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선교의 기둥이 된 사도 베드로(8/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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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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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凡人)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행 4:13).
연구범위: 시 18:2, 31, 95:1, 마 16:18, 행 5:15, 10:2-5, 28-43, 11:19-26, 갈 2:11-14.
중심 사상: 베드로는 변화함을 받은 후에 세상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선교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배워야 할 교훈들이 있었다.
안식일 오후
지난주에 우리는 베드로의 놀라운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그가 어떻게 불안정한 제자에서 교회의 기둥으로 변화되었는지에 대해 배웠다. 베드로가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후에 주님을 섬기는 일에서 떠나 성경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대로, 그가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돌이킨 후에 자신의 삶을 오직 하나의 사명, 즉 예수님의 양 무리(우리 안과 우리 밖에 있는 양 무리)를 영적으로 먹이는 일에 바쳤다.
지난주에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위대한 선교사로 만드시기 위해 그의 삶에 역사하신 일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주에 우리는 그가 사명을 수행한 결과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베드로가 초기교회에서 감당했던 중심적인 역할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경험을 추적할 것이다.
베드로의 성공한 이야기뿐 아니라 실패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 자신을 위한 힘 있는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핵심본문: 행 4:13
학습 목표
깨닫기: 베드로가 초기교회의 주요한 지도자로 발전하기까지의 역사와 과정을 살펴본다.
느끼기: 베드로의 열정은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본보기임을 확인한다.
행하기: 교회가 가져야 할 ‘더 넓은 비전’의 의미를 깨닫고 그 비전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교과 개요
I. 지도자로서의 베드로(마 16:18)
A. 이 구절에 대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견해를 확인해 본다. (반원들이 이 구절의 의미를 명확히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베드로는 누구이고, 교회를 세우는 자는 누구이며, ‘반석’은 누구이고, 음부의 권세는 무엇인가?
B. 월요일 교과에 나오는 ‘베드로의 그림자’는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 교회 안에서 ‘베드로의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는 무엇이 있는가?
II. 유대 민족주의자인 베드로(갈 2:11-14)
A. 가령 교과반원들이 안디옥교회 직원회의 위원들이라면, 베드로와 바울이 이 문제(갈 2:11-14)로 갈등할 때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III. 더 넓은 비전의 소유자인 베드로(행 1:8)
A. 베드로가 더 넓은 비전을 가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B. 교과 반원들은 교회의 더 넓은 비전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는가?
요점: 베드로는 교회의 주요한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예수께서 자신을 교회의 선교적 사명으로 이끄시도록 자신을 내어맡겼으며, 자신이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신념을 내어던져야 하는 어려움도 감수하였다.
일요일(8월 24일) 베드로에게 위임된 사명: 집중 탐구(마 16:18)
마태복음 16:18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구절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이 구절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기독교 역사가 변천되어 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예수께서 당신의 교회를 베드로 위에 세우셨다고 해석하고,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불러왔으며, 베드로를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반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동일한 예수님의 말씀을,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즉 나 자신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고 해석한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성경상의 증거는 후자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강력히 뒷받침해 준다.
1. 다음 구절들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은 예수께서 여기에 말씀하신 반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신 32:4, 시 18:2, 31, 95:1, 고전 10:4, 엡 2:20, 벧전 2:6).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신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시18:2, 31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
시95: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엡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벧전2: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답: 이 성경절들은 한결같이 주님을 반석과 모퉁이 돌로 묘사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시 18:31)라고 했고, 사도 바울도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고 했으며, 사도 베드로 자신도 예수님을 가리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벧전 2:6)이라고 했다.
베드로가 어떤 특권을 누렸든지, 그가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그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든지 간에 하나님의 교회는 죄 많은 인간을 기초로 세워진 적이 없다. 예수님 자신이 반석이시며, 그분이 교회의 기초이시다. 베드로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이 기초 즉 반석이신 분 위에 놓일 때에만 안전하며, 우리 주님의 말씀과 명령에 믿음으로 굴복하고 순종할 때(참조 마 7:24)에만 평안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미래를 알고 계셨고, 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을 알고 계셨으나, 그분께서는 죄인이며 타락한 인간에 불과한 그를 당신의 교회의 초석으로 삼지 않으신 것이 분명하다.
교회의 참된 기초
“예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라고 하는 말은 돌, 곧 ‘굴러다니는 돌’을 뜻한다. 베드로는 교회의 터가 세워진 반석이 아니었다. 그가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주님을 부인하였을 때에 음부의 권세는 그를 이겼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분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다”(시대의 소망, 412).
<부가설명> 예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은 그가 반석이신 예수님을 올바르게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면 그는 반석이신 예수님의 성질을 부여받는 돌이 된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돌이라는 말이다. 반석도 돌이요, 조약돌도 돌이다. 돌이라는 성질이 동일하다. 예수님을 참으로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같은 성질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베드로 자신도 이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4,5). 우리가 산 돌 되시는 예수님께 나아오면 그 안에서 우리가 산 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확대하여 증거하였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산 돌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다니엘서 2장에 뜨인 돌이 세우는 돌 나라와 돌 나라의 백성들이다. 곧 천국 백성들이 되는 것이다.
교훈: 베드로는 초기교회의 훌륭한 지도자요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의 기초는 베드로가 아니라 반석이신 예수님이시다.
월요일(8월 25일) 베드로의 그림자(행 5:15)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자마자 베드로는 약 120명 되는 신자들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였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의 이름이 사도들 중 제일 먼저 언급되며,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선택하는 일도 그가 주도하였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지난주에 보았듯이 베드로가 오순절 후에 군중을 향해 능력 있게 외칠 때까지는 그의 완전히 변화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행 2:14-41). 성령께서 베드로의 설교에 역사하신 결과로 3천명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다.
그 다음으로 베드로에 관한 기사가 기록된 곳은 그가 오랜 친구인 사도 요한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는 장면이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병자를 고친 기적을 행한 기록이 이곳에 처음 나온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쳐준 일이었다(행 3:6-8).
1. 사도행전 3:6, 12-13, 4:10을 각각 비교해 보십시오. 베드로의 말 속에는 어떤 공통적인 주제가 흐르고 있습니까?
행3:6, 12,13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행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답: 베드로는 자신이 행한 이적의 모든 공로를 예수 그리스도께 돌렸다. 그는 철저히 주님의 능력에 의지하였다.
베드로는 자신의 힘으로 일을 이루어보려다가 실패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두운 밤에 예수님으로부터 시선을 돌림으로 물속에 빠져 들어가던 경험을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주님께서 잡히시던 때에 그분을 배신했던 일을 결코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던 자신을 부드럽게 꾸짖으시던 주님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이제 분명히 교훈을 얻고 주님의 능력에 의지하게 되었다.
2. 사도행전 5:15, 10:25을 읽으십시오. 이 두 기사에서 베드로는 어떤 부담을 안게 되었습니까? 베드로뿐 아니라 이와 같은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까?
행5: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행10: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답: 사람들이 베드로를 경배의 대상으로 여기려 한 것 같다. 그러나 베드로는 단호히 사람들의 그런 태도를 멀리하였고 오직 예수님께 영광을 돌렸다.
사람들은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그들에게 덮이기를 원하였다. 이제 베드로는 하늘로부터 능력을 충만히 입게 되었으나, 한편 가장 위태로운 영적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높임
“제사장들은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더 이상 이적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흥분도 가라앉게 되어 백성들은 다시 인간의 관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보라! 바로 그 제사장들 앞에서 제자들이 이적을 행하고 백성들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지 않는가!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도 그를 따르는 자들이 어디서 이런 능력을 얻었을까 하고 그들은 이상히 여겼다. … 베드로가 그들이 당황해 함을 보고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이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행 3:12-13)”(초기문집, 192).
<부가설명> 베드로는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오직 예수님을 힘입어 권능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능력을 행하게 되었을 때 주위에서 자기를 향한 눈초리를 잘 의식하고 성령의 주장에 자신을 온전히 맡겼다. 사실 베드로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그가 순교한 수백 년 후에 소위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 교황제도가 그것이다. 그들은 베드로를 업기 위하여 그를 초대 교황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일은 베드로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베드로는 정말 사단의 충동이 강하게 작용할 처지에 있었으나 오직 자신을 주님께 굴복시킴으로 자신의 위치를 잘 지켰다.
교훈: 베드로가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충만히 받게 되자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받들기 시작했다. 베드로에게는 참으로 도전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화요일(8월 26일) 초기교회의 조직(행 11:19-26)
그리스도교 초기 단계에서 새로운 신자들은 그들의 소유와 물건을 공유했고, 예배하기 위해 매일 모였으며, 상호간의 친교를 즐겼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행 2:47). 모든 일은 사도들의 지도 아래 잘 진행되어 갔다.
그러나 교회가 자라감에 따라 문제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어야 할 필요를 분명히 느끼게 된 것이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교회의 관리와 선교적 사명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있어야 할 것을 인식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供饋)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행 6:2)고 판단하였다.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회중이 형성됨에 따라 적절한 교회 조직을 갖는 일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신자들이 그들의 새로운 믿음 안에서 적절한 훈련을 받고 양육을 받는 일이 중요하게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신 본을 따라서)두 명씩 짝을 지어 선교사들을 파송하기 시작했다.
1.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빌립이 사마리아에 새로운 신자들의 그룹을 형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행 8:14). 또 안디옥에 새로운 교회가 세워졌을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행 11:19-26). 그렇게 대처하는 일은 왜 중요하였습니까?
행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행11:19-26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답: 새로운 신자들이 생길 때 지도자들을 파견하여 그들을 격려하고 말씀에 굳게 서도록 가르치며 교회를 조직하고 복음 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어주었다.
사도행전 전체에서, 베드로와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교회 지도자들이 특히 이방인들 사이에서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는 모습을 매우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지도자들은 이방인들이 거짓 교리에 휩쓸려 이교 사상으로 미끄러지기가 쉽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신자들은 신앙의 갓난아기로서 예수님 앞에 나아왔으므로 말씀의 ‘젖’을 먹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딱딱한 교리를 배우는 데에까지 자라도록 지도해 줄 필요가 있었다.
사마리아에서의 성공적인 선교
“그분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났을 때에, 어떤 이들은 사마리아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발견하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복음의 사신들을 환영하였고, 유대인 개심자들은 한때 철천지원수였던 사람들 중에서 귀중한 수확을 거두었다.
사마리아에서의 빌립의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리하여 용기를 얻은 그는 도움을 구하려고 예루살렘에 사람을 보내었다. 이제 사도들은 ‘너희가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뜻을 더욱 완전히 이해하였다”(사도행적, 107).
<부가설명> 사업을 질서 있게 효율적으로 이루려면 거기에 합당한 조직이 필수적이다. 초대 교회가 발전하면서 복음사업을 효과적으로 발전하도록 조직을 정비해 나아갔다. 그래서 복음이 전해지고 신자가 생기는 곳마다 교회가 조직되었고, 조직된 교회는 그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중심이 되었다. 이미 공부했듯이 바울의 선교 전략은 그 지방의 중심지에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에서 변방으로 복음이 확산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될 수 있기 위하여 조직이 필요한 것이며 그것은 지도자들의 인도 하에 운영되어야만 하였다. 그리고 그 지도자들은 철저히 말씀에 기초하여 성령의 주장을 받아야 한다.
교훈: 베드로와 초기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은 새로운 지역에 교회가 세워질 때마다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하기 위해 그곳에 선교사들을 파송하였다.
수요일(8월 27일) 더 넓은 비전(행 1:8)
오순절 후에 베드로의 생애는 변화되었고, 그는 교회의 튼튼한 기둥이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더 배워야 할 것들이 있었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처럼 자신의 복음 전도 사명이 유대인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사도행전 1:8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의 선교적 사명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아야만 했습니까?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답: 복음은 유대의 지경을 넘어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했다. 그러나 심지어 사도들의 마음도 선입견에 가려져 있었다.
사도행전 10:1-14에서 베드로는 환상 가운데서 부정한 짐승을 잡아먹으라는 소리를 들었다. 유대인인 그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행 10:14)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마치 어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환상 중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라는 소리를 들은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라고 요구하지 않으시듯이, 베드로에게도 부정한 음식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다. 베드로의 환상은 하나의 비유였다. 처음에 베드로는 그 의미에 관해 의아하게 생각하였다(17절). 그러나 곧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초청을 받으면서 그 의미는 명확해졌다.
2. 사도행전 10:28-43을 읽으십시오. 그 환상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베드로는 전에 깨닫지 못했던 무엇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까?
행10:28-43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30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답: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오늘날 우리는 복음이 온 세상을 위한 기별이라고 분명히 알지만, 베드로와 같이 유대인의 배경에서 온 사람에게는 상당히 당혹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문화적 선입견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베드로의 편견을 제거해 주심
“유대인의 교육으로 인해 베드로의 마음 깊이 뿌리박힌 이방인들에 대한 편견을 제거하시는 일에 주께서는 얼마나 주의 깊이 일하셨던가! 보자기와 그 속에 든 물건들의 환상으로 주께서는 사도의 마음에서 이 편견을 없이하여 하늘에는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없다는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고자 하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유대인과 이방인은 다 같이 귀중하였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교도들도 복음의 축복과 특권의 참여자들이 될 수 있었다”(사도행적, 136).
<부가설명> 참으로 은혜로운 복음이다. 하나님의 이런 은혜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주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민족적으로는 이방인이 아닌 동족 사이에도 복음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황송한 마음이다. 복음은 생명을 주는 것이어서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인데,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주님이 보실 때 얼마나 답답하실 것인가.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이방에 복음을 전하지 못해도 이웃들과 동족들에게 기회가 있든지 없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증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달란트를 따라 각 성도가 가장 적합한 증인으로 복음의 지평을 널리 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와 삶이 곧 증인이 되도록 하며 입으로는 전하고 생활로는 헐어버리는 교인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베드로는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우리도 문화적 편견을 뛰어 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목요일(8월 28일) 은혜 안에서 자라감(갈 2:11-14)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사명을 위해 함께 일할 때 오해와 불화가 생겨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베드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하나님의 많은 복을 한 몸에 받았고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았지만, 베드로는 (심지어 오순절 후에도) 여전히 자라나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은, 그의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
1. 갈라디아서 2:11-14을 읽으십시오. 베드로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갈2:11-14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답: 민족적 문화적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의 진정한 상태를 더 깨달았어야 했다.
바울은 베드로가 위선자처럼 행동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를 책망하였다. 베드로는 부정한 음식에 관한 환상을 보고 고넬료와의 경험을 가진 후에 이방인들과 교제하기 시작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행 11:2). 베드로가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자 비난하던 자들도 그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그런데 이제는 바울이 분개하였는데, 그 까닭은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위해 그처럼 많은 일을 한 후에 그의 태도를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가 유대인 신자들의 압력에 굴하여 자신의 확신에서 돌아섰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기를 꺼려하였는데, 이는 그가 유대인 신자들을 불쾌하게 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비록 다른 곳에서는 담대한 형제들이 연약한 자들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고 경계하기도 했지만(고전 8:9-14), 베드로의 행동에 대해서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분명히 이방인과 교제하는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사실과 다른 사람에게 전도한다는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베드로의 외식(外飾)이 낳은 결과
“베드로는 지금까지 이방인 개종자들과 식탁에 앉는데 대하여 가졌던 그의 타고난 편견을 극복하였다. 그러나 의문의 율법에 대하여 열심이 있는 어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왔을 때에 베드로는 이교에서 개종한 이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지각없이 변경시켰다. 많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다. 지도자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사람 편에서 이와 같이 약점을 드러낸 것은 이방인 신자들의 마음에 가장 고통스러운 인상을 남겼다. 교회는 분열될 위험에 직면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중 행동으로 교회에게 해를 끼친 그 파괴적인 영향력을 목격한 바울은, 그의 진정한 감정을 이처럼 위장함에 대하여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하였다”(사도행적, 197).
<부가설명>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부당하게 여긴 것이 유대인이다. 그 세리와 죄인은 같은 유대인인데도 그랬다. 그들은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들은 더더욱 사람 대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이 로마의 속박 아래 있으면서도 그랬다. 유대인의 피를 받고 그 전통 문화 속에서 살았던 베드로가 자꾸 그들의 영향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문화로 거듭나야 하는데, 이 엄청난 세상 문화적 압력 속에서 그렇게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한국인 어른들은 그들이 성장하던 시절의 문화에 젖어 자라는 사람들의 문화를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 물론 그런 문화들이 진리를 방해하고 사람을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것들일 때에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진리를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닌 것은 그들의 문화 환경에서 이해하는 아량을 배워야 할 것이다. 베드로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으며 바울의 책망은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인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교훈: 베드로가 유대인 신자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이방인과의 교제를 꺼린 사실은 그가 아직도 은혜 안에서 자라나야 할 부분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금요일 (8월 2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베드로를 취급하신 구주의 방법은 그와 그의 형제들을 위하여 하나의 교훈이 되었다. 베드로가 그의 주님을 부인하였을지라도 예수께서는 변함없이 그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그 사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에 과오를 범한 자를 인내와 동정과 용서하는 사랑으로 대하여야 하였다. 자신의 약점과 실패를 기억하고 그에게 돌보도록 위탁된 양떼를 그리스도께서 그를 다루셨던 것처럼 친절하게 다루어야 하였다”(사도행적, 516).
“베드로가 자신의 모든 실패와 타락과 회복 후에, 긴 세월 동안의 봉사 후에, 그리스도와 맺은 긴밀한 관계 후에, 원칙을 철저히 실행한 후에, 그리고 모든 교훈과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 은사와 지식과 큰 영향력을 행사한 후에도, 그가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든지 혹은 존경을 받기 위해서든지 간에, 복음의 원칙을 은폐하고 속였다는 사실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가 흔들리고 이중적 입장을 취한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은혜만이 우리의 발이 실족치 않도록 지켜줄 수 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108-110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영적 교만은 누구에게나 위험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영혼구원이나 섬기는 일 등 교회의 활동에 있어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조심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종들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드십니까?
*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기를 그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지하는 것이다. 성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시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8:17,18). 모든 성공은 전적으로 주님이 이루신 것이다.
2.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계속하여 말씀을 배우고 말씀 앞에 항상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주님이 이루게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음을 배워야 한다.
요약: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 이전과 이후에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경험을 가졌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의 신실한 종이 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주셨다. 베드로는 격랑(激浪)의 시대에 교회를 굳건히 세우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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