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열 발가락의 열국시대 (AD 476-재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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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열 발가락의 열국시대 (AD 476-재림까지)
1.쪼개지는 로마제국 (AD 351-476)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 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만할 것이며. . .」(2:41, 42).
서기 351년 게르만 족의 한 부족인 알레마니(Alemani)가 로마 영토에 첫 발을 딛은 후 395년 데오도시우스 대제(Theodosius the Great)의 사망과 함께 로마는 동서로 나뉘이고 476년 헤룰리(Heruli)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Odoacer)가 서 로마제국을 끝장내기까지 약 120여년 동안 로마제국은 철의 강도(强度)를 잃고 대략 아래와 같이 무쪽처럼 열 나라로 쪼개졌다. 그리고 이들 나라들이 바로 오늘날의 서구 세계를 이루고 있는 근간이 된 것이다.
(연대 AD) (게르만족의 부족 이름) (지금의 나라 혹은 지방)
- 351 알레마니(Alemanni) 독 일
- 351 프랑크(Franks) 프 랑 스
- 406 부르군디(Burgundians) 스 위 스
- 406 수에비(Suevi) 포르트칼
- 406 반 달(Vandals) 아프리카
- 408 서고드(Visigoths) 스 페 인
- 409 앵글로-색슨(Anglo-Saxons) 브리튼(영국)
- 453 동고드(Ostrogoths) 이 탤 리
- 453 롬바르드(Lombards) 이 탤 리
- 476 헤룰리(Heruli) 이 탤 리
이 가운데 프랑크나 서고드, 앵글로-색슨등은 강력한 나라들로 성장하여 "얼마는 든든"하게 됐으나(2:42), 수에비나 부르군디등은 연약한 상태로 자라왔고 동고드, 반달, 헤룰리 등은 나라의 기반을 굳히지 못한 채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되었다.
2.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열국시대 (476∼재림까지)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2:43).
이 부분의 70인역(LXX) 헬라어 원본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왕께서 철과 오지(earthenware)가 섞인 것을 보신 바와 같이 사람들이 민족간에 서로 뒤섞일 것이지만 철과 진흙이 섞일 수 없는 것 같이 뜻이 같지(be like-minded) 아니할 것이며 서로 우애가 없을 것이라」(칠십인역 2:43).
이러한 열국시대에 관한 서술에서 우리는 몇 가지의 특징을 쉽사리 찾아 내게 된다.
1. 열국(列國)들 중에 어떤 나라는 철과 같은 강대국이 되기도 하고 진흙으로 구어 만든 오지처럼 약소국이 되기도 하겠지만 서로 공존(共存)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2. 강력한 민족주의(nationalism)의 출현으로 인종은 뒤섞여도 나라들은 병합되는 일이 없이 독립을 지켜 나갈 것이다.
3. 나라들 간에 잠정적이고 표면적인 동맹과 연합은 있을 수 있어도 결코 영구적이거나 본질적인 화합은 있지 않을 것이다.
4. 인구의 성분과 분포에 있어서 민족간의 잡혼(雜婚)으로 다양성을 나타낼 것이나 국가적 동질성(同質性)은 유지될 것이다.
5. 이러한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바탕에서 강대국들과 약소 국가들이 공존하는 복잡다단(複雜多端)한 국제 정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놀라운 예언의 세목(細目)들은 그 동안 역사라는 엄격한 시험대를 통과하면서 더욱 더 분명해졌고 그 것이 곧 오늘날의 세계인 것이다. 이 열국시대에 관한 예언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
ⓐ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 . .」(2:43 상단).
이 말은 "인종"(人種)이란 아람어(enash)의 용례에 비추어 보아서도 결혼과 같은 방법을 통하여 "인종끼리 서로 혼합하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모팻(Moffatt)은 "저들은 잡혼(雜婚)할 것이나"라고 번역하고 있다. 참으로 오늘날의 서구 사회는 광범위한 국제결혼을 통하여 이루어진 잡다한 인종의 용광로가 되고 있다.
다음의 진술은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하던 당시의 유럽 여러 나라들의 혈연적 관계를 단면(斷面)으로 보여 주고 있는데 다니엘의 예언대로 서구의 인종이 어떻게 쉽사리 뒤섞였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전쟁 중에 있는 유럽은 거의 큰 가족 싸움 같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전쟁에 가장 열렬히 참여한 나라의 왕실은 실제로 동일한 게르만족 계통으로 거의 모두가 한 혈통이었다. 두 작은 왕국인 세르비아(Servia)와 몬테니그로(Montenegro)를 제외하고는 유럽의 모든 왕위가 게르만의 혈통이 지배하는 왕실 사이의 상호 결혼으로 이루어져 왔다. . . . 북 유럽을 지배하는 왕들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긴밀한 관계가 맺어졌다. 즉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윌리암(William)황제는 그의 사촌들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영국의 국왕 죠지 5세(George V)와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스 2세(Nicholas II)는 덴막의 국왕 크리스챤 9세(Christian Ⅸ)의 딸들인 그들의 어머니들을 통하여 사촌 간이다. 이 두 지배자들의 사진을 본 사람은 누구나 의심 없이 그들이 가족적으로 닮았음을 주목해 왔다. 독일의 윌리암 2세(William Ⅱ)는 영국의 국왕 죠지 5세의 사촌인데 이는 윌리암 황제의 어머니 빅토리아(Victoria)가 죠지 왕의 아버지인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7세(Edward Ⅶ)와 남매 간이 되기 때문이다. 더우기 러시아의 니콜라스 황제는 죠지 왕과 윌리암 황제 모두에게 사촌 벌이 되는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황후의 어머니는 에드워드 7세의 또 다른 누이였다. 결과적으로 죠지 왕, 윌리암 황제, 니콜라스 황제는 그들의 아버지를 통하여 1752년에 죽은 멕클렌버그 스트렐리쯔 공(Duke Mecklenburg Strelitz), 촬스(Charles)의 증손자들이 되고 윌리암 황제와 니콜라스 황제는 프러시아의 프레드릭 윌리암 3세(Frederick William Ⅲ)의 자손들이다. 죠지 왕과 니콜라스 황제의 다른 사촌들로 덴막의 크리스챤 9세의 손자들도 되는 사람들은 덴막의 크리스챤 10세, 그리스의 콘스탄틴 1세(Constantine Ⅰ), 그리고 윌리암 2세의 사위가 되는 브룬스윅(Brunswick)의 공작 에른스트 어거스트(Ernst August)등이다.」
이러한 긴밀한 혼인관계에 의한 혈연(血緣)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예언은 여부가 없이 성취된 것이다.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 같으리이다」(2:43 하단).
느브갓네살의 황금 꿈, 다리우스의 은 빛 영광, 알렉산더의 구리 빛 야망, 씨이저의 강철 의지가 산산이 깨어진 후에도 인류는 역사라는 그 흉몽을 새로운 미래의 길몽(吉夢)으로 바꾸기 위해 끈질긴 시도를 계속했다. 476년에 망한 서 로마의 폐허에서 돋아난 신성 로마제국의 촬스 대제(샬레망)는 29세에 황제가 되어 이전 로마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8세기 후반과 9세기 초엽을 전쟁과 문예부흥으로 소모했으나 그의 죽음과 함께 나라는 세 토막이 나고 말았다. 모순투성이의 교황권을 업고서 하나의 정부, 하나의 종교를 대강령(大綱領)으로 방금 일어난 종교개혁을 마구 짓밟던 옹고집의 촬스 5세(Charles Ⅴ)도, "짐(朕)은 국가"라고 우쭐대던 야심에 찼던 프랑스의 루이 14세(Louis ⅩⅣ)도 모두 깨어진 꿈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채 비탄 속에 쓰러졌다. 19세기 초엽 유럽의 태양처럼 떠올라 "한 황제, 한 법전, 한 의회, 한 화폐"로 다스려지는 대제국을 구상한 나폴레옹은 "5년 안에 나는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다. 온 유럽이 하나의 머리 곧 하나의 황제 아래 있게 될 때까지는 유럽에 결코 평화가 없을 것인데 현재의 왕들은 그 때 그 황제의 부하가 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었다.
"내가 일을 계획하고 내가 성패를 좌우한다. 섭리는 가장 강력한 포병(砲兵)을 가지고 있는 편을 든다"고 선언한 뒤 유럽을 뒤흔든 16년 간의 승승장구(乘勝長驅)의 혁혁한 전과(戰果)에도 불구하고 1815년 워터루(Waterloo)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막을 내리고 고도(孤島) 센트 헬레나에서 악몽을 깨지 못하고 죽었다. 60만 대군의 호위를 받으며 자고 깨던 그가 아니었는가. 빅또르 위고(Victor Hugo)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그에 대하여 진절머리가 나신"것이며, 리챠드(H. M. S. Richards) 목사님의 표현처럼 "그는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하리라"한 하나님의 예언을 그의 주먹으로 짓부수러 들었"던 것이다.
1차 대전을 치른 독일의 빌헤름 2세(Kaiser Wilhelm Ⅱ), 2차 대전의 장본인 히틀러(Hitler)도 같은 길을 걸어 범게르만주의의 살기등등(殺氣騰騰)했던 꿈은 패전과 함께 거북의 등처럼 균열되고 말았다. 약삭빠른 섬 나라 일본 사람들의 태평양처럼 넓었던 꿈도, 철의 장막으로 두른 스탈린(Stalin)의 가혹한 꿈도, 죽(竹)의 장막을 친 모택동의 조심스러운 꿈도, 그리고 앞으로 그 누구가 꾸게 될 어떠한 꿈도, 다니엘서 2장 41-43절의 예언을 결코 무력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세계 제1차 대전을 겪은 세계는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을 만들었는데, 1920년 5월 10일부터 1939년 5월 19일 사이에 5,468건의 조약과 국제 협약이 국제연맹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엄청난 조약들도 2차 대전을 막지는 못했다. 끔찍한 2차 대전 후 나라들은 다시 모여 보다 강력한 국제 기구인 국제연합 (The United Nations)을 결성했으나 그것이 결코 나라들 간의 연합을 이룩할 수 없음은 자명해졌다.
국제 결혼을 통해, 이민정책을 통해, 인종은 섞일 수 있고, 국제연맹을 통해 서로 머리는 맞댈 수 있고, 국제연합(U.N.)을 결성하여 입씨름은 할 수 있어도, 그래서 철과 진흙처럼 서로 엉킬 수는 있어도, "피차에 합할 수" 없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세계를 우리는 목하(目下)에 두고 있다. 천 번 만 번의 평화회담, 군축회의, 국제조약 체결도 운명지어진 세계를 결코 연합시킬 수 없음이 2,500여년 전에 이미 예언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3. 유럽 공동체(European Community)
유럽을 또 다시 통합하려는 20세기 마지막 시도는 1957년 3월 25일 로마교황청에서 프랑스, 서독, 이탤리,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불크 등 6개국이 체결한 로마조약(Rome Treaty)에 의해 탄생한 유럽 경제 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일 것이다. 경제 통합에 의해 유럽경제의 대단위화를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는 유럽을 미국처럼 하나의 "유럽 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Europe)으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이러한 공동체(ECC)가 결성되던 때 타임(Time)지는 이 기구의 성질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많은 혁명적인 이념들처럼 연합된 유럽(United Europe)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옛 개념의 부활이다. 조직과 연합에 대한 꿈은 중세기 동안 지속돼온 가이사의 로마(註:로마제국)와 로마 카톨릭교회 뿐만 아니라 체제는 갖추었으면서도 별나게 존속한 시대착오였던 신성 로마제국(the Holy Roman Empire)에서 구현되었다.]
1973년 이 기구의 회원국은 9개국으로, 1986년에는 12개국으로 늘어 났으며, 1995년 현재 15개국이 되었다. 이처럼 확대되어가는 역할 속에서 1967년(European Community)로 개칭했으며 1991년 12월 10일에는 네델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서 유럽 공동체 국가들에 의해 마스트리히트 조약(Treaties of Maastricht)이 체결되어 유럽의 경제 및 정치의 통합을 위한 조약안이 체택되었고, 1993년 1월부터 관세 장벽이 허물어진 단일 시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유럽 동맹, 혹은 유럽 연합(European Union)으로 불리우는 이 기구는 이제 4억에 가까운 역내 인구를 가진 회원국 15개국의 유럽 경제와 정치를 총괄하며 미국과 일본 등 역외 세력의 경제 위협에서 생존권을 지키려는 단일화된 유럽의 연합체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조직체의 결성을 가장 환영하고 기뻐하는 것은 로마 교황청이라는 사실이다. 유럽공동시장(ECC)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관심은 다음의 표현에 잘 드러나 있다.
[스페인의 촬스 5세 이래로 로마 교황권이 그토록 강력하게 원하던 것이 없었다. 신성 로마제국이 망한 이래 로마 교황권에게 유럽공동시장처럼 로마가톨릭 교회에게 주목거리가 될 만한 것이 제공된 바가 없었다]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우든지 이러한 유럽 공동체의 역할은 중세기 신성로마제국의 경우처럼, 요한계시록의 영적 바벨론으로 하여금 세계적인 정치, 경제 세력의 후견인이 되게 하는 "땅의 상고(商賈)들"의 자리에 있는 것이며(계 18:3), 그로 하여금, "나는 여황(女皇)으로 앉은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않으리라"(계 18:7)는 자신을 갖게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야 어떻든 이 모든 시도도 결국은 예언된 대로 파멸의 종국에 이를 것이며(계 17:13-18) 그것은 "일시 동안"(17:12)의 연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는 이 모든 시도가 다니엘서 2장 43절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질 것임에 틀림없다(계 18:8-10, 14-19, 21-24).
4. 깨뜨려진 꿈-현대라는 악몽(惡夢)
느브갓네살이 꾼 꿈인 세상의 역사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그 악몽의 의미는 열 발가락 시대인 현대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르고 있다. 헨리 포드(Henry Ford)는 지난 날의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며 술회하기를 역사란 "하나의 지겨운 사건 다음에 오는 또 다른 지겨운 사건의 연속"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얼마나 참말이 되어 왔는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당시의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은 미국의 참전을 선언하면서, "이제 미국은 민주 세계의 구현을 위해 모든 전쟁을 끝장낼 전쟁에 들어간다. "고 힘주어 말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1차 대전의 그 값 비싼 댓가를 치르면서 독일의 빌헤름 2세(Wilhelm Ⅱ)를 간신히 꺾어 놓았으나 그것은 오히려 더욱 끔찍스러운 독재자 히틀러(Hitler)를 등장시켜 세계 2차 대전을 치르는 결과를 가져 오지 않았는가. 연합국들은 다시 2차 대전을 끝내기 위해 더욱 값 비싼 댓가를 치르면서 오직 평화만이 깃든 세계의 수립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 다음 결과는 또 무엇이었는가. 히틀러가 무너진 무대 위에 더욱 가혹한 독재자 스탈린(Stalin)이 군림하고만 것이다.
그 결과로 지난 1991년까지 세상은 독일의 나치주의(Nazism)와 이탤리의 파시즘(Fascism)보다 더욱 악랄하고 무지막지(無知莫知)한 무신론적 공산주의라는 망령에 의하여 거의 한 세기 동안 더욱 두렵고 불안하게 살아온 것이 아닌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짓밟힌 아시아 대륙이 일본의 손아귀에서만 벗어나면 만사가 잘 되리라던 동양의 부풀었던 꿈도 예외 없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일본이 물러간 북한 땅에는 첫만근 두터운 철의 장막이 씌워졌고 중국 땅에는 숨막히는 죽(竹)의 장막이 겹겹이 쳐졌었다. 그리고 동남아 일대는 피비린내나는 이데오로기 투쟁의 싸움터가 되고 말았었다. 참으로 그것은 악몽이었다. 그토록 부풀었던 인류의 희망을 산산조각낸 악몽, 그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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