿈하여 아주 다르게 바꾸어놓는 엄숙한 순간이 되기도 한다.

 

 

니고데모는 '수줍어하면서 그러나 당당한 태도'로 겟세마네의 예수를 만난 다음 니고데모 자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가 한 첫 마디 말이 무엇인가? '랍비여!'라고 했다. 이 말에는 이중의 암명이

숨어 있다.

여기에서 니고데모가 사용한 예수에 대한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에 해당하지만 좀 더 재한적인

의미로는 율법교사를 존경하고 구별하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율법을 중히 여기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교사와 같은 니고데모로써는 랍비라는 호칭이 익숙한

말이었으며 때로는 대단한 존중과 상호신뢰를 나타내는 호칭이었지만 이 호칭이 예수에게 적용

되는 호칭이었을까 함이다.  

 

 

한편 니고데모는 미리부터 이이가 정말 하늘에서 온 분일까 하는 의아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

을 망정 아직 잘 알지 못할뿐 더러 미심적은 일들로 마음이 설래이는 판국에 '랍비여!'라고 하는

말은 으례 인간적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신임하도록 계획했던 것이었지만 사실 그 말은 불신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는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낸 일개 교사로 인정하였다.'는 결과가 되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를 랍비라고 불렀지만 나중에는 주님(메시야, 구주)이라고 불렀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예수께서는 이 인사의 말을 인정하신 대

신에 마치 그 마음 속을 들여다 보시는 것처럼 니고데모에게 시선을 고정시키셨다.'(시대의 소망)

 (계속)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