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다니엘서 연구-포로의 상반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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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로의 상반(相反)된 목적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 . .」 (단 1:2) 어떻게 다니엘서의 현실처럼 그토록 의미심장한 하나님의 성전이 이방인에게짓밟혀 황폐해지고 언약의 선민(選民)이 포로로 잡혀 갈 수가 있는가. 적어도 구속의 역사의 관 점에서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국면이 있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고 그 백성을 잡아간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사단의 목적과 그분의 백성과 성 전을 바벨론의 손에 붙이신(단 1:2) 하나님의 상반된 목적이 교차하고 있다.
가.포로에 대한 바벨론의 목적과 방안
하나님의 성소(성전)에 대한 사단의 증오는 전절에서 언급한대로 구속의 경륜(창 3:5)의 선언과 함께 숙명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뱀 곧 자신의 머리를 상하여 죽게 할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의 마스터 플랜(기본 계획)인 성소에 대한 사단의 증오와 훼방은 자연히 필사적(必死的)일 수 밖에 없다.
「사단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숨기고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성전에 서 떠나게 함으로 자기의 왕국을 세우려고 하였다」(시대의 소망 Ⅰ, 36).
이리하여 사단은 하나님의 성전(성소)를 훼파하기 위해 고대의 대제국들을 끊임없 이 충동하고 조종했다. 솔로몬이 죽은 지 5년도 못되어 쳐들어온 이집트 22 왕조의 창시 자 시삭(SheshonkⅠ)왕에 의해 솔로몬의 성전은 크게 약탈당했으며(왕상 14:25, 26, 대하 12:2-9), 아람(다메섹)왕 하사엘의 예루살렘 침공(왕하 8:28, 29, 9:14, 15), 앗시리아 왕 산 헤립에 의한 기원전 701년과 689년의 예루살렘 공격(왕하 8:14, 17, 19:8), 기원전 605년, 597년, 586년등 세 차례에 걸친 바벨론의 침공 및 파괴, 그 후 폐르샤 왕들에 의한 예루 살렘 중건(重建) 저지(스 4:5-16), 사마리아, 암몬, 아스돗, 아라비아등 인근 백성들에 의 한 중건 방해 공작(느 4:7), 그 후 기원전 2세기에 이르러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 네스를 통한 성전 모독과 훼파(마카비 1서 1, 2장),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 장군의 예루살렘 침입, 마침내 서기 70년 예루살렘과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훼파되고 말 았다.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기능이 시작된 하늘의 참 성소에 대한 사단의 훼방은 중세기 1260년 간 지상에서 유사(類似)성소를 운영해 온 교황권에 의해 철저히 계속되었다(계 13:5, 6). 느브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침공도 이러한 시도 가운데 포함된 것이다.
물질로 지어진 성전은 이렇게 훼파하였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수(傳受)한 또 다른 하나님의 살아 있는 성전들인 택한 백성들을(고전 3:16) 사단은 어떻게 다루었 는가? 학살하거나 핍박으로 괴롭히거나 포로로 잡아가거나 때로는 회유(懷柔)시켜 더 이 상 하나님의 성전이 되지 못하게 하거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 구속의 경륜에 대한 지식 을 망각(忘却)하게 하려 한 것이 곧 선민의 역사였다. 이러한 시도는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종살이를 통해서, 사사시대의 이민족의 침입과 억압을 통하여,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에서, 남방 유다의 바벨론 포로생활 에서, 그리고 폐르샤 시대의 유대인 전멸령(에스더서)이나 마카비 시대 동안 시리아에 의한 헬라화 운동, 그리고 로마제국에 의한 유대인의 박해와 시련 등 끊이지 않는 도전 에서 명백해진다. 신약시대 동안 사도들과 신자들에게 가해졌던 두려운 핍박과 순교, 중세기 1260년 간 교황권을 통한 성도들의 박해, 종교의 자유가 없는 국가들에서의 박해등은 아직까지 계 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사단의 분노인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바벨론 포로도 그 일단(一端)인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교육과 후대(厚待)를 방편으로 한 회유책(懷柔策)을 써서 이들 을 바벨론 국정(國政)에 기용(起用)함과 동시에 속국(屬國) 유다에 대한 효과적인 지배를 보장하는 한 편 무모한 반역을 억제하는 볼모 즉 인질(人質)이 되게도 한 것이다. 「왕은 우상숭배를 위하여 저희 믿음을 포기하도록 히브리 청년들에게 강요하지 아니 하고 이 일이 서서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였다. 그들에게 우상숭배의 의미를 가진 이 름을 주고 날마다 그들을 우상숭배의 풍습과 밀접한 접촉을 하게 함으로써 이교 예배 의 유혹적인 의식의 감화로 그들로 하여금 저희 민족의 신앙을 버리고 바벨론 사람의 예배에 연합하게 하고자 하였다(선지자와 왕, 461). 교육을 통한 동화책(同化策) 「. . . 그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가르치게 하였고」(단 1:4).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 특히 이들 젊은이들을 자신의 이상에 일치하도록 동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첫번째 방편은 교육이었다. 교육의 목적은 "변화"(變化)를 초래하는데 있다.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최선의 방편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 적은 구속의 경륜에 직결되어 있다. 「교육하는 일과 구속하는 일은 결국의 의미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니 이는 교육 하는 일도 구속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 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11)」(교육, 40). 사단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은 무엇인가. 갈대아인(Chaldeans)은 노아의 아들 셈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아람을 조상으로 하는 아람족에 속하는 칼두(Kaldu)족속을 가리킨다(창 10:22, 23, 대상 1:17). 이들 갈대아족이 바벨론을 중심으로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이룩하는데 성공했으므로 성경에서나 고대의 역사가들도 그 나라를 자주 갈대아라고 불렀다. 나보포랏살이나 느 브갓네살등은 모두 갈대아족에 속했는데 이들 갈대아족은 신바빌로니아의 지배 계급이 되어 제사장 직분을 비롯한 모든 고위 직분을 차지했다. 갈대아인이란 명칭은 바벨론의 제 사장들, 최고의 학자들, 천문학자, 점성술사들, 마술사등 특수 계급을 가리키기도 했다. 갈대아 학문과 방언이란 이러한 분야에 관해 베풀어진 최고의 교육으로 3년 동안 각 분 야의 학문을 비롯하여 아람어의 숙달과 쐐기문자의 습득도 포함되었다.
「거기에는 자국 바벨론을 비롯헤서 메디아, 폐르샤, 이집트, 페니키아, 시리아 등 고대 나라들과 정복당한 나라들로부터 모여든 가장 똑똑하고 민활한 젊은이들이 있 었다. 교과 과정은 언어, 갈대아 문학, 과학, 수학, 철학, 천문학, 점성술학을 포함하 고 있었다. 이에 연관된 것으로 현대의 고고학은 수 많은 바벨론의 교과서들과 참고 서들을 발굴해냈는데 그 가운데는 천문학과 점성술에 관한 70권 짜리 논문도 있었 음은 흥미있는 일이다.」
이러한 학문들을 통하여 지적인 위해함 만을 추구하는 동안 하나님은 잊혀지고 하나 님의 말씀은 경시되어 마침내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의 근본임을 망각하 고 세상의 지혜를 따라 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갈대아 형태의 학문의 결과로 그 동 안 세상은 각 분야의 학문에 있어서 인지(人智)의 발달은 현저했고 온갖 지식은 축적되 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성(人性)은 개선되는 대신 오히려 타락하여 왔으며 도덕적으로 도 더욱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본다.
오늘날 세상의 대부분의 학교들, 특히 대학교육의 경우 그토록 유용한 최고의 학문들 을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도덕에 역행(逆行)하는 부실(不實)한 세대들이 마구 배출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루터는 대학에 보내는 글에서 이러한 권면을 남겼다.
「나는 각 대학이 만일 열심히 성경을 설명하고 이것을 청년들의 마음 가운데 인식 시키지 못할진대 지옥의 문이 될까 두려워하는 바이다. 누구든지 그 자녀를 성경을 으뜸으로 삼지 않는 학교에 보내지 말기를 권면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상권, 224, 226).
현대의 모든 파멸적인 무신론, 회의론, 성서에 대한 고등비평들이 이러한 갈대아식의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들에서 나왔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이를 분쇄하고자 일어난 로마 카톨릭의 예수회(제수이트)의 교육 사업을 통 한 반종교 개혁에 의해 거의 무력하게 되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현대 바벨론의 주 축이 되고 있는 교황권의 유지와 교권 확장의 기틀이 바로 가장 강력한 교육제도를 통 해 수행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갈대아식의 학문 즉 하나님 없는 탁월 한 지식만을 가르치는 교육을 통해 사단은 지금과 같이 세상을 그의 뜻에 일치하도록 바꾸어 놓은데 크게 성공한 것이다.
식생활을 통한 동화책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 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 . .」(단 1:5).
사람의 몸은 골격이나 근육이나 신경조직이나 할 것 없이 그가 먹는 음식으로 구성된 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는가 하는 문제는 그가 어떠한 몸과 정신, 나아가서는 성품을 가 지게 될지를 결정해준다.
「정신과 신체의 능력은 물론 영적 능력도 비건강적인 음식의 영향을 받는다. 양심 은 마비되며 선한 감화에 대한 감수성은 감소된다」(CD, 230).
「우리의 신체는 정신과 영혼이 계발되어 성품을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 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원수는 육체적인 힘을 약화시키고 퇴화시키기 위하여 인간을 유혹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 육 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죄악의 세력에 굴복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MH, 130).
만약 다니엘과 세 친구가 영적, 도덕적, 건강적 원칙을 일체 고려하지 아니한 바벨론 왕궁의 식생활에 아무 저항 없이 동화되었더라면 그들의 신앙과 품성, 나아가서는 운명 까지도 결국 그들과 동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고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시 69:22). 사단은 세상을 타락시키는 일에 이 올무와 덫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해 오고 있는가.
개명(改名)을 통한 동화책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 고, 미사엘은 메삭이라고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단 1:7).
이스라엘 백성의 이름은 단순한 호명(呼名)이상의 뜻이 있었다. 그것은 엄연히 하나님 의 백성으로서의 언약관계를 나타내거나(창 17:3-5, 15, 16, 32:27, 28), 종교적인 소원을 표현하는 예배적 의미를 포함하기도 했다.
「히브리 부모들이 저희 자녀들에게 주는 이름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때때로 이 이 름들은 부모가 그 아이에게서 계발되는 것을 보기 원하는 성품의 특성을 나타내었 다」(선지자와 왕, 460).
잡혀 온 히브리 네 소년들의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이름들은 그들이 얼마나 경건한 부 모님의 자녀들이며 얼마나 신앙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기대에 넘친 귀중한 존재들임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이름들이었다. 그들의 히브리 본명(本名)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개 인적인 신앙 고백이기도 했다.
○ 다니엘 -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 (God is my judge)
○ 하나냐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Yahweh is gracious)
○ 미사엘 - "누가 하나님께 속하였는가 ?" (Who belongs to God)
○ 아사랴 - "여호와께서 도우신다." (Yahweh helps)
그들의 이러한 이름들이 환관장에 의하여 각각 아래와 같이 바뀌어 불리움으로써 하 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기인식(自己認識)을 망각하게 하고 오히려 우상숭배적인 신앙에 공명(共鳴)내지 최면적(催眠的)인 효과를 가져오게 했다.
○ 벨드사살 - "벨(Bel)이 그의 생명을 보호할 것이다." (Bel will protect his life)
○ 사 드 락 - 뜻을 분명히 알 수가 없으나 월신(月神)을 경배하는 자라는 뜻 을 지닌 것 같다.
○ 메 삭 - 역시 분명치 않으나 포도주의 여신에게 몸바친 자라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알려진다. ○ 아벳느고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의 아들인 "나부(신)의 종"(Servant of (the god) Nabu).
후대(厚待)와 번영을 통한 동화책 포로의 신분으로 잡혀 온 이들 히브리 소년들은 육신적인 생활에 관한 한 가장 부러 워할 만한 환경에 처해졌다. 대제국이 베풀 수 있는 최선의 편의가 그들에게 제공되어 그들의 신상(身狀)을 직접 책임진 궁중 고급 관리들이 배정되었고, 모든 필요가 넉넉히 공급되었으며, 왕의 은총 가운데 우대받는 입장에 놓였다. 번영과 호의는 역경과 적의(敵意)보다 자주 자주 더 어려운 시험이 되어왔다.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거듭된 시험이었으며(신 28:47),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소 돔의 죄악이었으며(겔 16:49),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필요를 넉넉히 공급받으면서도 오히려 "영혼은 파리"하였었다(시 106:15). 오늘날도 생활이 부요한 사회 계층과 국민 소 득이 높은 나라들이 도덕적으로 더욱 부패해 있음을 본다. 이토록 나이 어린 소년들에게 는 거의 불가항력적인 안팎의 시험들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어떻게 물리칠 수 있었을까.
나. 포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주께서 . . . 붙이시매 . . .」(단 1:2).
다니엘서 1장의 사건은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되고 그 분의 백성들이 포로돼 감으로써 일견 하나님 편의 일방적인 패배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불행한 사 태 아래서도 이 일이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즉 성전과 백성의 얼마를 바벨 론의 손에 능동적으로 "붙이신"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되고 성전이 황폐하게 되는 사태는 불순종에 대한 조건적인 저주와 심판과 치유의 방편임이 일찌기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예고된 사실이다(레 26:14, 15, 31-33, 신 28:15, 36, 64, 65). 이는 백성의 죄악을 고치고 타락의 길에서 돌 이키기 위한 사랑의 징계가 그 목적인 것이다(레 26:13, 21, 27, 40, 렘 9:21, 22, 10:11-14). 실제로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바로 그것이 포로되어 가게 만든 주요 죄악이었던 우상숭배에 다시는 빠져들지 않았으며 안식일 준수에도 보다 철저하게 되었다(겔 20:13, 20-26, 22:15-26, 느13:15-22).
「바벨론에 사로잡혀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겨 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서 효과적으로 완치되었다. 수백년간 저들은 이방의 대적들의 압제로 곤난을 받았는데 그 결과로 저희의 번영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데 달렸다는 신념이 저희 마음 에 박히게 되었다」(시대의 소망 Ⅰ, 27).
온 세상에 참 하나님을 소개하고 구원의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포로가 허용되었 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했다면 세상의 빛이 되고 구원의 전달자로 택 함받은 그들의 사명은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방법으로 성취될 것이었다(신 26:19, 28:10, 4:6). 그러나 그들의 불충실로 말미암아 이 사명은 고난과 역경중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 로 성취될 수 밖에 없었다.
「저들은 바벨론에 굴복하게 되어 이방 나라들 가운데 흩어지게 되었다. 그들이 버 드나무 위에 그들의 거문고를 걸어 놓고 황폐된 성전을 생각하며 슬퍼할 때에 그들 을 통하여 진리의 빛이 퍼져나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열방에 퍼지게 되었다」 (시대의 소망Ⅰ, 27).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과 또한 구세주를 알려주는 표상과 예언의 지식을 인류 가운데 보존하게 하시기 위해 저들을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세상에서 구원 의 샘이 되기를 원하셨다. 마치 아브라함이 우거하던 땅에서, 요셉이 애굽에서, 다니 엘이 바벨론의 궁전에 있었던 것처럼 히브리 백성들도 열방 가운데 있어야 할 것이 었다. 저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었다」(시대의 소망Ⅰ, 2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당시의 세계적인 세 대륙, 즉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 가 서로 마주치는 육교(陸橋)에 두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진리와 구원의 등대로 삼으려 하신 까닭이다(사 60:1).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바벨론의 위대한 사람들과 접 촉하게 되었는데 이는 이 사람들이 히브리의 종교를 알게 되고 모든 나라를 통치 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고자 함이었다」(7T, 161).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에 의하여 세워진 모든 기관마다 세상에 대하여 요셉이 애굽에 있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바벨론에 있었던 것처럼 되어야 한다. 하나 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들 택함받은 사람들이 포로되어 갔는데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하여 인간에게 이르러 오는 축복을 이방 나라들에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 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대표자들이 되어야 했다」(6T, 219, 220).
결국 포로의 경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돌이킬 뿐만 아니 라 우상숭배로 멸망해 가는 "바벨론을 치료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다 (렘 51:9). 이리하 여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바벨론인이나 구분 없이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 시려는 구속의 계획을 추진시키고(창 3:15), 이를 실현하기 위해(요 3:16) 각 시대 만민 에게 차별이 없는 은혜를 나누어 주시기 위함이었다(창 12:2, 3, 롬 1:16). 그리고 이 일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를 통하여 바벨론에서 훌륭히 성취되었음을 본다 (단 2:28, 47, 4:17, 25-27, 34-37, 5:18-28).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 . .」 (단 1:2) 어떻게 다니엘서의 현실처럼 그토록 의미심장한 하나님의 성전이 이방인에게짓밟혀 황폐해지고 언약의 선민(選民)이 포로로 잡혀 갈 수가 있는가. 적어도 구속의 역사의 관 점에서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국면이 있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고 그 백성을 잡아간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사단의 목적과 그분의 백성과 성 전을 바벨론의 손에 붙이신(단 1:2) 하나님의 상반된 목적이 교차하고 있다.
가.포로에 대한 바벨론의 목적과 방안
하나님의 성소(성전)에 대한 사단의 증오는 전절에서 언급한대로 구속의 경륜(창 3:5)의 선언과 함께 숙명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뱀 곧 자신의 머리를 상하여 죽게 할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의 마스터 플랜(기본 계획)인 성소에 대한 사단의 증오와 훼방은 자연히 필사적(必死的)일 수 밖에 없다.
「사단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숨기고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성전에 서 떠나게 함으로 자기의 왕국을 세우려고 하였다」(시대의 소망 Ⅰ, 36).
이리하여 사단은 하나님의 성전(성소)를 훼파하기 위해 고대의 대제국들을 끊임없 이 충동하고 조종했다. 솔로몬이 죽은 지 5년도 못되어 쳐들어온 이집트 22 왕조의 창시 자 시삭(SheshonkⅠ)왕에 의해 솔로몬의 성전은 크게 약탈당했으며(왕상 14:25, 26, 대하 12:2-9), 아람(다메섹)왕 하사엘의 예루살렘 침공(왕하 8:28, 29, 9:14, 15), 앗시리아 왕 산 헤립에 의한 기원전 701년과 689년의 예루살렘 공격(왕하 8:14, 17, 19:8), 기원전 605년, 597년, 586년등 세 차례에 걸친 바벨론의 침공 및 파괴, 그 후 폐르샤 왕들에 의한 예루 살렘 중건(重建) 저지(스 4:5-16), 사마리아, 암몬, 아스돗, 아라비아등 인근 백성들에 의 한 중건 방해 공작(느 4:7), 그 후 기원전 2세기에 이르러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 네스를 통한 성전 모독과 훼파(마카비 1서 1, 2장),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 장군의 예루살렘 침입, 마침내 서기 70년 예루살렘과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훼파되고 말 았다.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기능이 시작된 하늘의 참 성소에 대한 사단의 훼방은 중세기 1260년 간 지상에서 유사(類似)성소를 운영해 온 교황권에 의해 철저히 계속되었다(계 13:5, 6). 느브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침공도 이러한 시도 가운데 포함된 것이다.
물질로 지어진 성전은 이렇게 훼파하였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수(傳受)한 또 다른 하나님의 살아 있는 성전들인 택한 백성들을(고전 3:16) 사단은 어떻게 다루었 는가? 학살하거나 핍박으로 괴롭히거나 포로로 잡아가거나 때로는 회유(懷柔)시켜 더 이 상 하나님의 성전이 되지 못하게 하거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 구속의 경륜에 대한 지식 을 망각(忘却)하게 하려 한 것이 곧 선민의 역사였다. 이러한 시도는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종살이를 통해서, 사사시대의 이민족의 침입과 억압을 통하여,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에서, 남방 유다의 바벨론 포로생활 에서, 그리고 폐르샤 시대의 유대인 전멸령(에스더서)이나 마카비 시대 동안 시리아에 의한 헬라화 운동, 그리고 로마제국에 의한 유대인의 박해와 시련 등 끊이지 않는 도전 에서 명백해진다. 신약시대 동안 사도들과 신자들에게 가해졌던 두려운 핍박과 순교, 중세기 1260년 간 교황권을 통한 성도들의 박해, 종교의 자유가 없는 국가들에서의 박해등은 아직까지 계 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사단의 분노인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바벨론 포로도 그 일단(一端)인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교육과 후대(厚待)를 방편으로 한 회유책(懷柔策)을 써서 이들 을 바벨론 국정(國政)에 기용(起用)함과 동시에 속국(屬國) 유다에 대한 효과적인 지배를 보장하는 한 편 무모한 반역을 억제하는 볼모 즉 인질(人質)이 되게도 한 것이다. 「왕은 우상숭배를 위하여 저희 믿음을 포기하도록 히브리 청년들에게 강요하지 아니 하고 이 일이 서서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였다. 그들에게 우상숭배의 의미를 가진 이 름을 주고 날마다 그들을 우상숭배의 풍습과 밀접한 접촉을 하게 함으로써 이교 예배 의 유혹적인 의식의 감화로 그들로 하여금 저희 민족의 신앙을 버리고 바벨론 사람의 예배에 연합하게 하고자 하였다(선지자와 왕, 461). 교육을 통한 동화책(同化策) 「. . . 그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가르치게 하였고」(단 1:4).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 특히 이들 젊은이들을 자신의 이상에 일치하도록 동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첫번째 방편은 교육이었다. 교육의 목적은 "변화"(變化)를 초래하는데 있다.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최선의 방편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 적은 구속의 경륜에 직결되어 있다. 「교육하는 일과 구속하는 일은 결국의 의미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니 이는 교육 하는 일도 구속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 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11)」(교육, 40). 사단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은 무엇인가. 갈대아인(Chaldeans)은 노아의 아들 셈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아람을 조상으로 하는 아람족에 속하는 칼두(Kaldu)족속을 가리킨다(창 10:22, 23, 대상 1:17). 이들 갈대아족이 바벨론을 중심으로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이룩하는데 성공했으므로 성경에서나 고대의 역사가들도 그 나라를 자주 갈대아라고 불렀다. 나보포랏살이나 느 브갓네살등은 모두 갈대아족에 속했는데 이들 갈대아족은 신바빌로니아의 지배 계급이 되어 제사장 직분을 비롯한 모든 고위 직분을 차지했다. 갈대아인이란 명칭은 바벨론의 제 사장들, 최고의 학자들, 천문학자, 점성술사들, 마술사등 특수 계급을 가리키기도 했다. 갈대아 학문과 방언이란 이러한 분야에 관해 베풀어진 최고의 교육으로 3년 동안 각 분 야의 학문을 비롯하여 아람어의 숙달과 쐐기문자의 습득도 포함되었다.
「거기에는 자국 바벨론을 비롯헤서 메디아, 폐르샤, 이집트, 페니키아, 시리아 등 고대 나라들과 정복당한 나라들로부터 모여든 가장 똑똑하고 민활한 젊은이들이 있 었다. 교과 과정은 언어, 갈대아 문학, 과학, 수학, 철학, 천문학, 점성술학을 포함하 고 있었다. 이에 연관된 것으로 현대의 고고학은 수 많은 바벨론의 교과서들과 참고 서들을 발굴해냈는데 그 가운데는 천문학과 점성술에 관한 70권 짜리 논문도 있었 음은 흥미있는 일이다.」
이러한 학문들을 통하여 지적인 위해함 만을 추구하는 동안 하나님은 잊혀지고 하나 님의 말씀은 경시되어 마침내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의 근본임을 망각하 고 세상의 지혜를 따라 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갈대아 형태의 학문의 결과로 그 동 안 세상은 각 분야의 학문에 있어서 인지(人智)의 발달은 현저했고 온갖 지식은 축적되 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성(人性)은 개선되는 대신 오히려 타락하여 왔으며 도덕적으로 도 더욱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본다.
오늘날 세상의 대부분의 학교들, 특히 대학교육의 경우 그토록 유용한 최고의 학문들 을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도덕에 역행(逆行)하는 부실(不實)한 세대들이 마구 배출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루터는 대학에 보내는 글에서 이러한 권면을 남겼다.
「나는 각 대학이 만일 열심히 성경을 설명하고 이것을 청년들의 마음 가운데 인식 시키지 못할진대 지옥의 문이 될까 두려워하는 바이다. 누구든지 그 자녀를 성경을 으뜸으로 삼지 않는 학교에 보내지 말기를 권면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상권, 224, 226).
현대의 모든 파멸적인 무신론, 회의론, 성서에 대한 고등비평들이 이러한 갈대아식의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들에서 나왔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이를 분쇄하고자 일어난 로마 카톨릭의 예수회(제수이트)의 교육 사업을 통 한 반종교 개혁에 의해 거의 무력하게 되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현대 바벨론의 주 축이 되고 있는 교황권의 유지와 교권 확장의 기틀이 바로 가장 강력한 교육제도를 통 해 수행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갈대아식의 학문 즉 하나님 없는 탁월 한 지식만을 가르치는 교육을 통해 사단은 지금과 같이 세상을 그의 뜻에 일치하도록 바꾸어 놓은데 크게 성공한 것이다.
식생활을 통한 동화책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 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 . .」(단 1:5).
사람의 몸은 골격이나 근육이나 신경조직이나 할 것 없이 그가 먹는 음식으로 구성된 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는가 하는 문제는 그가 어떠한 몸과 정신, 나아가서는 성품을 가 지게 될지를 결정해준다.
「정신과 신체의 능력은 물론 영적 능력도 비건강적인 음식의 영향을 받는다. 양심 은 마비되며 선한 감화에 대한 감수성은 감소된다」(CD, 230).
「우리의 신체는 정신과 영혼이 계발되어 성품을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 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원수는 육체적인 힘을 약화시키고 퇴화시키기 위하여 인간을 유혹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 육 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죄악의 세력에 굴복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MH, 130).
만약 다니엘과 세 친구가 영적, 도덕적, 건강적 원칙을 일체 고려하지 아니한 바벨론 왕궁의 식생활에 아무 저항 없이 동화되었더라면 그들의 신앙과 품성, 나아가서는 운명 까지도 결국 그들과 동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고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시 69:22). 사단은 세상을 타락시키는 일에 이 올무와 덫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해 오고 있는가.
개명(改名)을 통한 동화책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 고, 미사엘은 메삭이라고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단 1:7).
이스라엘 백성의 이름은 단순한 호명(呼名)이상의 뜻이 있었다. 그것은 엄연히 하나님 의 백성으로서의 언약관계를 나타내거나(창 17:3-5, 15, 16, 32:27, 28), 종교적인 소원을 표현하는 예배적 의미를 포함하기도 했다.
「히브리 부모들이 저희 자녀들에게 주는 이름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때때로 이 이 름들은 부모가 그 아이에게서 계발되는 것을 보기 원하는 성품의 특성을 나타내었 다」(선지자와 왕, 460).
잡혀 온 히브리 네 소년들의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이름들은 그들이 얼마나 경건한 부 모님의 자녀들이며 얼마나 신앙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기대에 넘친 귀중한 존재들임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이름들이었다. 그들의 히브리 본명(本名)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개 인적인 신앙 고백이기도 했다.
○ 다니엘 -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 (God is my judge)
○ 하나냐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Yahweh is gracious)
○ 미사엘 - "누가 하나님께 속하였는가 ?" (Who belongs to God)
○ 아사랴 - "여호와께서 도우신다." (Yahweh helps)
그들의 이러한 이름들이 환관장에 의하여 각각 아래와 같이 바뀌어 불리움으로써 하 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기인식(自己認識)을 망각하게 하고 오히려 우상숭배적인 신앙에 공명(共鳴)내지 최면적(催眠的)인 효과를 가져오게 했다.
○ 벨드사살 - "벨(Bel)이 그의 생명을 보호할 것이다." (Bel will protect his life)
○ 사 드 락 - 뜻을 분명히 알 수가 없으나 월신(月神)을 경배하는 자라는 뜻 을 지닌 것 같다.
○ 메 삭 - 역시 분명치 않으나 포도주의 여신에게 몸바친 자라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알려진다. ○ 아벳느고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의 아들인 "나부(신)의 종"(Servant of (the god) Nabu).
후대(厚待)와 번영을 통한 동화책 포로의 신분으로 잡혀 온 이들 히브리 소년들은 육신적인 생활에 관한 한 가장 부러 워할 만한 환경에 처해졌다. 대제국이 베풀 수 있는 최선의 편의가 그들에게 제공되어 그들의 신상(身狀)을 직접 책임진 궁중 고급 관리들이 배정되었고, 모든 필요가 넉넉히 공급되었으며, 왕의 은총 가운데 우대받는 입장에 놓였다. 번영과 호의는 역경과 적의(敵意)보다 자주 자주 더 어려운 시험이 되어왔다.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거듭된 시험이었으며(신 28:47),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소 돔의 죄악이었으며(겔 16:49),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필요를 넉넉히 공급받으면서도 오히려 "영혼은 파리"하였었다(시 106:15). 오늘날도 생활이 부요한 사회 계층과 국민 소 득이 높은 나라들이 도덕적으로 더욱 부패해 있음을 본다. 이토록 나이 어린 소년들에게 는 거의 불가항력적인 안팎의 시험들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어떻게 물리칠 수 있었을까.
나. 포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주께서 . . . 붙이시매 . . .」(단 1:2).
다니엘서 1장의 사건은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되고 그 분의 백성들이 포로돼 감으로써 일견 하나님 편의 일방적인 패배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불행한 사 태 아래서도 이 일이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즉 성전과 백성의 얼마를 바벨 론의 손에 능동적으로 "붙이신"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되고 성전이 황폐하게 되는 사태는 불순종에 대한 조건적인 저주와 심판과 치유의 방편임이 일찌기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예고된 사실이다(레 26:14, 15, 31-33, 신 28:15, 36, 64, 65). 이는 백성의 죄악을 고치고 타락의 길에서 돌 이키기 위한 사랑의 징계가 그 목적인 것이다(레 26:13, 21, 27, 40, 렘 9:21, 22, 10:11-14). 실제로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바로 그것이 포로되어 가게 만든 주요 죄악이었던 우상숭배에 다시는 빠져들지 않았으며 안식일 준수에도 보다 철저하게 되었다(겔 20:13, 20-26, 22:15-26, 느13:15-22).
「바벨론에 사로잡혀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겨 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서 효과적으로 완치되었다. 수백년간 저들은 이방의 대적들의 압제로 곤난을 받았는데 그 결과로 저희의 번영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데 달렸다는 신념이 저희 마음 에 박히게 되었다」(시대의 소망 Ⅰ, 27).
온 세상에 참 하나님을 소개하고 구원의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포로가 허용되었 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했다면 세상의 빛이 되고 구원의 전달자로 택 함받은 그들의 사명은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방법으로 성취될 것이었다(신 26:19, 28:10, 4:6). 그러나 그들의 불충실로 말미암아 이 사명은 고난과 역경중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 로 성취될 수 밖에 없었다.
「저들은 바벨론에 굴복하게 되어 이방 나라들 가운데 흩어지게 되었다. 그들이 버 드나무 위에 그들의 거문고를 걸어 놓고 황폐된 성전을 생각하며 슬퍼할 때에 그들 을 통하여 진리의 빛이 퍼져나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열방에 퍼지게 되었다」 (시대의 소망Ⅰ, 27).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과 또한 구세주를 알려주는 표상과 예언의 지식을 인류 가운데 보존하게 하시기 위해 저들을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세상에서 구원 의 샘이 되기를 원하셨다. 마치 아브라함이 우거하던 땅에서, 요셉이 애굽에서, 다니 엘이 바벨론의 궁전에 있었던 것처럼 히브리 백성들도 열방 가운데 있어야 할 것이 었다. 저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었다」(시대의 소망Ⅰ, 2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당시의 세계적인 세 대륙, 즉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 가 서로 마주치는 육교(陸橋)에 두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진리와 구원의 등대로 삼으려 하신 까닭이다(사 60:1).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바벨론의 위대한 사람들과 접 촉하게 되었는데 이는 이 사람들이 히브리의 종교를 알게 되고 모든 나라를 통치 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고자 함이었다」(7T, 161).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에 의하여 세워진 모든 기관마다 세상에 대하여 요셉이 애굽에 있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바벨론에 있었던 것처럼 되어야 한다. 하나 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들 택함받은 사람들이 포로되어 갔는데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하여 인간에게 이르러 오는 축복을 이방 나라들에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 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대표자들이 되어야 했다」(6T, 219, 220).
결국 포로의 경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돌이킬 뿐만 아니 라 우상숭배로 멸망해 가는 "바벨론을 치료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다 (렘 51:9). 이리하 여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바벨론인이나 구분 없이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 시려는 구속의 계획을 추진시키고(창 3:15), 이를 실현하기 위해(요 3:16) 각 시대 만민 에게 차별이 없는 은혜를 나누어 주시기 위함이었다(창 12:2, 3, 롬 1:16). 그리고 이 일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를 통하여 바벨론에서 훌륭히 성취되었음을 본다 (단 2:28, 47, 4:17, 25-27, 34-37, 5: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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