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페이지 정보
첨부파일
- 스트레스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hwp (42.5K) 60회 다운로드
- 스트레스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ppt (1.2M) 64회 다운로드
본문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
인간(人間)은 하나님의 형상(形象)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存在)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적 존재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특별한 사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의 최고 최대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형상"은 영어로 "이미지"(image)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그 말의 뜻은 "꼭 닮은" 또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변질이 되어서 마귀의 품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자아(自我)다.
우리가 성경을 배운다는 것은 곧 자기(眞我)를 찾는 것이다. 자기(眞我)를 찾는다는 것은 곧 자아(自我)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마음의 전쟁을 한다. 진아(眞俄)인 진짜 나와 가짜 나인 자아(自我)와의 싸움이다.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내 모습은 진아(眞我)이고, 사단의 품성으로 변질된 나는 자아(自我)다. 계속적으로 자아가 진아(眞我)를 비웃었지만, 나는 거기에 지지 않고 자아의 뜻을 무시하고 진아의 뜻 -개선되고 싶다-을 선택하여야 한다. 자아는 본래의 나, 진아(眞俄)가 변질된 나다.
마치 콩이 콩나물이 된 것과 같은 이치다.
텔레비전에 아무 고장이 없고 전기가 꽂혀있어도 전파가 없다면 아무 화면도 소리도 없다. 인간은 어느 면에서 보면 텔레비전과 전파와의 관계와 같은 면도 있다. 텔레비전 자체에서 그림이 나오거나 소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 같이 나도 일종의 전파를 받아서 방영하는 텔레비전 셑트이다. 전파는 제1의 본능을 발현시키는 생기전파도 있고, 제2의 본능이 되도록 하는 사망적 전파도 있다.
생기전파를 여기서 나는 생명의 각성이라는 의미에서 생각(生覺)으로 명명하고, 사망적 전파를 사망을 향한 각오라는 의미에서 사각(死覺)��로 명명한다.
생각은 우리의 선택-웃음지으려고 노력하는 나-에 의해 나속에 초대되는 반면, 사각은 내가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나를 개선시키려 웃음짓는 연습을 하는 나를 비웃으며 일방적으로 내게 왔다.
사망적인 뜻을 품은 결과로 나타나는 건강하지 못한 생활을 살면 사망적인 뜻의 환경에 따라 유전자는 그 뜻대로 사망적으로 변질되어 결국 질병을 일으킨다. 사망적인 뜻이 곧 ��죄��이다. 이렇게 변질된 본능이 사단이 변질시켜 형성한 제2의 본능이다.
진아는 진리를 추구하는데 자아는 돈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자아(自我)가 진아(眞俄)를 자꾸 구박을 한다. 결국 이 세상은 돈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죽어도 돈벼락을 맞아야 된다.”
는 것이다.
이렇게 진아(眞俄)를 구박하면 진아는 죽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욕심과 자존심이 꽉 차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 왜?
저것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안 알아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거지가 되어서 그렇다.
거지의 기준이 무엇일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만원이 있어요. 그런데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10십억이 있다. 그러면 둘 중에 누가 거지다.
10억 있는 사람이 거지다.
왜 그러냐?
10억 갖고 있는 자는 20억니 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늘 있다. 그래서 거지다.
나는 온 우주가 내 것으로 알고 있으니 꿀릴게 없다.
내 말이 거짓말일까?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이라는 것이 있다
성선설은 맹자가 주장하는 인간의 본성으로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다는 것이고 성악설은 순자가 주장하는 것으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고 하는 주장이다
우리에게는 본성적으로 선한 나가 있고 본성적으로 악한 나가 있다.
각 사람은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1보감 366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단순함과 자기 부정에 있어서 구주를 따라가자. 우리는 말과 성결한 생애로써 갈바리의 사람 예수님을 높이 쳐들자. 구주께서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들에게 매우 가까이 와 계신다. 일찌기 우리가 우리 마음과 생애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었다면 그 때는 바로 지금이다. 우리는 성결과 자아 굴복의 생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하여 이 하늘의 능력을 굳게 붙잡자. 3보감 365
괴로운 세상을 사는 것을 불교 용어로 표현하면 사바세계라고 한다. ‘사바'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다. 사바라는 산스크리트어를 소리나는 대로 옮긴 말인데 '참고 견뎌야 한다'라는 뜻을 지녔다. 고해(苦海)라고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리는 자아(自我)로부터 진아(眞我)로 회복되어야 한다. 이렇게 가는 것을 불교에서는 해탈(解脫)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뱀도 허물을 벗고 누에도 허물을 벗는다 잠자리, 맴이 등.
우리의 자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解脫(해탈)이다. 마음의 천국을 누릴 수 있다.
해탈한 사람은 육체적 괴로움만을 느낄 뿐 정신적 괴로움은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받을 가닥이 없다.
열반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구원의 의미다. 열반은 해탈의 상태를 뜻다. 해탈하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 이 말은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제 2의 예수가 된다는 것이지.
子曰;君子懷德,小人懷土.君子懷刑,小人懷惠.(자왈 군자회덕 소인회토 군자회형 소인회혜)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덕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땅을 생각하고, 군자는 법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은혜를 생각한다.
성인군자의 길은 욕심을 버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기를 이기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성인군자는 해탈한 사람이라 하겠다. 해탈을 못한 사람은 소인배인 것이다.
불교에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는 불경이 있다.
반야심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詞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다야말로 온 경전의 요약이다.
1.마하(Mach)란 무엇인가?
마하는 인도어인데 크다는 뜻이다. 감히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절대적인 크기이며 한없이 큰 것이라고 하였다. 절대적인 하나님인 것이다. 서양어의 마하는 곧 '초음속'을 뜻한다. 마하반야바라밀의 '마하'를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음속돌파가 아니라 광속 돌파, 전광속돌파라고 할 수 있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빛의 속도, 음속의 백만 배나 되는 30만km를 눈 깜짝할 사이에 가고 오는 속도를 마하라고 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무한능력, 영원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한량없는 능력을 지닌 영원한 생명자리가 마하의 자리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2. 반야란 무엇인가?
반야는 지혜다. 이 반야의 산스크리트 원어는 프라즈나(prajna)다. 프라즈나는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예지'다. 즉, 잘 사는 지혜, 가장 잘 살 수 있게끔 하는 지혜가 반야다. 즉 지혜는 하나님이다.
3. 바라밀다란 무엇인가?
바라밀다라 함은 마하반야의 힘에 의해 즐겁고 자유롭고 편안한 대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됨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영광의 천국, 마음의 천국을 이루는 것이라 하다.
이 바라밀다의 원어인 파라미타(paramita)는 파라(para:피안)와 미타(mita:도)의 두 낱말이 붙어서 이루어진 합성어다.
파라미터의 '파라(para)'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파라는 피안, 이상의 세계인 저 언덕을 뜻한다. 생로병사의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 참지 않고서는 살라갈 수 없는 이쪽 사바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한없이 즐거운 세상이 '파라'의 세계다. 범어 '파라'는 천당을 뜻한다.
히브리어나 라틴어에서도 '파라'는 하늘나라, 천국, 유토피아, 이상향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의 파라다이스, 파라솔 등도 '파라'의 파생어로서, 모두가 하늘나라와 관계가 있다. 파라다이스는 곧 천국의 낙원, 아주 즐거운 하늘나라 꽃동산을 뜻하고, 파라솔은 하늘과 통하는 것을 차단하여 햇빛을 가리고 비를 막는 도구인 것이다. 이 '파라'를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열반의 세계, 해탈의 세계, 극락 또는 불국정토로 풀이할 수 있다.
4. 미타란 무엇인가?
'미타'는 거기에 '도착한다' 그것을 '완성한다', 그것을 '이룩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파라미타'라고 하면 '파라에 도착했다.', '파라를 완성했다.' ,'파라를 이룩하였다.'는 등의 종결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즉 천국에 도착되었다. 천국이 마음에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5.심경(心經)
불교란 성불의 가르침이고 또 부처가 된다는 것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성이라는 거울에 낀 자기 합리화와 자기변명이라는 이물질을 제거하여 참 나를 보고 그것을 인정함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나이가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등에는 사막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 만큼의 양식과, 이들의 머리 위에는 이들을 사막 저편으로 인도해 줄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나이는 자신이 짊어지고 가는 것이 양식인 줄도 모르고 길을 타박 타박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이 자신에게 사막 저편으로 건너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음도 몰랐다. 그저 걸어갈 뿐이다. 이 사나이가 언제 사막을 건널 수 있을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이 사나이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가끔 가다가 만나보는 조그마한 즐거움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사막을 건너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냥 사막을 방황할 뿐이었다.
또 한 사나이는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 등에 짊어진 양식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됨을 발견하고서 그 양식을 먹으면서 별이 인도하는 곳을 향하여 열심히 걸었습니다.
이 두 사나이 중 사막을 건넌 이는 두 번째 사나이뿐이었다.
하늘의 진리의 빛을 받아서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의 떡을 먹는 자만이 마음의 천국을 이루면서 천국에 이를 수 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하늘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엔돌핀 다이돌핀이 팍팍 나와서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마음의 천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 이전글안식이냐? 주일이냐? 13.08.21
- 다음글새 땅 13.08.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