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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새로 쓴 팔복강해(마 5:1-12)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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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3)

 

 

 

복이 근원적으로 이땅 어디에서 이르지 않는다. 복이 근본적으로 이땅 어느 사람에게서 창조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죄악세상이기에 복의 불모지이며 따라서 복은 죄악세상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의 본질은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 자체이시며 하나님에게서 비로소 비롯되어진다. 우리가 일

반적으로 복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의 참 좋은 것들은 모두가 하늘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대개 세상 사람이 바라는 복이란 사람 속에 있는 궁극의 욕구 때문에 바라는 것들로써 하나님이 주

시거나 이미 주어진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람이 가진 연고

로 해서 퇴색되고 변질했거나 죄와 혼합된 것들이다. 이 일을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확실하게 이 복을 나타내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다. (눅 2:14 참조)

특히 예수께서는 그이의 산상설교에서 먼저 팔복을 선언하셨는데 '그리스도는 그의 은혜의 왕국의 본질

에 관하여 이야기 했다.'

그런데 '이러한 본질은 자기의 것으로 필요를 느끼는 조건에 있다. 이것은 하나님 은혜의 왕국에 들러가

는 첫번째 단계들이다.' 비교적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팔복은 순서적으로 나역되어 있다.

워싱톤 주 시애틀항에는 갑문식 항구가 있다. 배가 항구까지 깊이 들어가려면 이 갑문을 첫번째로 통과

해야만 한다. 그래서 팔복은 믿는 자가 복을 받고 받지 않는 것과는 다르게 은혜의 왕국(천국)에 들어가

려는 자는 누구나 다 이 팔복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세계를 이루는 일에 이르게

되어진다. 그래서 팔복과 믿음의 의는 따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한 통속인 것이다.

 

 

 

첫번째의 복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이런 자는 '천국',  줄곧 은혜의 왕국까지도 얻어지는 복인 것이다. 그리스도 당

시의 어떤 사람들은 이미 마음의 가난을 지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신은 부요하여 어떤 것도 요구되거

나 필요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의 마음이 죄로 얼룩진 오물로 가득 차 있다면 다른 깨끗게 하고 요긴하게 하는 영적인 사물이 그들

의 마음을 도저히 차지하거나 채울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이것 자체가 복이 아니라 불행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꼭 마찬가지이다. 난제가 되어지는 것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그러나 이

리 하려거든 먼저 더러운 오물들이 다 재거되고 버려져야만 하는 것이다. 오직 한 길 뿐이다.

사람이 누구나 이렇게 빈 마음과 깨끗한 마음을 심히 가난하고 배곺은 마음 가짐으로 느끼고 구한다면

이 마음에는 마치 저절로 들어오는 것이나 한 것처럼 순리로 천국이 그의 마음에 들어오는 복을 얻게 되

어질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이것에 대하여 무지하였다. 이들은 이것들을 생각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가지

고 있는 것을 깨끗하게 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인간의 죄악의 본성을 배불리며 살았다.

이리하여 하늘로부터 오신 교사,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실을 간파하고 주시하고 있었으며 저들에게서

이같은 가난한 마음의 필요부터 첫번째로 설파해야 하였다.

여기에서 말한 가난의 원어는 '극심한 가난'을 의미한 말로써 '이 "프토코스"는 비참한 영적 가난에 처

한 자들, 그리고 천국이 공급해야 할 것들에 대해 필요를 예민하게 느끼는 자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지. 화잇은 자기 심령이 스스로 부요하다고 하는 자와 자신의 마음이 가난하고 배고프다고 하는 자

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그의 '산상보훈'에 대비적으로 말했다.

 

 

 

'스스로 완전하다고 느끼는 사람, 다시 말해 자신이 꽤 선량한 줄로 생각하고 현상태에 만족하는 사람

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의에 참예하지 않으려고 한다. 교만은 아무런 필요를 느끼지 않음으로 그리스도

와 또 그분께서 오셔서 주시고자 하는 무한한 축복에 대하여 마음이 문을 닫는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을 위한 자리가 없다. 스스로 부요하고 존경받을 만한 인물로 여기는 자들은 믿음으로

구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고 스스로 어떤 의로운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께서 주실 수 있는 도움을 감사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며 그리스도께서

복이 있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분의 백성들은 심령이 가난하고 온유하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들이다. 그러므로 천국이 저희 것이다. 비록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으나 그들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골 1:12) 할 사업은 이미 그들 안에서 시작하고 있다....자기

심령의 처참한 빈곤을 느끼는 사람, 다시 말해 자기 자신에게 선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바라봄으로 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마치 분수령과 같은 첨예한 대조를 이루는 말씀인가! 그러나 이러한 무리가 엄연히 이 세상

에 존재하며 섞여있고 심지어 우리의 교회 안에서 까지라도 그러한 것이다. 문제는 팔복을 받기 전에

예수를 바로 알고 예수를 바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이런 일이 갑문식 천국의

의로 가는 길목이 되어질 것이다. 한 길 뿐이다.

'과거의 경험이 어떠하든지 그리고 현재의 환경이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할찌라도 연약하고 속절없고

낙담한 현상태 그대로 예수께 나가면 우리의 자비하신 구주께서는 멀리서부터 우리를 맞아 당신의

사랑의 팔과 의의 두루마기로 감싸 주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품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흰 두루마기

를 입혀 아버지께 소개시키신다.'(상동)

실로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마음의 가난을 느끼는 문은 심령의 열린 문이다. 그리고 찾고 찾는 심령

의 문이다. 은혜는 심령에서부터이다. 은혜의 나라의 천국의 문을 지나면 그 안에서 모든 선한 복이 실

현되기 마련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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