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월) - 갓 구운 빵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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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권아영 조용민
원고 : 권아영 조용민
기술 및 편집 : 권아영 조용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 6:48)
빵을 만들려면 알맞은 조리법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손님을 끌어 모으는 것은 조리법이 아닙니다. 빵집의 간판도 아닙니다. 솔깃한 광고 문구 나 화려한 포장, 경품의 약속도 아닙니다. 경품 때문에 빵을 살 수는 있지만 그것은 경품에 대한 미련 때문이지 직접적으로 빵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닙 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빵을 사려는 사람의 발길을 끄는 것은 그런 것이 아 니라 바로 갓 구운 빵 냄새입니다. 구수한 빵의 냄새가 더욱 허기를 느끼게 하고 빵을 맛보고 싶다는 갈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빵(bread)’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요 6:48). 그분 은 정말 갓 구워 낸 빵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을 갓 구운 빵 냄새로 가 득 채우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빵 냄새를 맡으며 본능적으로 군침을 흘렸 고, 오랫동안 애써 참아 온 허기가 되살아났습니다. 영혼을 유혹하여 맛보게 하는 것은 그 냄새입니다. 또 영혼을 유혹하여 먹게 하는 것은 그 맛입니다. 분명 조리법이나 브랜드나 포장이 아닌 것입니 다. 사람들이 빵을 찾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빵 그 자체를 원하기 때문인데도 우리는 종종 가난한 이들에게 빵을 주기보다는 조리법을 줄 때 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조리법은 ‘말’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빵은 그 말 을 통해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빵 대 신 조리법을 주었다는 것은 직접적인 행동보다는 단순히 말하는 것에 너무 앞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 까? 어느 날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가 온통 말문이 막혀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말입니다. 한 글자도 쓸 수 없고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한마디도 말할 수 없다면 세상은 복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 순간에 남 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의 삶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 리가 지금까지 말뿐인 복음을 전했다면, 그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 을 때에 남는 것은 결국 하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것만큼 그 말을 삶과 행동으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아프리카에 가서 원주민 속에서 일 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자신의 삶이 곧 설교가 되기 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엿새 동안의 삶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안식일의 본문이 되기를 그는 원했던 것 입니다. 이런 교회가 진정 선교적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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