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과 상징들로 묘사된 속죄 - 1 > 안교교과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안교교과

제 6과 상징들로 묘사된 속죄 -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10.31 06:26 조회수 4,746
글씨크기

본문

 

제 6과  상징들로 묘사된 속죄 - 1

11월 8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27분)


도입)

창세기 3장에서 우리들은 동물을 살해한 최초의 기사를 읽어 볼 수 있다. 우리들의 최초의조상은 범죄한 후에 그들의 몸이 벗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몸이 벗었다는 것은 양심이 벌거벗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외형적으로 나타내 준다. 그들은 벗은 몸을 나무 잎으로 가리우려고 하였으며 마음속으로는 온갖  변명을 하려고 하였으나 쓸데없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그들의 벗은 몸을 가리어주었다는 것을 읽어 볼 수 있다. 비록 여기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은 매우 간단하지만 동물을 잡은 것은 확실히 하나의 희생의 제물이었고 또한 그 행위의 영적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면 구속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속죄의 도리를 마련해 주셨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우리들은 여기서 인간의 죄를 가리우기 위하여 무죄한 동물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범죄한 양심을 가리어 주기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희생의 근본적 목적을 살펴 볼 수 있다. 성경의 맨 처음에 있는 창세기는 죄인의 죄를 가리우기 위하여 무죄한 짐승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고 성경의 맨 마지막에 있는 요한 계시록은 인간의 죄를 사유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한 흠 없는 어린 양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기억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연구범위: 창 3:21, 4:3-5, 레 17:11, 롬 3:23, 엡 2:11-13, 벧전 1:18-19.


중심 사상: 구약의 희생 제도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으로 나타냈는지를 살펴본다.


안식일 오후

성경에 나오는 희생제도는 하나님께서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 봉사의 중심에는 희생제물의 피가 있었다. 희생 제물의 생명은 회개한 죄인의 생명이 구원받도록 흘려진바 되었다. 이 희생 제물은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실 예수님의 상징이었다.

회개한 죄인들이 희생 제물을 여호와께 가져오는 행위는 자신이 죽어야 할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나타내야만 했다. 그들은 자기를 대신한 희생 제물의 생명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고 용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어야 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일은 필수적이다. (이것은 곧 회개와 자백을 의미한다.) 오직 십자가의 빛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들만이 정결케 됨을 경험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어린양을 발견하는 자들이다.



일요일(11월 2일)

속죄와 생축의 희생(창 3:21)


도입)

이런 말이 있다. "나라 없는 백성, 성벽 없는 도시, 기술 없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희생제물을 바치지 않는 백성과 도시와 사람들은 없다." 기도의 형상 또는 신앙심의 표현으로써 희생제물은 인간과 더불어 생겨났고 인간과 더불어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인간은 희생제물을 드렸고 어째서 피를 신에게 바쳤을까? 모든 민족들에게 제사와 봉헌의 요소로서 피를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었다. 어째서일까? 사람은 자신에게 뭔가가 파괴되고 균형이 깨져있음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인간의 마음에 평화로울 때와 기쁠 때는 마음의 안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두려울 때나 그렇지 않은 때에는 불충분하고 더 이상 영혼의 평안을 간직하지 못하고 살았다. 신학자들은 원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무질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가를 치러야 하고 피로써 죄를 기워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죄로 인해 깊게 패인 심연을 쏟아 메우고자 하는 이 같은 요구, 즉 희생 제물에 대한 갈증은 사람들의 종교적 심성의 특성이다. 그러나 이 모든 희생제물은 상징에 불과하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어떤 실체의 상징, 곧 바야흐로 성취의 때가 이르렀던 어떤 역사의 전조였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오실 것이었다. 이 모든 희생 제사의 원인은 인간의 죄를 가리우기 위하여 무죄한 동물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범죄한 양심을 가리어 주기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희생의 근본적 목적을 살펴 볼 수 있다. 비록 이방인의 희생은 본래의 모범에서 왜곡되기는 하였지만 희생의 두 가지 근본 사상인 예배와 속죄에 근거를 두고 있다.  (1) 인간은 자기를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신의 능력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신의 이와 같은 권리를 인정하여 자기 자신을 신 앞에 복종시키는 표시로서 인간은 예물 또는 희생을 신 앞에 바친다. (2) 그러나 때때로 인간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본능적으로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 때 만일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다시 원만히 회복하기 위하여 어떤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자기는 신의 노염을 사서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동물을 잡아 그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림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피하는 동시에 신의 은총을 받고자 하는 제사 행위는 고대인의 가장 뿌리 깊은 신앙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저들이 이와 같은 모든 것을 배웠을까? 바울은 저들이 하나님을 알던 때가 있었다고 말하였다.(롬1:21). 마치 타락한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의 자국이 남아 있는 것과 같이 이방인의 희생에도 하나님의 계시의 자국이 남아 있다.


1. 성경에서 생축의 희생을 드리는 일은 얼마나 오래 전에 시작되었습니까?(참조 창 3:21, 4:35)

답:

성경에서, 생축의 희생과 그것을 가져온 죄인은 너무나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생축의 생명이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였다. 그리고 그 생축의 피가 죄를 속하였다.(레 17:11)


2. 레위기 17:11에는 어떤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까?

답:

우리는 성경의 희생제도에서 상징들의 의미를 발견한다. 첫째, 생축의 죽음은 그 사람의 죽음을 대신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희생(犧牲)의 행위는 구원의 행위였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예증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해 다른 생축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인간과 더불어 교제를 계속하고자 하셨다. 둘째, 생축의 생명이 죄인의 생명을 참으로 속죄할 수는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래서 희생되는 생축의 죽음에는 단지 상징적인 의미만 있었다. 그것은 그 너머에 있는 여자의 후손(예수님)의 죽음을 가리켰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실 분이셨다(막 10:45). 셋째, 생축을 죽이는 일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며 용서를 위해 얼마나 값비싼 대가가 치러져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희생 제물의 생명을 취하는 일은 아담과 하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고통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제물을 바치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사람들은 죄와 죽음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또한 용서가 죄를 묵인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써 값을 지불하셨다.(벧전 1:19)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마자 하나님께서는 희생제도를 마련하셨다. 이 제도는 상징적 및 교육적인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바친 첫 번째 희생은 장차 오실 구세주에 대한 놀라운 소망의 예증이었다.


교훈: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장차 있을 구원을 예증하는 희생 제도를 세우시고 죄의 심각성과 구원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셨다.


부가적용)

 모세의 희생의 제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창조주에게 대한 제일의 의무인 예배를 드리는 수단이었다. 저들이 이와 같은 희생의 제물을 드린 목적은 하나님과 저들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함이었다. 가령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저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에 저들은 속죄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또 자기 이웃에 대하여 죄를 범했을 때에는 속건제를 하나님께 드렸다.(레6:1-7)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시 원만하게 회복하고 나서 저들은 자기 자신을 다시 헌신하기 위하여 번제를 드렸다.(레1장)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아 다시 용납되어 하나님과 행복하고 즐거운 교제를 회복하고 나서 그는 화목제를 드렸다.(레3장) 이와 같은 피의 제사의 목적은 온전한 희생의 제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 되었다. 그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는 대속의 죽음이다.(고후5:21)


월요일(11월 3일)

죄와 부정(레 12장)


도입)

뉴욕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었다. 그 높이가 무려 102층이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 개척 정신과 감사의 정신을 심어 준 102명의 선조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지난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은 그해 겨울에 굶주림과 질병,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44명만 살아남았다. 지속되는 흉년에도 낙심하지 않던 그들에게 3년째 되던 해 풍년이 찾아왔다. 그런데 추수를 얼마 앞두고 벌레들이 수없이 나타나 곡식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벌레를 잡아도 소용이 없자,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울면서 기도했다. 그러면서 밤새 회개했다. “하나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살았던 저희를 용서해 주소서.” 다음 날 아침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참새 떼가 하늘을 덮을 듯이 새까맣게 날아와 벌레들을 모조리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노라.” 그 일로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부족했음을 깨달았으며,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추수감사예배를 풍성하게 드렸다. 이로부터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는 추수의 원리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정신이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진 것이다. 죄와 부정으로부터 자신들이 정결해져야 한다.


레위기는 죄와 부정(不淨)의 문제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데, 특히 정결과 부정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부정이란 언약 관계의 파기로서 그것 자체가 죄로 간주된다. 부정에 관한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부정하게 하는 일은 무엇이나 피하도록 격려해 주었다. 정결에 관한 율례는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어떻게 정결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부정함을 일으키는 요인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는 불가피한 상황도 있었다. 예를 들면, 자녀를 낳은 여인은 부정하였는데(레 12장), 이 경우의 부정은 출산으로 인해 산혈(産血)이 깨끗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레 12:4-5, 7, 참조 15:19-30). 유출병이 있는 남자도 또한 부정하였다.(레 15:1-15, 참조 16-18절)

그러한 경우에 부정함을 전달하는 매개체는 개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사람이나 거룩한 물건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물론 씻는 것과 격리시키는 것이 위생적인 이유에서 강조되었지만, 거기에는 신학적인 이유도 있었다. 부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또한 성전에 들어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부정'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상징하게 되었다. 사실 부정은 종종 죽음과 연결된다. 부정은 또한 시체(민 6:6-7, 11)나 질병(레 13-14장), 출혈 또는 생명의 씨인 정자의 설정(泄精)과도 연결된다. 나병환자는 완전히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민 12:9-12)

부정한 사람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오직 정결 예식을 통해서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으로부터 분리되고 말 것이다(레 15:31). 성경에서 말하는 부정의 개념은, 인간이 거의 항상 더럽혀져 있으며, 깨끗지 못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정결케 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 자유로이 여호와께 기도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결은 희생제물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였다.(레 12:8)


교훈: 구약시대에 부정에 관한 규례는 죄에 오염된 인간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었으며, 희생제물의 피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부가적용)

하나님께 드려지는 피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충족시켜 주는 원리가 피 제사 속에 담겨있다(레 17:11). 죄와 부정으로 인해 당연히 죽음을 당해야 할 사람이 동물의 죽음과 그에 따른 피 제사를 통해 죄와 부정에서 구원 받을 수 있었다(히 9:22). 피 제사를 통한 속죄의 원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결정적으로 보여졌다(마 26:26-29; 막 10:45; 히 10:10) 레위기의 피 제사가 죄인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반복적인 것에 비해 십자가상의 제사는 적용 범위가 무제한적이고 반복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히 9:26). 그러나 그리스도의 속죄를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구약의 제사처럼 그 개인이 믿음과 회개를 통한 응답이 있어야 한다.


화요일(11월 4일)

희생 제물들(레 4:3, 13, 22, 27)


도입)

 여호와께서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셨다 (사53:10). 그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막대한 빚을 갚으셨다. 그리고 또한 그는 우리의 죄악된 과거를 깨끗이 씻어 주셨다. 그는 우리들의 번제물이시다. 왜 그러냐 하면 그는 우리를 위하여 온전히 생명을 바쳤기 때문이다.(히9:14,엡5:2). 그는 우리들의 화목제가 되신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만들기 위함에서였다.(요6:53-56,레7:15, 20 참조).



1. 레위기 4:3, 13, 22, 27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은 우리에게 죄에 관하여, 그리고 죄로 인해 속죄가 필요한 사람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 줍니까?(참조 롬 3:23, 5:12)

답:

우리는 죄를 속하는 이 제사들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째, 속죄 제물로 가져온 생축의 종류는 개인의 형편에 따라 달랐는데(레 5:7-12), 이는 여호와께서 사람들의 형편에 맞게 배려해 주셨음을 시사한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이 세상에서 부하든 가난하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희생 제물은 흠이 없고 건강하며 신체적 결함이 없어야 했다(레 4:3). 비록 죄인은 불완전했으나 하나님의 어린양을 대표하는 희생 제물은 완전하였다


2. 베드로전서 1:18-19을 읽으십시오. 그 완전한 희생 제물에는 예수님의 어떤 중요한 면이 상징되었으며, 그것은 왜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그토록 중요합니까?(롬 5:19, 고후 5:21, 히 4:15)

답:

속죄제는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레 5:1-5)를 속할 뿐 아니라, 의식상의 부정도 속(贖)하였다(레 12:6-7).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만일 죄인이 돌이키기만 한다면 하나님께는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이다. 도덕적인 죄와 의식(儀式) 상의 부정은 그 희생의 피로 인하여 진심으로 회개하는 죄인에게서 상징적으로 제거되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참으로 죄를 씻을 수 있다.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치유와 용서와 정결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든지, 우리가 얼마나 깊이 타락했든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교훈: 속죄의 제물은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이 누구나 형편에 따라 드릴 수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공평하게 주어진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부가적용)

만일 구약의 희생이 좋치 않은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이 제도를 정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구약의 희생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일정한 목적을 성취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좋은 것이었다. 즉 다시 말하면 여호와 백성들이 여호와께 범죄한 후 다시 은혜의 상태로 돌아가 그와 화목을 누리고 원만한 교제를 갖게 하는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희생의 모든 조건을 수행하는 한에 있어서 그들은 약속을 의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 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4:26).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제물들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 회개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죄가 제거되었다는 것을 지시해 줄 수 있는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히9:22). 그러나 한편 저들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마음의 올바른 자세들 갖추지 않고 드리는 예배 의식은 하나의 무가치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희생의 제사 행위는 즉 다시 말하면 상한 심령의 희생에 대한 외적 표현이어야만 한다(시26:6,50:12-14,4:5,5:16,잠21:3,암5:21:24,미 6:6-8,사1:11-17 참조). "악인의 제사(피의 희생)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 고 솔로몬은 선언하였다.(잠15:8). 영감을 받은 성경 기자들은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취하지 않고 드리는 의식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받아 드리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놓았다.


수요일(11월 5일)

죄와 부정의 제거(레 4:5-7)


도입)

구약의 희생은 본질적으로 대속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을 대신하여 제단에서 행하여지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제단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이요, 제사장은 죄인을 대표하였다. 희생의 제물은 이스라엘 사람을 대신하여 드린 대속물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들 스스로가 할 수 없는 것을 십자가상에서 행하였다.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의 공로로"받게 되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우리들의 참회와 감사와 헌신을 드리는데 이것들을 드릴 때에도 우리들의 참회와 감사와  헌신을 드리는데 이것들을 드릴 때에도 우리들은 "그의 이름으로"행한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그는 화목의 제물인데 우리들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들은 대속의 사상을 두드러지게 살펴 볼 수 있다. 구약에서 희생의 피가 죄를 범한 사람을 속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우리들은 이사야53장에서 희생의 의미가 최고에 달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느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와 같은 모든 표현은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한 저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나릴 형벌을 짊어지는 여호와의 종의 모습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영원하고 무한한 가치가 있는 희생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형상을 취하시여 인간과 같이 되어 인간의 형벌을 담당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형벌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상에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본시 죄가 없으시고 또한 일생 동안 사시는 동안에 한 번도 죄를 범한 일이 없는 그가 죄인이 되었다 (죄인의 자리를 취하였다). 바울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또 베드로의 말을 빌리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2:24).


1. 속죄제를 드릴 때에 제사장과 죄인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레 4:5-7, 28-31)

답:

희생 제사들에 관해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의식들이 있다. 회개한 죄인은 희생 제물을 성소로 가져와야 했으며, 그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것에 기대야 했다. 매일의 제사에서 손을 얹을 때에는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지라.”(레 1:4)는 말이 선언되었는데 이는 그 죄인과 그 희생 제물이 완전히 동일시됨을 나타내었다. 그 순간 그 희생 제물은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를 대신하여 서는 것이다.

몇몇 예외들이 있지만(레 1:14-15, 5:8), 일반적으로 희생 제물은 가져온 그 사람에 의해 죽여진다. 이 행위는 회개한 죄인들이 죄책감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회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죄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회개한 죄인이 아닌 희생 제물에게 내려졌다. 그의 생명은 하나님에 의해 보존된 것이다. 죄와 형벌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죄가 전가되면 형벌도 전가된다. 우리는 그 최종적인 성취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한다. 우리의 죄는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십자가에서 대신 당하신 그분께 전가되었다.

생축의 머리에 손을 얹고 죽게 하는 의식 외에도 피를 성소로 가져가는 의식이 있었다. 이를 통해 죄가 그곳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피가 성막 내부에 뿌려지기도 하고(레 4:6), 또 어떤 경우에는 번제단의 뿔에 발라지기도 했다(30절).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죄가 성소로 옮겨지지 않는 때에는 그 죄가 제사장을 통하여 옮겨졌다. 그런 경우에 제사장은 속죄제의 고기를 먹어야 했으며, 그렇게 함으로 자신이 백성의 죄를 담당하였던 것이다(레 10:17).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들의 죄책(罪責)을 받아들이셨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을 가리킨다.


교훈: 죄인이 희생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음으로 죄를 전가했던 것처럼, 우리는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예수님께 전가할 수 있다.


부가적용)

히브리어로 속죄라는 말은 "가리우다"(cover)를 의미하는데 영어 성경 흠정역에는 여러 가지 말로 번역되었다. 속죄하다, (죄를) 속하다, 화해시키다, 진정시키다, 용서하다, 자비스럽게 대하다, 연기하다 등 여러 가지 뜻으로 번역되었다. 히브리 원어의 속죄라는 말은 죄와 (시78:38, 79:9, 레5:18), 죄인 (레4:20)을 가리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죄를 사한 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이르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시지 않도록 죄를 가리우는 것을 의미한다. 알프레드 케이브(Alfred Cane) 박사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히브리 언어로 속죄라는 말은 "가리운다" 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보시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리우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다른 곳에 집중시키게 하는 것을 또한 뜻한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의분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죄를 속한다는 것은 죄가 보이지 않도록 빛나는 베일로 죄를 가리어 완전히 시선을 다른 데로 집중시키는 것을 뜻한다. 신약에서는 (의의) 새로운 옷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구약에서는 "속죄"를 의미하였다. 율법 하에서 속죄가 행하여 질 때에는 죄와 더러움을 보고 노여워 불타오르는 하나님의 눈을 죄를 가리운 옷으로 진정 시켰던 것이다.


목요일(11월 6일)

그 외의 제사들


도입)

죄를 멀리할수록 하나님을 더 가까이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모든 죄와 부정에서 깨끗하게 돼야 했다. 죄는 사람과 땅을 오염시키는 요소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죄이든, 개인의 죄이든, 무의식적으로 저지른 죄이든, 고의적으로 저지른 죄이든 모두 해결해야 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지속적으로 약속의 땅에 머물게 하기 위해선 공동체를 죄로부터 지켜야 했다. 죄 사함을 받는 일에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려면 먼저 우리의 죄와 부정을 정결케 해야 한다.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7).


1. 번제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레 1:3-9, 22:17-22)

답:

레위기에서 번제(燔祭)는 속죄하는 제사였다. 번제는 희생 제물이 제단에서 완전히 살라짐으로 그 사람을 위해 가납되었기 때문에, 여호와께 대한 완전한 헌신을 나타내었다. 번제는 또한 서원제(誓願祭)나 낙헌제(樂獻祭)로 드려지기도 했다(레 22:17-22). 서원제는 서원이 이루어진 후에 여호와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드려졌으며, 낙헌제는 개인적인 헌신이나 감사, 또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드려졌다.


2. 화목제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레 7:12, 16)

답: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