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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수) - 어린양의 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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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6, 17).


  진노한 어린양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이 두 단어는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과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표현한 것 역시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요한의 진술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진노”를 불쾌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에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는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인기가 없는 단어가 하나님께는 꽤 인기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진노에 관해 580번도 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저술가들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얼버무리려고 몇 통의 잉크를 소비한 반면에, 하나님의 어린양이자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분은 최종 심사에서 죄 문제를 끝장내기 위해 행동에 나서실 것입니다.


 혼동하지는 맙시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이 성내는 것처럼 감정적인 분개가 아닙니다.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피조물의 삶과 행복을 끊임없이 파괴하는 죄를 하나님은 증오하십니다. 아기들의 죽음, 암, 강간, 살인, 절도, 대학살 등에 대해 하나님은 염증을 느끼십니다.


 요한이 표현했듯 “참되신 대주재여…어느 때까지(계 6:10) 이 난장판 세상 역사를 끝내지 않고 놔두실 작정입니까?”라고 제단 아래서 울부짖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은 때가 이르면 응답하실 것입니다. W. L. 워커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죄가 그분의 자녀를 해치고 사랑의 뜻을 거스르기 때문에 진노하십니다.” 앨런 리처드슨은 “타락한 기독교 신학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그리스도의 자비와 대조시킨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성경이 묘사하듯 하나님은 피조물이 고통에 빠져 있는 동안 한순간도 잠자코 계시지 않습니다. 자기 백성을 파괴하는 죄에 대해 하나님은 심판으로 대응하십니다. 그 심판이야말로 성경이 말하는 진노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죄를 책망하시고 머지않아 그것을 완전히 없애실 것입니다. 그 첫 단계는 예수님의 재림에서 나타납니다. 그 두 번째 단계는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에 의하면 천년기 끝에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곁에 계신 분이 단지 우리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일 뿐이라면 우리는 복음의 절반밖에 지니지 못한 셈입니다. 어린양이 죽임 당하셨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도 계속 고통 받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사역에서 절정은 바로 마지막 때에 그분이 유다 지파의 사자로서 행동하실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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