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속죄가 예고됨(11/1/08) > 안교교과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안교교과

제5과 속죄가 예고됨(11/1/08)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10.22 15:43 조회수 4,642
글씨크기

본문

 

11월 1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4분)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기억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연구범위: 창 3:15, 22:1-18, 출 32장, 34:6-10, 단 9장.

 

중심 사상: 하나님께서는 십자가가 있기 수 세기 전에 이미 여러 다른 방법으로 당신의 구원 계획을 예고해 주셨다.

 

안식일 오후

여호와께서는 죄의 치명적인 실체와 결과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기로 결정하신 후에 신속히 그 좋은 소식을 타락한 인류에게 알리셨다. (우주 역사상 최초의 선교사는 어떤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 자신이셨다!) 여호와께서는 이 약속의 성취를 위해 초림하실 예수님을 맞이하도록 당신의 백성이 준비되어 있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이 구속의 약속을 그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되새길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셨다. 구약 역사 전반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의 계획과 직접 연결되는 실물들과 제도들을 고안하셨다. 성소 제도와 제사장, 그리고 메시야를 상징하는 왕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최고의 희생제물이시고 참된 대제사장이시며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실현시킬 메시야 왕이신 분의 도래를 고대하게 하셨다.

 

핵심본문: 사 53:5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께서 구원의 약속을 모든 세대에 반복하셨음을 확인한다.

느끼기: 그분의 약속이 분명히 지켜졌음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

행하기: "여호와의 신실하심이 영원하도다"라는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한다.

 

교과 개요

I. 하나님께서 그 장소를 지정하심(창 22:1-12, 대하 3:1, 단 9:24-27)

A.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상상할 수 없는 지시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겠는가? 창세기 22:1-12을 역대하 3:1과 비교해 보라. 누가 그 장소를 선택했는가? 이 장소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이었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여러 세기에 걸쳐 드러내신 사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B. 다니엘은 초림의 시기에 관한 계시를 받았다(단 9:24-27).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알리시기 위해 그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II. 언약의 파기자와 언약의 회복자(출 24:3, 32:31, 35)

A.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시내산에서 언약을 세우셨으나(출 24:3), 그것은 이내 깨어지고 말았다. 우리 삶에 허용되고 있는 '금송아지들'은 무엇인가?

B.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속을 위해 하나님께 빌었으며,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놓고자 하였다(출 32:32). 비록 하나님께서 언약을 파기한 자들을 용서하셨을지라도 그 결과는 매우 고통스러웠다(35절). 죄가 용서받은 때에도 그 결과를 겪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사실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요점: 비록 우리가 언약의 파기자로서 몸부림쳐야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그 언약의 회복자이신 예수께로 돌아오게 이끄신다.

 

일요일(10월 26일)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약속(창 3:1-15)

1. 창세기 3:1-15을 읽으십시오. 특히 15절에는 어떤 예언이 주어졌으며, 거기서 우리를 위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창3:1-15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답: 여자의 후손을 보내셔서 뱀과 그의 후손을 이기고 사람을 구언하신다는 약속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 3:15을 메시야에 관한 예언으로 알고 있다.

첫째, 창세기 3:15의 문맥에서 뱀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의 앞잡이를 가리킨다(계 12:9). 에덴동산에서 이 악의 세력은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렸고, 하나님의 신실한 무리를 상징하는 여자의 장래 후손들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둘째, 창세기 3:15은 뱀이 여자의 후손에 의해 멸망될 것을 예고한다.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지만, 그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상하게 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슈프(shuph)는 두 경우에 다 사용되었다. 그 상하게 하는 것의 치명적인 정도는 신체의 어느 부분이 상하게 되었느냐에 달렸음을 시사한다. 그 후손은 치명상을 입지 않을 것이나, 뱀은 머리가 상하게 될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멸망당할 것을 의미한다.

셋째, 히브리어 명사 제라흐(zerah)는 일반적으로 '후손,' '후세,' 또는 '씨'를 가리키는 말인데, 단일 혈통의 후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단어는 또한 특정한 하나의 후손을 지칭할 수도 있다(참조 삼하 7:12-13). 창세기 3:15에서는 이 두 가지 용법이 다 사용되었는데, 신실한 교회를 가리키는 그 여자와 사단의 '후손들'을 각각 가리키는 경우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그 여자의 특정한 한 후손(남성 단수 명사)을 지칭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씨'가 특정한 후손을 가리킬 때에는 언제나 그것을 받는 대명사가 단수로 온다. 그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창세기 3:15이 시사하는 바는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마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구원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는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계 13:8, NIV)이시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영원한 죽음을 맛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그 놀라운 구원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기대하면서 에덴동산을 떠났다.

 

구속에 관한 최초의 약속

“사람에게 주어진 구속에 관한 최초의 암시는 동산에서 사단에게 내린 선고 가운데서 통지되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고 선언하셨다. 우리의 첫 부모가 듣는 데서 선언된 이 선고는 그들에게는 한 약속이었다. 이 선고는 사람과 사단 사이의 전쟁을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 큰 원수의 세력이 최후에 부서질 것도 선언하였다.”(부조와 선지자, 65)

 

<부가설명> 창3:15은 사단에게 내린 하나님의 선고이다. 마침내 사단은 죽을 것이다. 머리를 상한다는 말은 죽어 그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는 선언이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2:14). 마귀는 여자의 후손에 의하여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여자의 후손이 발꿈치를 상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할 것이다. 창3:15에는 세 가지 예언이 있는데, 그것은 가히 성경의 내용 전체를 포함한 내용이다. 1) 구주의 탄생=여자의 후손, 2) 구주의 고난=여자의 후손이 발꿈치를 상함, 3) 구주의 승리=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함.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아직도 비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본 교과의 저자도 이 비밀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여자를 “하나님의 신실한 교회” “하나님의 신실한 무리”라고만 해석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이렇게 해석하여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씀의 가장 깊은 진실을 놓쳐버리며, 또한 여자의 후손을 단지 뱀의 후손과 대조하고 만다. 물론 이 해석은 옳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은 “남자의 후손” 곧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추고 있는 비밀의 말씀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남자인 아담에게서 태어나게 되어 있다. 남자가 씨를 낳고 여자는 그것을 기른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아담 안에서 아담과 함께 죽은 자들이 되었다(고전15:22).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구주는 “남자 곧 아담의 후손(씨)”으로 올 수 없다는 것을 계시하는 말씀이다. 구주는 남자인 아담의 죽은 생명과 상관없이 당신 자신의 생명으로 세상의 남자를 경험한 일이 없는 순결한 처녀에게 잉태되어 탄생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그래서 구주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여 탄생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은 아담에게서 이어져온 생명이 아니다. 아담과 전혀 상관없는 당신 자신의 생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이 참으로 생명 있는 사람이요, 그래서 아담의 죽은 그 죽음을 대신 죽으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인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올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신앙생활하려면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세한 것은 필자의 책 “숨 쉬는 것은 썩지 않는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교훈: 원복음이라 할 수 있는 창세기 3:15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타락한 인류를 위한 구원의 계획을 예고하시고 곧바로 실행에 옮기셨음을 보게 된다.

 

월요일(10월 27일) "아브라함이 나의 때를 보았느니라"(창 22:1-12)

 

1. 창세기 22:1-12을 읽으십시오.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의 본질은 무엇이었습니까? 왜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요구하셨습니까? 여기에 어떤 중대한 문제가 연관되어 있습니까?

 

창22:1-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4 제 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답: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드릴 때 어떤 심정인지 느끼도록 하셨다. 그것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심정이다. 이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을 예시하는 사건이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깨달았다(요8:56). 이것이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의 실상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기를 원하셨다.

창세기 22장에는 왜 그 시험이 필요했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언약과 관련이 있음을 나타내 준다. 언약관계에서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이 "그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기를 기대하셨다(창 17:1). 그러나 아브라함은 거룩하고 순전한 삶의 표준에 항상 도달하지는 못하였다.(창 16:1-4, 20:1-10)

이삭은 언약의 아들이었고 그를 통하여 아브라함은 세상에 복이 될 것이며, 그 아들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이 성취될 수 없을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신 것은 언약관계의 끝을 말씀하신 것이었으며, 그에게 하신 특별한 약속이 이제 끝났음을 암시하신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땅의 모든 족속을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복의 방편(창 12:3)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선물로 주어진 아들을 하나님께 기꺼이 돌려드림으로써 그분께 대한 자신의 믿음과 헌신을 나타내 보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결심하였다.(히 11:19)

 

2. 무엇이 그 언약의 갱신을 가능하게 했습니까?(창 22:13-18)

창22:13-18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답: 여호와 이레 곧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로 언약이 갱신되었다. 수풀에 걸린 숫양은 십자가를 지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복의 근원이 되는 언약이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셨으며, 그를 위한 당신의 특별한 목적을 끝내시었다. 그러나 이삭 대신에 한 수양이 제공됨으로써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아들을 대신할 희생 제물을 제공하심으로 그와 맺은 언약의 갱신을 가능하게 하셨다. 인간의 희생 즉 죄인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제공한 희생제물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통하여 '준비될'(창 22:14) 그 복음의 신비 즉 대속적 속죄를 보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이삭은 그의 가정의 빛이요, 그의 노령의 위로요, 다른 무엇보다도 약속된 축복의 후사였다. 그런 아들을 사고나 질병으로 잃는다 해도 사랑하는 아버지에게는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을 것이요, 백발이 된 그를 슬픔에 잠기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친히 자신의 손으로 그 아들의 피를 흘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그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부조와 선지자, 148)

 

<부가설명> 예수님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 예수님의 희생의 때를 보았다. 아브라함의 씨라는 말은 혈통적 아브라함의 후손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도 포함하는 말이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9). 여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이 “씨”라는 말이다. 곧 헬라말로는 “스페르마”이다.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스페르마(씨, 후손)”라고 하였다. 그래서 “씨”라는 말이 혈통적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뜻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아브라함의 씨이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씨이다. 그것이 혈통적이 아닌 것은 다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신앙적 예언적 씨인 것이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씨로 예언되어 여자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신 예언적 아브라함의 씨이다. 그를 믿음으로 우리도 신앙적으로 아브라함의 씨가 된다. 그것은 육체의 생명과 상관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교훈: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대신하여 제공된 수양의 죽음을 통하여 장차 인류를 대신하여 희생되실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보았다.

 

화요일(10월 28일) 모세에게 당신의 구원을 알리심(출 32:7-10)

 

1. 시내산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진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단호하게 반응하셨습니까?

출32:7-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답: 그들이 우상을 만들고 절하면서 그것이 그들을 구원한 자라고 고백하였다. 그런 사상은 진정한 구주를 거절하는 사상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상을 발본색원해야 하셨다. 그래서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이 있게 되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반역의 행위였으며, 하나님과 방금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행동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만약 모세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멸망당했을 것이다.(출 32:11-14)

 

2. 이 사건이 있은 후 모세는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출 32:30-32). 여기서 복음의 원리가 어떻게 드러나 있습니까?

출32:30-32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답: 모세는 백성들의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그들을 사하여주시기를 구하였으며, 만일 가능하다면 자기를 속죄의 희생으로 받으시라고 간구하였다.

모세는 백성의 죄를 변명하는 대신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였다고 분명히 말하면서 그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였다. 용서는 죄를 묵인하는 것과 다르며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도 모세는 알았다. 그는 스스로 백성의 속죄를 위해 간구하는 중재자로 나섰다. 그런 후에 그는 상상조차하기 어려운 제안을 했다. 그는 자신을 여호와 앞에 속죄의 수단으로 드렸다! 그는 만약 그 백성이 여호와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하였다. 모세의 생명으로는 죄를 속(贖)할 수 없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으셨다.

 

3.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셨습니까?(출 34:6-10)

출34:6-10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7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8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리어 경배하며 9 가로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컨대 주는 우리 중에서 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으소서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치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너희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소위를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답: 여호와께서는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신다(출 34:7)고 하셨다. 이 말은 그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다는 의미이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모세에게 나타내셨다. 이 용서에는 "악과 과실과 죄"(7절),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히브리어의 '용서하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짊어지다'를 뜻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취급하시는 방법은 그 죄를 우리에게서 취하셔서 당신 자신이 담당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모세가 아닌 당신의 종을 통해 하시기로 정해 놓으셨다.

 

죄를 짊어지신 주님의 용서

“죄인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그분의 공로를 붙잡고 죄를 짊어지신 주님께 자신의 모든 죄를 자복하고 주님의 용서를 받아야만 한다.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15)

 

 

<부가설명>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 용서는 모세의 기도 때문이 아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용서하신 것이다. 그것이 장차 예수의 십자가를 통하여 온 우주에 현실로 실현될 것이다. 하나님 이름 여호와에는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이 아니면 존재도 생명도 생존되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의 보증이 되는 아실이 포함되어 있다. 참으로 놀라운 그 이름이며, 여호와 이름을 찬양할 것이다. 그 이름은 우리의 모든 것이다.

 

교훈: 모세가 반역하는 백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을 각오하고 하나님께 매달린 것은 예수님의 중보 사역을 예표한 것이었다.

 

수요일(10월 29일) 여호와의 종(사 52:13-53:12)

 

1. 이사야 52:13-53:12에서 어떤 약속과 소망을 발견합니까?

사52:13-53: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답: 하나님의 종이 우리를 대신하여 상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신다는 약속이 있다. 그것은 죄로 죽은 인류의 소망이다.

 

이 구절은 구약에서 가장 장엄한 성경절들 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희생제도가 속죄의 수단으로서는 한계가 있음이 암시되어 있다. 심각한 죄의 문제는 오직 여호와의 종만이 해결하실 수 있으셨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와의 종의 경험을 묘사한다.

백성: 백성은 처음에는 불신하였으나 나중에는 회개하였다. 그들은 그 종을 거의 나병환자처럼 상하신 분으로 인식하였고(사 52:14), 그가 "하나님에게 맞으며 사람에게 고난당하는" 것으로 생각했다(53:4). 그 종이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3절) 그들도 그를 멸시하였다. 그러나 백성은 그 종의 경험 속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즉 그분은 자신들의 슬픔과 질고를 당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분께서 그들 대신에 죄를 짊어지신 것이었다. 그들은 그 종의 희생에 비추어 보면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6절)라고 고백하였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만 죄로 인해 망가지고 뒤틀린 우리 모습을 깨닫게 된다.

그 종: 그 종의 경험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쓸쓸히 거절당하였으며(3절), 슬픔과 고난을 당하고 많은 곤욕과 심문을 당하였으며(7절) 심지어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지셨다(8절). 그러나 "그가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기 때문에(9절) 그렇게 취급받을 이유가 없었다. 왜 이 무고한 분이 고난을 당했는가? 그 까닭은 주께서 그 종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이었다(10절). 그분은 백성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여 그들로 거룩하고 의롭다는 선언을 듣게 하시기 위해 그들 대신 죽으셨다(11- 12절). 그러나 그분은 그 희생적 죽음 후에 다시 빛을 볼 것이며(11절), 높임을 받으실 것이었다.(13절)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가납될 만한 유일한 속죄로 묘사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자리에 서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심

“하나님의 아들은 타락한 인류를 들어 올리시려고 자신을 낮추셨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을 사랑한 아흔아홉 양인 하늘에 있는 무죄한 세계들을 떠나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당하시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함'을 받으셨다(사 53:5). 그분은 범사에 당신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육신이 되셨다. 그분은 배고픔과 목마름과 피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셨다. 그분은 음식으로 원기를 얻으시고 수면으로 피로를 푸셨다. 그분은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이 되셨으며 세상에 계셨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다.”(사도행적, 472)

 

<부가설명>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과 동등이신 말씀 하나님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 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이 되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2:5-8). 이것은 친히 인류의 죄 자체가 되셔서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하여 취하신 일이었다. 그 인류를 죽은 아담 안에 있었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행17:26). 모두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났다는 말이다. 아담이 하와 외에는 한 사람도 낳기 전에 선악과를 먹고 사망이 되었으나 여자의 후손의 약속으로 그의 육신의 생명이 유예되어서 자손을 낳게 되었다. 그가 이미 영생의 생명을 잃고 사망이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서 태어나는 자는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도 죄인 곧 사망의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이다. 아담 안에서 다 죽은 자들이다(고전15:22). 이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셨다. 이제 인류는 누구든지 아담 안에서 죽은 채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예수께서 하신 그 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예수 안에서 아담이 잃어버린 그 생명을 얻게 된다. 이것이 구원이며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 되어 오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몸소 당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랑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교훈: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한 몸에 지시고 많은 고난과 슬픔을 당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다.

 

목요일(10월 30일) 다니엘서에 예고됨(단 9:7-11)

 

1. 다니엘 9:7-11을 읽으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가 다니엘의 기도 가운데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

단9:7-11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데 있는 자나 먼 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마는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답: 본문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단 9:11)

죄로부터의 치유와 자유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죄인의 상태와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린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하며, 그래서 용서와 창조주와의 화목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심지어 용서받은 죄인들도 다니엘처럼 끊임없이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날마다 인식해야 한다.

 

2. 다니엘은 어떤 특별한 요청을 여호와께 드렸습니까? 그는 무엇에 근거하여 그러한 요청을 하였습니까?(단 9:16-19)

단9:16-19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답: 다니엘을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인간들의 어떤 의로운 일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의지하여 용서를 간구하였다.

 

우리가 자신의 죄된 상태를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 즉 용서는 간절히 간구함으로써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다니엘은 자신을 죄인의 신분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다니엘 9장에서,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방법'뿐 아니라, 그것이 일어날 '시간'에 관한 예언도 발견한다(참조 단 9:24-27). 그 '방법'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야를 통하여 성취되는 것이고, 그분의 희생적 죽음과 제사장적 사역의 시작을 위한 '시간표'는 70이레(490년)의 예언 가운데 주어졌다. 그 예언적 기간은 주전 457년에서 주후 34에 이르는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메시야의 강림을 위해 준비되기를 기대하셨다. 이 놀라운 예언이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의 계획의 모든 면들을 철저히 제어하실 뿐 아니라, 그분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목적을 기필코 성취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초림의 시기와 목적이 계시됨

“초림의 시기와 구주의 필생의 사업과 관련해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알려 주었다. 천사는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단 9:24)고 말했다. … 예언에 따라 이때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가 나타나야 하였다.”(선지자와 왕, 697-698)

 

<부가설명> 구주의 오심은 창세기 3:15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예언해 주셨다. 그 예언은 점점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서 어떤 여자에게서 나실 것인지를 사7:14에서 보여주시고 어디에서 나실 것인지를 미가 5:2에서 말씀하시고 언제 오실 것인지를 단9:25-26에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떤 삶을 사실는지 사52장 53장 등에 자세히 말씀하셨으며, 어떻게 속죄를 이루실는지 성서제도를 통하여 아주 자세히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예언된 그대로 모든 것을 성취하셨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24:44)고 친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루어진 말씀에 근거하여 넉넉히 믿을 수 있다. 믿는 자는 이런 모든 약속이 이루어지는 복을 누릴 것이다.

 

교훈: 다니엘서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가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며, 또한 "언제" 그 일을 이루실지에 관한 시간표가 주어져 있다.

 

금요일(10월 3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인간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행했을 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셔서 말씀하시기를, '나로 그 형벌을 받게 해 주소서. 제가 사람의 자리에 서겠습니다. 사람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소서'라고 하셨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1권, 1085)

“아브라함에게 요구된 희생은 그 자신의 유익이나 후대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다른 세계들의 무죄한 지적 존재들을 교훈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싸움터, 곧 구속의 경륜이 실현되는 장소는 우주의 교과서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나타냈기 때문에 사단은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가 언약의 조건을 따르지 못하였다고 비난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그를 고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온 하늘 앞에서 당신의 종의 충성심을 증명하여 완전한 순종만이 받으시는바 된다는 것을 나타내며 구속의 경륜을 그들 앞에 더욱 완전하게 밝히고자 하셨다.”(부조와 선지자, 154-155)

“이사야 53장은 연구해 보아야 할 장이다. 거기에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만으로 마음이 높아진 사람들, 헛된 것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구주의 이 같은 모습을 보고 스스로 마음을 겸비하게 하여 티끌에 앉아야 한다. 이사야 53장 전체를 외워야 한다. 그 감화는 죄로 오염되고 교만으로 높아진 영혼을 굴복시켜 낮추어 줄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4권, 114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모리아 산에서의 아브라함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여기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말씀은 곧 우리의 삶이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임을 증거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실 구주의 사랑을 깨닫도록 이끈다.

 

2.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구원의 계획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관 하에 일호의 어김도 없이 이루어졌다. 예수 안에서 이루신 그것을 믿을 때 우리는 영생을 즉시 누리게 된다. 이 영생의 생명으로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요약: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수세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셨다. 그 약속들은 매우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여호와의 진실하심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