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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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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순한 하나님의 창조물인가?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16

왜 우리를 하나님의 모양대로 하나님은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졌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닮았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모양을 지녔는가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자(나를 모태에 생기게 하신 바로 그분 = 공동번역)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자가 하나가 아니시냐 욥31:15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함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을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해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 139:13-16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 주께서 내 몸을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욥 10:8-12

남녀의 결합에 의해 아기가 탄생된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으로 하나의 세포가 결성된다. 이 세포는 다시 분열된다. 세포분열이 아기를 만들지는 못한다. 얼마동안은 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세포분열이 되어서 어떤 것은 뇌신경세포로, 간세포로, 간세포가 되는 것은 우연히 아니고 하나님께서 간유전자에 충격을 주어서 간유전자가 잠에서 깨어서 간세포가 형성되는 것이다. (아기가 탄생되기까지의 과정과 실험)그런데 이 과정은 내가 시킨 것이 아니라 내 몸에서 난 것이지만, 그런데 전기 충격이 외부로부터 와서 이로워지는 것인데 어떻게 충격을 받느냐에 따라서 각 개체가 생기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우주지능(Cosmic intelligence)이라고 한다.

이러한 힘, 곧 에너지는 우리 자신의 몸 속에서 자체적인 생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절대자 즉, 우리 몸을 창조한 창조주로부터 오는 신비한 생명력을 가진 실질적인 에너지다.

그 힘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고로 부모는 비유하건데 수도꼭지라 하겠다. 물의 원천은 유원지라 할 것이다. 즉 수도국이라 하겠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3

사람을 가르치는 그대들이여! 예수님을 높이 들라. 설교할 때나 찬미할 때나 기도할 때에, 예수님을 높이 들라. 온 힘을 다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며 길을 찾지 못한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어린 양"을 제시하라. 부활하신 구세주를 높이 들고, 귀 있는 모든 자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엡 5 : 2)신 그리스도께로 나오라고 외치라. 모든 설교의 중심과 모든 찬미의 제목은 다 구원에 귀착하고, 기도할 때에도 항상 이것을 생각하라. 설교할 때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신 그리스도 대신에 아무것도 더하지 말고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며, 예수님이 회개하는 자의 희망이요 믿는 자의 요새이신 것을 소개하라.번민하고 낙담한 자에게 화평의 도를 가르치고, 주의 완전하심과 주의 은혜를 밝히 보이라. 복음 160

선풍적인 관심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상상과 추측과 인간의 이론들과, 거짓 과학들을, 수용하고 가르쳐야 할 진리로서 받아들이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고 한 분명한 말씀을 제쳐놓고 추측을 구원의 시금석으로 삼는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초석 위에 세워져야 할 귀중한 건축 자재로서 쓰레기들, 풀잎파리들, 나무들, 그루터기들을 대량 들여온다. 이런 것들은 불시험이 오면 견디지 못하고 타서 없어질 것이다. 이런 이론을 믿게되었지만 스스로 속아서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회개하면 불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낮추어짐으로 그들의 생명이 구원받을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거룩한 것 대신에 속된 것들을 취급해 왔다.별로 중요하지 않는 사상들을 포착하여 하나님의 양 무리들 앞에 그것들을 양식이라고 내놓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실상 그것들은 하나님의 양무리들을 결코 유익하게 하지도 못하고 강하게 하지도 못할 겨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낮은 땅에 보관해 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최소한의 유익도 아무런 영양분도 없는 그런 것들을 먹고살기 때문이다. 무엇이 밀의 겨인가? 원고45, 1900

성경이라고 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아니다. 성경에는 진리의 생명의 말씀이 있는가하면 겨와 같은 글도 있다. 그렇기에 선지자는 금맥을 파듯이 파라고 했다.

하나님을 높이라 혹은 예수님을 높이라고 권면하였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위에 말씀 중 ‘참하나님’이라는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가짜 하나님도 있다는 암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가 재검토할 필요도 있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하늘 아버지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다. 아버지께서 우리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그분들의 사랑을 성경과 증언으로 또는 예화로 들어내는 것이 그분들을 높이는 것이며 영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생하고는 별 관계없는 문제를 들어서 설명하고 설교한다면 이는 백성들에게 양분있는 밀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돼지나 먹을 겨를 먹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갈바리의 십자가는 사람들 위에 높이 들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모든 영적 기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는 거룩한 능력으로 충전될 것이다. 보훈 44

우리가 미국을 가려면 비자가 있어야 하고 비행기표가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가는 도중에 기압이 높던 낮던 우리가 알 바는 아니다. 태평양 바다에 무엇이 얼마나 살던 말던, 바다 깊이를 알던 말던 미국을 가는데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신앙 인으로서의 첫째는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진정 신뢰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할 찌라도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믿음을 고취할 수 있는 말씀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셨다. 3소망 693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다. SDA 주석 5:1108

위에 지적한 하나님은 하늘 아버지시다. 우리는 이런 금같은 보물을 찾아야 할것며 예화로 인간아버지가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 애쓰고 희생하는 것을 들어 하나님의 사랑을 각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 식힐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천연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다. 예컨데 가시고기는 아비가 어린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먹이로 내어 죽고 아비 가시고기는 죽는다고 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롬6:11

천사는 말했다.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라. 자아는 죽어야 한다. 육신적 욕망과 거듭나지 못한 마음의 성향은 굴복되어야 한다. 등한시 된 성경을 찾아가라. 영감의 말씀이 그대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 말씀을 경솔하게 지나쳐버리지 말라. 그대들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가 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따라 생애를 꼴 지어 왔는지 결산 보고를 하기 위해 모든 말씀을 다시금 대하게 될 것이다. 마음과 생애의 거룩함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간직하고 그분의 사업에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은 선량한 십자가의 군사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 죽고, 그들의 생애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1증언 508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

우리가 침례를 받고 물 무덤에서 일어날 때에 우리는 죽은 자라고 고백하였고, 우리의 생명의 질은 바뀌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선포하였다. 성경주석 7권 908

이기심이 줄을 때, 우뜸이 되려는 분쟁신이 사라질 때, 감사의 정신이 마음에 가득 차고 사랑이 생애를 향기롭게 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고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인정받게 된다. 실물교훈 420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14:12

교회에 다니면 나부터 교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19:16

부자 젊은 법관의 질문이였다. 예수님의 대답인즉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19:17

이였다.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19:20

의기양양(意氣揚揚)한 청년의 대답이였다. 여기 나오는 청년은 율법적인 면에서는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외관상 완벽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신앙고백을 인정치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청년을 바라보시고 그의 영혼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다. 그분은 이 청년을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는 사자로 보내시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버리라고 요구하신 물질 대신에 그가 당신과 동역자가 될 특권을 주셨다. 그분은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이 특권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이 청년 자신도 그리스도를 훌륭하게 보았고 그의 마음도 그리스도께로 이끌었으나,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의 원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보다 재물을 선택했다. 그는 영생을 원했으나 그의 심령 속에 생명이 되는 이기심 없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근심하면서 그리스도를 떠나갔다. 실물 393

그는 심령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였다. 이 부족은 보충되지 않으면 그에게 치명적이 될 것인 바 이는 그의 온 성질이 부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방종으로 말미암아 이기심은 더욱 굳어진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자신을 최고로 사랑하는 그 마음을 포기해야만 하였다. 2소망 519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 심령 속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이론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 안에서 체험되어야 한다. 이 위대한 사랑이 체험되지 못한다면 율법주의자가 된다. 율법주의자는 자신이 보기에는 멋진 신자일지는 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적절치 않다. 이들은 자신의 의라는 잣대로 남을 정죄한다. 침례를 받고 신학을 나와 목사가 되고 또는 평신도로서의 장로가 되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인정치 않고 계심을 우리는 위에 성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신학적인 이론은 구원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가슴을 뜨겁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여야 한다. 설교하는 이들은 단순한 이론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스스로 기만하고 있는데 사랑의 원칙들이 그들이 마음과 영혼 속에 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과 49

우리는 외적으로 멋진 신도일 수도 있다. 멋진 설교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활기차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나 사랑 곧 그리스도의 마음에 있었던 그같은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결코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다. 실물 15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7,8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는 사람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읽으면, 성경은 이야기, 설교, 역사로 뒤범벅이 된 책처럼 보일 것이다.그런데 하나님의 영의 조명하심을 받는 이들, 인내와 수많은 기도로 숨겨진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원리들 속에 깔려 있는 통일성의 증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본교리 27. 20

하나님의 진리를 피상적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풍성한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청년 262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8:14,18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모든 인간은 자녀가 되는데, 아담의 범죄 이후 사단의 지배 아래서 하나님을 떠나 버렸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다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된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즉 구속사업은 곧 회복사업이다.

본문에 이른 바 무서운 종의 영이라는 말은, 곧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자 관계보다  왕과 백성의 관계로 더 많이 이해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대조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제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과 성도의 친밀한 관계와 다른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란 용어는 아람어에서 나온 말로 아빠(ajbba)다.

`아바`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어 가지 설이 있으나 아직 공인된 것은 없다. 먼저, `아바`는 `父`를 뜻하는 평칭의 호칭어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 `아바`는 20세기 이후 동음 첨가에 의해 `압바` 또는 `아빠`로 변형되고 지금과 같은 `아빠`라는 형태를 만나게 되는 것은 193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현대 국어


아버지․아버니 `아버지`의 이전 어형은 `아바지`입니다. `아바지`는 평칭의 호칭어 `아바`에 접미사 `-지`가 결합된 어형으로 추정한다. `-지`는 `사람`의 뜻을 지니는 접미사로서의 기능을 보인다. `아바지`가 중앙어에 나타난 것은 근대 국어 후반이다. `아바지`는 기존의 `아바니`를 제치고 평칭의 대표어로 부상한다. 근대 국어 후반 이후 `아버지`로 그 형태를 달리한다. 한편, `아바니`는 존칭의 `아바님`에서 `ㅁ`이 탈락한 어형으로 추정한다. 근대국어 시기에 나타나 20세기 전반부까지 쓰이다가 `아버지`에 밀려나 사라졌다.  출처 : 새국어생활


우리가 하나님께 양자가 되는 것은 성령님의 역할로서 가능했다. 본래 법적으로 입양을 하게될 때 후견자가 있어야 하고 법적 대리인이 필요합니다.

양자란 휘오스라고 하는 헬라어에 받아들인다, 세우다는 말을 합쳐 휘오데시아(uiJoqesiva)란 말로서 아들로 받아들인다, 즉 입양아란 말이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8:15

공동:-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 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표준새번역> 8: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a)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a.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의 그리스어 음역)

<현대어> 8:15 우리는 노예처럼 아첨하거나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족 안에 자녀로 영접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종은 아바라 부르지 못함 - 성서사전 549 감리교 -

아빠란 애정어린 말로서 … 예수의 입술에서 처음나왔다. SDA기도력 1988년 1월 15일 금요일


♣ 양자란? ♣ 바울 편지서에 5번 기록이 있는데 참고하라. = 롬8:15, 23. 9:4. 갈4:5 엡1:5등에는 양자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개혁한글(흔히보는 성경)에만 양자로 표현되었을 뿐 기타 성경에는 아들로 되어 있다.


구약에는 양자란 표현은 없다. 아들 또는 장자로 되어 있다.

신약에 와서는 양자 아빠 친아버지로 되어 있다.(아빠는 세 번- 갈4:6, 롬8:15,  막14:36,) 아빠의 표현은 하나되는 영광이고 최고의 거룩한 표현이다.


“아빠란? 애정 어린 말로서 그것은 자녀를 아버지께로 이끌어 주는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말로서 그것은 예수의 입술에서 처음(마14:36)으로 나왔다.”  (SDA.祈禱力. 1988.1.15.金曜日)


성경에 나타난 인간의 족보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눅3:38

카이난은 에노스의 아들이요, 에노스는 셋의 아들이요, 셋은 아담의 아들이요,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느니라. 한글 KJV

가이난의 아버지는 에노스, 에노스의 아버지는 셋, 셋의 아버지는 아담, 아담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다. 현대어

가이난의 아버지는 에노스, 에노스의 아버지는 셋, 셋의 아버지는 아담, 아담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셨다. 현대인

사람의 족보를 거스려 올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의 아버지심을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강아지는 그 어미를 닮는 것은 자연스로운 현상이다.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고양이를 닮을 수는 없지 않으가?

아담은 외모와 마음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낸다. 창조고 해서 일반 만물과 같이 취급해서는 안된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동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게 양자가 되는 법적 효력을 위하여 성령님이 우리의 후견자로서 법적 대리인이 되셨다. 법적으로 양자 입양시 친부모가 없을 시에는 직계 삼촌이나 가까운 친족 중에서 대리인을 세운다.

민법조항 제931조에, 미성년자에 대하여 친권을 행사하는 부모는 유언으로 미성년자의 후견인을 지정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행위의 대리권과 재산관리권 없는 친권자는 이를 지정하지 못한다.』제932조 (미성년자의 후견인의 순위) 제931조의  규정에 의한 후견인의 지정이 없는 때에는 미성년자의 직계혈족, 3촌 이내의 방계혈족의 순위로 후견인이 된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마치 삼촌처럼 우리를 감싸고 도우사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다.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성령이 친히 증거한다고 하는 이 증거는 역시 법적 용어로서,

쉼말튀레오(summarturevw)라는 말은 같이 간증한다, 증거를 확인한다, 증인이 된다는 말이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 오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알게 하시고 친히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증거한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보증이 되시고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스스로 알게 하실 뿐 아니라 증인으로 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다.

양자라는 표현은 개혁 성경에서만 표현되어있다. 이것은 개혁한글(흔히보는 성경)에만 양자로 표현되었을 뿐, 기타 성경에는 아들로 되어 있다는데 주의하시길 바란다. 살펴보자!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을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 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또 우리의 마음 속에도 그러한 확신이 있습니다. 자녀가 되면 또한 상속자도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을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도 그와 함께 받을 것이 아닙니까? 로8:14-17(공동번역)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a)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a.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의 그리스어 음역)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로8:14-17 표준새번역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노예처럼 아첨하거나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족 안에 자녀로 영접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말씀하시며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께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분의 재산을 분깃으로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우리가 그 아들의 영광을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면 그분의 고난에도 함께 동참하는게 마땅할 것입니다. 현대어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두려워해야 할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성령님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현대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지구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사단의 노예가 되었고 마귀자식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속 사업으로 다시 하나님의 친자녀로 다시 회복이 된 우리들이다. 이 회복된 과정을 양자로 개혁성경에만 표기되었을 뿐이다. 구약에는 양자란 표현은 없습니다. 아들 또는 장자로 되어 있다. 야곱이 장자권을 탐한 사실을 기억하실 것다.

야곱이 탐을 낸 장자권은 육적 장자권이 아니다. 우주의 장자권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우주의 장자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우주의 상속자다.

신약에 와서는 양자 아빠 친아버지로 표기(表記)되어 있다.(아빠는 세번= 갈4:6, 롬8:15, 막14:36,) 위에 여러 가지 성경을 참고하였듯이 개혁 성경에만 양자로 되어 있지 공동번역 등 다른 성경에는 양자라는 기록이 없다. 어디까지나 아들이다.  아빠의 표현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광이고 최고의 거룩한 표현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면 매우 멀리 계시는 하나님 같이 느껴진다. 아버지 하면 옆에 계신분 같다.

아빠하면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 품에 안긴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아빠란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친밀하게 다가오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육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 한다.

좀 더 교양 있는 집안에서는 아버님이라고도 하더군. 그러나 요새는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도 꾀 많다.

비교해 보라!

아버님 하면 근엄한 아버지로 생각된다.

아버지 하면 보통?

아빠 하면 가장 가까운 사이로 느껴지지.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 품에 안긴 기분이다.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저희 생활로써 그리스도교가 세속적인 것보다 우월함을 나타내 보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세상 원칙을 능가하는 하늘 원칙의 탁월성을 실증하도록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우리는 세상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일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품성의 순결함을 나타내야 한다. 진리를 받아들여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하늘 왕의 아들, 딸이 됨과, 거래에 있어서 정직하며 인생의 큰일뿐 아니라 작은 일에도 충실하고 참되며 고결한 자들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 심지어 기계적인 분야에서까지도 당신의 완전하신 품성이 드러나기를 바라신다. 지상의 성막을 세우는 일에 요구된 정확함, 기술, 재치, 지혜, 그리고 완전함이 당신의 모든 사업에서도 실천되기를 바라신다. 당신의 종들이 하는 모든 일은 동방 박사들이 진실하고 순결한 믿음으로 아기 구주께 가져 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과 같이 순결하고 고상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이 같이 함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사업하는 일에서도 세상에 빛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스스로 빛을 내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뛰어난 선행을 과시하고자 하는 자기 만족의 어떠한 노력도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의 영혼이 하늘 원칙에 젖음으로 저희가 세상과 교제할 때 저희 속에 있는 빛을 드러내기를 바라신다. 생애의 모든 행동 가운데 나타나는 정직함, 고결함, 확고 부동한 충성심은 빛을 비추는 도구들이 될 것이다.  3보감 144

대 정복자에게 정복당한 각 나라의 가장 유망한 청년들이 바벨론에 모였다. 그러나 그 모든 청년들 중에서 히브리 포로들을 필적한 사람은 없었다. 바른 자세, 안정성 있으며 탄력성 있는 발걸음, 맑은 용모, 흐리지 않은 판단력, 흠없는 숨결  모두가 다 바른 습 관으로 이루어진 증명서들이었다. 즉 그것들은 고결성의 표지(標識)로서, 천연은 천연 법칙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수여한다. 음식 28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긍심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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