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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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0
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 9:13
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사업은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멸망하여 가는 죄인이 "저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러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저는 이 이상 더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또한 지금 저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용서를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기별 392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사망의 죄(롬6:23)에서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내가 용서받은 죄인이기에 새 사람으로 살게 되고 나 아닌 다른 사람도 그 사랑으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게 됩니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원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2:16,17
질투심이 많은 랍비들은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그 비난에 답변하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친히 대답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영적으로 건강하므로 의사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반면 세리들과 이방인들은 영혼의 질병으로 말미암아 죽어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의사로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가시는 것은 그가 하실 일이 아니었던가? 1소망 275
유대인들은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을 중요시했습니다. 세리를 죄인으로 취급하는 바리새인들이 그들과 함께 잔치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같이 행한 예수님의 태도에 대해 그들은 비방을 가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나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죄인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명백하게 들어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의인과 죄인에 대한 비유적 설명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의원이란 바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 것이기 때문에 건강한 자란 예수님이 필요로 하지 않는 자란 뜻입니다. 이들은 스스로가 자신들에게는 죄가 없다고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란 말씀에서 건강한 자란 의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무리들은 바로 자신들을 의인이라고 믿고 있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들에게 의원으로 오신 예수님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의인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으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죄악 중에서 죽을 사람들입니다.
죄인이란 병든 자를 말합니다. 병든 자는 자신의 병을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죄인이란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통회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 죄의 비참함을 알고 마음을 찢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에서 의를 얻은 줄로 알고 율법적인 의를 찾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자신의 죄를 치료해 주고 건강을 주는 병든 자의 의원이 되신 예수님이 필요치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인이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특별히 잃어버린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눅19:10). 죄인을 부르신다고 하신 것은 잃은 양을 찾으시는 모습으로 목자의 음성을 들려주는 일입니다. 회개시키려 오셨다는 말씀은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100보나 50보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가 위나라 혜왕(惠王)의 초청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잘 와주셨습니다. 그것은 저희 나라를 강하게 해주시기 위해서이지요."
혜왕의 물음에 맹자는
"왕의 나라가 강해지느냐 않느냐는 둘째 문제고, 나는 우선 인(仁)과 의(義)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왔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셨지요. 한 가지 비유를 들어봅시다. 싸움터에서 양쪽 군사가 맞붙어 싸움을 하려고 북을 울렸다고 합시다. 그런데 한 병사가 대단히 겁을 먹고, 갑옷을 벗어 던지며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100걸음쯤 가서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또 한 병사는 도망을 치다가 한 50걸음쯤 되는 데서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는 100걸음 도망친 놈을 보고, 비겁한 놈이라고 욕을 했다고 칩시다. 어떻습니까, 임금님?"
하고 물었다. 그러자 혜왕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50보나 100보나 도망친 데에는 다름이 없지 않은가!"
라고 하였습니다. 100를 도망했든 50보를 도망을 하였든 모두가 군율을 어긴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생애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생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일 뿐입니다.
마가복음 2장 1절부터 12절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容身)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僭濫)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옛날 중국에 한 임금님이 계셨는데, 이 임금님에게는 아주 다정한 친구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두 친구는 기산이라는 산기슭 영수라는 곳에 살고 있던 소부와 허유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소를 먹이는 사람으로 날마다 여러 마리의 소를 몰고 풀밭에 가서는 풀을 뜯기고 물도 먹이며 사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철학자인데, 세상이 너무 추하고 악하다고 생각해서 땅 위에 살지 아니하고, 나무 위에다 집을 짓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외형적 삶은 아주 형편이 없었지만, 보통 사람들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차원의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금님은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 사람들을 불러서 의논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임금님이 나무 위에 사는 사람들을 불렀어요. 이 사람이 며칠 전에도 임금님을 뵈었는데, 왜 또 부르시는가 하면서 가서는 임금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군신 관계이자 친구 사이니까 아주 구김살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마칠 때쯤 되어 임금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무래도 오래 못 살 것 같은데,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누군가가 이 자리에 앉아 일을 하겠지만, 나는 내가 죽기 전에 이 왕위를 누구에게 물려주어 이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보고 죽고 싶소. 물론 내게 왕자가 있지만, 왕자들은 모두 덕이 모자라서 나라를 맡길 만하지 못해서 적임자를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그대밖에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내가 간절히 부탁하거니와 제발 이 용상에 올라서 이 나라의 왕이 되어 주 오."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분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무리 임금님의 부탁이지만 자기는 나라를 다스릴 만한 덕이나 역량, 지혜도 없다고 생각되고, 또 개인적으로도 그 복잡한 왕위에 올라 앉아 있는 것보다 나무 위에서 한가하게 사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왕위를 거절했습니다. 임금님은
"어찌됐든 당신이 왕위에 올라야 된다."
고 하고, 친구는
"안 된다."
고 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이 사람이 자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가 왕위에 앉으면 먹는 게 달라지고, 입는 게 달라지고,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은 안 된다고 하면서도 마음 한 쪽에서는 굉장한 유혹이 왔어요.
이 친구가 왕궁에 올 때까지는 편안한 마음으로 왔는데, 그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는 마음에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왕위를 거절해야 한다. 아니야, 이런 기회는 내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기회인데, 이 기회를 놓치다니.' '아니야. 나는 거절해야 돼. 안 돼, 이번에 왕이 되어야 해' '조금 해 보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면 안 될까? 안 돼.'
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속에서 두 음성의 싸움이 계속되는데, 이 분은 자기 마음을 자기가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 날은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잡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들어서, 원. 이 소리를 듣기 전에는 평안했는데 ….' 유혹 때문에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에이, 공연히 부질없는 소리를 들어서 이 귀가 더러워졌다.' 하고는 냇가에 가더니 냇물에 귀를 계속 씻었습니다.
그런데 소 먹이던 친구가 보니까, 아까부터 자기 친구가 냇물로 자꾸 귀를 씻고 있기에, '저 친구가 왜 저러나?' 하고 가까이 가서 물었습니다.
"그대는 지금 이 강물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오늘 여차여차해서 임금님을 만났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 내 귀가 더러워 졌는지 마음의 평안함을 잃었네. 그래서 이 귀를 씻고 있네."
그랬더니 소를 먹이던 친구가 화를 벌컥 내면서,
"그 더러운 귀를 이 냇물에 씻으면 내 소에게는 무슨 물을 먹이란 말이오?"
고 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신앙이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는 한 번 들은 소리를 잊어버려야 하는데 잊지 못할 때가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을 때가 있으며, 생각을 말자 하지만 생각이 계속 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음의 세계를 잘 모르면 외형적인 면만 보고 표면적인 변화를 추구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행동이나 겉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4,25
죄악에 빠진 죄된 인간들을 그대로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사 하나님을 꼭 닮은 의인으로 변화시킨 후 이들을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하여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영광의 구름수레를 타고 재림하실 때는 죄인을 불러, 데려 가시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든 자가 의원의 치료를 받듯이 죄인들이 죄인의 의원이 되시는 예수님의 치료를 받을 때 놀라운 치유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눅5: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사망에서 건져내 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5
다시는 병들지 아니하는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죄악에 빠진 죄된 인간들을 그대로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사 하나님을 꼭 닮은 의인으로 변화시킨 후 이들을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하여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영광의 구름수레를 타고 재림하실 때는 죄인을 불러, 데려 가시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9:28
완전한 의인이 된 이들만 데려가시기 위하여 [두번째 나타나시](히 9:28)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죄인들은 다 멸망시키시기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유14, 15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지구)을 정하게 하사 알곡(의인)은 모아 곡간(천국)에 들이고 쭉정이(죄인)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12
이것이 예수께서 두번째 오셔서 하시는 일입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됨전6: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벳후3:14
점도 없고 흠도 없이라고 하는 말씀은, 내 자신의 어떤 품성의 결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 점이나 흠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성화는 한순간, 한 시간, 혹은 하루의 과업이 아니다. 그것은 은혜 안에서의 계속적인 성장이다. 우리는 다음번에 올 투쟁이 얼마나 강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1증언 340
예수님 재림시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의 흠이나 점이 있는 자들은 결코 하늘에 데려가지 않고 이 땅에서 멸망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원수 사단은 오늘날 이 땅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거짓된 종교가들의 입술을 통하여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으니 우리는 모두 다 죄인들이다. 사람이 완전한 의인이 되기란 불가능하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우리 모두들은 다 죄인들이다."
란 말만 주장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계속 죄 된 상태로 머물도록 하여 멸망당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백성들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희망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의인으로 인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의로울 수 없음
사람에게 있는 큰 위험은 자기에게 기만당하고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능력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우리의 육신적 성향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교정되지 않으면, 그 속에 도덕적 죽음의 씨앗을 간직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우리는 방종과 자기 본위의 마음과 죄의 유혹 등의 부정한 세력들을 저항할 수 없다. 치료봉사,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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