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징계하시는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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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44:2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12:7,8
하나님께서 내리는 시련을 참아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당연히 자녀에게 하실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로서 자기 자식을 단련시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현대어Heb.12:8 If you are not disciplined (and everyone undergoes discipline), then you are illegitimate children and not true sons.
not true sons.(진짜아들이 아니다)
사도는, 징계를 받지 않은 자들은 사생자요 참 자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서출(庶出=사단의 자녀)의 자녀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적출(嫡出)의 자녀로 뽐내지 않게 해야 한다. 1증언 632
하나님께서 자식이 잘못할 때 친아들이기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너희를 채찍으로 치시지 않는다면, 종아리 치시지 않는다면 너희는 하나님의 친 아들이 아니고 사생자다. 아버지 없는 자다. 내가 너희 친아버지이기 때문에, 너희는 내 참아들, 친아들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징계한다.”
는 말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는 그분의 아들이라고, 그분이 우리를 낳으셨다는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이 세대에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신령한 사물은 신령한 눈으로 보아야 하고, 신령한 마음으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빠는 의붓아버지가 아니고 수양 아버지가 아니시기 때문에 작은 일에까지 신경 쓰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전에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한 사람, 한 죄인, 한 자녀 따라다니시면서
“너는 왜 이렇게 했냐? 요렇게 하지.”
하시고, 안 그러면 또 종아리 걷어서 매로 치시고 말입니다. 또 요새는 뭐라고 하세요?
“물은 어떻게 마시고, 몇시에 일어나고, 뭘 먹지 말고 과식, 간식하지 말고, 잠은 몇시에 자고, 말은 이렇게 하고 ···.”
그래서
‘참, 하나님도 하실 일이 어지간히 없으신가봐. 얼마나 하실 일이 없으시기에 그렇게 죄인 하나 하나 따라다니시면서 그렇게 간섭이 심하신가?’
했더니 이제 보니까 왜 그래요? 친아버지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 될까봐 그렇게 따라다니시면서 타이르시고, 그래도 안 들으면 어떻게 하시는가?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7:1416
공자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길을 가는데 저만치 논두렁에서 엉덩짝을 까고 똥을 누는 한 사내를 보았습니다. 그 사내가 볼일을 다 보기를 기다려 공자는 그 사내를 불러 크게 나무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참을 또 길을 가다가 보니 이번에는 길 한복판에서 그짓을 하는 인간이 있는 게 아닌가! 그러자, 공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를 피해 바삐 길을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겠다.
"스승님깨서는 길에서 저만치 떨어진 논두렁에서 배설을 하던 사내를 크게 나무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길에서 그런 몹쓸 짓을 하는 인간을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십니까?"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고 전해집니다.
"제자야, 그 이치를 모르겠나? 한길에서 저만치 떨어진 논두렁에서 그 짓을 하던 사내는 최소한의 염치를 아는 인간이니 불러서 타이르면 그 잘못을 깨닫고 다음부터는 두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이 다니는 길 한복판에서 똥을 누는 놈은 인간으로 차마 상대할 자가 못되니 차라리 이쪽애서 피하는 게 속 편한 일이 아니겠나."
희망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지도 않습니다. 징계를 안 받는 사람은 희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매를 순히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까지 가지 아니하시고 매를 순히 받으시고 눈물 흘리면서 돌아온 아들딸들이 되었으니 틀림없이 하늘의 후사가 될 것입니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욥 5:17,18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 103:13
하나님께서 징계를 맞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복이란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는 복입니다.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고 횡재 만난 것같이 여기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를 세부분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적자, 서자, 양자입니다.
적자(嫡子) 정실 부인으로부터 출생한 남자.
서자(庶子) 서모(庶母,妾)으로부터 출생한 남자.
양자(養子) 적자(嫡子)나 서자(庶子)가 없는 집에서 대(代)를 잇기 위하여 동성동본의 집안에서 데려다 기르는 남자.
전통적으로 적자는 당당하였습니다. 서자는 서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예가 홍길동이입니다. 설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적자는 아버지 방에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없습니다. 설 명절이 되면, 적자들은 아버지 방으로 척척 들어가서 세배를 하는데 서자는 마당에서 돗자리를 깔고 절을 세배를 하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서러웠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양자인가 또는 적자인가 서자인가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에게 칭찬하는 말씀은 별로 없고 늘 책망하는 말씀과 또 잘못하면 죽는다는 말씀뿐이므로 성경을 읽는 것이 재미가 없습니다. 구절구절마다 책망, 발걸음마다 책망입니다. 그러나 책망은 우리 아버지의 가장 큰사랑인 것입이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욥5:17
성경의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대한 문제마다 ‘보라’ 또는 ‘볼지어다’ 또는 ‘진실로 진실로’라고 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잠3:11, 12
잠언서 가운데 징계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징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무사르'(musar)인데, 과실을 범한 자에 대한 처리를 뜻하는 것이지 형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쉽게 말하면 사랑하는 아이가 잘못된 길로 나갈 때 혹은 나갈까 봐서 부모가 훈계하고 때로는 책망하고 어떤 때는 채찍으로 매를 드는 것을 말합니다.
잠언에서 「내 아들아」라고 했는데 만일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는, 매일 거지같이 옷을 입고 다니는 어떤 아이를 왕이 국정을 다 집어치우고 내려와서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면서 한나절 등을 두드려 주고, 쓰다듬어 주고, 볼을 비벼 주면서 사랑을 퍼붓고 간다면 그 다음부터 그 아이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그 고을의 감사, 원님 할 것 없이 모두들
“이 아이는 국왕이 사랑하는 아들이라.”
고 하면서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모실 것입니다. 이처럼 우주 대왕 하늘의 하나님께서 만사를 다 제쳐놓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내 아들아!”
하시면서 우리에게 사랑을 퍼부으셨기 때문에 천사들이 우리를 그토록 철저하게 둘러 지키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천사가 보내심을 받았다. 이와같이 천사들은 각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봉사해 왔다. 보호하는 한 천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각 사람에게 지정되어 있다. 그 하늘의 보호자들은 의인을 악한 자의 세력에서 지켜 준다. 쟁투(하) 512
사람들이 만일 하늘의 사물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은 능력 있는 천사의 무리가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지켜온 사람들을 둘러 진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쟁투(하) 630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아들이라고 하신 말씀들이 꽉 차 있습니다.
좀 우스운 예를 들어야 겠다.
요지 음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강아지나 원숭이를 기르면서
“엄마가 밥줄께.”
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기가 참니다. 애완동물이 자기가 낳은 새끼라는 말인지? 그것은 아닐 것이고 애칭일 것입니다. 이러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애완동물 취급하시는 것인지요?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틀림없는 자녀들임을 꼭 기억합시다.
어떤 아들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 아들을 매우 사랑하므로 온갖 정성을 다해서 밥상을 차려 줍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어머니가 혹시 자기를 죽이지는 않을까 해서 밥을 먹기 전에 먼저 강아지한테 밥을 한 숟가락 퍼서 던져 준 다음에 개가 먹고 죽지 않으면 그때서야 먹는다고 합시다. 그것은 그 아들이 단단히 의심병이 들었다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의심병 때문에 평생 가슴을 치다가 결국은 죽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말고 우리의 하늘 아버지의 절대적인 사랑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렘 31:18-21
에브라임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아버지께 돌아와서 실컷 종아리를 맞고 일생을 뒤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가를 생각해 보니 송아지, 즉 짐승 같은 짓만 하고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주는 참으로 나의 친아버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이제는 아버지께 내 생애를 맡기겠습니다.”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아버지의 속을 너무 썩이고 다녔던 자식이었음을 깨닫고 내가 정말 너무했었다고 가슴을 쳤다.”
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고 아버지께서도 같이 우셨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매를 치고는 같이 우시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랑이 그의 생명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우셨겠습니까?
그리고는 징계를 잘 받은 자식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참으로 얼굴을 들 수 없이 부끄러운 짓, 짐승 같은 짓을 하고 돌아다녔던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하는 자식들이 너무 예쁘고 고마워서 같이 우시던 아버지께서 즉시 화답하시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우리가 우주 대왕 하늘의 하나님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고 무엇이 그토록 예뻐서 맛있는 과일들을 철철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봄철이 되면 딸기, 토마토, 여름철에는 땀이 흐르니까 수분이 모자라서 쓰러질까 봐 설탕까지 넣은 둥그렇고 맛있는 물통 수박, 참외를 주시고 또 가을에는 땀이 걷혔다고 해서 대추, 밤, 호두 등을 주시고 계절마다 제철에 알 맞는 과일을 골고루 주십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뜨거워서 발바닥을 댈 수 없는 사막, 만일 그런 곳에서 목이 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이 마르다고 샘을 파다가 파는 도중에 죽고 말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미리 아시고 막둥이들이 목이 탈까 봐 야자나무에 물을 한 컵씩 담아서 덮개를 덮어 먼지도 안 들어가도록 밀봉을 시켜 달아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영양도 많으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깨뜨려서 한 모금 쭉 들이마시라고 달아 놓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부모들 중에 그 아들이 가는 길목마다 물을 한 컵씩 매달아 놓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분이 진짜 우리들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아들의 필요를 아시고 먼저 달려가서 물을 완전 살균해서 썩지 않게 하여 한 컵씩 매달아 놓으신 것입니다.
과일 나무가 자기 스스로
“내가 열매를 달려야지.”
해서 자기 마음대로 나무에 달려 있는 줄 아십니까?
우리 조상이 달아 놓았습니까?
아니면 미국의 과학자들, 소련의 과학자들이 달아 놓았습니까?
이러한 천연계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과일을 먹으면서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분께서 주신 것을 먹고, 지금 숨을 쉬고 살면서도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하늘과 땅에 수만 가지로 그분의 사랑을 기록해 놓으셨다.
영안이 떠서 천연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만 있다면 참으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아담과 하와 앞에 생생한 실물 교훈들을 펼쳐 놓고 있는 천연계는 교과서로서, 교훈과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나뭇잎, 산의 돌덩이, 하늘의 반짝이는 별, 땅과 하늘과 바다,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성호(聖號)가 기록되어 있었다. 에덴의 거주자인 아담과 하와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 곧 나뭇잎, 꽃, 수목은 물론 물에 사는 큰 동물들로부터 햇빛에 비취는 티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존재의 신비를 배웠다. 하늘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 질서 있게 운행되는 무수한 별들,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욥 37:16)들, 빛과 소리와 밤과 낮의 신비들, 이 모든 것들이 지구의 첫 학교 학생들이 연구할 대상이었다. 교육 21
성경 다음으로 천연계는 우리의 위대한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자녀 45
양치는 소년으로 아버지의 양 무리를 지키던 요셉의 순결하고 단순한 생활은 그의 체력과 지능을 발달케 하였다. 천연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고, 거룩한 위탁물로써 대대로 전해 내려온 귀한 진리들을 배움으로, 그는 견실한 정신과 확고한 원칙을 체득하였다. 교육 52
이 죄많은 세상은 슬픔과 고통 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천연계 그 자체가 우리에게 희망과 위안의 기별을 전해 준다. 꽃들이 잡초 속에서 피어나고 장미가 가시나무를 덮는다.
"하나님은 사랑이다"는 말이 피어나는 꿎봉오리마다 돋아나는 풀잎마다 기록되어 있다. 예쁜 새들이 행복하게 부르는 노랫소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말해 준다. 아름다운 꽃들은 향기를 풍기고 하나님의 따뜻한 돌보심을 말해 준다. 숲속의 키 큰 푸른 나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준다. 정로 10
사람들은 대자연을 즐깁니다. 산으로 바다로 나아갑니다. 온갖 경치를 즐깁니다. 천연계를 진짜로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자들은 이방인들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왜냐 하면, 천연계는 자녀들을 위한 우리 아버지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귤을 보더라도 귤은 한 입에 집어넣을 수 있도록 전부 한 조각씩 포장을 한 뒤 그 위에 또 스펀지 같은 껍질로 전체를 완전히 포장을 해서 나무에 달아 놓으시고는 막둥이들로 하여금 먹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그냥 한 덩어리로 되어 있다면 먹을 때 탁 터져서 얼굴 버리고 옷 버릴까 봐 꼭 한 입씩 떼어먹을 수 있도록 예쁘게 포장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어느 공장에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 입에 꼭 맞게 만들어서 나무에 달아 놓으신 것임을 감사합시다.
맛있는 과일들을 먹으면서 누군가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못된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는 우리들에게 무엇이 예쁘다고 철철이 새로운 과일들을 먹여 주시는지 모르겠다고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면 따져 본다면 아버지 대답은 이러할 것이다.
“내 새끼니까 그렇지. 내 새끼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온갖 것을 창조하시고 필요를 태워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자녀이기 미운 짓해도 예쁘고 그른 짓해도 예쁘고, 혹 잘못을 해도 어린것이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넘기시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영원한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서 징계를 하십니다.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 귀염둥이 아들딸들을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반드시 내가 싸매어 주며 반드시 천만배 위로해 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갔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이것을 공동번역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에브라임이 가슴 아파하는 소리를 나는 분명히 들었다. 렘31:18
"우리는 길들지 않은 송아지처럼 당신께 매를 맞았습니다. 고맙게도 매를 맞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시라, 주께 돌아가고 싶습니다. 부디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주님을 떠난 다음 잘못을 깨닫고 가슴 치며 뉘우쳤습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젊어서 잘못한 일로 우리는 수모를 받았습니다." 렘31:18,19
"오냐! 에브라임은 내 아들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나의 귀염둥이다. 책망을 하면서도 나는 한 번도 잊은 일이 없었다. 가엾은 생각에 내 마음은 아프기만 하였다. 내가 진정으로 하는 말이다” 렘31:18-20 공동번역
인간 백체 가운데 이빨은 좀 썩어도 그냥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귀에서는 중이염이 생겨서 고름이 나와도 살 수 있고 발가락은 무좀이 생겨서 썩어 들어갈지라도 그냥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만큼은 티가 들어가고 먼지만 들어가도 눈도 뜨지 못하고 못 견딜 정도로 고통이 오는데, 가장 중요한 우리 아버지의 눈동자에 우리를 집어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염둥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측량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나의 진정 너에 대한 사랑이라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고백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수없이 우리를 위해서 창세 전부터 죽엄의 희생을 치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시며 수없이 죽으셨는데, 목숨까지 우리를 위해서 버리신 분이 눈이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어느 형사가 극악 범을 저지를 죄수의 자백을 받으려 하였으나 얼마나 교묘한지 이리 저리 형사의 질문을 빠져나갔고 합니다. 아무리 악한 범인이라고 해도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하면 주르륵 눈물을 흘리게 마련이랍니다. 그래서 그 형사는 범인에게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예화를 들어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범인은 요지 부동 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사는 크게 마음을 먹고 슬픔표정을 지으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구성지기 불렀다고 한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깍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살인혐의가 있는 범인은 노래를 듣는 동안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리더니 결국은 범죄를 인정했다는 말을 TV를 통해서 본 일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서 또는 천연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물씬 물씬 느껴야합니다.
위에 성경 말씀과 같이 우리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염둥이라는 말씀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참으로 우리 개개인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며 얼마나 존귀한 자녀인가를 알고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염둥이를 데려가려고 책망을 했더니 어떤 자식은 책망했다고 그만 뿔뿔 거리고 도망을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깊은 속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식을 위해서 아버지께서는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이정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푯말)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렘31:21
하늘 아버지의 품에서 떠난 자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애절한 음성입니다. 천연계를 통해서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오라는 이정표를 읽을 눈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꽃잎 하나 하나에도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 새겨져 있습니다. 온 산천이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 귀염둥이를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해
“이 자식아! 네가 짐승이냐? 너는 내 아들이다.”
하고 조금 책망을 했더니 뿔뿔 거리고 도망가드라는 것입니다. 이러니 우리 아버지께서는 비상이 걸리셨습니다.
“얘들아! 푯말 어디 있느냐? 말뚝 어디 있느냐? 말뚝을 찾아서 꽂아라. 길목마다 푯말을 세워 놓아라. 길모퉁이 돌아가는 곳에는 길을 잃을지 모르니 총총히 꽂아 놓아라.”
모두 꽂아 놓으시고는
“처녀 이스라엘아, 그 길로 돌아오라. 너희가 언제라도 돌아오면 내가 받아들이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 너희가 살던 이 행복한 예루살렘으로 또다시 돌아오라.”
이토록 아버지는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한문 성경에는
“동정녀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동정녀(童貞女)
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정절, 절개를 말합니다. 우리는 정절을 잃어버리는 창녀가 되지 말고 처녀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니다.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사 57:17,18
공동번역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너무 못되게 욕심 부리므로 나는 성이 났다. 화가 나서 그들을 치고 얼굴을 돌렸다. 그래도 배신하고 제멋대로 가버릴 때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눈여겨보았다. 내가 그들의 병을 고쳐 주며 위로하고 한껏 격려해 주리라 사 57:17,18
여기에 ‘쳤다’는 말씀이 여러번 나옵니다. 이 말은 때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훅 불어도 흔적이 없이 사라질 터인데 때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루도 찾기 힘들 것입니다. 여기서 ‘쳤다’는 말씀은, 사람이 털끝만한 욕심이라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결코 하늘에 가지 못할 텐데 욕심을 배가 터지도록 끌어안고 비지땀을 흘리는 미련한 자식에게
“이 자식아! 네가 그렇게 욕심을 부려서 어떻게 하늘나라에 가서 나와 같이 살겠느냐?”
고 살짝 이마를 밀었다는 말이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이마를 밀었다.”
고 뿔뿔대고 도망쳐 버렸다는 말이다. ‘저 자식이 혹시 가다가 뉘우치고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 눈여겨보았더니 산모퉁이로 돌아가서 아주 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얘들아! 이것 큰일 났다. 우리 아들 막둥이가 아주 가 버렸다. 말뚝 어디 잇느냐? 푯말을 세워 두어라. 모퉁이 길, 도는 곳은 총총히 박아 두어라.”
하시며 비상이 걸려서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시는데 돌아오기는커녕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호 11:7
그래서 애가 타신 아버지께서 허겁지겁 맨발로 쫓아오시며 울부짖으시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호11:8,9
공동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남에게 내어 주겠느냐.”
투덜거리고 떠나가는 자식의 옷자락을 붙잡고 쫓아가시면서 목 놓아 우시는 아버지의 음성이며 울며 매달리시는 아버지의 호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브라임아! 이스라엘아! 내가 너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다.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만들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나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네가 너무 불쌍해서 간장이 녹는구나. 아무리 노여운들 내가 다시 분을 터뜨리겠느냐. 에브라임을 다시 멸하겠느냐. 나는 사람이 아니고 신이다. 나는 거룩한 신으로 너희 가운데 와 있지만, 너희를 멸하러 온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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