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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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하나님께서 악과 더불어 투쟁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을 우주에 증거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가 존속하는 한 우리에게 능력과 보호를 약속해 주는 보증이 된다. 가건 301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하늘로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배우고 가르쳐야 할 구원의 학문이다. 치료 424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주셔서 돌아가게 하셨다. 정로 13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딛 1:2
“예화”
흉년이 들면 사람들은 배가 곱아 환장한 사람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까지 잡아먹었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흉년에 어떤 청년이 쌀 한 가마를 짊어지고 찾아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 아버지가 보내 주라고 해서 짊어지고 왔습니다. 이 것 밥에 잡수시고 꼭 살아남으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이때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쌀가마를 보자 너무도 반가워 눈이 왕 방을 만하게 됨과 동시에 기쁨에 넘쳐서 쌀가마를 보고 넙죽 엎디면서 하는 소리가
“쌀님 고맙습니다. 이제는 살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다면 이것은 비정상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 정말 고맙소.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소.”
한다면? 젊은이가 힘들게 짊어지고 와 주었으니 고마운 것은 틀림없지만 바른 인사는 아니다.
“젊은이 정말 고마우이. 우리 생명을 건져준 은공 평생 잊지 않겠네. 자네 아버지께 전해주게.”
라고 말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쌀 짊어지고 온 아들에게도 고마워하여야 하여야 하겠으나 쌀을 보내준 아버지께 진짜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구원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예수 예수로 많은 사람들은 그것으로 끝이니 잘못된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은혜 죽어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예수를 보내 주신 아버지께 또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낸다. 그것은 하나님이 구속 사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청지기 14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하나님의 은사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선물인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요 17:2
그분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이름(품성)을 나타내셨다. 3소망 680
누누이 설명하거니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아버지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영생의 길은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갔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랍니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디1:1
죄인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우리는 하나님의 희생으로 영생의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 나라에는 심지어 벌과 나비까지 영생을 얻는데 강아지 소 돼지도 영생을 얻는데 우리가 죽다니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 같이 엎더지리로다 시82:6,7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 딸들인데, 왜 소, 돼지, 개 처럼 죽으려고 하느냐? 너희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신들, 내 아들들이라 이말입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아들도 죽지요. 우리들은 씨가 죽지않는 씨들입니다. 죽지않는 불사의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족보가 다릅니다.
정철 스님의 금강경(金剛經)에 대한 설법(說法)을 수록한 ‘자경’ 에 매우 흥미(興味) 있는 대목이 있기로 여기에 옮겨 보는 바입니다.
“예수를 따라 간다면 신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인이 되는 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를 따라가면 불교도가 되는 길 외에는 신이 되는 가망성(可望成)이 없습니다. 부처가 되는 길은 전혀 없습니다. 신학박사, 불교박사는 많이 있었지만 석가모니 예수와 같은 깨닫음의 세계에 이른 분은 없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은 그 진리 자체를 깨닫고 진리로서 삶을 사는 사람, 더 쉽게 표현하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이가 곧 신입니다. 기독교적인 표현을 한다면 거듭난 사람, 그가 곧 신입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명쾌한 설법을 했을까 하고 나는 감탄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를 믿노라 하고 있다. 스님의 설법대로 말한다면 일평생 예수 믿어 보았자 그 덕분에 기독교인이 되고 신학박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신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82:6
만군의 여호와 하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예수가 몇사람입니까? 예수는 하나 뿐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신들이며” 복수(複數)를 썼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자 즉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받아들인 자들은 같은 하나님 족속 즉 신이라 이 말입니다. 그들은 다 지존자의 아들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모셔드릴 때, 우리도 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거듭나는 것이요, 새 사람이 되는 것이요, 신의 성품에 참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이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친자녀들을 향해 “너희는 신들” 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늘은 하나님의 친자녀들만이 갈 수 있습니다. 친자녀가 되야 신이 됩니다. 인간이 하늘에 갈 줄 아십니까. 보통 사람들이 우주 여행을 한다고 할 때 로케트를 타고 갑니다. 그러나 그것도 우주복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것을 입습니다. 지구를 빠져나갈 때 우주복이 없으면 로케트를 타지 안으면 얼어 주고 타서 죽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늘나라를 갈 수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신들만이 갈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하나님 만났다가는 큰일 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마치 거울속에 비췬 것처럼 천연계 가운데서, 또한 그분께서 인류를 취급하시는 일을 통하여 바라본다. 그러나 그 때에는 사이를 가로막아 놓았던 희미한 휘장 없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 앞에 서서 그분의 얼굴의 영광을 직접 바라볼 것이다. 쟁투(하) 677
요한이 육체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을 때, 죽은 자처럼 땅에 넘어져서 그 광경을 차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멸을 입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요일 3:2)이다. 사랑하시는 분 안에 영접되어서 그들은 보좌앞에 설 것이다. 그들의 모든 죄는 도말되었고 모든 불의는 지워졌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의 눈부신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고, 구속의 계획 안에서 함께 일하는 자들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구원받은 영혼들을 바라보는 기쁨을 주님과 함께 누리고, 영원을 통해서 길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3보감 432
요한이 육신의 상태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죽은 자처럼 쓰러졌다. 그가 그 광경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불멸을 입을 때, 구속받은 자들은 예수님과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실 그대로의 그분의 모습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좌 앞에 서게 되는데, 그것이 그들이 가납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들의 모든 죄는 도말되고, 그들의 모든 불의는 제거되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흐리지 않는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고, 구속의 계획에서 그분과 함께 일해 온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인간 기구를 통하여 구원받은 영혼들을 바라보는 기쁨에 그분과 함께 참예하여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 2보감 168
요한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다. 그는 그 광경에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불멸을 입을 때 속량된 자들은 예수님처럼 된다. 그들이 계신 그대로의 그분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좌 앞에 서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납된 것을 나타낸다. 그들의 모든 죄는 도말되고, 그들의 모든 허물은 사라졌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찬란한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고난에 참여해 왔고. 그들은 구원의 계획에서 그분과 함께 일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들의 활동을 통하여 구원받은 영혼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을 그분과 함께 나눈다. 5증언 467
요한이 육신을 입은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엎드러졌으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멸의 옷을 입을 때에는 하나님을 직접보고 영원히 함께 살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9T 285
불멸의 옷이 무엇입니까? 신이 됐다 이 말입니다. 신이 된 자만이 아버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신이 되지 못한 사람은 막연하게 하나님을 압니다.
성도는 모두가 지존자 즉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가 신입니다. 신이 죽는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까? 우리는 신성에 참여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죽으려야 죽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범인 즉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들같이 죽으려고 하느냐? 이 세상의 모든 고관들은 죽어도 너희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죽을 수 없는 존재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정신차리라고 하십니다.
영생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시다
“예화”
어떤 전도사가 석탄광 속에 들어가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광부들에게 하나님의 값없는 구원을 가르쳐 전도하였다. 일할 시간이 되자 전도사는 탄광을 나오면서 광부에게 아까 한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 광부가
"값이 너무 헐해서 그런 종교는 믿어지지가 않소."
하고 대답했다. 전도사는 그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승강기 앞에 서서
"이제 이 탄광을 나가려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거야 타고 올라가면 그만이지요."
"위까지 올라가는데 한참 걸립니까?"
"한 3분밖에 안 걸립니다."
"그럼 나는 애쓸 필요가 없군요."
"맞습니다. 당신은 그냥 타고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처음에 이 탄광을 파고 이만한 장치를 한 사람은 힘도 들고 돈도 많이 들었겠네요."
"그거야 그렇지요. 이 지상에서 500m 아래에 있지요. 주인이 돈 쓴거야 말할 수 없지요."
"네, 옳은 말씀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 말씀에 그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다고 했는데, 당신은 `너무 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멸망과 사망의 굴에서 당신들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께서 죽으시니 막대한 비용을 들였답니다."
라고 말했다.
인도(印度)에서 사역하시던 어느 선교사님이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에요”라고 설명하자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느냐며 계속 반문했다고 한다. 선교사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냥 값없이 구원을 주셨어요”라고 설명하니까 그제야 조금 이해하는 듯 하더랍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한 자매가 자신의 목걸이를 가리키며 이런 말을 했다.
“아, 그러면 구원이 제 진주 목걸이 같겠군요. 저를 사랑하던 애인이 저를 위해 진주를 따다가 죽고 말았어요. 이 목걸이는 그가 남겨준 진주를 가지고 만든 거예요. 제가 애인에게 공짜로 받은 것이지만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선물이죠. 하나님의 구원도 값으로 따질 수없는 선물이란 말이군요.”
그 자매의 말을 듣는 순간 선교사님도 퍼뜩 깨달았다. ‘그래 맞아! 구원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야!’ 이 선물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 바로 구원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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