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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금) - 늦게 도착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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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원고/기술 및 편집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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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늦게 도착한 편지

“형제가 함께 한마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선하고 얼마나 보기 좋은가!”(시 133:1, 우리말)


이해득실에 따라 한 가족의 성공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기준은 우리가 속한 가족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가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만, 이기심, 경쟁심, 오해로 갈라서고 헤어지는 가족이 적지 않다. 안타깝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최악의 원수가 되기도 한다.

1880년 의사 존 하비 켈로그(1852~1943)는 배틀크리크 요양원에서 동생 윌 케이스 켈로그(1860~1951)를 조수로 채용했다. 이들 형제는 종종 의견 차이를 보였는데 요양원의 판매 제품 생산에 대해 특히 그랬다. 의사인 존은 요양원에서 퇴원하는 이들에게 그래놀라, 시리얼 플레이크, 식물성 대체육 등 건강식을 제공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지만 사업가였던 윌은 다양한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는 맛 위주의 제품을 원했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커졌고 결국 수차례의 법정 공방 끝에 그들은 각자의 사업체를 꾸렸다.

형제는 1907년 재림교회에서 제명됐다. 27년간 교회에 나오지 않던 윌이 먼저였고 몇 달 뒤 교회의 신념과 절차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던 존이 그 뒤를 이었다. 1943년 12월 14일, 존 하비는 동생과 화해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4년이 더 지난 1948년 6월 22일에 윌은 놀라운 편지를 받았다. 바로 존이 작성한 화해 편지였다. 존은 죽기 한참 전에 그 편지를 썼지만 그의 위신이 손상될 것을 염려한 비서가 그 편지를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윌이 제때 존의 편지를 받았다면 형제는 화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둘 사이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1951년 10월 6일, ‘콘플레이크의 제왕’이자 켈로그사의 창립자인 윌 케이스 켈로그도 숨을 거두었다. 화해는 빠를수록 좋다는 원칙을 켈로그 형제의 이야기에서 되새길 수 있다. 화해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상대방이 여러분을 용서하려고 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자기 할 일을 하라. 그리고 하나님과 양심 앞에서 평안을 누리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성/김종숙 선교사 부부(북아프리카)
새롭게 부름을 받은 북아프리카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발견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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