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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순종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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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7-9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이라고 부르는 별의 주위를 돌고 있는 작은 행성이다. 태양은 지구보다 130만 배나 크다. 그러나 우주에는 태양보다 백만 배나 더 밝은 별들도 많다. 은하계에는 약 1천억 개의 별들이 있으며, 은하계의 길이는 10만 광년에 이른다(1광년은 대략 10조km 정도다). 태양은 1초에 250만km 움직이며, 은하계에 있는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에 2억년 정도가 소요된다. 태양계가 속해 있는 것과 같은 은하계는 수백만 개에 이른다. 다시 한번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시편 147편은 하나님께서 모든 별의 수효를 계수하셨다고 했으며, 뿐만 아니라 그 모든 별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했다.

“그분이 세우신 법칙을 따라 별들이 제 길을 돌고, 태양도 제 길 따르며 순종하며 빛을 발하네.” 캐서린 데이비스(Katherine Davis) 움직이는 모든 만물’(Let All Things Now Living)

‘순종하며’라는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태양의 이름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분이 태양의 이름을 부르며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태양은 순종합니다. 무한히 많은 별들이 모두 그렇게 순종합니다. 별들과 행성들을 구성하는 요소의 모든 분자 속에 있는 전자들뿐 아니라, 로드 아일랜드 주의 계곡 바위 밑에 서식하는 상어의 아가미 속의 분자들도 순종합니다.


새 삶을 얻은 주정뱅이

한 주정뱅이가 있었습니다. 노름으로 재산을 날리고 부인과 자식들에게 폭행을 일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런 사람이 교회를 다녀 봤자 달라질 게 있겠어?”

하며 회의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무어라 가르치시던가?”

“착하게 살라고 하기도 하고 뭐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

친구가 또 물었습니다.

“그럼 성경은 누가 썼다던가?”

그는 당황하며 대답했습니다.

“글쎄, 잘 모르겠는걸.”

친구가 다시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그의 대답은 모두 신통치가 않았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교회에 다닌다면서 자네가 배운 것이 뭔가?”

그러자 그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다네. 전에는 술이 없으면 못 살았는데 요즘은 술 생각이 별로 나질 않아. 그리고 전에는 퇴근만 하면 노름방으로 달려갔는데 지금은 집에 빨리 가고 싶고, 전에는 애들이 나만 보면 슬슬 피했는데 지금은 나랑 함께 저녁식사를 하려고 기다린다네. 그리고 아내도 전에는 내가 퇴근해서 집에 가면 나를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내가 퇴근할 무렵이면 대문 앞까지 나와 나를 기다린다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 그 경험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만남을 경험한 사람은 행동과 생활과 대인관계가 달라집니다. 이러한 경험적 만남이 없는 사람은 지적 만족으로 공백을 채우려 하지만 그분과 진실한 만남을 경험한 자는 새로운 삶을 얻습니다.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시] 147:4, 5

시편 147편은 하나님께서 모든 별의 수효를 계수하셨다고 했으며, 뿐만 아니라 그 모든 별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고난과 함께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 받지 않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어느 신앙이 깊은 자매님이 고난에 대한 간증을 제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가 고난당한 후 그 자신이 더욱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어서 고난당하기 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신과 전문 의사 에릭린드맨 박사는 위기를 당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병들고, 사업에 실패하거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위기를 당했던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85%가 위기가 축복이 되었다는 것을 결론 얻게 되었습니다. 위기를 당하면 사람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쁜 습관을 고치고, 가정의 분위기를 바로잡고, 신앙생활을 더욱 철저히 하며, 시간과 물질을 절약했습니다. 
그 결과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거나 발전하고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의 유익으로 계산하라.”고 말했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시련을 우리는 마이너스로 계산하지 말고 플러스로 계산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고난당하고 고통당할 때 원망하거나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결과적으로 내게 유익이라고 믿고 더욱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위기는 우리 삶에 축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축복의 길은 고난의 광야를 지내야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축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반드시 축복이 있는 가나안 땅에 가기 전에 광야를 지나야 되는 것입니다. 광야가 없는 축복은 결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난의 짐을 예수님에게 맡겨버리지 않고, 계속 끊임없는 불평을 함으로써 더욱더 우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불평을 듣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고 실망에 빠뜨립니다. 
매리 배철러라는 여인은 바로 그러한 만성 불평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목사님의 딸이었고 가정주부이며 또한 목회자인 그의 오빠의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빠에게 그의 고민을 날마다 불평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있던 어느 저녁에 그녀는 오빠에게 자기가 한 불평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발견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어 창밖을 내다보니, 높이 솟아 있는 포플러 나무들이 저물어가는 저녁 해를 안고 저 건너 잔디밭으로 길쭉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저 나무들처럼 오빠에게 그림자를 지우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예수님께 내 짐을 맡김으로써 슬픔을 매장하지 못할까?' 
그녀는 자기 방으로 가서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얻었습니다. 
후에 그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너의 슬픔을 서슴지 말고 묻어버려라.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걱정이 있으니 깊숙이 묻어버려라. 조심스레 숨겨서 침착하게 생각하라.
어두움의 장막이 내릴 때, 어서 주님께 말하라. 그러면 만사가 의로우리라.” 
그 후 그녀가 더욱 행복한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 그 글을 오빠에게 보여주고, 오빠는 그 글을 읽고 지방 신문에 실었으며, 저명한 작곡가인 필립 브리스 씨가 그 글을 읽고 작곡하였습니다. 
매리 배철러는 한때 만성 불평자였으나 주님께 그의 모든 짐을 던져 맡겨드림으로써 우울증으로부터 완치가 되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1. 요셉이 경험한 고난과 축복
우리가 요셉이 경험한 고난과 축복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 열한째 아들로 특별히 야곱의 사랑을 받았는데 형제들이 시기, 질투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꿈을 꾸니 꿈에 추수하러 형제들과 나왔는데 자기의 단이 가운데 서고 형제들의 단이 둘러서서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밥상에서 이야기하고 난 다음 형제들이 굉장히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또 꿈을 꾸었는데 하루는 자다가 보니까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 보았습니다. 그것을 또 자랑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형들은 몸을 떨고서 미워했습니다. 아버지도 요셉을 보고 꾸짖었습니다.

“해와 달은 너 아버지와 어머니 아니냐? 너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들이 너에게 엎드려 절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나 의미가 있는 꿈이라고 야곱은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요셉에게 가정에서 가장 큰 인물이 될 것을 꿈으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 위해서는 요셉은 기나긴 세월의 고난을 겪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종이 되어 애굽에 가서 종살이를 10년 동안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좀 살만할 때 또 모함에 빠져서 왕에게 죄를 지은 왕의 감옥에 3년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13년의 광야를 지나고 난 다음에 그는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위기에서 애굽을 구출하여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온 가족들이 내려와서 그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아무리 세상이 해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선으로 바꾸면 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냥 선을 주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광야라는 어려운 해를 통해서 선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9절로 10절에도 보면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고 말한 것입니다.
1. 시성(詩聖)이라고 불리는 호모와 밀턴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으나 위대한 시인이 된 것입니다.

2. 바다에 왕이라고 하는 넬슨 제독, 위대한 문호(文豪) 셰익스피어는 절름발이였습니다.

3. 마틴 루터는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할 만큼 몸에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 같은 어려움 속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운명을 극복하는 위대한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4. 미국인이 존경하는 대통령 루즈벨트도 소아마비를 앓았음에도 대통령이 되어 미국을 다스렸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킨 사람들 중에는 신체의 어려움을 지녔던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육신의 고통과 어려움으로 인해 더욱 하나님을 찾고 더욱 깨어지고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고난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난과 고통으로 인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 안에 머물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축복과 영광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2. 광야 저편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광야 저편에 있습니다. 이편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삶속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꿈은 지금 여러분 편에 있지 않습니다. 광야 저편에 있는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광야는 지나가지 않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만 들어가겠다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절로 3절에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가지도록 훈련하기 위해서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자기들을 의지하고 원망, 불평, 탄식을 하다가 낙제생이 되고 버림을 받고 만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5절로 16절에도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시련하시고 광야를 지나게 하신 목적은 마침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광야를 지나지 않고는 복을 받을 그릇이 준비가 되지 않습니다. 적은 복을 받을 사람은 적은 광야를 통하고 큰 복을 받을 사람은 넓고 긴 여행 광야를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골리앗은 다윗 성공의 가시
여러분 성경에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쳐서 죽이고 온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고 나중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는데 다윗은 하나 초립동 목동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집안 식구들도 인정하지 않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을 때 사울 왕과 군대들이 골리앗을 감당을 못했습니다. 골리앗이라는 어마어마한 적을 감당 못해서 쩔쩔매고 있을 때 다윗이 그 현장에 나타나서 나아가서 골리앗과 싸워서 골리앗을 죽이고 일약에 온 나라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사울의 눈에 띄어서 특채를 얻고 위대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골리앗이라는 가시가 있어서 다윗이 생겼지 골리앗 없이는 다윗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이스라엘의 만군천자가 되는 그 사이에는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원수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와 싸워서 그를 죽이고 이겨야만 그는 이스라엘의 만군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은 우리에게 가시 같지만 나중에는 큰 축복으로 변한다는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도 한가지입니다. 구원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다 버리고 사망이나 고통이나 괴로움이 없는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영원히 모시고 살수 있다는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까? 우리는 구원만 보면 감사하고 찬미합니다. 그러나 그 구원에 우리가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못 건너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업고 그 강을 건넜습니다.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못 박혀야 될 그 자리에 예수님이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여러분과 내가 들어가야 될 죽음에 예수님이 대신 들어가서 그것을 이기고 일어났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광야를 무사통과한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죽음의 광야를 통해서 영생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
빌립보서 2장 6절로 11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하나님께 얼마나 복종했던지 하나님이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오셔서 33년 동안 먼지와 티끌 속에 사시다가 죄 없는 분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그 무지막지한 고통을 참으신 것은 고난이 있어야 용서와 구원과 천국이 다가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께 그 길을 취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헨리 나우엔은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고 고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광야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그곳에서 이끌어낼 수 있다고 착각한다."

자기는 고난 안 당해 봤으면서 고난당한 사람을 돌볼 수가 없습니다. 자기는 광야 근처도 가지 않고 호의호식하고 호화롭게 살면서도 광야에서 헐벗고 굶주려 고통당하는 국민을 이해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는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가장 낮은 인간 인생으로 오셔서 온갖 고통과 핍박과 고난을 몸소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로 십자가에 달려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우리의 심정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질병과 환경의 고통에서 능히 건져내실 수 있으신 것은 그가 그를 먼저 통과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가 그 대가를 먼저 지불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있는 우리를 도와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5. 고난의 열매
우리는 고난을 늘 피하려고 하지만 고난의 열매는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고난 받지 않고는 고난의 열매를 우리가 취할 수 없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달고 향기로운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고난을 받게 되면 우리가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담과 하와의 피를 받고 난 이후로 모두 다 하나님 앞에 건방지고 교만합니다. 크고 적은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다 교만한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이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직시하고 되고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 선생이 그렇게 큰일을 하고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현재 나 되었다는 것은 그가 엄청난 고난을 통해서 깨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깨어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의 열매인 것입니다. 많은 고난을 받을수록 많이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순종하고 더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깨어지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집을 부리고 자기 멋대로 살고 자기 원하는 데로 갈려고 하던 사람이 고난을 당해서 고통을 심히 당하면 회개하고 깨어지고 순종하게 되고 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8절로 9절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조차도 고난으로 말미암아 순종을 배웠다고 한 것입니다. 왜 순종 안하느냐? 고난 받지 않기 때문에.. 등 따숩고 배부르니까 고집을 부리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어려운 고통에 처하면 하나님께 깨어지고 순종하게 되고 도움을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보통 때는 기도 안하던 사람이라도 고난당하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이 왔었을 때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존 번연은 

"시험과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한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보통 때 하나님을 안 찾더라도 시험과 환난을 당하면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배부를 때는 엄마를 안 찾지만 배가 고프면 엄마를 찾습니다. 멀리 객지에 있는 여러분의 자녀가 부모에게 번지르르 하게 편지 쓰고 인터넷 인포메이션을 보내고 전화를 걸고

“부모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면은 고난당하는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편안할 때는 부모를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예 1년 내내 가도 편지 한통 안 씁니다. 고난당하면 그렇게 편지도 자꾸 쓰고 전화도 자주하고 인터넷에서 도와달라고 문자도 보내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고난당하면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시련이 없고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가 가장 위험한 시련이다. 왜냐하면 그때 인간은 하나님을 망각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라고 하여 하나님이 시련을 주시지 않을 때가 가장 무서운 시련이라는 것입니다. 시련이 없이 평안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시련 안 받을 때가 시련 받을 때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시련이 있으면 깨어지고 순종하고 조심하게 되고 부르짖고 기도하게 되는데 시련이 없게 되면 오만하고 교만하고 방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왜 고난이 있는가,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고난은 이런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확성기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확성기로 말을 합니다.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 우리에게 회개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귀에 대놓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해도 듣던 말든 무관심한 것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으면 우리는 부르짖어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고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양 격언에 "참호 속에는 무신론자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전쟁할 때 적군의 총탄이 빗발처럼 날아오면 참호에 엎드려서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머리를 감싸고

“하나님 날 살려 주옵소서.”

모두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평소에는 이름도 안 부르던 하나님을 참호 속에서 총탄이 빗발같이 날아오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고통은 성장의 법칙이요. 우리의 인격은 이 세계의 폭풍우와 긴장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고통을 당해야 인격이 성장하고 발전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독일 격언에 의하면 "고난은 기도의 선생"

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도하라. 기도하라해도 기도 안하는 사람이 고난당하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시는 까닭은 나의 믿음을 증대시키기 위함이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연고이다. 만일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고난이 와서 믿음이 자라게 합니다. 고난을 안 받으면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고난이 왔기 때문에 믿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믿습니다를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기도의 선생이요 평소에 기도하라고 하면 시간이 없습니다. 몸이 피곤하다, 바쁘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우리는 새벽 기도도 나오고, 철야 기도도 하게 되고, 스스로 짐 보따리 싸고 산기도에 올라가게 되고, 작정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다가올 축복을 감당케 하는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고난당해서 변화되어야 하나님이 안심하고 축복을 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탕자가 어려운 고난
을 당하고 깨어진 다음에 아버지가 집에 돌아올 때 살찐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사람이 고난당해서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깨어지고 겸손하게 되면 나중에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7절로 18절에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야훼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으나 그 능력이 언제 개발 되었느냐. 고난을 당하고 난 다음에 그 능력이 개발 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재물 얻을 능력을 개발시켜 주지 않습니다. 고난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 능력을 개발시켜 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당하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따라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보십시오. 고난이 와야 우리가 온전하게 되고 굳건하게 되고 강하게 되고 터를 하나님이 견고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나는 고난당하지 않는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고난 안 당할 때가 고난당할 때 보다 더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고난에 대해 설교할 때는 로맨틱 하게 하지만 실제로 고난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몸서리칩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병도 의사도 알아주지 못하고 약도 알아주지 못하는 고통이 밤새도록 온 몸을 괴롭힐 때 누가 알아줍니까?

슬픔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을 당했는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끙끙 앓으면서 고난을 당할 때 괴롭습니다.


비바람이 심한 곳에서 천 년을 서 있다는 어떤 나무는 높이가 1미터밖에 안 되는데 뿌리는 20미터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고난을 당하며 하도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에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다가 땅속 뿌리는 20미터나 깊어지고 위로 줄기는 10미터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비바람이 쳐도 끄떡 없이 움직이지 않고 쓰러지지 않습니다. 반면, 날씨가 좋은 캐나다에 심긴 전나무들은 그 높이가 20미터를 넘지만 뿌리는 고작 1미터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성장에 너무 좋은 환경 때문에 오히려 나무의 뿌리는 약해져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뿌리가 뽑히고 나무가 쓰러지는 것입니다.


고난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로맨틱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고난당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도 우리 성도들이 고난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고난당하는데 가서 함께 기도하려고 할 때 마음의 고통이 형언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할 때 우리 삶은 더욱 깊이 뿌리가 내려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안 당하면 신앙의 뿌리가 너무 얕아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과 환난을 당하면 신앙의 뿌리가 점점 깊어져서 사람 눈에 안보이지만 그 사람의 신앙은 만세반석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고난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불안에 떨면 고난이 우리에게 아무 유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고난이 우리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고난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거역하면 고난이 우리를 죽입니다. 무시무시한 능력으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보낸 고난으로 받아 들여서 감사하고 고난을 통해서 더 겸손해지고 깨어지고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께 은혜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변화 받으면 고난은 우리에게 큰 축복의 도우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부정적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에서 죽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플러스가 되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과 여러분 미래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는 언제나 크고 적은 고난의 광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고난을 당하거든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일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당하게 하시는구나. 내게 얼마 있으면 좋은 일이 다가오겠구나. 그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리시며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가 와야 밥상도 차려주는 것입니다. 원수 없는 곳에 하나님은 밥상 차려주지 않습니다. 축복의 기름 부어주지 않습니다. 잔이 넘치게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편안한 생활은 일시적으로 좋은 것 같지만 항구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많은 비바람을 통하고 시련과 환난을 통하는 것이 종국적에 가서는 여러분에게 진실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강하고 담대하고 굳센 신앙인들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당하는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가십시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나가십시오. 그리고 고난 보고서 원망 불평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러한 사람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홀로 아무런 방비도 없이 버림받지 않았다. 기도는 전능자의 팔을 움직인다. 기도는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한" (히 11:33, 34)다. 우리는 저희의 신앙을 위하여 죽은 순교자들의 보고, 즉 "이방 사람의 진을 물리"친 보고를 들을 때에 그 뜻을 알게 될 것이다. 실물 172


미국의 유명한 배우이자 가수였던 토니 폰테인이 교통 사고로 갈빗대 7대와 두 다리가 부셔지고 두개골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의 부인은 병상 곁에 무릎을 꿇고 울며 소리치기를

‘주님, 이전에는 주님이 필요 없는 줄 알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남편을 살려 주시옵소서. 이제는 주님을 열심히 섬기겠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더욱이나 이 비보를 듣고 가장 충격을 받은 분은 그의 아버지요, 노스 다코다에서 목회 하는 그의 아버지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는 아들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교회를 떠나는 날부터 불타게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충성을 다한다고 믿고 있는 목사의 아들로서 주님을 위해서 충성은커녕 구원도 못 받고 죽게 되었으니 너무나 안타까워서 아들의 회복을 위해서 세 시간 반을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이후부터 기적이 일어나 회복의 속도가 빨라졌고 마침내 의식이 회복되었습니다. 정신은 든 폰테인은 병석에 누워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가르쳐 주면서 ‘토니야, 하나님이 언제까지나 너를 지켜 주신다.’고 어머니의 모습과 주일학교 때 성가를 부르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세상의 명예와 재산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하나님의 품을 떠났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했고 이제 덤으로 살게 해 주신 그 생명을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사용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 오직 성가만을 부르기로 하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자녀>라는 성가를 부르는 등 수많은 영혼들을 감동시켰고 주님 앞으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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