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목자의 시'(시편 23:1-6):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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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2)
다윗은 필시 어린 목동시절을 많이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어진 목자가 이렇게 사랑스런 양을
치고 정성껏 돌보듯이 영혼의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양과 같은 자신을 어떻게 인도하고 보살
폈는지를 많이~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대개의 목자가 양을 치고 돌볼 때 양의 필요와 요구를 너무나 잘 알게 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양
의 안녕에 적절한지를 잘 안다. 수많은 양이라고 해도 목자가 양을 바라보노라면 얼굴 따라 지어
준 그 이름을 잘 알게 되고 양의 음성 따라 그 양의 마음의 흐름을 짚어보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필요를 잘 아는 노련한 목자 다윗은 자신의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어
떻게 인도하셨는가에 대한 선하신 2가지 엄연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구태어 여기에 끄집어 낸다.
그 하늘 목자께선 자신을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또 하나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한' 사실이었다.
목자가 양을 '푸른 초장에 누이시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일까. 문자적으로는 '싱싱한 새 풀의 목
장'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양을 돌보고 치는 목자는 우선하여 푸른 초장이 있는 곳을 찾아 그 눈이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싱
싱하고 푸른 영양가 있는 베스트 양의 음식을 찾아주기 위해서 정작 구차할지라도 이사를 가는
무거운 치닥거리를 해서라도 저 산곡을 넘는다든지 아니면 어느 계곡 아니면 어느 산야를 선택하
는 것이다. 목자의 전적인 이사는 푸른 초장의 문제 때문인 것이다.
때론 멀고도 가파른 곳이나 강을 건너야 할지도 모른다. 목자는 싱싱하고도 새로 움돋는 새 풀이
많은 초장을 찾아 이렇게 해매이는 것이다. 적어도 한 식구된 양은 목자에 대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난날 능란했던 양의 목동이 이제는 일국의 대왕이 되어 보좌에 앉아있는 때에라도 영혼의 목자
께서 자신을 어떻게 인도했었는지를 생각하면 한마디로 첫째는 '푸른 초장에 누이신' 일이다.
결코 잊을라야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다윗은 한가롭게 푸른 초장에서 풀을 뜯으며 초원에
누워 쉬면서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두둥실 떠 가는 것을 바라보곤 했던 은혜의 추억에 잠기곤 했
던 것이지만 푸른 초장에서 쉴 사이 이 양 저 양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목자는 '보비야, 넌 그때 혼자서 말야 목장에 매어있었지! 몸이 지치고 아파 풀을 뜯는 것 조차 힘
들고 해서 비에 젖은 채로 그냥 울고 있었지!'한다. 이때 보비양은 목자의 눈 언저리에 잔주름 사랑
의 웃음이 나부끼는 것을 알고 이렇게 경쾌하게 대답 하는 것이었다. '주인님, 난 그때 몸이 아파
불쌍한 어린 양이었죠! 그때 목자님이 돌봐주시지 않았으면 아마도 지금 이 곳에 없었을 걸요! 지
금도 이렇게 푸른 목장으로 날 인도해주시고 누이시니 고마워요! 매햄! 매햄! 매햄!'
실로 어진 목자는 어린양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맹수와 더불어 싸우기도 한 것이다. 다윗 목동의
이런 추억의 푸른 초장과 양의 그 모습을 엇그제 일로 머리에 떠올리면서 목자이신 하늘 아버지의
자기에게 행하신 약속들과 거동들을 낱낱이 읽는 심정과 눈시울이 뜨겁게 젖는 음성으로 '그가 나
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라고 노래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린 막상 이 광경에 대한 한낱 구경꾼이 아니다. 우린 무슨 마음, 무슨 은혜를 더 많이 생각하며
우리의 영혼의 목자이신 여호와께 화답해야 할까.
다윗에게 또 하나의 골돌한 과거사에 한 추억이 있다.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한 것이다.
많은 기억들 중 얼핏하면 이것은 두번째 또렸한 기억 말이다.
제임스왕역에는 '잔잔한 물'로 되어있다는데 '문자적으로 "휴식처의 물"로써 이는 강이나 시내, 우
물, 호수, 주변처럼 물이 있는 휴식처를 의미한다.'(본 교회 성경주석)
유대나라를 가보면 아는 일이지만 목이 마른 양들에게 쉬 먹을 물을 찾아 준다는 것은 목자에겐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목자는 푸른 초장 아니면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둘이번거리며 찾는 것이
일수이다.
양들은 목마름을 잘 참아내지 못한다. 목자와 한 가정 식구가 되어버린 양들은 목자의 물찾는 그
수고를 잘 안다. 물을 실컷 마시도록 소원하는 자기 목자의 물을 찾는 그 마음을 잘 아는 것이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묘사인가!'(부조와 선지자)라고 말했다.
목자가 양을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는 것은 갈증을 잡아주고 원기를 회복하며 더 나은 회복과
더불어 목마르고 가파른 산야를 극복하도록 돕는 또 하나의 예비적인 리트리트가 된 것이다.
다윗은 사울과 그 군사에게서 쫓길 때 목이 갈하듯이 은혜와 생수의 강을 찾아 해매이는 일이 많
지 않았던가! 이 어찌 목자께서 '쉴만한 물가으로'인도하신 그 일을 두번째로 기억하지 않을 수 있
었겠는가!
다윗의 영감은 비단 이상의 의미를 훨씬 초월한 영감의 계시까지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이. 지.
화잇은 이렇게 묘사했다.
'다윗의 노래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는 역시 하늘의 목자가 당신의 양떼를 인도하고 있는
푸른 목장의 시원하고 ''잔잔한 물"(23:2)로 묘사되어 있다. 또 그는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시 36:8-9)나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부조들
과 선지자)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평안하도록 인도하시는 반면에 '하나님은 사람들이
매일의 삶에서 힘든 싸움을 더 잘 싸우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원기를 회복할 시간을 부여한
다.'(본 교회 성경주석)
그런데 또 진정 그렇게 하시는 영혼의 목자의 사려깊으신 참 뜻은 또 어디 있는 것일까. 3절의
말씀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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