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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과 섬기고 구원하며

 

 

기억절: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42:1).

 

 

<서론>

사람들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 위해 성지순례가는 것을 좋아한다.

예수님께서 밟으셨던 그곳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감의 글을 기록한 화잇 여사는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느끼기 위해 꼭 그렇게 멀리 가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가깝게 볼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복음서 보다 어 일찍 예수님의 생애가 어떤 모습인지를 볼 수 있었고,

또 그러한 삶이 예언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바로 이사야서를 통해서 이다.

이곳이야 말로 예수님의 생애를 잘 묘사해 놓은 구약의 복음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이사야의 말씀을 자주 묵상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을 이사야서에 비추어 한걸음씩 따라가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야서에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 대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이번 주 교과를 통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221일 일요일 나의 종 이스라엘 (이사야 41)

이사야 41장 후반부터 등장하는 독특한 한 표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종이라는 표현이다.

 

검색을 해서 직접 세어보니, “나의 종혹은 내 종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41장부터 끝까지 총 19번 등장한다.

 

적은 숫자가 아닌데, 그렇다면, “나의 종이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사야서에서 나의 종을 언급할 때는 서로 다른 두 대상을 일컫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경우는 나의 종이 누구인지를 뚜렷이 밝히지 않고 언급한다.

그런데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그 종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야곱(이스라엘) 족속을 하나님께 회복시키는 사람(49:5~6)이며,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사람(52:13~53:12; 49:5~6 참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대상이 누구인지는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이 부분을 월요일 교과의 주제이기 때문에 월요일 교과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자 그럼 두 번째 대상은 누구일까?

야곱 혹은 이스라엘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후손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실 때, “나의 종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44:1)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45:4)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은 야곱의 새 이름이다.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투쟁의 밤을 보내고 승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새로운 이름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래서 그 뒤로는 그의 모든 후손들, 야곱의 12 아들의 후손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서에 언급된 나의 종은 첫째로, 한 개인을 일컫고 있는 것이고,

둘째로는 야곱의 후손들, ,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이사야가 활동하고, 이 글을 쓸 때는 그 대상들이 남방에 있는 유다 민족들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방의 이스라엘 지파들은 이미 앗수르에게 패망하였든지, 아니면 패망 직전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굳이, 그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지 않고, “유다라고 말씀하실수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패역하여 멸망당한 북방의 민족들도,

그리고 반역적인 남방의 유다도 모두 나의 종이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이다.

 

참 이 부분은 감명적인 부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으로서 그들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않고, 반역적이었고, 결국은 국가를 잃어버릴 만큼 타락하였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어떤 호칭을 사용하셨는가?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41:8)

 

지금까지의 모든 기록으로 볼 때 그들은, 결코, 결코,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기에 합당한 민족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나의 종이라고 불러주신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혹시라도 백성들이 절망할까봐, 아브라함의 이름을 언급하신다.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너희는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니냐?

너희는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너희를 매우 사랑한다는 주님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요일 교과를 통해서, “나의 종이라는 표현 그리고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222일 월요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종 (2:1-7)

우리는 이사야서에서 나의 종이라는 표현이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둘째로 이 대상은 어떤 특정한 한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52:13)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53:11)

 

과연 여기서 말하는 은 누구인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대상이 하는 일을 통해서 그 신원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앞 서 읽은 것처럼, 첫째로, “나의 종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겠다고 했다.

둘째로는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며,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고 하였다.

 

이 두 구절만 보더라도 이사야서가 말하는 또 다른 나의 종은 바로 메시아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뿐만 아니라 이사야서의 후반부의 기록은, 바로 나의 종에 관한 풍성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이사야서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이사야서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의 형편을 보니, 여러분은 그분의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지 못한 것 같군요.”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하나님의 종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실패한 그곳에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 분은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될 것입니다.“

그분은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친히 담당하실 것입니다.”

 

이사야서가 말하는 나의 종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음이 너무도 확실 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둘을 모두 동일한 나의 종으로 표현한 것일까?

왜냐하면 첫째 아담,(나의 종)이 의를 이루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 아담(나의 종)이 의를 이루어 줄 것임을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둘째 아담 되시는 그분의 종 예수님께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구원을 이룰 것인지를 이사야서를 통해 자세히 예언해 놓으신 것이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42:1-7)

 

그래서 신약에서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확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이사야서에 예언된 바로 그 삶을 정확히 살아내셨기 때문이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18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12:17-21)

이 얼마나 정확한 예언의 성취인가?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무려 700년 전에 메시야의 사역을 정확하게 예언해 주셨던 것이다.

나의 종” - 종으로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나의 종으로 언급하셨을까?

왜냐하면 예수님의 생애가 바로 과 같은 생애이셨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분은 이 땅에서 자신의 삶을 살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셨다.

둘째로 그분은 이 땅에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의 모본을 온전히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정말 성경의 예언이 놀랍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모든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사시고 승리하셨다는 것은 더욱더 놀랍지 않은가?

우리 모두 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통해 종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223일 화요일 페르시아인 메시아 (44:26-45:6)

화요일 교과에서는 메시아에 관한 조금 독특한 예언을 살펴보기로 하자.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27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44:26-28)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는지를 글로서 남겨서 사람들로 믿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어떻게 이 땅에 오게 될 것인지,

그가 어떠한 삶을 살 것이며, 어떻게 죽게 될 것인지를 자세히 예언해 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이 정확하게 성취 된 것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메시아를 예언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 그러니까, 역사적 어떤 사건들 속에 상징으로서 그 예언을 주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출애굽, 유월절에 백성들이 양을 잡고 그 피를 좌우 인방과 설주에 바르게 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을 예언해 주신 것이다.

또한 모세를 통해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예수님의 사역과 생애를 모세의 삶을 통해 예언해 주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 ,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 상징으로서 넣어두신 것이다.

그렇게 하여서 이스라엘 국가와 백성들이 존속하는 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항상 상기되도록 하신 것이다.

그와 같은 또 다른 예가 바로 이사야서에 언급된 고레스에 대한 예언이다.

 

이제 유다민족은 애굽이 아닌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여 노예의 신분이 되었다.

그러나 약속된 기한이 차고,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 지도자를 일으키셔서 유대 백성들을 바벨론으로부터 구원토록 하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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