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들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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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8
나는 교회를 향하여 엄숙한 말을 한다. 현재 교회 녹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이십 명 중 한 사람도 지구 역사를 끝마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진실로 일반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는 자와 같이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상은 돈을 더 열심히 위하고 있다. 이러한 얼치기 행동은 그리스도를 시인하기보다는 부단히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굴복되지 않은 마음과 정화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들어왔다. 그들의 영적인 기호는 그들 자신의 부도덕하고 타락적인 부패로써 왜곡되어 정신과 마음과 목적에 있어서 세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호색적인 습관에 더욱더 굳어져 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공언하는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철두철미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 선교 41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8:19
모든 만물들이 우리를 향해서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주인을 향해서 탄식한다는 말입니다. 하도 주인이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고 있으니까 만물들이 막 탄식하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나무들은 정신 못 차리다 죽는 주인들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는 겨울이 되면 따뜻한 옷을 입기 위해서 오바를 꺼내 입고 잠바를 꺼내 입고 하지만 이 나무들은, 눈을 뜨지 못하는 어리석은 주인을 위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옷을 벗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파란 나뭇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집니다. 그런데 수천만 가지 나무들의 낙엽의 색깔이 울긋불긋 여러 색깔 같지만 거의가 다 두 색깔로 떨어집니다. 떨어진 뒤에 썩을 때는 여러 가지 색깔이지만 나무에서 떨어질 때는 빨간색과 노란색입니다. 그 중에 어떤 나무의 잎은 완전히 빨간 진홍빛, 새빨간 주홍빛, 핏빛 같은 색깔로 변화되고, 어떤 것은 완전히 황금색으로 샛노랗게 되는데, 수천만 가지 나무들 가운데 거의가 다 이 두 가지 색깔로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떨어진 다음에 퇴색되는 것이야 상관없는 것이지만, 그 초록의 나뭇잎이 초록빛으로 말라서 떨어지든지 허여스름하게 되든지 하지, 왜 하필 그렇게 정반대의 색깔인 빨간 핏빛이 되고 노란 황금 색깔이 되는가?
이 진홍빛, 핏빛 같은 색깔의 낙엽은 바로 우리에게 뭐라고 호소하고 탄식하면서 주인에게 마지막 교육을 하고 죽느냐 하면
“주인님,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사랑, 희생을 잊지 마시고, 제발 정신 차리셔서 다시는 죄짓지 말고 하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세요.”
하는 것입니다. 나무에서 아주 빨간 핏빛 같은 나뭇잎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피와 같습니다. 영락없이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피입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완전히 물도 안마시고, 식음을 전폐하고 꽁꽁 얼어서 죽어 버립니다.
그 다음에 어떤 나무에서는 노란 황금빛의 나뭇잎이 뚝뚝 떨어지면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 노란 것은 사랑입니다.
“주인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위해 심장이 터지도록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일어버린 품성의 옷을 입혀주시기 위해 발가벗김을 당하시는 망신을 하셨습니다. 어서 예수님께 가십시오.”
라고 마지막 호소를 하면서 자기는 옷을 벗고 죽는 것입니다.
주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나무들이 온 산천에 다 꽉 차서 그렇게 주인을 위하여 호소하지만 주인들은 그 소리도 못 듣고 그 곳에서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면서 술을 따라 마시면서 단풍놀이를 합니다. 히히덕거리고 웃으면서 낙옆들의 애소는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아랑곳없이 술만 마시고 계속 죄를 짓는 것입니다.
번죄 전에는 이 우주에 빨간 핏빛 낙엽이나 노란 색깔의 낙엽은 한 이파리도 없었습니다. 주인들이 죽게 되자 나무들이 모두 다 탄식하면서
‘우리 주인 살려야 된다. 건져야 된다.’
고 하여 주인의 마지막 교훈을 위해서 그렇게 전부 자기는 희생하고 죽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제일 성경은 아버지의 호소입니다.
다함이 없는 교훈의 원천 성경 다음으로 천연계는 우리의 위대한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 온 천연계는 하나님의 사물들에 대한 해석자가 되도록 계획되었다. 자녀 45
천연계는 여전히 사람들의 교과서가 될 것이었다. 천연계는 이제 좋은 것만을 나타낼 수 없게 되었다. 5자녀 46
천연계는 하나님의 말씀의 보고를 여는 열쇠가 된다. 교육 120
모든 것이 우리에게 호소하는 것으로, 의미 없는 것은 없습니다.
뿐입니까?
심지어 이 나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사력을 다해 맺은 그 열매까지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줍니다.
열매도 보세요. 거의가 두 색깔, 빨강 아니면 노랑입니다. 귤, 바나나, 복숭아, 이런 것은 노란 색깔이고 사과, 자두, 이런 것은 빨간 색깔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삼킴을 당하면서, 빨간 사과가 먹히면서
“주인님, 나를 잡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사랑을 잊지 마시고, 꼭 다시는 범죄치 말고 정신 차려서 아름답게 사세요.”
하고 호소하며 우리들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노란 귤과 바나나 같은 것이
“주인님, 제발 나를 잡수시고 십자가의 피보다 더 진하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 잊지 마시고 정신을 차리셔서 의롭고 거룩하게 사셔야 해요.”
라고 호소하며 자기는 희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아버지)께 간구하고 계신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대를 위한 그분의 죽음이 그분께서 지불한 댓가에 합당하도록 기도하라. 정로 55
그러나 주인들은 그런 것은 아랑곳도 없고
‘요것은 얼마짜리인데 ….’
하며 돈만 계산하고 있습니다. 산천의 모든 초목과 나무들, 만물이 다 이렇게 죽어 가는 주인을 위해서 탄식하고 호소하건만 이 땅에서 알아주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고대하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서 만물을 대해야 합니다. 삼라만상이 다 우리를 향해서 울고 탄식하고 통곡하는 것입니다.
정말 목석같은 사나이라고 하더니 대체 똑같아요.
도무지 들을 수 있는 귀도 없고,
볼 수 있는 눈도 없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도 없고,
롯의 아내같이 소금 기둥이 된 사람들이 우리란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좀 마음을 녹이고 마음 가죽을 베고,
영의 귀와 영의 마음과 영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이 모든 수천만가지 나무들이 주인님 살리겠다고
그 열매를 주인들에게 주는 것도 힘이 드는 것인데
마지막 이파리까지 다 빨간 색깔,
노란 색깔로 완전히 변화,
변질시켜 놓기까지 그들은 사력, 죽을힘을 다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열매 맺어 주는 것도 무지무지하게 사력을 다하는 것인데, 이제 마지막으로 주인 살리기 위해서 자기 옷 색깔까지 완전히 빨갛게 노랗게 변화시킬 때는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런 후 이들은 다 죽어 버립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않고 완전히 죽어 버립니다.
이때에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고맙다. 너희들이 내 막둥이 자식 살리려고 그렇게 탄식하고 울면서 마지막까지 열매 맺어 주고 옷마저 그렇게 핏빛과 사랑빛을 내고는 죽었구나.”
하시며 너무너무 고마워서 죽은 나무들에게 하얀 꽃솜으로 의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의의 옷(겨울에 내리는 흰눈)을 입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 핀 것은 유가 아닙니다. 하얀 순결한 의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어느 꽃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고마워서 또 그 이듬해 봄이 되면 우리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산천초목)을 다시 새 생명으로 부활시켜 주셔서 새로운 옷을 예쁘게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을 위해서 염려하지 않는 이기주의 풀들은, 주인은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주인에게 호소도 하지 않고 자기만 먹고 자기만 살다가 허옇게 말라죽어 버립니다. 그들은 그 다음해에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시지 않습니다. 나무들만 원형 그대로 다시 부활시켜서 영원토록 죽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소나무는 독야청청(獨也靑靑)하여 그 찬 서리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주인에게 호소합니다.
“주인님, 나를 보세요. 나같이 절개를 잃지 마세요. 나같이 절개를 잃지 않으면 이렇게 나와 같이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소유하게 된답니다.”
주인님은 절대로 순결을 잃지 말고 정절을 지키시라고 그렇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께서 그 소나무에게는 영원한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 나무들, 죽어 가는 하나님의 막둥이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고 외치다가 사력을 다 기울이고 쏟아 버리고 죽는 그 아들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랑스러워서 그들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시고 그 다음 새로운 영생의 나라, 새 봄이 올 때에 그들을 부활시켜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또 소나무같이 절개를 잃지 않고, 그 핍박 가운데서도 죽지 않고 끝까지 정절을 지킨 사람들에게도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나 의의 옷을 입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 가는 자기 형제들, 하나님 아들들을 위해 사랑의 열매, 말씀 생명과를 잔뜩 맺고 품성의 열매를 맺어서 나누어주고 마지막으로 죽으면서까지 호소하는 그 인간 나무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랑스러워서 그들이 잠들었을 때에 의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 6:9-11
죽은 성도들에게 의의 옷을 입힌 대로 두셨다가 그 다음 영생의 나라 아침에 다시 살려서, 부활시켜서 데려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나무 친구들에게 감사하시고, 죽어 가는 세상을 위하여 품성의 열매, 말씀 생명과 열매를 맺어서 주고 그들에게 죽으면서 끝까지 호소하는 인간 나무들, 아름다운 아들과 딸들이 되심으로 우리 아버지께서 입혀 주시는 의의 옷을 입고 부활 승천시킴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벧전1:24
저들은 풀과 같다고 했습니다. 풀과 같이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 빨아먹고 살다가 죽어 버립니다. 그들은 영원히 썩어 버리고 맙니다.
물의 교훈
하나님께서 물에게
“높은 데에서 낮은 데로 내려가라.”
그렇게 명령하셨어요. 그런데 물이
“난 못 내려가겠소.”
하고 부어 터져서 팔짱을 끼고 그냥 고인 물로 있으면 금방 속이 썩어서 참새도 안 먹고, 사슴도 안 먹고, 멧돼지도 안 먹습니다.
거기엔 구더기, 고자리, 모기만 들썩거리고 친구도 없어요.
그런데 물이 하나님을 순종하고 노래를 부르며 흘러가니까 자기도 아름답고 속도 썩지 않고 싱싱하게 살면서 참새, 사슴, 노루, 이런 친구들이 자꾸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행복한지,
그렇게 계속해서 흘러가니까 새로운 여행에서 새노래만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물은 최고로 아름답고 고운 마음씨를 가진 친구입니다.
누가 자기 얼굴에 똥 걸레를 빨든지 눈으로 윙크하고 웃어 주면서 한 번도 찡그리거나 화를 내지 아니하고 가는 것입니다.
물은 냇가를 따라 끝없는 길, 먼 길을 계속 여행하는데 여행하는 데마다 전부 교만하고 거만하고 오만한 바위들이 버티고 있어서 물을 가로막습니다.
“너 어디 가?”
그러면 아무 소리하지 않고
“나는 그저 하나님을 순종해서 간다.”
고 하는데
“그래? 못 가! 못 가!”
하면 비켜 돌아가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시비를 거는 심술궂은 바위들을 다 싸매 주고 어루만져 주고 이마도 닦아주면서,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전부 봉사해 주며 지나가는 것입니다.
저 물이 없는 산에 있는 바위들을 보세요. 전부 흙투성이 된 바위 옷을 입고 참 더럽습니다. 그런데 냇가에 있는 바위들은 그렇게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심술부리며 남의 길을 막지만 물이 다 닦아주면서 가니까 바위가 더 이상 시비를 걸지 못하고, 붙들지를 못하고 할 수 없이 마음이 녹아요. 물의 그 아름다운 마음씨에 바위는 물을 더 이상 붙들지 못하니 물은 쓱쓱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도가도 끝이 없이, 끝까지 그런 심술쟁이들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은 말없이 괜히 그저 굽실굽실거리면서 지나가지만, 할 일은 다 하고 갑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있던 양쪽 벽에 있는 그 산천의 수천만 나무들이
“저 물은 속도 없는 바보야.”
하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바위한테 저렇게 핍박을 받으면서 뭘 그렇게 씻어 주고 닦아주며 굽실굽실하느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러냐?”
고 전부 비웃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물은 그러든 말든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 순종하는 일에는 일편단심입니다. 물은 귀머거리인 양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물은 그토록 계속 멸시와 학대를 받으며 교만한 바위들의 비위를 다 맞추면서도 자기의 하나님을 순종하는 데는 양보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저 하늘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분을 핍박하고 심술궂게 가로막고 욕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 말씀도 하지 마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축복하고 봉사하면서 싸우지 말고 쓱 지나가시기 바랍니다. 물이
“너 왜 가로막느냐?”
고 하는 소리는 못 들었어요.
물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남에게 주시기 위해서, 먹히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남의 안팎의 더러운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서 그분은 태어나셨습니다.
물이십니까, 물이 아니십니까?
예수님은 물이셨더란 말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완전히 믿고 그분에게 맡겼으므로 하늘 보좌에서 땅으로 점프하시고, 또 땅에서 무덤으로 점프하셨습니다.
그분은 완전히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그렇게 겁도 없이 뛰어내려 오셨고, 그 무시무시한 악마들이 우글거리는데도 마음대로 웃으면서 노래하면서 돌아다니셨던 것입니다.
물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당신의 식구들, 이복형제들까지 쥐어박고 핍박했던 어린 시절에도 늘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주야로 순종하는 데서 행복을 찾아 노래하셨습니다.
물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계속해서 만나는 교만하고 오만한 자들과 다툼질도 않으시고 항상 사랑의 봉사만을 해주셨으나 인간들은 자기들이 크게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예수님께서 돈을 받지도 않고 치료해 주시는 것을 오히려 이용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유대인들, 바리새인들이 그를 비웃고 가로막고 했어도
부닥치면 겨우 한 두 마디하고 지나가시고,
다 듣는 둥 마는 둥 하시고 그저 불쌍한 자들 치료해 주느라고 일생을 봉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원도 안 받고 다 치료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감사할 줄도 몰랐지만, 예수님은 안팎을 다 닦아주면서 가셨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 예수는 속없는 바보야. 저렇게 사람을 고쳐 주면 다만 신발 한 켤레라도 얻어 신어야지, 늘 단벌 신사로 저러고 다닌다.”
고 조롱했습니다.
폭포수 아래서 내 어깨, 머리, 허리를 다 안마해 준 이 물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나는 물이 예수님인 줄 몰랐어요. 바로 예수님이 나를 다 아시고 속삭여 주셨던 것입니다. 얼마나 물에게 감사한지요.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요 21:1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그 후에 산에서 나타나시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백번 천번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해 주시고 안마해 주시고 돌봐 주셨지만 우리 눈이 열리지 않아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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