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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기억절: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40:9)

 

 

 

<서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사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 이사야 1-39

2. 이사야 40-66

 

전반부는 유다민족의 타락과 그 결로 이어진 심판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후반부는 그러한 타락과 심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 백성을 사랑하시며,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사야서가 구약의 복음서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후반부에 기록된 이사야 40-66장의 기록 때문이다.

 

이사야서를 찬찬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1-39장까지 유다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외면하는지를 철저히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는지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보통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한두 번 잘못하는 것 까지는 참아 줄 수 있다.

그런데 계속 못되게 굴면, 나도 동일하게 갚아 주던지, 아니면 그냥 관계를 끊어 버린다.

이사야서의 전반부는 도를 지나쳐 하나님을 욕보이고 거절하는 백성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는 그러한 배은망덕한 백성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결코 끊어버리거나 외면하지 않으시는 그분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랑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떠한 사랑으로 유대인들을 사랑하시는가?

그 사랑은 단순히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었는가?

이번 주 교과를 통해서 한번 공부해 보도록 하자.

 

 

 

 

214일 일요일 미래를 위한 위로 (40:1-2)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40:1-2)

 

서론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이사야 1-39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그 결과로 인해 받게 될 고난들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40-66장 까지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원수들에게서 어떻게 구원함을 받을 것인지,

포로로 잡혀갔던 땅에서 어떻게 돌아오게 될 것인지,

그리고 예수님의 초림과, 영광의 왕국의 도래에 관한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이사야서가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40-66장 때문인 것이다.

여기서는 죄악가운데 빠졌던, 그리고 하나님을 완전히 외면했던,

그리고 자기 멋대로 살았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아직도 구원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이사야서를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그리고 이사야서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자세히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이래,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지독하게" 외면하는지 깨닫게 된다.

결국 그들은 국가가 완전히 패망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완전히 욕보임을 당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이정도가 되면, 하나님께서도 백성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거두실 때가 되지 않을까?

이정도로 타락하고, 하나님을 철저히 왜면하고, 끝까지 부정하는 백성들이라면,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을 거두신들, 과연 하늘의 어떤 존재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부정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이사야서를 통해서,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는 복음의 빛을 보게 된다.

그토록 타락하고, 하나님을 왜면하고, 철저히 부정하는 그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영원한 사랑"....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것이다.

 

“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40:1-2)

 

하나님은 이렇게 피투성이가 된, 이스라엘을 위로하라 하신다.

하나님은 "정다이" 예루살렘에게 "외쳐 고하라" 하신다.

그들의 죄가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이다.

 

세상에 어떤 신이 이와 같은가?

난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은 ""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세상에 우리 구주와 같은 ""이 있다면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이토록 패역하고, 반역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는 그 백성들을,

도대체 왜 이토록 사랑하시는 것일까?

 

나의 이 좁고, 좁은 마음과 생각으로는 도무지 하나님의 사랑을 눈곱만큼도 이해 할 수가 없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자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

 

이사야 40장 부터는 이제 그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과거에 그들이 어떤 죄를 지어든지 상관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그들이 어떻게 패역했었는지, 괜찮다는 것이다.

과거에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했었는지 이미 하나님은 그 모든 죄악을 다 용서하셨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그 하나님을 "보라"고 초청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망하게 된 이유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오해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았었고,

그 사랑을 오해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움을 주신다고 하였으나 거절하였던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절하였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고,

자신의 죄로 인해 고민하고 근심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사야서의 약속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이미 용서하시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돌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215일 월요일 임재, 말씀, 길을 예비함 (40:3-8)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지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며, 그들을 용서하시고 받으신다는 것을 외치라 하신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려면 어떠한 일이 있어야하는가?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40:3-5)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못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골짜기, , 고르지 못한 곳이란 바로 우리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모든 죄악들의 시작이 마음이 높아진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고하고 높아진 마음에서 죄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낮추시기 위해 그동안의 모든 고통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 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40:6-8)

 

마음이 낮아지기 위해서 어떤 일이 필요한지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낮아지기 위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다는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우리가 얼마나 들풀같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지를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낮아지는 것이다.

골짜기가, 산 그리고 고르지 못한 모든 것이 평탄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이해하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을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관문인 것이다.

그래서 팔복에서 말씀하신 첫 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자"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성경에 보면 구원을 얻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 과정을 거쳐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삭게오가 그랬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랬다.

예수님께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말씀하시고자 하셨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5시에 온 품꾼의 겸손하고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말이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높아져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필요치 않았다.

그분을 의지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삶에 주인이었으면, 철저히 하나님을 왜면 하였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에 베푸시는 모든 사건들과 일들은, 우리의 마음을 낮추고 그분을 찾도록 이끄시는 도구들인 것이다.

탕자가 쥐엄 열매를 먹으며 아버지께로 돌아기로 결심하였던 것처럼,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쥐엄 열매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쥐엄 열매를 먹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는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이 답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더 이상 이 상황에서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돌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깨끗한 의의 옷을 입혀주시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그분께로 돌아가 이사야서에 기록된 모든 축복들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216일 화요일 전도의 기원 (40:9-11)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40:9)

 

이사야 40장에서 선포하는 복음은 첫째로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자비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로 그 사랑으로 인해,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실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 40장은 우리에게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실 때의 그분을 맞이하기 위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고, 또 그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 먼저 읽었던 본문에서,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는 이 구절은 여성이 전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여성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부모는 율법에 따라 예수님을 봉헌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올라갔다.

예수님을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식을 거행하는 제사장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시므온이라는 경건한 사람과, 여선지자 안나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 사건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2:37-38)

이사야의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과 그분의 오심에 대해 세상에 그 기별을 선포한 첫 번째 선지자는 바로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여성이었는가?

안나 선지자는 결혼해서 7년 동만 남편이랑 살았다.

그리고 과부가 되어 84년을 살았다.

 

이 여인의 삶이 어떠했겠는가?

예수님 당시에 살던 사람들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바로 '과부' 였다.

과부, 고아, 노인, 외국인, 이 부류가 가장 취약 계층이었다.

 

그러나 재혼도 하지 못하고, 84년을 과부로 살았다면 얼마나 사회적으로 약자였는지 알 수 있다.

과부가 되어 산 시간만 84년이니, 결혼할 때 20세라고 해도,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이미 111세의 할머니였던 것이다.

누가 80세의 할머니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누가 90세의 할아버지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시간이 다 지나갔다고 할 수 있는가?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2:28)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 그 기별을 전한 첫 번째 사람들 중에 안나 할머니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마지막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에, 성령이 부어지고, 또 다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일에,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연로하신 모든 분들도 함께 참여 하게 된다는 이 예언을 믿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는 나이가 많으냐 적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낮아진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되기 바란다.

하나님은 훌륭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결심하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믿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사람들을 취하여서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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