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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수) - 위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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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이소망 김예인


 ☆ 본 방송 컴퓨터로 듣는 법 ☆ 


1. http://www.cbnkorea.com/Prayer_Play 을 친다. 

 

2. 방송을 골라 클릭한다 


3.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9)


누구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음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헌신 정도에 따라 그 값은 천차만별이다.

프랑스 칼뱅주의 개신교도인 위그노만큼 큰 대가를 치른 이들도 드물다. 1572년 8월 23~24일, 위그노들을 향한 가톨릭 신자들의 집단 폭력이 파도처럼 일기 시작했다. 이른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다. 이 사건은 파리에서 벌어졌지만 점차 다른 도심과 교외로 번지며 몇 주간 지속됐다. 그 당시 프랑스 전역에서 희생된 인원을 오늘날에는 5천~3만 명으로 다양하게 추산하고 있다.

1598년, 프랑스 국왕 헨리 4세는 낭트 칙령을 발표하면서 위그노에게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다. 그러나 1685년에 루이 14세가 칙령을 철회했다. 위그노에 대한 적개심이 다시 폭발했고 40만 명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를 떠났다.

1730년에는 19세 위그노 소녀가 붙잡혀 프랑스 남부 에그모르트시의 콘스탄스 타워로 끌려왔다. 그의 이름은 마리 뒤랑(1711~76)이고 오빠가 개신교 목사라는 게 죄명이었다. ‘믿음을 철회하겠다’라는 한마디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지만 뒤랑은 옥벽의 돌에다 ‘저항’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뒤랑은 38년간(1730~68) 옥살이를 하며 믿음을 지켰다.

여러분도 믿음을 위해 이 정도로 대가를 치르겠는가? 순교자들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다원적인 현대 교회의 고분고분한 믿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순교자들은 신앙이 허용되지 않는 시대에 살았다. 환경에 관계없이 또 정계와 교계의 승인 여부에 상관없이 그들은 진리를 고수했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유 때문에 헌신은 많이 줄었다. 정치적인 적절성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주어진 자유를 누리되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며 우리의 믿음을 위해 기꺼이 값을 치르도록 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신은주 선교사 부부(미얀마)

MPM 직업훈련센터에 기숙사를 설립할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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