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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그분의 긴밀한 동행(5/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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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5.13 15:04 조회수 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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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2분)

기억절: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연구범위: 마 4:4, 눅 2:40, 6:12, 요 4:34, 17장, 요일 2:6.

안식일 오후
재림교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교회나 교인들이 좋은 일로 언론에 보도되거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러나 만일 어느 날 갑자기 언론 매체의 머리기사에 우리를 나쁜 사람으로, 사회의 파괴자와 선동자로 낙인찍는 기사가 실린 것을 본다면 어떠하겠는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확신과 신뢰만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께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분께서 그 당시에 백성과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비방을 당하시고 귀신들렸다는 소리를 들으시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는 아는가?
마지막에 가서는 그분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거칠게 다뤄지셨다. “예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막 15:17-20).
무엇이 그분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신체적 및 정신적 학대를 끝까지 견디도록 힘을 주었는가? 온 세상이 그분을 대적하고 한 가닥의 인간적 도움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확고부동하고 침착하게 서 있을 수 있게 하였는가?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교통하심으로 그분과의 긴밀한 동행을 함으로써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다. 이번 주에 이 주제를 공부해 보자.

핵심본문: 살전 5:17

학습 목표
깨닫기: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의 능력은 하늘 아버지와의 긴밀한 동행에서 왔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매일 기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바치고자 열망하는 마음을 갖는다.
행하기: 하나님과 밀접한 연결을 맺기 위해 노력한다.

교과 개요
I. 굳건한 기초
        A. 예수님의 가정교육은 그분께 견고한 영적 기초를 놓아주었음
        B.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셨음
        C. 예수께서 하늘 아버지와 밀접한 연결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분의 공생애에는 능력과 안정이 주어졌음

II. 우리와 같이 시험받으심
        A.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에 예수께서 대응하신 모습은 그분이 하늘 아버지와 변함없이 교통하고 계셨음을 증명해 줌
        B. 예수께서 육신으로 지상에 계실 때에 우리가 겪는 모든 경험을 겪으셨으나 죄에 굴복하지는 않으심

III. 생애의 목적
        A. 예수께서는 지상생애 동안 많은 시간을 홀로 기도하는 데 바치심
        B. 예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당신의 사명을 항상 인식하셨으며 이것이 매일의 삶의 목적이었음
        C. 하늘 아버지와 끊임없이 교통하신 예수님의 본을 따르려면, 우리도 주님을 위한 봉사와 그분과의 관계에 있어서 변함이 없어야 함

요점: 하늘 아버지께 온전히 의존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주님께 온전히 의존해야 한다. 우리도 지속적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짐으로써 예수님처럼 그분과 긴밀한 연결을 가질 수 있다.

일요일(5월 18일) 초기의 생애(눅 2:40)

이미 앞에서 강조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초기 생애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분의 탄생과 열두 살 때 성전을 방문한 것(참조 눅 2장)이 그분의 초년기에 대한 기록의 거의 전부이다. 그분이 ‘삼십 세쯤’ 되시어(참조 눅 3:21-23)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당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기까지 다른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는 내용에 근거하여 그분의 초기 생애를 살펴보는 것은 가능하며, 그분의 생애를 지탱해 준 영적 기초에 대해 적절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더라도 예수께서 당신의 공생애 동안에 보이신 견실함과 강인함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피상적인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 하나님과의 긴밀한 동행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1. 예수께서 성전을 방문하신 이야기를 다시 읽으십시오(눅 2:39-52). 어린 예수께서 자라나실 때에 어떤 영적인 기초를 가지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까? 또한 그분의 부모는 그분의 성장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였습니까?
눅2:39-52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답: 예수께서 선생들 중에 앉아서 듣기도 묻기도 하고 하는데 예수의 말을 듣는 자들이 다 그 지혜에 놀랐다. 예수는 이렇게 지혜와 지식이 출중한 상태로 성장하였으며 근심하며 찾았다는 그 부모의 말에 의하여 생각하면 유년기의 예수님에게 부모들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사는 다른 탄생 기사와 달리, 예수님의 30세 이전까지의 생애에 관한 것이다. 성경학자들은 복음서의 대부분 자료들이 그분의 생애 마지막 주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전기(傳記)가 아닌 수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이 사실은 그분의 신비로운 탄생(성육신)과 의미심장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중대한 두 사건에 조명을 비추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사건 사이에서 그분의 무아적인 봉사와 희생의 삶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분께서 공생애 동안에 보이신 집중적인 헌신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이고 개인적인 긴밀한 관계의 결과라고 추정할 수 있다.

소년 예수께서 영적인 기초를 쌓으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마리아에게 당신의 아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 친히 가르쳐 주셨다. 마리아는 성경말씀을 가지고 예수님께 가르쳤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성경말씀을 혼자서 읽고 연구하고 배우셨다.
예수님은 또한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피조물들을 연구하기를 좋아하셨다. 그와 같은 천연계의 책에서 그분께서는 나무들과 식물들과 동물들과 태양과 별들을 이해하셨다.
날마다 그분께서는 그것들을 관찰하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하여 교훈을 얻고자 애쓰고,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노력하셨다”(인류의 빛, 30).
“그의 가장 행복한 시간은 홀로 천연계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일하던 곳에서 떠나서 들로 가시고 푸른 골짜기로 가서 명상하고 또는 산비탈이나 삼림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셨다. 이른 아침에 그는 흔히 외딴 곳에서 성경을 상고하거나 기도하셨다. 그는 이 조용한 시간들을 가지신 후에 집에 돌아가서 다시 집안일을 돌보며 인내성 있는 수고의 모본을 보이셨다”(시대의 소망, 89).

<부가설명> 예수님의 초기 생애는 탄생과 12세 때 성전에 올라가셨던 사건 외에 성경에 기록이 생략되어 있다. 성경의 기록은 결과 중심의 기록이며, 그런 결과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 중심이다. 이미 결과지은 일의 원인을 별로 기록하지 않는다. 그 원인을 반드시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기록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결과와 그 해결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생애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2:51,52)는 말씀으로 자세히 기록하지 않은 모든 부분을 요약하였다. 그는 부모를 순종하며 받들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라고 하였다(막6:3).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목수인 요셉을 따라 가정에서 목수 일을 하신 것이 확실하다. 목수일을 하시면서 가정의 생활을 주도하셨다. 더구나 사람들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라고 말한 것에 미루어 요셉은 일찍 죽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남편이 죽고 없는 가정에서 생계를 위하여 예수는 목수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공생애를 위한 준비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의 공중봉사가 완전했던 것처럼 가정에서 보낸 모든 시간도 완전한 삶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교훈: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통을 나누시기 위해 한적한 천연계를 찾아가셨으며, 그곳에서 행복한 명상과 기도의 시간을 보내셨다.

월요일(5월 19일) 그분의 사역이 시작될 때(마 4:4)

예수께서는 침례 받으신 후 유다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기도하시며 당신의 사명을 깊이 숙고하셨다. 우리 가운데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을 가져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그분의 영적인 집중력, 즉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의 집중력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광야로 나가신 뚜렷한 이유는 시험받으시기 위함이었는데(마 4:1, 참조 눅 4:2), 시험하는 자에게는 더없이 유리한 기회였던 것이다. 사단은 구주께서 극도로 배고프신 것을 이용하여 그분과 하늘 아버지와의 사이를 분열시키고, 하나님을 굳게 잡은 예수님의 손을 비틀며, 그 긴밀한 동행을 깨트리고자 하였다.

1. 다음 구절들에 나타난 예수님의 대답은 그분이 하나님과 긴밀하게 동행한 사실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여기서 어떤 교훈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마 4:3-10, 눅 4:3-12).
마4:3-10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눅4:3-12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답: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 4:1-2). 예수께서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셨으며,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에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승리하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검으로 사단의 모든 시험을 물리쳐야겠다.

우리는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위대한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예수님이 차지하신 중대한 위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분은 하나님의 흠 없는 아들이셨다. 그분께서는 인성을 취하시고 죄로 가득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루 이틀이 아닌 당신의 일생 동안 완전한 생애를 사셔야만 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같이 고난 받으셨고, 시험을 당하셨으나 순결함을 유지하셨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33년 동안 컴퓨터를 가지고 기사를 쓰고, 숙제를 하고, 답장을 쓰면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삭제’나 ‘실행취소’의 자판을 누르지 않는 것과 같다. 혹은 수학이나 물리학 과목을 배우면서 한 문제도 틀리지 않는 것과 같고, 33년 동안 피아노를 치면서 단 한 번도 잘못된 건반을 누르지 않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몫이었다. 그분은 단지 이타적인 삶의 모본을 보여주실 뿐 아니라, 죄 없는 분으로서 이 지상에 구원을 가져오셔야만 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셨으며, 우연히 승리를 거두신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단 하나의 실수만으로도 모든 것은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그가 원하는 동반자와 같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경의 각 페이지에서 그는 인류의 가장 고상하고 훌륭한 사람들과 더불어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영원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 이러한 사람은 세상에 있으나 하늘의 분위기 속에서 살며, 슬픔과 유혹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성결을 사모하는 마음을 나눠 주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더욱 밀접하게 교제를 나누면서 마치 옛적에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 사람들처럼 더욱 더 영원한 세계에 가까이 이르러 살다가 하늘 문이 열릴 때에 그리로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렘 33:3)

<부가설명> 예수님은 침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 가셔서 당신이 이루셔야 할 구원의 사업을 숙고하셨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확실히 하셔야 하였다. 성령은 그런 것을 숙고하도록 예수를 광야로 이끄셨다. 이사야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 장미처럼 필 것이라고 하였다. 광야는 죄의 세상을 표상한다. 이스라엘이 40일동안 광야 생활을 하였다. 예수님은 바로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한다. 예수께서 애굽에 피난길에서 돌아오시는 것을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사실의 영적 성취라고 마태는 기록하였다(마2:15, 호11:1). 그처럼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광야 생활한 것의 영적 성취임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많은 시험을 겪었다. 그들은 많이 실패하였다. 그러나 영적으로 그 일을 이루시는 주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셨다. 그는 광야에서 광야 같은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어서 광야와 메마른 땅에 장미가 피도록 하셔야 하였다. 그래서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이루실 구원의 사업을 깊이 생각하신 것이다. 사단이 이 때를 이용하여 접근하고 가장 연약하여지신 때에 바로 그 약점을 이용하여 시험하였으나 예수는 승리하셨다. 오직 말씀으로 승리하셨다.

교훈: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과 집중적인 교통을 하시기 위해 광야로 나가 40일간 금식 기도를 하셨다. 그분의 승리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었다.

화요일(5월 20일) 그분의 기도생활(눅 6:12)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의 생애였다. 그분께서는 특별히 집중적인 기도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심으로 당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며, 권능으로 충만하여 돌아오셨다(참조 눅 4:14). 당신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 하늘과 산 연결을 맺지 않은 채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것은 그분께 부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분께서는 계속적인 하나님과의 교통의 생애를 사셨지만, 주요한 사건이나 발전의 단계마다 특별한 탄원의 시간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1. 다음 구절들은 예수께서 매우 중요하거나 긴박하고 위험한 순간에 직면하실 때에 안내와 지시와 능력을 받으시기 위해 하나님께 의존하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예수께서 어떤 경우에 특별한 기도를 드리셨는지 다음 구절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마 14:23-3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물 위로 걸으시는 이적을 행하시기 전에 홀로 산에서 기도하심
눅 6:12-16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열두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산에서 밤새 기도하심
요 17:1-18:3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2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예수께서 체포되시기 전에 동산에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심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기도하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는 마가복음 1:35의 기록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 방식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분은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일과를 시작하셨다. 그러나 특별한 필요가 있을 때에는 기도의 시간을 충분히 늘리셨다. 누가복음 6:12에는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무리 가운데서 택하시기에 앞서 밤새도록 산에서 기도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다(참조 눅 6:13). 그분께서는 호수 위를 걸으시는 놀라운 사건이 있기 전에도 당신의 아버지와 긴밀하게 교통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그리고 수난주간에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눈앞에 두시고 당신의 제자들과 마지막 때까지의 당신의 백성을 위해 간절한 탄원의 기도를 올리셨다.

깨어 기도해야 할 중요한 시간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나, 그분은 제자들에게 오사 그들이 잠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셨다. 그분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4:40-41). 가장 중요한 시간 즉 예수께서 그들에게 함께 깨어 있기를 특별히 요청하셨던 그 시간에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심한 투쟁과 두려운 시험이 그들 앞에 놓여 있음을 그분은 아셨다. 그분은 그들을 당신에게 힘이 되게 하고 그 날 밤 그들이 목격한 사건들과 그들이 받은 교훈이 그들의 기억 속에 지워질 수 없는 기억으로 새겨지게 하기 위하여 데리고 가셨다. 그들의 믿음이 바로 그들 앞에 있는 시험으로 말미암아 상실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을 대항할 힘을 얻기 위하여 깨어 기도할 필요가 있었다”(증언보감, 1권, 223).

<부가설명> 예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분이 세상에 사람으로 사시는 동안 기도를 쉬지 않으셨다. 그분의 모든 활동이 기도 자체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분은 특별한 시간을 내어서 아버지 하나님과 필요한 대화를 나누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늘의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다. 하늘의 생명은 하늘 생명은 하늘을 호흡해야 한다. 기도는 바로 하늘을 호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특별한 시간을 내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신다. 그것을 친히 공급하신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경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 이유는 기도함으로 우리의 진정한 필요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교훈: 예수께서는 평소에도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통하셨으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더욱 집중적인 기도로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으셨다.

수요일(5월 21일) 사명에의 집중성(요 4:34)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이렇게 노래했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둘러싼 숲의 어두움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사셨는데, 그 숲은 항상 깊었을 뿐 아름답지는 않았다. 시인과 같이 그분은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셨고,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일들을 행하셨다. 그분께서는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고 하셨다. 이와 같은 사명의 집중성을 우리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가련한 영혼 앞에서 그분께서는 배고픔과 목마름을 잊어버리시고 자신의 사명에 온전히 열중하셨다.
그 여인은 마침내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자신이 만난 분에 대하여 전하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돌아왔을 때 예수께서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신 채 이 새로운 접촉의 성공을 기원하고 계셨다.

1. 제자들이 잡수시라고 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요 4:32-34).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요4:32-34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 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답: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충족된다는 것을 드러내신 말씀이다. 양식은 생명을 유지하며 힘을 얻는 방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유지되고 힘을 얻었다. 그것이 예수님의 양식이다. 그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2. 다음 구절은 당신의 사명을 향한 예수님의 집중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요 9:1-12, 35-39, 12:27-36).
요9:1-12, 35-39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35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요12:27-36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답: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27, 32).

제자들이 주님을 만나러 온 헬라인들의 요청을 가지고 왔을 때(요 12:20-22), 그것은 팔레스틴 본토를 넘어 세계 곳곳을 향해 하나님의 왕국의 기별을 전하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그분의 가장 중요한 사명인 모든 민족을 위한 속죄의 사역과 맞지 않음을 예수께서는 아셨다. 그분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한다(24절)는 강력한 말씀을 통해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이 치러야 할 희생의 원칙을 말씀하셨다.

사명에 집중하신 예수님
“예수께서는 그의 지상 생애 동안에 언제나 열심으로 일하셨다. 그는 많은 것을 기대하셨으므로 많은 것을 시도하셨다. 공생애에 들어가신 후에 그는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고 말씀하셨다. …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과단성과 정력, 품성의 견고함과 능력이 그가 견디신 것과 같은 훈련을 통하여 우리에게서도 계발되어야 한다”(시대의 소망, 72).

<부가설명> 정말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 곧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 사업을 위하여 매진(邁進)하셨다. 뒤돌아볼 여유 없이 오직 그 일만을 위하여 달리셨다. 사단의 유혹과 깨닫지 못한 동족의 위협과 기타 모든 위협을 물리치시고 마침내 사명을 완수하셨다. 오직 한 가지 사명을 깨달은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소유하려는 사람이 아닌데, 이중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명에 집중하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것을 위하여 영원히 있을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지혜가 아닌데, 우리는 그 영원히 있는 것을 집중적으로 보는 안목이 모자라는 것 같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영원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할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식적으로는 아는데, 실천적으로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주께서 우리의 실생활이 주님간이 되도록 압도하는 은혜로 이끌어주셨으면 좋겠다.

교훈: 예수께서는 인류의 구속을 위한 당신의 사명에 온전히 집중하셨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여야 한다.

목요일(5월 22일) 우리와 하나님의 동행(요일 2:6)

1. 위의 본문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우리가 따라야 할 어떤 원칙이 나타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우리가 다 행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이 구절을 우리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요일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답: <부가설명>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될 때에 일어나는 결과이다. 바울은 이것은 갈라디아 2:20에 고백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참으로 유명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 되었느냐 하는 데 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내 안에서 당신의 삶을 사실 것이기 때문에 그의 행하시는 대로 행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 이론상으로는 이렇다. 이것이 실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개념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 개념이 맨 처음 성경에 나오는 곳은 아마도 창세기 5장일 것이다(22, 24절). 특히 24절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동행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지속성이 강조된 말로 항상 일어나고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에녹이 어떤 실수와 투쟁을 했든 간에 그는 끊임없이 주님과 동행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은 동행의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일들로 인해 너무나 쉽게 이러한 동행을 빼앗긴다.

2. 우리가 처한 문화적 환경에서 볼 때, 하나님과의 동행을 방해할 수 있는 것들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너무 한가하거나, 너무 분주하거나, 혹은 단지 생존을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까? 먼저 문제점을 파악한 다음, 나를 영적으로 병들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제적인 단계들을 정리해 보십시오.

답: 예수께서 지적하셨듯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마 13:22)으로 인해 말씀을 실행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깨달은 만큼 실천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요구된다.

마태복음 13:22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 보라. 그분께서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가 나누고 있는 이야기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러한 때를 내다보시고 경고하시면서, 그 어떤 것들도 단지 변명에 불과함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 매일 매 순간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으로부터 떠나게 함으로써 사단을 기쁘게 할 필요가 없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비결
“에녹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면(암 3:3)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동행은 3백 년간 계속되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함을 안다면, 훨씬 더 열렬하고 헌신적이 되지 않을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에녹의 믿음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지고 그의 사랑은 더 열렬하게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85).

<부가설명>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5:19)고 말씀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요12:50).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이다. 성경 말씀의 원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생리이다. 그렇게 살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그와 같이 행하는 삶의 모습이다. 말씀이 전적으로 나를 주장하게 하라.

교훈: 오늘날과 같이 사단의 유혹이 강렬한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최우선으로 삼고 우리의 시선을 그분께 고정시켜야 한다.

금요일(5월 2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명상하는 데에 매일 한 시간을 바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한 조목 한 조목씩 연구하고, 각 장면 특히 그분의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확실히 머리 속에 그릴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를 위한 그분의 크신 희생을 깊이 생각할 때에 그분께 대한 우리의 신뢰심은 더욱 굳어질 것이며 우리의 사랑은 격발되어 더욱 그리스도의 정신에 깊이 물들게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83).
“사단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유년 시절의 완전한 발달과 흠 없는 장년 시절과 거룩한 봉사와 흠 없는 제물이 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패배하였고, 예수님을 죄에 빠뜨릴 수도 없었다. 광야에서부터 갈바리에 이르기까지 사단의 분노의 폭풍우가 그분께 휘몰아쳤지만, 그 폭풍우가 더욱 사정없이 후려치면 칠수록 하나님의 아들은 더욱 단단히 당신의 아버지의 팔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피 묻은 길을 힘 있게 밀고 나아가셨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3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주님과의 동행을 방해하는 것들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각자 자신의 목록을 작성한 다음 교과토의 시간에 나누어 봅시다. 다른 반원들과 공통점은 무엇이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을까요? 서로 도와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아보십시오.
* 이것은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가장 방해되는 일들은 포괄적으로 말하면 지체 가운데 있는 세상적 욕망이다. 이것을 그리스도 앞에 쏟아버리자.

2.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자주 산에서 시간을 보내시고, 산기슭에서 가르치신 사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변화산에 오르신 일화도 소개되어 있습니다(마 17:1-9). 예수께서 산에 오르신 것과 그분께서 매일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신 것 사이에는 어떤 중요한 연결이 있습니까? 우리는 비록 분주한 산 아래에 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더 높은 영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요?
* 예수께서는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과 대면하기 위하여 시간을 마련하셨다. 우리도 세상의 소음이 차단된 곳에서 주님과 독대하고 마음을 열고 세상적 욕망에서 영원한 욕망으로 욕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도록 간구해야 할 것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믿음으로 사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께서 힘을 주시고 주장하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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