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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이와 같은 때에: 사도 바울(7/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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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6.24 10:15 조회수 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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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총  론  
소망의 전달자들

스웨덴의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은 안토니우스 블록(Antonius Block)이라는 기사(騎士)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그 기사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위해 고해소(告解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검게 차려입고 사제처럼 행동하는 죽음의 사자에게 자신이 말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블록은 그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말씀해 주시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죽음의 사자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서 세상만사는 헛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인생은 정말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것이 될 것이고, 만약 사람들이 만사가 헛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음을 대면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블록은 대꾸했다.
오늘날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러한 허무감을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 그들은 주변 세상을 초월하는 어떤 희망도 갖지 못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안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의 많은 쾌락에서 위안을 찾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신앙을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그 까닭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후 4:18)고 성경은 가르치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소망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조력자들이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인생에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조력자들에 관한 소망 가득한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이번 기 교과에서 우리는 이 탁월한 선교사들 중 몇 사람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주님의 구원의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엘렌 G. 화잇 여사는 깊이 쌓인 눈에 빠져 거의 얼어 죽게 되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기를 막 포기하려던 참이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신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구출하기로 결심했다. 그 신음하는 여행자를 발견하자 얼어붙은 사지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는 마침내 일어나서 눈길을 헤치고 그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의 이웃을 구하다가 자신도 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는 열렬한 노력은 그 혈관에서 얼어 가던 피를 빨리 돌게 했으며, 사지에 건강한 온기를 공급해 주었던 것이다”(교회증언, 4권, 319).
여기서 말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다른 이들을 위한 선교에 초점을 맞추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교회에 생명과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기 교과를 흥미로운 역사적 인물 연구로만 끝낸다면 크게 실수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이 죽어가는 세상을 향한 선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다. 이번 기 교과에서 소망의 전달자들에 관해 공부함으로써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이웃과 친구와 세계 도처의 선교지에 전하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잡히게 되기를 기도하는 바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7월 5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7분)

기억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롬 15:17).

연구 범위: 행 9:1-9, 22:3-5, 25-29, 롬 7:19-25, 11:1, 빌 3:5.

중심 사상: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던 사람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경을 넘어 이방인들에게까지 널리 그리스도교를 전파하였다. 바울의 생애와 사역은 오늘날 우리를 위한 하나의 모본이 된다.

안식일 오후
‘복음은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되어야 한다’라는 개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많은 유대인들에게 충격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가르침을 실행한 핵심적인 지도자였다. 바울의 배경과 성격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르심은 그로 하여금 만민을 향한 새로운 선교 시대에 적합한 인물이 되게 해 주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도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19세기 후반에 이 교회는 북미지역을 넘어 외방 선교를 시작하였다. 이렇게 첫발을 내디딘 외방 선교는 오늘날 200개국 이상에서 사역을 펼치고 있는 재림교회의 선교에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핵심본문: 롬 15:17

학습 목표
깨닫기: 바울은 특별한 선교 사역을 위해 선택되고 준비된 사람이었음을 확인한다.
느끼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활용하고자 하는 열망을 느낀다.
행하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계발하고 사용하기 위해 나의 삶을 제자의 삶으로 전환하고 그 일에 시간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교과 개요
I. 바울의 열정(갈 1:14, 딤전 1:12-14)
        A. 바울은 회심하기 전이나 회심한 후에도 항상 종교적인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B. 바울의 회심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또 다른 열정을 품게 하였음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II.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과 구원(고전 2:2)
        A. 바울은 어떤 면에서 우리 자신과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인가?
        B. 바울은 그리스도인 신앙에서의 예수님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자신의 말로 요약해 보라.

III. 소망의 주제들(딤전 6:11)
        A. 유대인 랍비로 훈련받은 열성적인 바울이 왜 비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가?
        B. 요한계시록 14:6-7에 기록된 특별한 사명과 이번 주에 공부한 바울의 사명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요점: 과거에 바울이 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그의 독특한 배경은 그로 하여금 특별한 사역을 행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의 개인적인 배경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특별한 사역을 하도록 준비시켜 준다.

일요일(6월 29일) 바울의 배경(행 22:3-5, 25-29)

사도 바울은 아마도 신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 당시 알려진 세계의 많은 지역에 전파하였다.
바울은 길리기아(Cilicia)의 수도인 다소(Tarsus)에서 출생했다. 그 지역은 로마의 영토로서 오늘날의 터키(Turkey)에 해당한다. 이 지역은 염소 털로 짠 천으로 유명했는데, 이 천은 바울의 업(業)이었던 장막 만드는 데(행 18:3)에 널리 사용되었다.

1. 사도행전 22:3-5, 25-29, 로마서 11:1, 빌립보서 3:5은 바울의 배경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 구절들은 그가 당대에 그처럼 훌륭한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행22:3-5, 25-29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받게 하려고 가더니/ 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롬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빌3:5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답: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한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가 지배하던 당시의 세계에서 어느 정도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또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유대인으로서 유명한 교사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받은 엄격한 바리새인이었으므로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출생 시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갖는 것은 굉장히 귀하게 여겨졌다. 바울 당시에 로마 시민권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500 드라크마를 내야만 했는데, 그것은 보통 노동자의 2년 품삯에 해당했다. 로마 시민권을 갖게 되면 확실한 권리가 보장되었는데, 그 권리들 중에는 재판 없이 죽도록 채찍질 당하지 않을 권리(참조 행 22:23-29), 투표권, 계약권, 합법적 결혼의 권리, 그리고 면세권(免稅權)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또한 매우 경건한 유대인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행 22:3). 바울은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며, 바리새인으로 양육을 받았다. 그는 당대의 유력한 유대인 교사 중 하나인 저명한 가말리엘(Gamaliel)의 문하(門下)에서 배웠다. 우리는 갈라디아에 보낸 바울의 편지서에서 그가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갈 1:14)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자들을 처벌하는 일이 이러한 가르침을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열망이 넘치는 유대인이요, 로마 시민이었던 바울은 곧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바울의 배경
“바울의 아버지는 이름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길리기아 사람이었지만 로마의 시민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자기는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자유를 큰 돈을 들여서 얻었지만 바울은 자유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석학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 바울은 랍비요, 정치가였다. 그는 산헤드린 의원이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65).

<부가설명> 바울이 다메섹 가는 길에 철저히 자신이 깨어지지 않았으면 주님의 일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습관적으로 자기 지식으로 예수님의 교훈을 평가하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게 될 수 있다. 죄인 된 인간의 성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바울은 전에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럴 때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 뜻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배운 것들을 다 해로운 것으로 치부하였다(빌3:7,8). 지금도 복음의 증인들은 이런 정신을 가져야 한다. 신학이 신앙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학문으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이 불학무식한 제자들을 택하신 것은(행4:12) 세상 학문적 선입관이 주님의 교훈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지막 때에 주님의 사자를 학문이 없으나 주님을 향한 정직한 열정이 있는 엘렌을 택하신 거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하면서 많이 공부하고 높은 학위를 가지고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들은 바울의 경험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 학문적 경험이 없이도 말씀을 자기 경험의 세계로 천단(擅斷)하는 사람들도 바울의 경험에 이르러야 한다. 지금 우리교회는 이런 일이 필요한 때이다.

교훈: 바울은 많은 특권을 가진 로마 시민이면서 성경을 잘 아는 열성적인 유대인이었다. 이러한 배경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전도자가 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월요일(6월 30일) 바울의 회심과 소명(행 9:1-9)

바울은 본래부터 사도 바울이 아니라, 초기 교회의 원수인 다소 사람 사울이었다. 그런데 그가 겪은 경험은 그의 삶을 변화시켰고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1. 사도행전 9:1-9에서 바울의 회심의 경험을 읽으십시오. 그를 그처럼 놀랍게 변화시킨 어떤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그는 얼마나 자신이 예수님에 대하여 그토록 잘못 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까요?
행9:1-9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답: 사울은 주님의 제자들을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3-5).

바울은 자신을 예수께 굴복시키기 전에 어떤 심오한 신앙적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바울은 자신을 주님께 바쳤다. 그는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행 9:6, 새 제임스왕역)라고 말했다. 예수님의 지독한 원수가 이제는 하나님의 겸손한 종이 되었다.
바울은 회심 후에 사도들 가운데 ‘기둥’과 같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만났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가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임무임을 인정하였다(갈 2:7-9).

2. 사도행전 13:47과 이사야 49:5-6을 읽으십시오. 바울과 바나바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어떤 역할(눅 2:30-32)을 맡게 되었습니까?
행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49:5,6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눅2:30-32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답: 이방의 빛의 역할을 맞게 되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특별한 기별자였으나 또한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나누었다. 한편 베드로와 같은 다른 사도들은 대체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방인들에게 증거하는 일에도 사용하셨다. 사실상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한 최초의 사도였다(참조 행 10장).



박해자에서 전도자로
“바울은 회개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의 가혹한 박해자였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성문 앞에 이르러 한 음성이 그에게 들리며 하늘의 빛이 그의 마음에 비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았을 때에, 그의 생애의 방향은 완전히 전환되었다. 그 후로 그는 무엇보다도 그렇게 잔인하게 박해하던 주님의 성도들 가운데 나타나신 영광의 주를 사랑하였다”(복음 교역자, 58).

<부가설명> 바울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히 특심한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를 핍박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바울의 이른 성질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가 진리를 깨달으면 그 열정이 진리를 증거하는데 사용될 것을 아셨다. 과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유대교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낸 것처럼 이제 그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되었다. 바울은 원래 그런 성질의 사람이었다. 그의 열심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 열심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열심히 핍박했던 것처럼 예수를 증거하는 일에 열심을 다한 것이다. 우리의 성질도 예수를 위한 것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바울은 먼 지역까지 찾아다니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나 회심을 경험함으로 이방인들을 위해 어디든지 달려가는 복음의 사도가 되었다.

화요일(7월 1일) 우리와 성정이 같은 바울(롬 7:24)

우리는 바울을 이방인의 위대한 사도로, 전 세계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능력 있는 지도자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자칫하면 그를 어떤 초인간적인 존재나 완전한 성인(聖人) 혹은 믿음의 전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누구나 죄 아래 있음을 지적하면서,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때때로 열심이 지나쳤으며, 매우 공격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종종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였다. 그가 실라(Silas)와 함께 감옥에 갇혔을 때에 그는 로마 시민인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였다(행 16:35-40). 후에 바울이 아그립바 왕궁에 있을 때(아마 착각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그립바가 베스도의 취임을 보러 가이사랴로 왔으니 베스도의 관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가이사께 호소한다고 하였다(행 25:11-12). 만약 바울이 참고 견디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그 후에 풀려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행 26:32).

1. 다음 구절들에서 우리는 바울에 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행 15:37-39, 롬 7:19-25, 고전 9:27, 고후 12:7).
행15:37-39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롬7:19-25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사도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고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였다. 한번은 마가를 선교 여행에 데려가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어 갈라선 적도 있었다.

이처럼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의 거장도 완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용기가 된다. 그도 때로는 실수를 저질렀다. 바울도 우리처럼 자신의 생애에 예수님의 은혜와 용서가 필요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을 그의 서신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약점과 결함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혜를 가르치는 능력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었다.

2. 로마서 7:24은 바울이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음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까? 이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과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답: 자신을 곤고한 사람 사망의 몸에서 구원받아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도 우리처럼 구원받아야 할 존재일 뿐이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실패에서 배울 교훈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과, 바울과 바나바의 날카로운 대립과,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실패와 결함들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성령에 의해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믿는 자들의 생애의 모든 결함과 어리석음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 뒤에 오는 모든 세대의 교훈으로 주어진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흠이 없었다면, 그들은 인간 이상의 존재들이었을 것이며, 우리의 죄 된 속성으로 그처럼 탁월한 지점에 도달하려 할 때 낙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투쟁하고 넘어진 것과 다시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승리한 것을 볼 때, 우리는 용기를 갖게 되고 타락한 속성으로 우리 앞길에 놓인 방해물을 극복하게 된다”(증언보감, 1권, 438).

<부가설명> 바울은 유대교에 있을 때 자기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6)고 생각했다. 도덕적으로 볼 때 인간이 율법을 행하여 의롭다고 여기는 것으로 볼 때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그는 도도하고 교만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인간 존재의 실상에 대하여 눈이 열렸을 때, 인간 자체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율법으로 의로워도 사망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가 구원받아야 할 죄인 곧 사망에 처한 존재, 생명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그는 겸손하여졌고, 구주의 구원을 받지 않으면 전혀 자기라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인류 전체가 동일하게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한 것이다. 우리도 바울도 아담의 후손 누구나 다 그렇게 사망의 존재들일 뿐이다. 예수 안에서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교훈: 바울도 우리처럼 실수하고 넘어지는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큰 용기를 얻는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수요일(7월 2일)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과 구원(고전 2:2)

사도 바울의 생애와 사명에서 번쩍였던 몇 가지 중요한 주제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주제는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울의 모든 가르침과 행동의 이유였다. 그는 고린도교회에 편지하기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 6:14)고 고백하였다. 이 구절들은 바울의 신앙에 있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분의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 주제였는지를 보여준다.
바울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위대한 일을 행하셨다는 사실을 그의 편지서를 통해 여러 다른 방식으로 묘사하였다.

1. 다음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롬 5:10, 6:18, 7:24-25, 8:15-17, 갈 2:16, 엡 1:7, 딤전 2:6, 벧전 1:18-19).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7: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n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8:15-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딤전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답: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죄인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죄에서 해방되어 의(義)의 종이 되었고,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관한 여러 실례들을 언급하였다. 왜냐하면 어느 하나의 예를 가지고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바울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높이자
“바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 6:14 )고 부르짖은 것을 우리는 이상히 여길 수 있는가?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며,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그분께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는 것도 우리의 특권이다. 그리할 때 우리는 갈바리에서 흘러나와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그 빛을 받아, 흑암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이 빛을 나타낼 수가 있게 될 것이다”(사도행적, 210).

<부가설명> 아담이 범죄하자마자 잃어버린 생명을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회복시킬 것을 계시하여주셨다. 이 사실을 안 사단은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생명을 회복하는 일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람을 전적으로 도덕적 선행을 의지하도록 교묘히 덫을 놓았고 인류는 속절없이 그 덫에 걸렸다. 그래서 도덕적 선행을 강조하고 인간의 그 선행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이 도덕성을 바탕으로 모든 큰 종교들이 형성되었다.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로 생명의 실체를 드러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사람들을 예수 믿고 선을 행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믿게 하였다. 바울은 이런 사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달으면 도덕적 구원론에서 해방되게 된다. 우리의 구원관은 어떤가? 십자가와 부활이 진정으로 구원이 되고 있는가? 그것은 존재와 생명적 기별이며 창조주와 바른 관계를 가질 때 창조와 재창조의 주님으로부터 영생의 생명을 얻어서 창조주께서 창조해주신 생명의 존재가 된다는 기별인 것이다. 세 천사의 기별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교훈: 바울은 일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파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는 오로지 십자가를 자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였다.

목요일(7월 3일) 소망의 주제들(딤전 6:11)

어제 교과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바울의 생애와 가르침의 핵심적인 주제였음을 배웠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중요하게 여겼던 주제들 가운데 몇 가지를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그 주제들 중 하나는 경건한 삶 혹은 성화된 삶을 사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의 모든 서신에서 구원이 값없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히 하였다. 그것은 스스로 획득하거나 어떤 대가로 받을 수 없는 하나의 선물인 것이다(롬 5:15, 6:23, 엡 2:8). 그러나 구원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같이 마음대로 행하도록 허가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에 반응하여 예수께서 우리에게 살라고 요구하시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딤전 6:11)고 하였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게 하려고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기 때문에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용납하시며 천국행 티켓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아무런 ‘조건’ 없이 완전히 받아들여진바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그분의 능하신 사랑이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끄시기 때문이며,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다(고후 5:14).

1. 바울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무지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살전 4:13). 사후 상태에 관한 진리를 아는 것은 왜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살전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답: 그리스도를 믿고 주 안에서 잠자는 자들은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된다. 소망은 우리의 구언을 확실하게 한다(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바울이 강조했던 주제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사망을 이기셨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당신의 신실한 자녀들을 죽음에서 일으켜 영생의 선물을 주실 것이다. 이들은 온 삶을 통하여 그분께 대한 자신들의 사랑을 나타내었던 자들이다(참조 엡 4:20-32).

하나님은 우리의 성화된 생애를 원하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고 편지하였다. 교회의 성화가 당신의 백성을 다루시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원 전부터 택하셔서 그들이 거룩하게 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주시고 그들을 위하여 죽게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순종함으로 성화되어 자아의 모든 편협을 벗어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개인적 노력, 즉 개인적 복종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형상에 일치되고 당신의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에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수 있으시다. 그 때에야 구주의 증인으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나타낼 수 있다”(사도행적, 559).

<부가설명> 성경의 소망은 영생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 이루어진다. 그래서 재림이 소망이다. 이 소망을 확신할 때 이 땅에서의 삶이 힘을 얻는다. 이 땅에서의 삶은 지나가는 삶이다. 지나갈 것이 다 지나가면 영원한 것을 얻는다. 하나님은 지금도 영원하시지만 우리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잃었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바로 그것을 회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이 생명을 얻은 사람은 그 생명이 나타내는 생태를 드러내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선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생명의 열매이다. 그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한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재창조된 생명의 열매가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그같은 것은 금지할 법이 없다. 아멘.

교훈: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완전한 구원을 가져다 주셨으므로, 그분의 약속을 믿는 신자들은 그분께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금요일(7월 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사도행적, 제12장 ‘박해자에서 제자로’(112-122).

“그릇된 신념은 바울로 하여금 친절하고 온유하며 동정심이 깊은 인물이 되게 하지 못하였다. 그는 종교적 열성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반대하기 위해 굉장히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남녀들을 옥에 잡아넣기 위하여 온 지방을 두루 헤매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14-215).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모든 영예와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한 훌륭한 히브리 교육을 받았었다.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웠으나, 그의 모든 배움도 그로 하여금 가장 높은 표준에 도달하게는 못하였다. 그러한 과학과 문학의 탐구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아는 지식이 현재와 영원한 시대를 통해 가장 유익한 것임을 깨달았다”(엘렌 G. 화잇, 애드벤트 리뷰 앤드 세베쓰 헤럴드, 1899년 7월 18일자).
“성경을 연구할 때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하나의 크고 중심 되는 진리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관한 것이다. 다른 모든 진리는 이 주제와의 관계를 통해서 상응하는 감화와 능력을 갖게 된다. 십자가의 빛 가운데서만이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고상한 성질을 깨닫게 된다. 죄로 인해 마비된 영혼은 우리 구원의 주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통해서만 생명을 받게 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8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개인의 신념이 그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까?
* 개인적 신념이 강하면 그의 인격을 그 신념대로 꼴지운다. 바른 신념을 가지지 않으면 바른 인격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얻는 생명은 신념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2.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나 한 주일 동안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그 생명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요약: 우리는 바울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연약한 인간을 통해 하실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바울은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새로운 선교지에 전파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특별한 배경과 은사를 십분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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