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길 목사님 저서 "성경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육신 진리"를 읽고 난후 나의 변화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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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육신 진리에 대하여
정 철화
그리스도의 성육신 진리에 대해서 저는 5 개월 동안 문창길 목사님의 저서 크리치스천의 필수지식과 특별 기사 성육신 진리를 카스다 게스판에 올렸습니다. 먼저 문 목사님의 집필과정 에서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문 목사님께서는 2017년말 크리스천의 필수 지식을 집필을 하시고 있는 동안 사탄은 그분의 생명을 아사가려고 했습니다. 그분은 곰팡이균 중상(fungar pneumia)으로 리버사이드 커뮤니티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평생 처음으로 항생제를 복용한 체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 시 켜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리고 그분은 몇일 동안 사용해 온 항생제를 버 리고 영양제만을 사용키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약 한 달 동안에 그의 병을 완케 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은 솔직히 그전에는 신 신학에 대하여 말로만 들었고 그저 현 시대에 맞는 진보된 신학으로만 생각해온 사람이었습니다. 금년초 카스다에 성육신 진리를 올릴 때 신 신학 사상이 우리 교단에 교묘하게 들어와 셋째 천사의 기별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놀 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의 이 지면을 통하여 오늘 우리 교단의 많은 목사님과 지도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신 신학과 논쟁을 벌리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신 신학 이란 무엇인가를 더 확실히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제가 아는데 까지 신 신학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 전통 재림신앙이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요약하며 비교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 고 저 자신의 구원과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성육신 진리가 얼마나 중대한 진리인가를 제가 배운대로 고백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신 신학은 천주교와 유산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발견하였습니다. 신 신학은 예수님이 취하신 육신이란 아담의 범죄 후가 아니라 범죄 전의 죄가 없는 육신을 취하 셨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우리 재림교단의 전통적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가르침 입니 다. 신 신학의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님이 취하신 육신이란 오늘 우리들의 육신과 완전히 다른 육신이며 비록 예수님은 우리들을 통찰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죄의 유혹이나 죄를 지을 수 있는 경험은 전연 없으신 분이시며 따라서 우리의 성화의 모범은 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은 신 신학의 가르침은 예수님을 모본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며 노력 한 저 자신의 믿음을 무색하게 만들었으며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믿는 사람 들에게 의롭다하심을 허락하시고 성화의 생활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정말로 우리들과 다른 육신 을 가지신 분인가를 다시금 묻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전통적 재림교회 신조의 한 조항은 로마서 8장 3-4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율법 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말씀 가운데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으로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우리와 꼭 같은 육신을 취하신 사실 이 언급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에서 그러나 영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 를 이루신 사실도 언급되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태어난 아담의 모든 자손들은 그들 피속에 죄의 인자가 유전되었 습 니다. 아담의 후손들에게 아담의 죄의 결과는 유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답의 죄는 그의 자손들에게 유전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아비의 죄를 아들에게 추궁할 수 없으며 또한 아들의 죄를 그 아비에게 추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계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아담의 범죄의 결과는 우리들에게 유전되는 것이지만 그의 죄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들은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란 무엇인가? 죄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 이나 교육에서 각자가 자유의지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빛 혹은 거룩한 율법을 의도적 으로 범하는 일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공생애로의 출범으로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위하 여 한적한 광야로 발길을 돌리셨을 때에 사탄은 기회를 노칠 수 없었으며 인간의 연약한 죄의 육신을 가지신 구제주를 유혹하기 위하여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접근하였습니다. 만일 광야 에서 예수님이 그의 시험의 희생이 되었다면 사탄은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실패로 몰수 있다 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광야에서 그분의 배곺음을 이용하여 사탄은 그분이 신성을 나타내게 하는 시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넘어가지 아니하셨으며 그분의 신성을 나타내지 아니하시므로 사탄을 물리쳤습니다. 이제 사탄은 다른 방법으로 그분 을 시험하기 위하여 제자들과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분을 유대의 왕으로 추대하려는 운동을 일 으켰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셨으며 이번에는 그분 의 인성을 나타내지 아니하셨습니다.
저는 성육신이신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을 바로 알고 난후 가장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품고 있는 죄일지라도 그대로 가볍게 관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며 그 죄의 결과는 얼마나 무서 운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 신학은 우리들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귀결시킴으로 죄의 문제를 경솔히 다루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신 신학은 죄의 심각성 과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단지 예수님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모본이 되실 수 없다는 생각 만을 고무시켰습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범하고 단순히 용서를 구하기만 하여 죄 사함을 받았 다고 한다면, 죄 없이 사신 우리와 다른 예수님을 모범으로 삼으려고 하지 아니할 것이며 예수님 의 품성을 닮으려고도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계속 죄악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 며 진정한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은 경험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일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도전하는 일이요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 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을 십사만사천이란 표상적인 숫자로 나타내었습니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인데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닮은 자들이며 그들의 입에는 거짓이 없는 자들이라고 언급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들은 마음이 정결한 사람들이며 지극히 작은 죄일지라도 죄는 죄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통회 하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써 죄 사함을 받아 마음의 정결함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성도들입 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성육신 진리, 셋째 천사의 기별의 중대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분의 가지입니다. 그 가지는 포도나무와 유기적이며 생명적 인 연결을 가질 때에 비로소 포도나무의 진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성과 생명적인 연결을 가질 때에 우리의 죄는 포도나무에게도 옮겨지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들에게로 운반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결합되었는가의 성육신의 비밀을 말씀해 주지 아니 하셨습니다. 그러나 왜 성육신 진리가 인류에게 그토록 중요 한가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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