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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목자의 시'(시편 23:1-6)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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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어떤 이는 글자를 오기하여 '여호와는 나의 목가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썼다 한다.

이리하여 이 글을 읽는 이가 정작 말하기를 '그렇지! 여호와는 나의 목가(목자의 노래)의 노래시니 내

가 항상 불러 부족함이 없고 행복하리로다.'로 이해했다고 한다.

적절한 표현이며 맞는 말이 된다. 양이 항상 '목가'를 부른다면 만족해지고 유여해질 것이 분명하다.

 

'시편 23편은 시편 전체의 진주'라고 말한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목자의 시'로 알

려져 내려오고 있으며 허다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목가적 시인 셈이다.

사실에 있어서 '목자의 시'라고 하면 목자가 지은 양에 관한 시라는 인상을 받기에 적절하나  '목자의

시'란 조금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든 게 사실이다. 왜 그런가?

오히려 이 시편 23편 내용 대로 보면 양이 목자를 찬양하는 시이기에 '목자에 대한 양의 찬양시'라고

함이 더 옳을 것이다.

 

양이라고 하면 순수하고 단순하며 선한 인상을 항상이라도 풍기는 특유의 동물로써 세상의 어떤 내용

물을 가지고서도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적절한 것이란 없어 보인다.

양이 주인인 목자를 의심없이 믿을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를 맡길만큼한 신뢰정신을 가지고 따르는 것

은 참으로 아름다운 목가적인 상징일뿐 아니라 그 양인 이런 자기 목자를 찬양한다면 이런 사람의 정

서란 마치 유명 바이올린 화음 보다 더 아름다운 조화의 선율을 맛보이게 되어질 것이다.

 

하나님을 순전하게 신뢰하는 백성들은 그 하나님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다. 영원히 그렇게 삼는다. 그

러하다면 유대의 거친 언덕길에서 목자로 지낸 경험과 동방왕국의 왕도 예루살렘에서 부유한 한 왕으

로서 지내본 다윗의 구구절절한 경험은 이렇게 위로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

자시니'라고 노래부르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고 적절한 표현인 것이며 당연하기까지 한 것이다.

'양 마다 다 이름이 있으며 목자가 그 이름을 부를 때에 그들은 응답한다.'(시대의 소망)는 사실을 다

윗은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이 친히 이렇게 입을 열어 이렇게 노래했을 때 그 마음이 얼마

나 평화롭고 행복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봄직한 것은 역시 당연하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다윗 같이 영감어리고 실감나는 체험은 덜하다고 할찌라도 하나님의 작은 양이

되어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노래할 수 있게 되어진다면 다

윗 못지 않는 동질의 행복한 찬양의 목자의 시가락에 젖어들게 되어질 것이 또한 분명하다.

하나의 양으로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알고 하나님을 믿으며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며 따르는 신앙체험

의 진수란 얼마나 자신 스스로에게 값진 것이 되겠는가! 아마도 이런 자에게는 이것이 다시 메아리쳐

반향되어질 것이다.

 

문자적으로 '나의 목자'란 성경에서 상징적으로는 가장 먼저 나타난 '나를 기르시는 하나님'(창 48:

15)이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유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유대광야의 험한 자연환경과

목자와 양떼 사이의 친밀한 생활, 그중에서도 그들만이 외따로 떨어져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기나긴 고

독의 시간 동안에 피차간에 형성되는 서로에 대한 강하게 이끌리는 애정에 관하여 알아야만 한다.'

(본교회 성경주석)

 

사실에 있어서 이같은 애정의 친밀감 없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결코 노래할 수 없을뿐 아

니라 노래를 부른다고 한들 허공을 치듯이 별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시편 23편은 사랑스러운 목자에 대한 양의 애정시라거나 찬양의 시라고 함이 적절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를 목자로써 애정을 바치고 찬양할진데 비록 그 길이 계곡같을지라도 그 인

생의 삶의 매 발자국 마다 얼마나 유여하고 행복한 발길이 되겠는가 해서 감격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일찌기 다윗은 그것을 체험했고 경험했던 것이다. 소중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시가

로 베어나온 것이다. 이같은 사상체험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다윗의 동기처럼 우리의

표현에도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읊조릴 수 있는 것이다. 이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나타내는 말'인데 '이 구절이 이 시의 핵심이다.'(본교회 성경주석)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목자이신 하나님의 신령함에서 오는 은혜로 아무런 부족을 느끼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그저 행복하기만 한 것이다. 이러한 부족을 느끼지 않는 삶은 하늘나라 삶과 동질의 것으

로 하늘과 방사한 삶이며 구원을 얻은 하늘 삶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할 것은 목자의 시가 목자라는 여호와 하나님과 양이라는 하나님 백성

사이의 관계 속에서 엮어진 삶이라는 본질을 단순하게 닮고 있다는 것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신앙은 믿음직스러운 분에 대한 관계의 단순함이며 신뢰이며 아름다움이며 순종의 모습이다. 그러기

에 오늘날도 유대의 광야나 산들에 가보노라면 수십 수백의 양떼들이 목자의 인도하는 의도 대로 큰

원을 그리기도 하고 각선미의 형태를 그려 보이기도 한 것이다. 한 목자 아래 있는 양들을 그려보는

것은 진풍경이 된다. 거기엔 순종의 미가 한꺼번에 조화되어 담겨있다.

 

지금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도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그렇게 따르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누구인

가? 양이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인자하신 나의 목자이시다. 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

족함이 없으리로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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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송자님의 댓글

no_profile 고송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자의 시 목가의 시!
목가적인 풍경을 마음의 그림으로 그려가면서 깊은 감동과 함께 읽어내려 갔습니다.
또한 우리의 목자되시는 예수님의 과 푸른 초장에서 이세상 근심걱정 다 내려 놓은 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
 
어제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찬양을 하는 꿈이었는데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사별 후 찬양을 잘 하지 않은 제게 하나님께서 찬양을 하도록
이끄시는 꿈인 것 같아서 찬양을 자주 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의 집 이층에 살고 있는 새댁이 있는데 제게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창양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저에 대한 위로와 언제쯤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목사님께서 올리시는 성경해석을 읽으면서 큰 위로가 됩니다.
 
어쩌면 어제밤 꿈속에서 처럼 오늘 목사님의 글 쪽으로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을 인도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성경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질문도 드리고 싶은데 바쁘시더라도 질문에 답해 주실수 있겠지요.
질문하면 시원하게 대답해 주던 사람이 이제는 제 곁에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목사님 앞으로 신학 코너에 늘 들릴것이고 목사님께서 쉽게 풀이해 놓으신 성경해석 읽을 것입니다.
제게는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신앙의 지계표가 되지 안을까 싶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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