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n라디오교과 2021년 1기 제 12과 열방의 소망 (원고는 첨부파일에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도 올려놓았으니 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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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열방의 소망
기억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사 60:30)
서론
멸망과 심판의 기별로 채워져 있던 열방들과 이스라엘의 운명이 이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12:2)는 언약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성취될 것을 이사야는 다시 한 번 예언하는 것입니다.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스라엘은 빛을 비추고, 열방은 그 빛으로 나오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빛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재림교회 성경주석에서는 “빛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라고 그 빛을 신원하고 있습니다. “열방은 네 빛으로 나오리라”는 의미는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은혜 안에 거하는 모습을 열방에 드러내게 될 것이요 그들 역시 그 은혜와 복을 누리기 위해 주님 앞으로 나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시대의 교회를 통하여 성취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교과를 통해 어떻게 빛 되신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그 빛을 열방에 비출 수 있는지 함께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일요일 – 죄의 영향(이사야 59장)
일요일 교과는 이사야 59장을 통하여 죄가 주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과연 죄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먼저 죄의 영향에 대해 말하기 전에 죄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흔히 죄란 무엇인가 잘못 하는 행위라고 단정짓고 그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계명에도 명시된 것처럼, 우상을 만든다든지, 말로써 주님을 모욕한다든지, 안식일을 범한다든지, 불효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적질하고 거짓말하며 남의 물건에 눈독을 들인다는 등의 불법적인 행위들이 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생각입니다. 죄 된 자들로서 영안을 잃은 우리들의 수준에서 생각해 낸 죄에 대한 정의인 것입니다.
교과책 165쪽 상단에는 죄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죄란 원래 하나님에 대한 거절이며, 그분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교과책, 165)
죄는 행위적인 것 이전에 관계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되시는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 죄입니다. 이를테면 첫째 계명 같은 것이지요. 주님 외에 다른 신을 마음에 품는 것...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갈라서는 관계의 단절, 그것이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죄의 결과를 교과책은 다시 한번 명료하게 정의합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데, 이는 하나님이 죄인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죄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거룩한 접근을 거부하게 하기 때문이다.”(교과책, 165)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실제로 군대에서 거꾸로 가는 시계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말년 병장 때 일입니다. 말년들은 누구보다도 달력과 시계를 자주 쳐다봅니다. 물리적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지만 정서적 시간은 덧없이 느리게 가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저녁 취침전에 약이 다 된 벽시계를 보면서 건전지좀 바꿔 놓으라고 내무실 막내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내무실 막내는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새건전지를 구해다가 벽시계를 고쳤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 내무실 시계의 초침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정을 알고 보니 너무 바짝 군기가든 이등병이 긴장을 해서 건전지의 방향을 거꾸로 끼워 놓은 것입니다. 건전지 방향이 역방향으로 끼워지자 신기하게도 시계가 거꾸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건전지를 바로 끼우니 그제서야 초침이 정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죄는 초침이 거꾸로 흐르는게 죄가 아닙니다. 죄는 방향을 바꿔서 건전지를 끼운데 있는 것입니다. 벽시계와 에너지원인 건전지 사이의 관계가 잘못되니 그 결과로 초침이 반대로 잘못 움직이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통해 보여지는 잘못들은 죄가 아닌 그 결과들입니다. 죄는 그 결과들을 초래하게 한, 주님과의 잘못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관계를 바로하지 못하면 마치 건전지를 거꾸로 끼운 국방부 벽시계처럼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주님의 뜻과 정 반대로 꼴지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합니다.
사 59:1, 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그렇습니다. 죄의 영향은 우리로 율법과 반대되는 행위를 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은혜마저도 경험하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우리는 결코 주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의 결과들인 행위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죄의 문제 – 주님과의 관계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단절된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 답을 월요일 교과를 통해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월요일 – 누가 용서를 받았는가?(사 59:15~21)
한번은 강변북로에서 큰 차사고가 났습니다. 주도로에 지선이 연결되는 Joint Area에서 끼어들던 여성운전자가 접촉사고를 낸 것입니다. 사고의 규모는 경미했지만 주선도로를 달리고 있던 최고가의 외제승용차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래서 큰 사고인 것입니다. 서로 잘잘못을 가려서 과실이 큰 사람이 그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도로를 달리던 외제차 운전자는 득달같이 뛰쳐나와서 삿대질을 하면서 으르렁 거렸습니다. 지선도로에서 끼어들었던 여인은 잘못을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용서를 비는 것이지요. 자신의 형편으로는 그 사고의 결과를 감당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통경찰의 감식결과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이 전혀 반대로 나왔습니다. 외제차 주인이 잘못한 것이고 끼어들기를 하던 여성운전자가 사고를 당한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Joint Area 지점에 지선차량 진입을 위해 주도로 차량은 속도를 줄이고 양보해야 한다는 표지판이 게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교과는 누가 용서받을 대상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용서받을 대상이 누구인지도 바로 알지 못하면서 용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성전에 기도하러 나온 바리세인과 세리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의로운 백성이요, 오히려 용서받을 대상이야말로 개돼지와도 같은 이방인들이라고 생각하며 착각 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요일 교과에서 공부한 것처럼, 죄는 행위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류는 주님과의 단절된 관계 속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날 때부터 주님과 연결돼 있지 않은 죄 가운데 놓이게 된 것입니다. 제 아무리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바리세인들이라 할지라도 출신 자체가 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로마서 3장 2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런고로 월요일 교과의 제목에 담긴 “누가 용서받을 대상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우리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죄 가운데 태어난 자들입니다. 우리가 은혜아래 공평하든, 죄 앞에서도 모두 공평한 존재들인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누가 죄를 지었는가?”에 대해 물을 것이 아니라 “누가 용서를 받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죄 가운데 처한 인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사 59:11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월요일 교과의 주제성경절인 이 말씀은 마치 부모님의 손을 놓아 길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울부짖음처럼 비참하고 절망적인 죄인의 형편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는 죄 가운데 태어나 절망가운데 살아갈 운명에 처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구속의 소망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롬 3:26 ...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지난 몇 주의 교과 내용들처럼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잘못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 받는 종, 상상할 수 없는 은혜로 우리를 대신해 희생당하신 그리스도,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친히 담당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용서 받았고 또 계속적으로 용서를 받으므로 “죄” 즉 주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바리세인들처럼, 그리고 강변북로 주도로의 외제승용차 운전수처럼 나는 용서받을 대상이 아닌 냥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도로의 교통법규 표지판이 잘잘못을 명확히 가려 주듯이, 성경은 정확하게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용서받을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이 귀한 복음의 초청에 아멘으로 반응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화요일 – 전 세계적인 호소(사 60:1-2)
사실 표면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이번 주 교과는 한 가지 핵심적인 사상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평”입니다. 제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열방의 소망” - 이사야서 59장부터 61장에 소개되는 빛과 구원의 소망은 한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요일 교과에서 말하고 있는 죄의 문제도 누가 잘했냐 잘못했냐의 행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류는 죄의 영향아래 있는 – 죄 앞에 평등한 자들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월요일 교과에서는 그러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희망 예수 그리스도 역시 공평한 은혜로 모든 죄인들에게 공급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소망은 열방을 위해 공평하게 제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요일 교과는 드러내 놓고 그리스도의 은혜는 “전 세계에 호소”되어야 할 복음임을 공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60장 1-2절입니다.
사 60:1,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이스라엘에게 임한 이 빛 – 예수 그리스도는 왜 주어진 것입니까? 여호와의 영광이 왜 임하신 것입니까? 교과책의 주제성경절에서는 그 중요한 대상이 생략돼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빠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사 60:1,2)
죄의 어두움에 눌린 이 땅을 향해 그리고 캄캄함에 가려진 만민을 위해 그리스도의 은혜의 빛이 발산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과는 이 부분일 이렇게 설명합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지만, 그 성읍 자체보다는 사람들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사야 60장의 나머지 부분은 1~3절에서 소개한 주제 곧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로 인해 복된 예루살렘으로 이끌린다는 주제를 발전시킨다” (교과책 168)
주님께서는 만민을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가 주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는 주님의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사56:7)으로 모두에게 개방돼 있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의 실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공로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길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시온성 예루살렘 위에 임한 이 빛은 그들에게 큰 축복일 뿐만 아니라 또한 마땅히 감당해야 할 막중한 책임임을 이사야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교과를 통해 우리는 재림성도들의 세계관을 바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근거 없는 선민사상의 우월함에서 벗어나 모두가 주님앞에 은혜 받을 대상들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공평] 이라는 주제에 대한 토론 – 필리핀 선교사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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