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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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의 전체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한 문장으로 이렇게 쓸 수가 있습니다.
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지만(롬 3:20),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이 우리들에게수동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롬 11:36),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인생을 능동적으로 살아내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구원이 우리들에게 수동적으로 이루어졌다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란 말은 신약 성경에 110번 나옵니다. 바울 서신에는 무려 74번 나옵니다. 이 바울 서신중에서도 복음을 가장 집약적으로 설명하는 책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 전체중에서도 그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4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가장 쉽게 복음의 이해를 위해 그 대표적인 예인 아브라함을 모르면 복음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3장 20까지 서론이 나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너희들이 하는 모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좀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만 절대로 할 수도 없고, 하지도 못한다. 너희들은 율법의 말씀으로 그냥 병들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확실히 깨달아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인류를 그 분의 진노안에 가둬놓았다고 말하는 것이 3장 20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유명한 3장 21절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글성경에는 빠져있음) 이제는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모든 사람이 심판아래 있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류에게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에 갈 수 있는 길을 터놓으셨다. 이것을 이미 구약에서 증거를 했다. 그러면서 4장에서 성경은 아브라함을 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함을 받았는지, 아브라함의 행위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더 나아가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류, 심판아래 병속에 꽉 갇혀버린 인류, 그 대표자인 아브라함을 밖으로 이끌어 내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그런 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그런 엄청난 사랑을 나타내는 분이 누구이신지를, 그렇게 오래 참으시고, 그렇게 오래 기다려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에게 촞점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 가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아브라함을 이끌어 낸 것처럼, 여러분과 저도 사망의 현실에서 이끌어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와 일하심과 열정과 은혜와 사랑과 희생과 약속과 또 참으심과 또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에 여러분과 저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시고, 저 애굽에서 저 바벨론에서 저 사망의 현실에서 이끌어내셔셔,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어떻게 든지, 무슨 수를 쓰든지, 앞으로 기필코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살아가도록 교육시키고,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고난과 시련으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들죠, 싫죠, 도망가고 싶죠. 이것이 성경 욥기의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4장은 아들을 바쳐라 할때 바치는 아브라함의 그 뜨거운 신앙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아브라함처럼 비슷하게 흉내를 내라는 미지근한 신앙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로마서 4장은 진정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알리기위해, 그 대표자로 나온 아브라함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잠깐 아브라함의 생애를 창세기에서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가 60세 가량됩니다. 그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까?
아닙니다., 가나안으로 갈 생각을 안하고, 하란에 15년동안 살았습니다. 안떠나고 있는 아브라함을 좋은 말도 하고, 재촉도 하고, 구슬리기도 하고,아브라함 등짝을 밀어내는 인자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처음에는 아브라함이 몰랐죠. 나중에 가서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 보니까, 조금씩 깨닫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친척과 아비와 집과 고향을 두고 떠났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친척을 두고 떠나지 않고, 전부 다 데리고 떠나도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하시고 그냥 넘어가 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마침내 (하나님의 "마침내") 가나안으로 들여보내졌습니다.
그때가서야 조금씩 아브라함에게 계시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기 시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다시 먹고 사는 문제로 애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도 아무말씀 안하시고, 기댜려주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창 12:10절이죠.
거기서 아내를 누이로 속이면서 죽을까하는 두려움속에(창12:13), 인간적으로 약하고, 불완전하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그 아내를 구하고, 오히려 그 시련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자비의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뢰가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을 또 쌓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몇일 몇주 몇달이 지나자 또 아브라함이 어떻게 합니까? 아들은 고사하고, 하나님께서 딸도 안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기다리겠고 하면서, 하나님이 후사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해야 겠다고 말해도,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다. 친절하게 조용하게 철부지 아이를 타이르듯이 말씀하시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을 여기서 우리는 보는 것입니다.(창 15:2).
무엇으로 알리이까하고 의심하는 아브라함에게 아무런 말씀을 안하시고.(창15:8) 두려움에 떠는 아브라함과 스스로 언약을 맺으시는 진실하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창(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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