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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에 실린 내용이다. 2002년 5월 13일에 전파로 쥐의 지능을 조절할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쥐에 뇌에 안테나를 박았다. 비디오 카메라 등 첨단과학 장비를 시설하여 실험을 하였다. 
진짜 선한 행동을 하면 즐거워진다. 
왜?
엔돌핀이 나오니까 그렇다. 
동물들은 선한 일을 하면 즐거워한다. 사람도 역시 선한 일을 하면 즐겁다. 그런데 사람은 변질되어서 좋아져야 할 선한 일을 하면서도 안 좋게 된다. 그것은 마귀가 형식적인 종교를 만들어서 변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선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순수한 동기가 아니고 구원받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이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는 자체가 괴로운 일이 될 수 있다. 
나는 열심히 봉사를 하는데 저 집사는 봉사를 안 할 때 상대편 집사에 대한 미움이 생긴다. 봉사를 하기는 하여야겠는데 기쁘지가 않다. 이게 변질된 선한 봉사다. 기뻐야 할 봉사가 괴로움이 된다. 사단은 이렇게 변질시켜 놓았다.
동물들을 실험하여 보았는데 동물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동물들은 선한 일을 하도록 하였더니 반듯이 엔돌핀이 나왔다.
그런데 사람은 선한 일을 하여도 엔돌핀이 안 나오도록 변질되어 있고, 엔돌핀이 나오도록 하는 전파가 있다. 
사람이 쥐를 가지고 하나님 노릇도 해보고 마귀 노릇도 해 본 실험의 결과다. 
안테나는 쥐에 뇌에 꽂았다. 쥐들은 수염이 감각에 예민하다. 수염으로 냄새와 맛을 알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안테나에 전파를 보낸다. 그러면 쥐의 왼쪽 수염에 전기가 통한다. 무얼 느끼게 되는데 그때 쥐는 왼쪽으로 하게 되는데 이때 과학자들은 다시 전파를 보내어 엔돌핀이 나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왼쪽에 자극이 왔는데도 오른 쪽으로 우회전을 하면 안 나온다. 이런 식으로 몇 번 실험을 하니까 쥐는 감을 잡는다. 
전파가 오면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좋더라 이렇게 몇 번 실험한 결과 쥐는 과학자들이 전파를 보내는 대로 행동을 하였다. 과학자들이 좌우 회전을 마음대로 조절하였다. 쥐로 하여금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도록 마음대로 조절하였다. 
사단의 전파가 이와 똑같다. 
남을 봉사하고도 기쁘지 않게 할 수도 있다. 남을 해롭게 하고도 통쾌하고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사단은 변질시키고 있다. 이런 양심을 화인 맞았다고 한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요13:2 
이때 유다는 예수를 파는 것을 정당하게 생각하였다. 
쥐를 마음대로 과학자가 조정하듯이 마귀도 이렇게 조정을 할 수 있다. 과학자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실제로 쥐의 뜻은 아니다. 그러나 쥐는 자신의 뜻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단은 사람들을 조정하고 있지만 조정을 당한 사람은 자신의 뜻에 의해서 움직인 것으로 착각을 하고 산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진리를 알 때 우리는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자유를 누리고 자유를 전파하는 일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우리는 영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고 하는 것은 강력한 방사선이다. 
내가 하나님을 무서워한다는 것 역시 강력한 방사선이다. 
이 모든 것은 단의 방사선이다. 사랑이 무서움으로 바꿔진 뜻이기 때문이다. 
사랑만이 염기서열을 구성시키는데 두려움은 사망적인 염기서열로 구성시킨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4:18 
고 하였다. 
사람마다 내 보내는 전파가 다르다. 그것을 그 사람의 분위기라고 한다. 그 사람이 좋은 전파를 내 보내면 생긴 것은 별로 인데 그 사람이 좋아진다. 그것은 전파가 좋아서 그렇다. 
우리는 다 전기를 생산해 낸다. 당분이 미토콘드리아에 들어가서 전기가 생산된다. 
전기가 하나님의 영을 받고 잇느냐 혹은 사단의 영을 받고 있느냐에 따라서 나한테서 발산되는 전파는 다르다. 이 전파를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존재가 누굴까?
바로 강아지들이다. 여러분들의 분위기를 측정해 보려면 강아지에게로 가면 된다. 강아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안 좋은 사람에게는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일 지라도 분위기가 좋으면 다가간다. 그 다음에 강아지는 갓난아기들을 좋아한다. 분위기가 나쁜 사람에게 아기를 안 기우면 아기는 울게 마련이다. 전파가 이상하기 때문이다. 
전파가 통하는 사람이 있고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 내 유전자가 편하다. 이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강아지는 아기가 내게 잘 오는 사람으로 내가 변해야 한다. 
나에게로부터 나가는 전파가 사랑의 전파라야 한다. 어떤 생명체든지 나를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유전자가 편한 전파가 되어야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께서 내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면 내 유전자는 편안해진다. 남이 볼 때 편할 수 없는 환경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만이 갖는 시간이 매우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 내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파장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파장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사단의 파장 속에서 살면 인생이 괴롭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6:6 
하나님께서는 너와 나와 단둘이서 교제하자는 것이다. 은밀한 교제를 하자는 것이다. 나만이 깨달을 수 있는 진리를 하나님께서는 깨닫게 하신다. 단순한 하나님이 아니라 네 아버지 네 아빠께 기도하라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이야기하듯이 모든 염려하지 말고 기탄 없이 이야기하라고 하신다. 은밀한 기도는 장소와 시간의 제한을 필요가 없다.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 침대서이든, 걸어가면서도, 여행 중에서도 할 수 있는 은밀한 기도가 항상 필요하다. 
많은 경우 사단에 의한 안 좋은 생각에 끌이여 다닌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렇다.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 여기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 
비상대책(非常對策)을 세워야 한다. 즉 체면을 버려야 한다. 어린아이 심정으로 돌아 가야한다.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야 한다. 
생명을 주는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사람이 질병에서 회복될 때, 그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질병과 고통과 죽음은 어떤 반대 세력의 작용이다. 사단은 파괴자이며 하나님은 회복자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에 주어진 말씀은 오늘날 육신의 건강과 심령의 건강을 회복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 15:26). 가건 181 
병들게 하는 것도 마귀며, 비관을 갖게 하는 것도 마귀다. 예수님은 절대로 죄인이 죽도록 놔두시는 분은 아니시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언제나 필요로 한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2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좋은 일도 하였고, 교회도 다녔다. 신학을 나온 사람도 있다. 여기 나오는 그날이 예수님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3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알지 못한다니 이상하지 않을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무리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면서 좋은 일을 하였는데 그것은 자기들 자신을 위한 것이였다. 예수님을 위한 그들의 생활이 아니다. 그래서 문밖에 계신 예수님이라고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신학이라는 학문이 우상이 되어 있다.
예수님이 너희를 모른다고 하실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는가?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것은 너무도 슬픈 예수님의 음성이다. 이때까지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 일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업을 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너무도 슬픈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우리들을 사랑으로 안아 품으시려고 하신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 거절할 때 그분은 슬퍼하시면서 품으실 수 없으시다. 강제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병아리가 100%로 어미 품에서 떠나려할 때 하나님의 권리는 없어
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公義)다.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다. 사단이 자기 소유라고 100%로 주장할 때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 사랑하는 자녀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네 원대로 내게서 떠나가라 하시는 것이다. 
억지로 하나님은 자녀들을 억지로 잡을 수는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은 사망을 뜻한다. 이것은 더 이상 예수님이 마음에 호소하시면서 더 이상 문밖에 계시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라오듸기아 교회에 상태다. 예수님이 완전히 문밖에 계시다. 그래놓고는 자기들이 다 옳다고 생각들을 하고 있다. 이것은 신학(神學)이 우상이 되어서 그렇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하여 진정한 생명운동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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