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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빗나간 제자도(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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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3.11 17:18 조회수 6,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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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33분)

기억절: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 하겠느냐?”(렘 12:5).

연구범위: 왕상 18장, 마 26:56, 눅 9:51-56, 요 6:1-15, 12:1-6, 18:1-11, 21:15-19.

학습 포인트: 정치적 권력을 얻으려는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경고가 되는가? 유다에게서 취할 교훈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들을 불로 소멸하기 원했던 야고보와 요한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베드로의 경솔한 행동과 회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제자들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목도하였으면서도 왜 예수께서 가장 도움이 필요하실 때 모두 버리고 떠났는가?

안식일 오후
머피의 법칙(Murphy's law)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중력의 법칙이나 자기(磁氣)의 법칙처럼 널리 퍼져 있는 자연의 기본 법칙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잘못 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잘못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최악의 순간에!’
우리 모두는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나 날들을 보낸 적이 있을 것이다. 제자들이 경험했듯이 때때로 우리도 이 법칙을 따라가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낙심하지 않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이 약속에도 불구하고 절망 중에 포기해버리고 싶은 유혹을 받기가 쉽다. 물론 어떤 경우에든지 그래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몇몇 제자들에 대해 살펴보고, 그들의 유감스런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핵심본문: 눅 9:51-56

학습 목표
깨닫기: 종교의 힘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느끼기: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되 그들의 그릇된 신념을 묵인하지는 않는다.
행하기: 비판적인 태도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교과 개요
I. 우레의 아들들
A. 야고보와 요한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여 사마리아인들을 태워버리자고 제안했다. 예수께서 그들을 우레의 아들이라고 하셨다. 이 별명은 그들의 기질에 관해 무엇을 암시해 주는가? 예수께서는 우리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는가?
B. 그 제자들은 죄인들에 대해 얼마나 가혹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

II. 행악자들에게 자비를 베풂
A. 비록 의도가 좋더라도 잘못된 열정은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다.
B. 우리는 어떻게 악을 행한 자들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풀되 그들의 잘못된 신념을 묵인하지 않을 수 있는가?
C. 제자가 된다는 말에는 구습(舊習)을 버리는 일도 포함된다. 예수께서는 우레의 아들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셨는가?

III. 자비를 베푸는 자는 복이 있나니
A. 그 제자들이 복수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엘리야의 이야기를 잘못 사용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할 수 있는가?
B. 우리를 대항하는 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요점: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자비를 깨닫게 하고, 심판하는 일은 그분께 맡기는 것이다.

일요일(3월 2일) 권력을 추구하는 제자들

종교적 신념은 선악 간에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신념에 따라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가 하면(마 16:25),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폭 테러를 감행하기도 한다. 결국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도록 부르셨다는 확신이 서면 그 앞에 놓여 있는 세상적인 문제들을 두려워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어떤 국가에서는 백성이 더 높은 권위에 충성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종교 억제 정책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이 결코 하나님보다 더 높은 권위를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어떤 나라는 엄청난 종교 세력과 결탁하여 그 세력을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종교적인 힘을 남용하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위험에 대하여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요한복음 6:1-15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정치적 세력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요6:1-15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답: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임금이 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며, 정치적 세력을 규합하는 것은 그분의 제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

물론 예수님의 목적은 이 지상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었으며, 정치적 세력을 규합하는 것은 제자들의 할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권세를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권력을 사용하게 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치적 세력을 모으는 일은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며 제자들의 몫이 아니다. 신약 어느 곳에서도 이와 같은 복음의 권력적 모델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조차도 이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다윗의 보좌를 물려받을 정당한 분이라고 선동하는 데 있어서 무리들과 합세한다. 예수께서 이런 명예를 거절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겸손하시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 그들은 저희의 목적을 추진시키기 위하여 열심으로 계획한다”(시대의 소망, 378). 군중의 열렬한 기대와 열망이 고조됨에 따라 그들은 강제로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다(요 6:14-15).

예수께서 세우실 나라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임금으로서 통치하실 것을 여전히 기대하였다. 예수께서 매우 오랫동안 당신의 계획을 숨기셨을지라도 저들은 그가 항상 빈곤하고 미천하지 않으실 것으로 믿었으니 곧 예수께서 그의 나라를 세우실 시기가 가까이 왔다고 믿었던 것이다. 제사장들과 랍비들의 증오심은 결코 수그러지지 않을 것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민족에게 거절을 당하시고 기만자라는 정죄를 받아 악인처럼 십자가에 못박히실 사실 등, 이런 일에 관하여 제자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나 흑암의 세력의 시기는 가까이 이르고 있었으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에 놓인 쟁투를 공개하셔야 하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11).

<부가설명> 세상 권력은 마약 같은 것인가? 권력을 한 번 맛보면 그것을 결코 놓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어떤 권모술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손에 놓지 않으려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인간이 자기의 야망과 욕심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강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단의 충동에 바로 이 권력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휘어잡았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 앉아서 자신이 하나님 노릇을 하고 있다(살후 2:4). 종교와 세상 정권이 연합하면 가장 잔인하여진다. 신앙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옭아매기 때문에 신자들을 꼼작할 수 없다. 그들의 행위가 신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 신자들은 꼼작 없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그래서 종교와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행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 그냥 저지르는 악행은 양심에 항상 어느 정도의 걸림이 있지만 신앙으로 행하는 악행은 양심의 가책이 없고 오히려 신에게 충성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가장 악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이름을 자아를 정복할지언정 이런 권력을 휘두르지 않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 장로만 되어도 정치적으로 놀려는 충동에 휩싸이는 것이 인간의 연약성이다. 조심하고 종으로 섬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훈: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세상의 정치적 권력과 결탁하고 그 세력을 힘입어 복음을 전파하라고 제시한 곳을 찾아볼 수 없다.

월요일(3월 3일) 탐욕적인 제자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부자가 되기 원하면 종교를 창설하라.” 유감스럽지만 이 냉소적인 말 속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 종교적 신념 가운데는 인간 존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면들이 다 포함된다. 우리의 신앙에는 삶의 의미와 영생의 소망, 그리고 죄의 용서에 대한 확신 등의 문제가 포함된다.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빈곤한 삶을 사셨으며, 그토록 자주 이 세상 사물에 몰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건만,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소유를 착취하여 부(富)를 축적한 사례가 무수히 많았다.

요한복음 12:1-6을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요12:1-6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1. 마리아의 행동에서 우리는 어떤 상징을 발견하게 됩니까?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이 가져야 할 어떤 자세를 보게 됩니까?(참조 마 13:46, 빌 3:8).
마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답: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헌신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2. 이 이야기는 행동의 동기가 중요함을 어떻게 말해 줍니까?

답: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린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순전한 마음이 동기가 되었으나, 유다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가장하면서 자신의 탐심을 채우고자 하였다.

3. 본문에 의하면 부활한 나사로가 함께 식사하고 있었는데, 이 사실은 유다의 행동의 모순됨을 어떻게 드러냈으며 그가 얼마나 탐심에 눈이 멀어 있었는지를 나타내 줍니까?

답: 그 잔치에 동석한 부활한 나사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다는 탐심에 이끌려 그분의 발에 붓는 향유를 크나큰 낭비로 생각하였다. 그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릴 수 있는 분으로 평가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10의 유명한 진술을 하게 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유다는 돈을 사랑함으로 잃어버린 바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첫째가 되고자 했으며, 그 자신의 유익을 위해 물질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그의 모든 삶에 얽혀 있었다. 물론 다른 제자들도 전혀 이기적이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다가 가장 두드러졌다.

탐욕적인 유다와 희생적인 마리아
“마리아의 행위는 유다가 취하려고 하는 행동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
예수께서 유다에게 던지신 시선은 구주께서 그의 위선을 통찰하시고 천하고 비열한 성격을 아신다는 사실을 유다로 하여금 깨닫게 하였다. 그리고 매우 혹독하게 정죄받은 마리아의 행위를 칭찬하심으로 유다를 책망하셨다”(시대의 소망, 563).

교훈: 가룟 유다는 탐욕의 늪에 빠져 그 영혼이 잃어버린 바 되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약 1:15).

화요일(3월 4일) 우레 같은 제자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형제가 함께 제자가 된 경우가 둘이 있다. 예수께서는 이들 중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부르신 후에 보아너게(Boanerges) 즉 ‘우레의 아들들’(막 3:17)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어떤 주석가들은 그들에게 이 이름을 주신 것은 그들의 격렬한 기질과 불같은 성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유형의 제자들을 우레 같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1. 누가복음 9:51-56을 읽으십시오.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에 대한 이 제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이 구절들을 읽을 때 두 제자들의 입장에서 읽어 보십시오. 이들이 그렇게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다시 말해서, 그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어떤 말을 떠올렸으며, 구약의 어떤 사례를 기억하고 그렇게 반응했을까요?(참조 창 6, 7장, 마 8:12, 13:42, 막 6:11).
눅9:51-56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
창6장 7장
마8: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13:42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막6: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답: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친 대우에 몹시 화가 나서, 엘리야처럼 단호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대응하기를 바랐다.

이 제자들의 반응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한 열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제자들이 가져야 할 좋은 덕목이다. 하지만 그릇 인도된 열심은 비록 의도가 좋다 할지라도 유익보다는 해를 끼치기가 쉽다. 예를 들어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의 행동의 모델로 엘리야를 떠올렸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그 모델을 잘못 적용한 것이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여 그 제물을 사르게 하였지(왕상 18장), 고집 센 백성들을 사르게 하지는 않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죄인들에 대한 그들의 거칠고 비판적인 태도였다.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의 할 일은 죄인들을 십자가 아래로 인도하는 방법을 찾아 그들의 죄를 친히 담당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은혜를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과거에 얼마나 죄 가운데서 살았든지 관계없이 예수님을 통해 완전히 죄사함을 입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자인 우리가 할 일이며, 심판은 다 주님께 맡겨 버려야 한다.

우레의 아들들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그 곳에 간 야고보와 요한은 저희 주님을 멸시하는 것을 보자 몹시 분노하였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친히 사마리아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인들이 그처럼 예수를 무례하게 취급하자 분노로 가득 찼다. 제자들은 얼마 전에 변화산에서 예수와 같이 있었는데,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으며 모세와 엘리야도 그를 존경하는 것을 보았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인들이 행한 불명예스러운 일에 대하여 현저한 형벌을 내리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 나아와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에게 하룻밤을 유숙하는 것까지도 거절하였다고 백성들의 말로 예수께 보고하였다. 그들은 백성들이 예수께 무서운 과오를 범하였다고 생각하였으며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을 죽인 갈멜산을 멀리 바라보며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말하였다”(시대의 소망, 487).

<부가설명> 우리는 예수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볼 때 예수를 위하여 분노한다. 여기 야고보와 요한이 바로 그랬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꾸짖었다. 이런 예수님의 자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과 행위를 보더라도 야고보와 요한 같은 성질을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 그럴수록 예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는 태도를 나타내어야 한다. 예수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자기의 분을 터뜨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직원회와 교회를 어렵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은 인내와 희생을 통하여 승리하셨다.

교훈: 야고보와 요한처럼 격렬한 기질과 불같은 성미를 가진 사람도 예수님에게서 배우면 그 열정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훌륭한 제자가 될 수 있다.

수요일(3월 5일) 베드로 유형의 제자들

베드로는 나서기를 좋아하는 충동적인 제자로 알려졌다. 누가복음 22:33-34에는 그가 예수님과 함께 감옥에도 가고 죽는 데도 가기로 준비하였다고 장담하는 모습이 나온다. 물론 오래지 않아서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돌이켜 보아야만 했다(마 26:69-75).

1. 요한복음 18:1-11을 읽으십시오. 이 일화를 통해 베드로의 성격과 품성의 어떤 면을 엿볼 수 있습니까?(마 26:69-75).
요18:1-1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2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마26:69-75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답: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베드로는 검을 빼어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온 무리 가운데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를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렸다. 우리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베드로의 실패에 관해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에게 교훈이 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없다. 날마다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 굴복시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분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이므로 그분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특히 신실한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을 위한 열정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서 펼쳐져야 한다.

2. 요한복음 21:15-19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은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 특히 실수를 뉘우치고 당신을 붙잡는 자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실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까?
요21:15-19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답: 예수께서는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회개한 베드로를 회복하시기 위해 동료 제자들 앞에서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셨다.

“여기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을 위한 한 가지 교훈이 주어졌다. 복음은 악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것은 죄를 변명할 수 없다. 은밀한 죄는 은밀히 하나님께 자복해야 하며 드러난 죄는 공공연하게 자복하여야 한다. …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공공연하게 부인했었다. 예수께서도 세 번씩이나 화살같이 날카로운 질문을 그의 상처받은 마음에 화급하게 던짐으로써 그의 사랑과 충성의 보증을 끌어내셨다. 모인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회개의 깊이를 나타내셨으며 한때 자만스럽던 제자가 얼마나 완전히 겸손하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셨다”(시대의 소망, 811-812).

베드로를 변화시켜주신 주님
“베드로는 그 행동에 있어서 즉각적이고 열정적이었으며, 담대하고 타협할 줄을 몰랐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서 교회에 크게 유용한 재질을 보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그를 당신에게 연결시키심으로써 좋고 가치 있는 것이 모두 보존될 수 있도록 하셨으며, 손수 당신의 교훈과 모본을 통하여 그의 기질에서 볼 수 있는 거친 것을 부드럽게 만드시고, 그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거슬리는 것을 제거해 주셨다. 하늘의 은혜에 의해 마음이 진실로 변화된다면, 진정한 친절과 동정과 예의를 통하여 외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증언보감, 1권, 566).

<부가설명> 베드로는 자신을 과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그의 과신은 구겨진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그 과신은 결국 자기를 위하여 예수를 따라다녔던 것을 확인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는 예수를 따라다니다가 예수께서 나라를 세울 때에 자기의 영달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희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저녁에 그는 허탈한 중에 예수를 부인하였다. 우리도 우리의 성질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성질을 고치는 자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질 자체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사단의 지혜를 스스로 당할 수 없다. 오직 우리의 지혜이신 주님의 지혜로 승리할 수 있다. 자아를 주님께 굴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 가운데 신실한 제자로 변화되었으며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참된 제자가 되었다.

목요일(3월 6일) 도망하는 제자들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 26:56).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 반을 보냈다. 그들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누리지 못한 특권을 누렸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일들을 목도했다. 이 세상 수십억의 인구 가운데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그분께서 육신으로 계신 동안 날마다 교제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제자들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큰 특권을 누린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타락한 인간인지라 주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신 교훈을 쉽게 배우지 못하였다.

1. 사복음서 중 어느 하나를 택하여 쭉 훑어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어떤 놀라운 이적을 행하셨으며, 어떤 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까? 그분께서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확인시켜주는 놀라운 증거들을 얼마나 많이 주셨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두려운 경고가 됩니까?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을 읽어보자.

답: 제자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들을 목격하였으나 결정적인 순간이 이르자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하고 말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말씀을 주의 깊이 듣고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 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두고 떠나야 할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준비시키고자 하셨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아시고 당신의 수난을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으며 아무런 준비 없이 예루살렘에 이르게 되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에 제자들은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듣기보다는 그분께서 행하신 일을 바라보기만 한 것 같다. 그분의 행동은 그들의 마음속에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확신하게 해 주었으므로, 그들은 매우 기뻐하였다. 변화산에서 하늘로부터 음성이 울리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였으나, 그들은 주님의 수난에 대한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큰 유익을 놓치고 말았다.

도망하는 제자들
“유대인들의 고위 관원들은 예수님을 잡는 데 친히 가담하였다. 예수님을 체포하는 일은 부하들에게 맡기기에 너무 중대한 문제였으므로 교활한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성전 경호원들과 폭도들과 합세하여 유다를 따라 직접 겟세마네에 온 것이었다. 이 고관들과 연합된 무리는 어떤 무리였던가! 마치 사나운 짐승이라도 잡으러 가는 것처럼 온갖 도구로 무장한 호전적인 폭도들이었다. …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잡히고 묶도록 허락하시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였다. 예수께서 자신과 그들에게 굴욕을 허락하시는 데 대하여 그들은 상심하였다. 제자들은 그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폭도들에게 굴복하는 예수님을 비난하였다. 분노와 공포 가운데서 베드로는 이제 그들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제의하였다. 이 제의에 따라서 제자들은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다”(시대의 소망, 696-697).

<부가설명> 사람은 자기의 욕망과 의도 때문에 상대방의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듣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것이 자기의 의도하는 것과 일치할 때만 바르게 듣는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상대방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생각을 듣는 것일 뿐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여 왕이 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꽉 찼기 때문에 그런 말은 귀에 잘 들어갔으나,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말은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도 같은 정신이 지배한다. 우리의 의도와 욕망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우리도 다 도망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 욕심을 따라 말씀을 들을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말씀 그 자체를 듣고 깨달아 주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교훈: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자리와 감람산 담화 등 여러 경우에 당신의 수난에 관해 예고하셨으나 제자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은 다 도망하고 말았다.

금요일(3월 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재림교 성경주석, 한국어판, 9권, 416-418, 499-505, 592-595, 644-645, 10권, 315-316, 574-575, 656-657, 시대의 소망, 제39장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364-371), 제40장 ‘호수의 밤’(377-380), 437-438, 제60장 ‘새 나라의 율법’(547-551), 제62장 ‘시몬의 집에서 열린 잔치’(557-565), 제85장 ‘다시 한 번 바닷가에서’(808-817). 사도행적, 제53장 ‘사랑받은 제자 요한’(539-543).

“유다는 그의 약삭빠른 재능을 활용함으로써 돈에 대한 사랑을 그의 마음에서 키우고 있었다. 만약 그의 실제적인 재정 관리 능력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꼴지워지고 계발되고 잘 활용되었더라면 그것은 그 어린 교회에 큰 봉사가 되었을 것이며 그의 마음은 성화되어서 그는 하늘 사물을 바르게 인식하는 정확한 식별력과 분명한 통찰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세상적인 술수를 계속 마음에 품고 있었다. 밖으로 드러나는 죄는 없었지만, 그를 사로잡고 있는 극도로 교활하고 이기적이고 인색한 정신은 결국 얼마 안 되는 적은 돈으로 그의 주님을 팔게 하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01).
“구주의 공생애 기간 전체를 유다는 내내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주실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다 가졌다. … 그러나 유다는 공로만 일삼는 자였다. 그는 교회의 재정 관리를 잘 할 수 있고 그의 예리한 사업적 수완으로 교회에 큰 유익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두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세상의 칭송을 좋아하였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을 포기하는 일을 거절하였다. 그는 한 번도 그의 영원한 복리를 그리스도께 위탁해 본 적이 없었다. … 유다는 하나의 종교적 사기꾼이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01-110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이번 주에 공부한 것 외에 어떤 유형의 제자들이 있을까요? 그러한 유형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 자기의 사상을 입증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는 제자들도 있다. 또는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교회의 일을 탐하는 제자도 있다.

2.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듣고 순종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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