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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기 제 11과 대가를 지불하는 사랑

 

기억절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58:10)

 

<서론>

이번 교과에서 우리는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어떤 구원을 받았는지 그리고 사랑과 구원을 받은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겠다.

 

최근에 구입한 물건 중 가장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은 무엇인가? (아이패드.. 기존의 아이패드 중고로 팔고 정부에서 코로나 지원금 받은 것 + 용돈 보태서 중고로 구입함)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아이패드를 구입했는데 정말 얼마나 열심히 중고 사이트를 뒤졌는지 모른다. 찾고 찾다가 결국 마음에 드는 매물을 찾아 거금을 주고 사게 됐다. 이렇게 산 아이패드를 막 굴릴까 아니면 애지중지하며 귀하게 다룰가? 사자 마자 한 것이 바로 필름붙히기, 케이스 씌우기 였다. 거금을 주고 산 아이패드에 기스가 나거나 찍혀서는 안되기 때문에 바로 구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책정할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을 값으로 치르시고 사신 것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것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이야기를 함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더욱 감사하며 주님께 나아가는 시간 되기를 바란다.

 

< 일요일 : 돈 없이 사라?>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55:1)

 

제목이 일단 돈 없이 사라? 인데 제목부터가 난해하다. 무언가를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없으면 무언가를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돈 없이 사라. 무슨 말일까? 기억절에도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라고 기록되어있다. 돈이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돈이 없이 무언가를 얻는 것은 가져가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돈 없이 사라고 기록돼있다. 이사야 557절을 보면 이사야는 사람들에게 값없는 용서를 받아들이라고 호소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돈 없이 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용서이다. 그런데 사라는 말은 이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냥 가져가라는 것이 아닌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서는 이미 어떤 대가를 치룬 결과물인가? 바로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값을 지불한 엄청난 가치의 것이었다. 벧전 1:18,19절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구원의 값은 바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이다. 우리에게 그것이 선물로, 값 없이 주어진다고 그것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값 없이, 공짜로 주어지면 그것이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공짜로 생긴건데 뭘~” 하면서 낭비할 때도 있고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은 가치가 없거나 작은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헤아릴 수 없는 값을 이미 지불하신 선물이다. 우리는 이 선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구원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미 상상할 수 없는 값을 지불한 선물인 구원을 믿음으로 받게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월요일 : 높은 생각 높은 길>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55:8~9)

 

이사야는 하나님의 생각이 마치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높으시다고 말한다. 우리가 땅이고 하나님의 생각이 하늘 이라고 비유한다면 정말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이치의 근원이시다. 세상의 과학이 발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신비들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가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너머에 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격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온 우주의 모든 신비 중 가장 위대한 신비는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의 구원의 계획이다. 우리의 창조주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낮춰 종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사 고난과 핍박을 받으시고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것. 사실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이 구속의 계획 자체가 말도 안되고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신비라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신비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는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시대의 소망 495p 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우리가 진리를 더욱 완전히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마음을 부드럽게 유지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 속죄를 깨닫는 데 있어서 인간의 과학은 너무나 유한하다. 구속의 경륜은 철학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원대하다. 이것은 가장 깊은 추리로써도 궁구할 수 없는 신비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495)

 

성령이 우리 마음에 가득할 때 우리는 구속의 섭리를 깨달아 알 수 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의 계획을 다른 방법이 아닌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으로 더욱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섭리를 깨달아 알게 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삶이 변화한다. 우리의 마음이 깊어지고 행동은 부드러워진다.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을 주게 된다.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되면 그 사랑을 전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도하자.

 

< 화요일 : 금식 친구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58:3, 5~6)

 

58:3에서 말하는 금식은 어떤 금식을 가리키냐면 속죄일의 금식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유일한 금식인 속죄일의 금식으로 볼 수 있는데 58:1"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높"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속죄일의 열흘 전에 울려펴졌던 '쇼파르'라고 하는 양뿔 나팔의 소리를 연상케 한다. 속죄일은 기쁨의 날이었다. 속죄일은 감사의 날이었다. 50년째 속죄일의 나팔 소리는 희년의 해방이 시작되는 무한한 감사의 날이었다. 그런 감사의 날에 그들은 금식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이 금식은 어떤 금식이었을까? 이 금식은 감사와 충성의 금식.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의 금식을 드렸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이 했던 금식은 그런 금식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경건'으로 인해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죄일에 금식함으로 스스로를 괴롭게하고 이렇게 힘든 일을 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 마음 속에 동기가 다른 것이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동기에 따라, 마음이 어떤지에 따라 받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다는 사실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좋아해서 이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어쩔 수 없이, 혹은 계산적으로 이 행동을 하는 것인지. 같은 행동이어도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은 인간인 우리도 잘 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는 금식을 드렸어야 했다. 교과책 155p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께 그들의 '경건''헌신'을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판결의 날에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수행되어야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가 만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는가 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는가. 혹시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교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이 일을 함으로서 나를 세우고자 이 일을 하지는 않은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은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 받으사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와 기쁨의 금식이어야 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감사의 행동이어야 한다.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의 행동이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감사로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기뻐하시는 삶의 모든 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수요일 : 금식 투쟁 >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58:10)

 

화요일 소지에 이어서 수요일 소지 역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참된 자아 부정의 행위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58:6~12 에 보면 이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있다.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는 것,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주린 자에게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자아 부정의 행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다. 물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도 중요하고 종교적인 의식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때, 제대로 된 방식으로 참여하고 예배하는 올바른 의식도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종교적인 의식에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충실히 회당에 가셔서 당시의 예배에 참여하셨고 그 의무를 충실히 행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를 살펴보면 의식에 대한 주님의 충성심 보다는 그분이 베푸시는 자비와 치유와 먹이심과 용서의 행동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수님께서 어디에 더 초점을 맞추셨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시고자 최선을 , 최고의 방법을 선택하셨는데 그 방법이 무엇이냐면 바로 이사야 58:6~12 에서 기록한 그 행위들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금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 교회와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교회가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따라야 하겠는가? 예수님을 따라야한다. 예수님께서 모본을 보이신 것 처럼 우리도 세상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어야 한다. 종교적인 의식, 예배도 중요하다.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 중요하다. 그런데 그만큼 중요한 것이 배고픈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다. 음식에 관한 규례를 지키는 것 중요하다. 그런데 그만큼 중요한 것이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고 엄격히 쉬는 것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 만큼 중요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된 금식은 배고픈 자들을 먹이는 것이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참된 안식일 준수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돕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금식의 진정한 의미.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혼자서 실천하기에는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함께 신앙하는 형제 자매들, 교회 공동체가 있는 것이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들도 함께라면 조금 더 수월할 수 있다.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실천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목요일 : 우리 모두를 위한 시간>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58:13~14)

 

매년 맞이하는 속죄일은 안식일이었다. 이 특별한 절기 안식일은 절기 안식일이라고 다른 원칙이나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제 7일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일이 금지되고 쉼과 안식의 정신, 거룩한 안식일로서 똑같이 지켜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속죄일의 속죄와 휴식의 원칙은 제 7일 안식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사야 58장에 보면 안식일은 어떤 날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사야 58장은 세 가지 주요한 주제로 기록돼있다고 교과의 저자는 기록한다. 첫째로 자아부정, 둘째로 사회적인 돌봄, 셋째로 안식일. 이 셋은 어떻게 연결돼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자아부정을통해 하나님께 우리가 온전히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하나님의 힘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나님께 의지하여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모두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닮아갈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안식일을 회복하고 자아를 부정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 예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158p 교훈을 통해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안식일은 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우리모두를 위한 날이다. 하나님은 그날에 우리가 예배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 기쁨을 경험하기를 바라신다.

 

나만 행복한 안식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행복한 안식일. 우리 교회 구성원만 행복한 안식일이 아닌 모든 사회 구성원이 행복한 안식일을 위해 끊임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편안하고 쉼이 있는 안식일에 적응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코로나로 인해 교회에서 행해지던 많은 봉사활동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업들이 많이 멈춰지고 사라졌다. 현 시점에서 방역대책과 감염병 예방을 위해 모이는 것을 지양하는 것이 옳다면 현 시대에 맞는 선한 일, 봉사를 찾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부조와 선지자 307p 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엿새를 주시고 그들 각자의 일을 이 엿새 동안에 하기를 요구하신다. 자비를 베푸는 행위와 꼭 필요한 일들은 안식일에도 허락됐으므로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는 언제나 돌보아 주어야 한다. ...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자원하는 봉사를 통해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연합해야 한다”(부조와 선지자, 307)

 

예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일이 안식일에 적합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우리가,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선한 일은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고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리>

우리는 무엇보다 귀한 구원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이 구원은 값이 나가지 않아서 선물로 주어진 것이 아닌 엄청난 댓가,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선물이다. 우리는 이 구속의 계획을 우리 스스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창조주께서 인간을 위해 돌아가신 것은 그 어떤 신비보다 놀랍고 이해할 수 없는 섭리이다. 이런 높은 생각. 인간과는 다른 생각으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형식과 의식에 집중하여 종교적 의식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본대로 약한자를 돌보며 굶주리고 아픈 자들에게 먹을것과 치유함을 주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함께 해보지 않겠는가?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이 가득하다면 결코 주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상황이 어렵고 함께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가운데서도 할 수 있는 선행을 찾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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