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그분의 실제적인 인성(4/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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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11분)
기억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연구범위: 갈 4:4, 딤전 2:5, 3:16, 히 4:15-16, 요일 4:1-3.
안식일 오후
신약에서는 별다른 이성적 설명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과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 요한은 그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 1:1)”고 한 후에 놀랍게도 이 말씀에 관하여 선언하기를, 이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 1:14)고 하였다. 그리고 훗날에, 예수께서 악에 물드셨는지에 관한 논쟁이 있을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인지 신약성경은 그분의 무죄한 생애에 관해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다(히 7:26, 벧전 2:22). 뿐만 아니라 신약의 기자들은 사실상 예수님을 경배와 존경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행 7:59, 롬 9:5, 히 1:6).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인(神人, God-man)의 개념이 갖는 철학적 문제에 얽매이거나 나중에 사상가들에 의해 제기될지도 모르는 문제들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금고리이다. 이 문제는 우리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적인 인간이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인간이 되심으로 당신의 겸비에 대한 증거를 주셨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육신으로 계신 하나님이셨다. 우리가 이 문제를 연구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하신 말씀을 주의깊이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연구할 때에 배우는 자의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가려뽑은 기별, 1권, 244).
핵심본문: 히 4:15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겸비하신 분이심을 인식한다.
느끼기: 예수께서 승리하셨듯이 우리도 죄를 이기고자 하는 열망을 갖는다.
행하기: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죄의 종노릇 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한다.
교과 개요
I. 하나님이며 인간이신 분
A. 신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분으로 제시되었음
B. 예수께서는 비록 인간이셨지만 죄 없는 생애를 사셨음
C. 인간이신 예수님은 또한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심
II.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상반된 견해
A. 제자들은 반대를 무릅쓰고 예수님의 신인(神人)적 속성을 증거함
B. 1세기 초에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상반된 견해, 즉 그분의 신성을 강조하는 견해와 그분의 인성을 강조하는 견해가 일어났음
C. 성경에는 목마름, 피곤함, 눈물 흘림과 같은 예수님의 인성을 입증하는 속성들이 나타나 있음
III.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심
A.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신 동안 자원하여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심
B. 그분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타락한 인류의 유익을 위해 우리와 같이 시험 받으시고, 순종하시고, 마침내 죽음을 당하심
C.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것은 친히 육신으로 계셨고 시험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기 때문임
요점: 예수께서는 비록 하나님이셨으나 육신으로 고통을 당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험하셨다. 그분은 죄와 시험을 이기시기 위해 당신의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셨으나 죄 없는 생애를 사셨다.
일요일(4월 13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딤전 3:16)
지난 주 교과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신비에 관해 배웠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의 인성에 대해 탐구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오묘한 신비에 접하게 된다. 바울은 외쳤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
그리스도교가 신성에 의해 창설되었다는 주장은 로마 세계에서 그리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황제들도 항상 신성(神性)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인성(人性)과 관련되시고, 인성으로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전혀 생소한 것이었다”(휴스턴 스미스, 예화로 엮은 세계의 종교들, 하퍼콜린스 출판사, 1986년, 219). 비록 그레코-로만(Greco-Roman) 세계에서는 이상하게 여겨졌을지 모르지만 신약성경은 분명히 그와 같이 증언하고 있다.
1. 다음 구절들은 이 놀라운 겸비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마 1:18-24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임마누엘 하나님이 마리아의 몸을 빌어 연약한 아기로 태어나심
눅 1:26-35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심
요 1:1, 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으로 묘사된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 아래 나심
빌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과 본체이신 예수께서 종의 종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
신약의 기자들이 그리스도의 인성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사실상 그들은 후세에 비평이 빗발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말했을 뿐이다. 이 사실은 그들이 신약의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 주기 위해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우리가 신약에서 보듯이 초기 제자들도 물론 예수님의 본성과 신원에 관해 많은 논쟁에 부딪혀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위격에 대한 그들의 논증은 분명 이성적 혹은 과학적 반대자들을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목격한 바를 생생하게 증거하였을 뿐이다.
성육신(成肉身)의 신비
“인간의 육체 가운데로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교리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신비이다. 그것은 크고도 심오한 경건의 비밀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셨으니 이는 그의 하늘 본성보다는 못한 성정이었다. 이보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겸양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30).
<부가설명> 예수님은 실제로 사람이 되셨다. 그분은 구약시대에도 아브라함이나 그 외의 여러 사람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러나 그때 사람에게 보이신 그분의 몸은 육체가 아니셨을 것이다. 천사도 사람에게 보일 때에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사람의 육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실 때는 육체가 몸을 가지신 사람이 되어 탄생하신 것이다. 그의 몸은 우리의 몸과 꼭 같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이 사람이 되신 사람이셨다. 요한은 이런 예수님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그는 물과 피로 나타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요일5:6). 이 말은 실제적인 육체를 가지신 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므로 우리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셨다. 곧 임마누엘이라는 말의 실상이셨다.
교훈: 초기의 제자들은 그들이 직접 목격하였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삶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놀라운 신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요일(4월 14일) 대립되는 주장이 생겨남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으로 확산되고 세대가 바뀌자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을 제기했다. 같은 육체에 어떻게 신성과 인성이 공존할 수 있는가? 신성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 존재로 될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에 있으셨는가?
1세기에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하나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더 강조하고, 다른 하나는 그분의 신성을 더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 중에 에비온파(Ebionites)가 있었는데, 이들은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초기 그리스도인들로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은 침례를 받으실 때였으며 그때로부터 영원하신 그리스도와 결합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분은 신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인간을 구원하실 수 없으셨고 다만 그들을 순종으로 이끄셨다고 주장했다. 그 후 3세기 말에 시작된 아리우스파(Arians)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어느 정도 수용하였으나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 of Nicea)에서 강하게 정죄되었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 중에 그노시스파(Gnostics)가 있는데, 이들은 영(spirit)은 선하고 물질(matter), 특히 우리의 육체는 악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 요한은 그노시스파에 대해 어떻게 말했습니까?(요일 4:1-3)
요일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답: 그들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이다.
예수님이 누구이셨는가에 대한 논쟁은 2세기부터 6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그분의 신성에 관한 논쟁으로 시작되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는가? 그렇다면 그분과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관계에 계셨는가?’ 마침내 논쟁은 그분의 인성에 관한 주제로 옮겨갔다. ‘어떻게 신성과 인성이 한 몸에 결합될 수 있는가?’ 진술과 반박, 선언과 반론, 비난과 정죄와 출교가 이어졌고, 새로운 주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놀랍게도 이러한 소동과 논쟁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본성과 신원에 관한 성경적 정통이 궁극적으로 우세하였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이 잠시 동안 그가 입으신 인성으로 가리워졌지만 그가 사람이 되셨을 때도 하나님이시기를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인성은 신성을 대신하신 것이 아니었고 신성도 인성을 대신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경건의 비밀이다. 신성과 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밀접하게 그리고 나눌 수 없는 하나가 되었지만 그 두 속성은 확연히 구별되는 개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비록 자신을 낮추사 사람이 되셨지만 여전히 삼위 하나님 중 한 분이셨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27)
<부가설명>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이해할 때에 성경 자체가 사용한 낱말들을 성경이 사용하는 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 되심을 논할 때에 인성(人性)이라는 말을 전매특허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결코 한 번도 인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라는 말, 육신이라는 말, 혈육이라는 말 등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이 말들은 학자들이 사용하는 인성이라는 말과 때로는 같은 뜻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한 것 같다. 우리가 성경이 사용한 또는 육신 육체라는 말인 “살크스”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분명히 이해할 때 예수님의 인성 문제에 대한 바른 이해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의 성경 용법은 무시하고 일반적인 용법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오해가 생긴다. 예수님은 사람의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분명히 확실한 사람이시지만 사람이신 그대로 또한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성경이 계시한 것을 믿을 수는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인 것이다.
교훈: 2세기에서 6세기까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과 그분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나 결국 성경적 정통이 우세하였다.
화요일(4월 15일) 우리의 인성을 취하심 (갈 4:4)
예수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비범한 분으로 여겼으나 여전히 그분을 한 인간으로 알고 있었다.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로 달려가 우물가에서 만났던 낯선 유대인에 관해 사람들에게 전파했을 때 “이 사람을 와 보라”(요 4:29)고 한 것은 그녀의 꾸밈없는 표현이었다. 그녀의 말은 예수님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대변한 것이었다. 그분께서 폭풍을 잠잠케 하신 후에도 그분의 가장 가까운 이들은 “이 어떠한 사람”인가?(마 8:27)하고 외쳤던 것이다.
1. 다음 구절들은 예수께서 참으로 혈육을 지닌 인간이셨음을 어떻게 입증해 줍니까?
마 8:24 예수께서는 피곤하여 주무셨고
(마 8:24), (마 21:18), (요 4:5-6), (요 4:7, 19:28), 그리고 그분께서는 (요 11:33-35).
마 21: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배고픔을 느끼셨으며
요 4:5-6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 시쯤 되었더라.
행로에 피곤함을 느끼셨고
요 4:7, 19:28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목마름을 아셨다
요 11:33-35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신 동안 종종 신성을 자유로이 사용하실 수 있는 상황에 놓이셨다. 그분께서는 여전히 신성을 지니고 계셨으며, 언제든지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사용하실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직면하신 시험의 주요한 부분은, 자신이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모든 점들에 대해 성경이 세세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성경은 예수님의 본성 중 인간적인 요소와 신적인 요소가 정확히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결합된 분이셨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성경은 그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완전하게 결합되었는지에 대해 전문용어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여자에게서 나신 그 아들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라(갈 4:4)는 사실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취한 것처럼 믿게 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인성을 취하셨다”(엘렌 G. 화잇, 그분을 높이라, 74).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
“그리스도는 참으로 인간이셨다. 이것은 그분의 사명의 일부였다. 그분이 인간적 본성의 특성을 필히 소유하셔야 했기 때문에 그분은 ‘혈육’(히 2:14)이셨다. ‘범사에’ 그리스도는 그분의 동료 인간들과 ‘같이’ 되셨다(히 2:17). 그분의 인간적 본성은 배고픔, 목마름, 피곤함, 걱정 등(마 4:2, 요 19:28, 4:6, 마 26:21, 8:24 참조) 다른 인간들과 같은 심리적, 육체적 감수성을 갖고 계셨다.
그분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실 때 동정, 의로운 분노, 슬픔을 나타내셨다(마 9:36, 막 3:5). 때때로 그분은 걱정과 슬픔을 느끼셨으며 울기까지 하셨다(마 26:38, 요 12:27, 11:33, 35, 눅 19:41). 그분은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으며 한 번은 피땀이 나도록 기도하셨다(히 5:7, 눅 22:44). 그분의 기도의 생애는 그분께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셨음을 나타낸다(마 26:39-44, 막 1:35, 6:46, 눅 5:16, 6:12)”(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67-68).
<부가설명> 예수님은 말 그대로 100% 사람이셨다. 동시에 그는 100% 하나님이시다. 이런 사실은 전능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시기로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되셨는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 우리가 모른다고 사실이 사실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예수님의 몸은 채찍에 맞고 못에 찔릴 때 피를 흘리셨다. 그는 고통을 느끼신 것이 확실하다. 사람인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할 때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그분에게도 나타났다. 그래서 그분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분이 우리와 같은 죄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이 그분에게 소위 말하는 죄성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 아니다. 성경에는 죄성이라는 말도 없다. 죄와 죄인은 있어도 죄성은 있으나 죄는 없는 사람에 대한 계시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아담은 사람이었으나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죄인이 아니었다. 죄인이 된 사람은 스스로 선을 행한다고 해도 그 선이 죄를 죄 아닌 것이 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죄가 없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인이 된다. 예수님은 사람이었으나 죄가 없었다(히4:15; 요일3:5). 또 죄를 짓지도 않으셨다(벧전2:22). 그러므로 그에게는 죄가 없다. 죄성은 있는데 죄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냥 죄가 없으신 것이다. 죄성은 있으나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설명은 인간적 이해를 예수님에게 갖다 붙인 것일 뿐이다. 예수님의 육체나 우리의 육체는 완전히 동일하다. 성경은 예수님의 육신도 “살크스”라 하고 우리의 육신도 “살크스”라고 한다. 아담이 창조되었을 당시에 그는 “살크스” 히브리어로는 “바사르”였다(창2:24, 마19:5, 엡5:31). 또 예수께서 부활하신 몸도 “살크스”(눅24:39)이다. 그러므로 “살크스”에 죄성이 있다는 주장은 전혀 성경적인 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가 예수님을 그렇게 이해하고 싶으니까 억지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만일 “살크스”에 죄성이 있다고 하면, 예수께서 요한복음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살크스)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살크스)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살크스)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는 말씀은 참으로 이상한 말이 된다. 예수님의 죄성이 있는 살(살크스)을 먹는데 그것이 생명이 된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적으로 이치에 맞은 말이 아니다. 살크스, 곧 육신에 죄성이 있다는 말은 성경적이 아니다. 지금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하늘 지성소에서 봉사하시는 예수님은 인자이시다. 그분은 부활하신 그 “살크스”로 승천하신 것이다. 참으로 사람이시며 동시에 참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인하여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교훈: 신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신 동안 참으로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결코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수요일(4월 16일)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심(히 4:15-16)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있었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대답을 찾기 위해 순전히 지성적인 노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철학적, 과학적, 사회학적인 연구를 함으로써 하나의 해답을 이끌어 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우리 마음대로 대답을 꾸며내서도 안 된다. 가장 손쉽고 빠른 길은 이 점에 대해 성경 자체가 보여주는 바를 주의 깊이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 이 문제에 관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준 몇 가지 사실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예수님을 하늘 성소에서의 대제사장으로 직접 묘사한 히브리서의 기록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1. 다음 구절들은 예수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특별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분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구절들은 그분의 낮아지심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들이 있습니까?
히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
히 2: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인간의 혈육에 속하시어 마귀의 종 된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
히 2:16-17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시고 대제사장으로서 죄인을 구속하심
히 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심
히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시험 받으심
히 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께서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시고 온전하게 되심
각 구절은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고난당하신 하나하나의 이유들을 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이 구절들을 통하여, 예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를 향해 팔을 넓게 펴시며, 이 땅에서의 생애를 통해 친히 우리의 곤경을 아시고, 우리의 아픔을 느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무한한 기쁨을 얻게 된다. 이보다 더 자비로운 구주를, 이보다 더 동정심이 많으신 대제사장을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이 모든 일을 겪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무한한 기쁨과 감사가 우리의 가슴에서 솟아난다.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친히 느끼심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슬픔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가?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주님께서도 당하셨다. 우리 친구들 중에 더러는 인간적인 비애와 육체적인 고통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저들은 병을 앓아보지 않았으므로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의 기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연약함에 대한 기분을 친히 느끼실 수 있다”(가려 뽑은 기별, 2권, 237).
<부가설명>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 되심을 논할 때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는 인성이라는 말을 삼가서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성경이 계시하는 대로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이다. 사람이 되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분을 사람이라고 분명히 계시한다(딤전2:5). 그러나 그는 죄가 없는 사람이셨으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셨다. 아담은 죄가 없는 사람이었으나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사람이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야 하는 많은 이유들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일일이 설명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만 죄가 없으신 사람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것이다. 천사나 신으로서는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어도 그것은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죄를 처리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얼만 엄청난 사랑이신가!
교훈: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히 4:16).
목요일(4월 17일) 영원한 결속 (딤전 2:5)
우리 자신에 비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그분의 성육신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지상생애를 마치신 후에 우리와의 동질성을 버리시고 온전히 그분 본래의 형상대로 되돌아가셨다 할지라도 우리는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께서 인성의 흔적을 지니신 채 영원히 우리와의 결속을 유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감동을 자아낸다!
1. 예수님과 우리의 영원한 결속에 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눅 24:36-43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께서는 거룩한 육신으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행 1:10-11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신 그 모습 그대로 오실 것임
행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믿음의 증거가 됨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죄의 파멸에서 회복하시는 것 이상의 일을 성취하셨다. 하나님과 인간을 영원히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결코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때보다 더욱 밀접하게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구주께서는 우리 인성을 취하심으로 결단코 끊어지지 않을 줄로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붙들어 매셨다. 그분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우리와 연결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속죄제물로서 죽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타락한 인류를 위해 아들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변치 않는 평화의 경륜(經綸)을 우리에게 보증하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사 우리 인간 가족의 한 사람이 되게 하시되 그 인성을 영원토록 보유하게 하셨다”(시대의 소망, 25). “그리스도께서는 성화되고 거룩한 인성을 지니신 채 하늘로 승천하셨다. 하늘 궁정으로 들어가실 때 그분은 인성을 갖고 들어가셨으며 모든 인간을 구속하신 분으로 영세무궁토록 인성을 입고 계실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54)
교훈: 예수께서 우리의 인성을 취하신 사실만으로도 감사한데, 그분께서 영원토록 인성을 지니신 채 우리와의 결속을 유지하신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격스럽다.
금요일(4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수님의 위격에 관한 수세기 동안의 논쟁 끝에 칼케돈 종교회의(Council of Chalcedon, A.D. 451)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이 회의는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시라는 사실에 대해 동의하고 선포한 것이다. “우리는 한 목소리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고 동등하시며, 신격에 있어 동등하실 뿐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시므로, 그분은 참으로 하나님이시요 참으로 인간이시다. 우리와 같이 인간으로 계셨으며 무죄하신 것 외에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으시다”(인용, 유스토 L. 곤살레스, 기독교 사상사, 1권, 애빙던 출판사, 1970년, 390). 이 칼케돈 선언의 의미를 재림교회의 관점에서 평가한 내용을 참조하려면 로이 애덤스(Roy Adams)의 책, 그리스도의 본성(The Nature of Christ,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 1994년, 57-72)을 보라.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묵상할 때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 앞에 할 말을 잃고 만다. 그 주제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움이 증폭된다. 베들레헴 구유에 누인 무기력한 아기와 그분의 신성 사이에는 얼마나 넓은 간격이 있는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힘없는 아기 사이의 거리를 우리가 어찌 측량할 수 있으랴? 신성의 충만함 가운데 계셨던 우주의 창조주께서 구유에 누운 연약한 아기로 탄생하셨다. 어떤 천사보다 더 높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존엄과 영광을 가지셨던 분이 인성을 옷 입으셨다. 신성과 인성은 신비롭게 결합되었으며, 인간과 하나님은 하나가 되었다. 그 결합 안에서 우리 타락한 인류는 소망을 발견한다”(엘렌 G. 화잇, 영문시조, 1896년 7월 30일자).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한편 우리가 지나치게 파고들지 말아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시므로 그는 우리를 속량하신 것이다. 그분의 사람 되신 사실이 죄인과 같은 성질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2. 이번 주 교과의 내용을 전도하는 일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가 현대인에게 어떤 감명을 줍니까?
*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친히 체험하시고 동정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사정을 일일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일은 전도에 효과가 있는 말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나 한 주일 동안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성경에는 인성이라는 말도 없고 죄성이라는 말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의의가 있다.
기억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연구범위: 갈 4:4, 딤전 2:5, 3:16, 히 4:15-16, 요일 4:1-3.
안식일 오후
신약에서는 별다른 이성적 설명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과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 요한은 그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 1:1)”고 한 후에 놀랍게도 이 말씀에 관하여 선언하기를, 이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 1:14)고 하였다. 그리고 훗날에, 예수께서 악에 물드셨는지에 관한 논쟁이 있을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인지 신약성경은 그분의 무죄한 생애에 관해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다(히 7:26, 벧전 2:22). 뿐만 아니라 신약의 기자들은 사실상 예수님을 경배와 존경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행 7:59, 롬 9:5, 히 1:6).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인(神人, God-man)의 개념이 갖는 철학적 문제에 얽매이거나 나중에 사상가들에 의해 제기될지도 모르는 문제들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금고리이다. 이 문제는 우리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적인 인간이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인간이 되심으로 당신의 겸비에 대한 증거를 주셨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육신으로 계신 하나님이셨다. 우리가 이 문제를 연구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하신 말씀을 주의깊이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연구할 때에 배우는 자의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가려뽑은 기별, 1권, 244).
핵심본문: 히 4:15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겸비하신 분이심을 인식한다.
느끼기: 예수께서 승리하셨듯이 우리도 죄를 이기고자 하는 열망을 갖는다.
행하기: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죄의 종노릇 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한다.
교과 개요
I. 하나님이며 인간이신 분
A. 신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분으로 제시되었음
B. 예수께서는 비록 인간이셨지만 죄 없는 생애를 사셨음
C. 인간이신 예수님은 또한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심
II.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상반된 견해
A. 제자들은 반대를 무릅쓰고 예수님의 신인(神人)적 속성을 증거함
B. 1세기 초에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상반된 견해, 즉 그분의 신성을 강조하는 견해와 그분의 인성을 강조하는 견해가 일어났음
C. 성경에는 목마름, 피곤함, 눈물 흘림과 같은 예수님의 인성을 입증하는 속성들이 나타나 있음
III.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심
A.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신 동안 자원하여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심
B. 그분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타락한 인류의 유익을 위해 우리와 같이 시험 받으시고, 순종하시고, 마침내 죽음을 당하심
C.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것은 친히 육신으로 계셨고 시험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기 때문임
요점: 예수께서는 비록 하나님이셨으나 육신으로 고통을 당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험하셨다. 그분은 죄와 시험을 이기시기 위해 당신의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셨으나 죄 없는 생애를 사셨다.
일요일(4월 13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딤전 3:16)
지난 주 교과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신비에 관해 배웠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의 인성에 대해 탐구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오묘한 신비에 접하게 된다. 바울은 외쳤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
그리스도교가 신성에 의해 창설되었다는 주장은 로마 세계에서 그리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황제들도 항상 신성(神性)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인성(人性)과 관련되시고, 인성으로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전혀 생소한 것이었다”(휴스턴 스미스, 예화로 엮은 세계의 종교들, 하퍼콜린스 출판사, 1986년, 219). 비록 그레코-로만(Greco-Roman) 세계에서는 이상하게 여겨졌을지 모르지만 신약성경은 분명히 그와 같이 증언하고 있다.
1. 다음 구절들은 이 놀라운 겸비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마 1:18-24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임마누엘 하나님이 마리아의 몸을 빌어 연약한 아기로 태어나심
눅 1:26-35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심
요 1:1, 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으로 묘사된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 아래 나심
빌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과 본체이신 예수께서 종의 종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
신약의 기자들이 그리스도의 인성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사실상 그들은 후세에 비평이 빗발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말했을 뿐이다. 이 사실은 그들이 신약의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 주기 위해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우리가 신약에서 보듯이 초기 제자들도 물론 예수님의 본성과 신원에 관해 많은 논쟁에 부딪혀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위격에 대한 그들의 논증은 분명 이성적 혹은 과학적 반대자들을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목격한 바를 생생하게 증거하였을 뿐이다.
성육신(成肉身)의 신비
“인간의 육체 가운데로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교리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신비이다. 그것은 크고도 심오한 경건의 비밀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셨으니 이는 그의 하늘 본성보다는 못한 성정이었다. 이보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겸양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30).
<부가설명> 예수님은 실제로 사람이 되셨다. 그분은 구약시대에도 아브라함이나 그 외의 여러 사람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러나 그때 사람에게 보이신 그분의 몸은 육체가 아니셨을 것이다. 천사도 사람에게 보일 때에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사람의 육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실 때는 육체가 몸을 가지신 사람이 되어 탄생하신 것이다. 그의 몸은 우리의 몸과 꼭 같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이 사람이 되신 사람이셨다. 요한은 이런 예수님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그는 물과 피로 나타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요일5:6). 이 말은 실제적인 육체를 가지신 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므로 우리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셨다. 곧 임마누엘이라는 말의 실상이셨다.
교훈: 초기의 제자들은 그들이 직접 목격하였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삶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놀라운 신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요일(4월 14일) 대립되는 주장이 생겨남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으로 확산되고 세대가 바뀌자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을 제기했다. 같은 육체에 어떻게 신성과 인성이 공존할 수 있는가? 신성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 존재로 될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에 있으셨는가?
1세기에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하나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더 강조하고, 다른 하나는 그분의 신성을 더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 중에 에비온파(Ebionites)가 있었는데, 이들은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초기 그리스도인들로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은 침례를 받으실 때였으며 그때로부터 영원하신 그리스도와 결합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분은 신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인간을 구원하실 수 없으셨고 다만 그들을 순종으로 이끄셨다고 주장했다. 그 후 3세기 말에 시작된 아리우스파(Arians)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어느 정도 수용하였으나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 of Nicea)에서 강하게 정죄되었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 중에 그노시스파(Gnostics)가 있는데, 이들은 영(spirit)은 선하고 물질(matter), 특히 우리의 육체는 악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 요한은 그노시스파에 대해 어떻게 말했습니까?(요일 4:1-3)
요일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답: 그들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이다.
예수님이 누구이셨는가에 대한 논쟁은 2세기부터 6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그분의 신성에 관한 논쟁으로 시작되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는가? 그렇다면 그분과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관계에 계셨는가?’ 마침내 논쟁은 그분의 인성에 관한 주제로 옮겨갔다. ‘어떻게 신성과 인성이 한 몸에 결합될 수 있는가?’ 진술과 반박, 선언과 반론, 비난과 정죄와 출교가 이어졌고, 새로운 주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놀랍게도 이러한 소동과 논쟁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본성과 신원에 관한 성경적 정통이 궁극적으로 우세하였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이 잠시 동안 그가 입으신 인성으로 가리워졌지만 그가 사람이 되셨을 때도 하나님이시기를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인성은 신성을 대신하신 것이 아니었고 신성도 인성을 대신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경건의 비밀이다. 신성과 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밀접하게 그리고 나눌 수 없는 하나가 되었지만 그 두 속성은 확연히 구별되는 개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비록 자신을 낮추사 사람이 되셨지만 여전히 삼위 하나님 중 한 분이셨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27)
<부가설명>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이해할 때에 성경 자체가 사용한 낱말들을 성경이 사용하는 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 되심을 논할 때에 인성(人性)이라는 말을 전매특허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결코 한 번도 인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라는 말, 육신이라는 말, 혈육이라는 말 등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이 말들은 학자들이 사용하는 인성이라는 말과 때로는 같은 뜻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한 것 같다. 우리가 성경이 사용한 또는 육신 육체라는 말인 “살크스”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분명히 이해할 때 예수님의 인성 문제에 대한 바른 이해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의 성경 용법은 무시하고 일반적인 용법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오해가 생긴다. 예수님은 사람의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분명히 확실한 사람이시지만 사람이신 그대로 또한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성경이 계시한 것을 믿을 수는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인 것이다.
교훈: 2세기에서 6세기까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과 그분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나 결국 성경적 정통이 우세하였다.
화요일(4월 15일) 우리의 인성을 취하심 (갈 4:4)
예수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비범한 분으로 여겼으나 여전히 그분을 한 인간으로 알고 있었다.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로 달려가 우물가에서 만났던 낯선 유대인에 관해 사람들에게 전파했을 때 “이 사람을 와 보라”(요 4:29)고 한 것은 그녀의 꾸밈없는 표현이었다. 그녀의 말은 예수님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대변한 것이었다. 그분께서 폭풍을 잠잠케 하신 후에도 그분의 가장 가까운 이들은 “이 어떠한 사람”인가?(마 8:27)하고 외쳤던 것이다.
1. 다음 구절들은 예수께서 참으로 혈육을 지닌 인간이셨음을 어떻게 입증해 줍니까?
마 8:24 예수께서는 피곤하여 주무셨고
(마 8:24), (마 21:18), (요 4:5-6), (요 4:7, 19:28), 그리고 그분께서는 (요 11:33-35).
마 21: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배고픔을 느끼셨으며
요 4:5-6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 시쯤 되었더라.
행로에 피곤함을 느끼셨고
요 4:7, 19:28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목마름을 아셨다
요 11:33-35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신 동안 종종 신성을 자유로이 사용하실 수 있는 상황에 놓이셨다. 그분께서는 여전히 신성을 지니고 계셨으며, 언제든지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사용하실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직면하신 시험의 주요한 부분은, 자신이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모든 점들에 대해 성경이 세세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성경은 예수님의 본성 중 인간적인 요소와 신적인 요소가 정확히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결합된 분이셨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성경은 그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완전하게 결합되었는지에 대해 전문용어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여자에게서 나신 그 아들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라(갈 4:4)는 사실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취한 것처럼 믿게 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인성을 취하셨다”(엘렌 G. 화잇, 그분을 높이라, 74).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
“그리스도는 참으로 인간이셨다. 이것은 그분의 사명의 일부였다. 그분이 인간적 본성의 특성을 필히 소유하셔야 했기 때문에 그분은 ‘혈육’(히 2:14)이셨다. ‘범사에’ 그리스도는 그분의 동료 인간들과 ‘같이’ 되셨다(히 2:17). 그분의 인간적 본성은 배고픔, 목마름, 피곤함, 걱정 등(마 4:2, 요 19:28, 4:6, 마 26:21, 8:24 참조) 다른 인간들과 같은 심리적, 육체적 감수성을 갖고 계셨다.
그분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실 때 동정, 의로운 분노, 슬픔을 나타내셨다(마 9:36, 막 3:5). 때때로 그분은 걱정과 슬픔을 느끼셨으며 울기까지 하셨다(마 26:38, 요 12:27, 11:33, 35, 눅 19:41). 그분은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으며 한 번은 피땀이 나도록 기도하셨다(히 5:7, 눅 22:44). 그분의 기도의 생애는 그분께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셨음을 나타낸다(마 26:39-44, 막 1:35, 6:46, 눅 5:16, 6:12)”(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67-68).
<부가설명> 예수님은 말 그대로 100% 사람이셨다. 동시에 그는 100% 하나님이시다. 이런 사실은 전능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시기로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되셨는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 우리가 모른다고 사실이 사실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예수님의 몸은 채찍에 맞고 못에 찔릴 때 피를 흘리셨다. 그는 고통을 느끼신 것이 확실하다. 사람인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할 때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그분에게도 나타났다. 그래서 그분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분이 우리와 같은 죄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이 그분에게 소위 말하는 죄성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 아니다. 성경에는 죄성이라는 말도 없다. 죄와 죄인은 있어도 죄성은 있으나 죄는 없는 사람에 대한 계시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아담은 사람이었으나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죄인이 아니었다. 죄인이 된 사람은 스스로 선을 행한다고 해도 그 선이 죄를 죄 아닌 것이 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죄가 없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인이 된다. 예수님은 사람이었으나 죄가 없었다(히4:15; 요일3:5). 또 죄를 짓지도 않으셨다(벧전2:22). 그러므로 그에게는 죄가 없다. 죄성은 있는데 죄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냥 죄가 없으신 것이다. 죄성은 있으나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설명은 인간적 이해를 예수님에게 갖다 붙인 것일 뿐이다. 예수님의 육체나 우리의 육체는 완전히 동일하다. 성경은 예수님의 육신도 “살크스”라 하고 우리의 육신도 “살크스”라고 한다. 아담이 창조되었을 당시에 그는 “살크스” 히브리어로는 “바사르”였다(창2:24, 마19:5, 엡5:31). 또 예수께서 부활하신 몸도 “살크스”(눅24:39)이다. 그러므로 “살크스”에 죄성이 있다는 주장은 전혀 성경적인 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가 예수님을 그렇게 이해하고 싶으니까 억지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만일 “살크스”에 죄성이 있다고 하면, 예수께서 요한복음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살크스)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살크스)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살크스)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는 말씀은 참으로 이상한 말이 된다. 예수님의 죄성이 있는 살(살크스)을 먹는데 그것이 생명이 된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적으로 이치에 맞은 말이 아니다. 살크스, 곧 육신에 죄성이 있다는 말은 성경적이 아니다. 지금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하늘 지성소에서 봉사하시는 예수님은 인자이시다. 그분은 부활하신 그 “살크스”로 승천하신 것이다. 참으로 사람이시며 동시에 참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인하여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교훈: 신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신 동안 참으로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결코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수요일(4월 16일)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심(히 4:15-16)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있었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대답을 찾기 위해 순전히 지성적인 노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철학적, 과학적, 사회학적인 연구를 함으로써 하나의 해답을 이끌어 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우리 마음대로 대답을 꾸며내서도 안 된다. 가장 손쉽고 빠른 길은 이 점에 대해 성경 자체가 보여주는 바를 주의 깊이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 이 문제에 관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준 몇 가지 사실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예수님을 하늘 성소에서의 대제사장으로 직접 묘사한 히브리서의 기록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1. 다음 구절들은 예수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특별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분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구절들은 그분의 낮아지심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들이 있습니까?
히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
히 2: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인간의 혈육에 속하시어 마귀의 종 된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
히 2:16-17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시고 대제사장으로서 죄인을 구속하심
히 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심
히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시험 받으심
히 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께서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시고 온전하게 되심
각 구절은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고난당하신 하나하나의 이유들을 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이 구절들을 통하여, 예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를 향해 팔을 넓게 펴시며, 이 땅에서의 생애를 통해 친히 우리의 곤경을 아시고, 우리의 아픔을 느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무한한 기쁨을 얻게 된다. 이보다 더 자비로운 구주를, 이보다 더 동정심이 많으신 대제사장을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이 모든 일을 겪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무한한 기쁨과 감사가 우리의 가슴에서 솟아난다.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친히 느끼심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슬픔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가?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주님께서도 당하셨다. 우리 친구들 중에 더러는 인간적인 비애와 육체적인 고통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저들은 병을 앓아보지 않았으므로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의 기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연약함에 대한 기분을 친히 느끼실 수 있다”(가려 뽑은 기별, 2권, 237).
<부가설명>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 되심을 논할 때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는 인성이라는 말을 삼가서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성경이 계시하는 대로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이다. 사람이 되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분을 사람이라고 분명히 계시한다(딤전2:5). 그러나 그는 죄가 없는 사람이셨으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셨다. 아담은 죄가 없는 사람이었으나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사람이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야 하는 많은 이유들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일일이 설명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만 죄가 없으신 사람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것이다. 천사나 신으로서는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어도 그것은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죄를 처리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얼만 엄청난 사랑이신가!
교훈: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히 4:16).
목요일(4월 17일) 영원한 결속 (딤전 2:5)
우리 자신에 비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그분의 성육신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지상생애를 마치신 후에 우리와의 동질성을 버리시고 온전히 그분 본래의 형상대로 되돌아가셨다 할지라도 우리는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께서 인성의 흔적을 지니신 채 영원히 우리와의 결속을 유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감동을 자아낸다!
1. 예수님과 우리의 영원한 결속에 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눅 24:36-43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께서는 거룩한 육신으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행 1:10-11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신 그 모습 그대로 오실 것임
행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믿음의 증거가 됨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죄의 파멸에서 회복하시는 것 이상의 일을 성취하셨다. 하나님과 인간을 영원히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결코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때보다 더욱 밀접하게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구주께서는 우리 인성을 취하심으로 결단코 끊어지지 않을 줄로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붙들어 매셨다. 그분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우리와 연결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속죄제물로서 죽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타락한 인류를 위해 아들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변치 않는 평화의 경륜(經綸)을 우리에게 보증하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사 우리 인간 가족의 한 사람이 되게 하시되 그 인성을 영원토록 보유하게 하셨다”(시대의 소망, 25). “그리스도께서는 성화되고 거룩한 인성을 지니신 채 하늘로 승천하셨다. 하늘 궁정으로 들어가실 때 그분은 인성을 갖고 들어가셨으며 모든 인간을 구속하신 분으로 영세무궁토록 인성을 입고 계실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54)
교훈: 예수께서 우리의 인성을 취하신 사실만으로도 감사한데, 그분께서 영원토록 인성을 지니신 채 우리와의 결속을 유지하신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격스럽다.
금요일(4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수님의 위격에 관한 수세기 동안의 논쟁 끝에 칼케돈 종교회의(Council of Chalcedon, A.D. 451)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이 회의는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시라는 사실에 대해 동의하고 선포한 것이다. “우리는 한 목소리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고 동등하시며, 신격에 있어 동등하실 뿐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시므로, 그분은 참으로 하나님이시요 참으로 인간이시다. 우리와 같이 인간으로 계셨으며 무죄하신 것 외에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으시다”(인용, 유스토 L. 곤살레스, 기독교 사상사, 1권, 애빙던 출판사, 1970년, 390). 이 칼케돈 선언의 의미를 재림교회의 관점에서 평가한 내용을 참조하려면 로이 애덤스(Roy Adams)의 책, 그리스도의 본성(The Nature of Christ,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 1994년, 57-72)을 보라.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묵상할 때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 앞에 할 말을 잃고 만다. 그 주제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움이 증폭된다. 베들레헴 구유에 누인 무기력한 아기와 그분의 신성 사이에는 얼마나 넓은 간격이 있는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힘없는 아기 사이의 거리를 우리가 어찌 측량할 수 있으랴? 신성의 충만함 가운데 계셨던 우주의 창조주께서 구유에 누운 연약한 아기로 탄생하셨다. 어떤 천사보다 더 높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존엄과 영광을 가지셨던 분이 인성을 옷 입으셨다. 신성과 인성은 신비롭게 결합되었으며, 인간과 하나님은 하나가 되었다. 그 결합 안에서 우리 타락한 인류는 소망을 발견한다”(엘렌 G. 화잇, 영문시조, 1896년 7월 30일자).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한편 우리가 지나치게 파고들지 말아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시므로 그는 우리를 속량하신 것이다. 그분의 사람 되신 사실이 죄인과 같은 성질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2. 이번 주 교과의 내용을 전도하는 일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가 현대인에게 어떤 감명을 줍니까?
*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친히 체험하시고 동정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사정을 일일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일은 전도에 효과가 있는 말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나 한 주일 동안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성경에는 인성이라는 말도 없고 죄성이라는 말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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