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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하나님의 본성: 속죄의 기초(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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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9.24 14:35 조회수 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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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총 론

속죄(贖罪)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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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골 노인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이 워낙 심하고 눈도 먼 상태였다. 거의 임종을 앞두고 있는 이 노인에게 날마다 손녀가 찾아와 글을 읽어 주었는데, 손녀의 낭랑한 목소리를 노인은 아주 좋아하였다. 어느 날 손녀는 할아버지의 친구가 놓고 간 성경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펼쳤는데 요한1서 1장이었다. 손녀가 그 구절들을 읽어나가자 주의 깊게 듣던 노인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에서 멈추게 하였다.

“정말 거기에 그런 말씀이 있니?”

“예, 할아버지 그런 말씀이 있어요.”

“그 구절을 다시 읽어줄 수 있겠니?”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 동안 침묵이 흐른 후 노인은 다시 물었다. “그 책에 정말 그렇게 쓰여 있단 말이지?”

“예, 할아버지, 정말로 그렇게 쓰여 있어요.”

“얘야, 그러면 내 손가락을 그 구절에 대고 다시 한번 읽어 주려무나.”

손녀가 그렇게 하자, 앞을 볼 수 없는 그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는 떨리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사랑스런 아가야, 내가 어떻게 죽었느냐고 누가 묻거든, 나는 깨끗함을 받고 죽었다고 말해 주거라.”

이 이야기는 속죄(贖罪)의 교리가 하나의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타락한 죄인의 삶에 부여하신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임을 보여준다.

속죄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속죄(atonement)란 단어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 속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모든 장벽을 제거한다는 개념을 지닌 속량(贖良, expiation)의 의미도 포함한다. 속죄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강조하는데, 그 희생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장애물을 제거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유일한 구속(救贖)의 수단이다.

속죄는 사실상 성경의 다른 모든 교리와 연결되는 기초적인 교리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부활과 승천, 중보와 재림의 중심에 있다. 속죄란 죄와, 우리의 절실하고 근본적인 구원의 필요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품성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속죄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한 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이다.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사랑하시게 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다. 속죄의 교리는 죄 많고 반역하는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다.

속죄의 은혜를 충만히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성령에 감동되어 용서와 화해의 유일한 방편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제공하신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들뿐이다. 그들의 심령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무한한 희생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된다.

아무쪼록 이번 기 교과를 통해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의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우리를 위해 그토록 많은 고난을 당하신 주님께 더 큰 헌신을 바치기로 결심하길 바라며, 그리함으로써 서두에 언급한 어느 시골 노인과 같이 살든지 죽든지 평안함 가운데서 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인 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Ángel Manuel Rodriguez) 박사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현재 미국 메릴랜드 주 실버스프링에 소재한 대총회 성경연구소 소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대총회 장년교과 편집장 클리포드 골드스틴

 

10월 4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1분)

 

기억절: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 46:10)

 

연구 범위: 시 139:1-4, 사 46:10, 요 1:4, 롬 5:8, 8:37-39, 요일 5:11-12.

 

중심 사상: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그분의 속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죄인들이 그분께 사랑을 간청함으로써 그 구원의 사역이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안식일 오후

하나님의 속성, 그분의 거룩하심, 그분의 능력 등 우리가 그분에 관하여 이해할 수 없는 신비들이 많지만, 우리가 이해하기 시작조차 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난바 되었으며 우리 개개인에게 감동을 준다. 그것은 그분 자신의 속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구원의 교리를 공부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공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하심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된 이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아들을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일을 행하시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그분으로 하여금 그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이 타락한 세상에 쏟아 붓도록 결심하게 한 이는 그분 자신이셨다.

 

핵심본문: 사 46:10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느끼기: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하여 확신을 갖는다.

행하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교과 개요

I. 하나님의 품성과 속성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

A. 하나님의 품성은 사랑이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시며 심지어 범죄한 자들도 사랑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비열한 자들까지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B.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하기도 전에 미리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다. 우리의 누추한 작은 비밀까지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왜 이 지구를 없애버리고 다시 시작하지 않으셨는가? 이 사실은 우주의 다른 피조물들을 향한 그분의 사랑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II. 창조하시는 하나님(시 19:1-3, 롬 1:20-21)

A. 하나님은 당신의 평판을 높이시기 위해 홍보활동을 하실 필요가 없으시다. 우리는 주변에 펼쳐진 천연계를 통해 그분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시 19:1-3). 사단은 하나님의 품성과 속성에 의심을 던지기 위해 진화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롬 1:20-21)

B.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묘사하였다(고후 5:17).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던 때를 상상해 보라. 우리의 생애에 그것에 견줄 수 있는 사건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아야 하는가?

 

요점: 하나님은 죄로 손상된 이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하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 매일 우리 속에서 그 일을 하시도록 허락하자.

 

일요일(9월 28일) 영원하신 하나님(시 10:25-27)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구절에는 하나님의 속성이 어떻게 암시되어 있습니까? 답을 적기 전에 창세기 21:33과 시편 90:2을 읽으십시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시90: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답: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은 그 '태초'보다 먼저 존재하셨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원성이 암시되어 있다.

영원이란 대단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이며,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안다. 사실상, 우리의 모든 존재와 소유는 일시적일 뿐이다. 오늘 여기에 있지만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개념을 우리는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머리로는 영원이나 끝없는 삶에 관해 생각하기가 무척 어렵다.

 

2. 시편 102:25-27의 말씀은 신약의 어떤 이에게 적용됩니까?(참조 히 1:10-12) 이 구절은 시편 90:2과 함께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존재하신다고 말해 줍니까?

시102:25-27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히1:10-12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시90: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답: 창조주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신다. 예수님께 적용된 말씀으로 그분이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계시한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셔야 한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다. 우리는 계속 생존하기 위해 공기와 물과 음식이 필요하지만(창 1:29), 하나님은 존재하시기 위해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만드시기 전에, 영원을 통하여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홀로 존재하셨으며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셨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신 분, 곧 영원히 자존(自存)하시는 분만이 회개한 죄인에게 생명을 되돌려 주실 수 있으시다. 이제로부터 영원히, 창조된 생명은 위대한 생명의 시여자(施輿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요 1:4, 요일 5:11-12). 우리는 모든 것을 그분께 의존한다.

 

그리스도의 영원성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만드셨다면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셨다. 이것에 관해서 언급된 말씀들은 매우 결정적이기 때문에 아무 사람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최고의 의미로 하나님이시다. 그는 영원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하나님이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26)

 

<부가설명> “영원”이 어떤 상태인가? 시간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영원의 상태를 올바르게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시간에 대하여 이해하면 영원의 상태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의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다. 독자들이 가능하면 카스다 칼럼난에서 필자가 쓴 “성경에서 깨달은 시간의 신학”을 일별하면 참고가 될 것이다. 시간은 무한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끝난다. 성경은 시간이 끝난다는 사실을 분명히 계시하고 그때가 바로 구원 사업이 성취되는 때라는 것을 가르친다. 시간이 끝난 다음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 그때가 영원이다. 영원은 시간과 다른 단위이다. 시간이 끝나고 시간이 정복된 것이 영원이다. 그래서 시작도 끝도 없다. 구분은 있을는지 몰라도 시작과 끝이 없다. 나는 영원을 이렇게 이해한다. “시간을 정복한 상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을 정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생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생하는 생명을 가진 자들이다. 오직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렇게 된다. 예수님 그분이 바로 생명이며 영원이시기 때문이다. 시90:1절을 2절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교훈: 영원한 자존자(自存者)이시며 생명의 시여자이신 하나님만이 회개한 죄인에게 새 생명을 주실 수 있으시다. 그분만이 우리의 구속자가 되실 수 있다.

 

월요일(9월 29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시 118:1-4)

 

하나님의 신비로우심은 우리의 모든 이해력을 초월한다. 그분은 인간 스스로가 파악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시다(욥 11:7). 성경은 하나님이 어떻게 존재하시는지에 관해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은 그분께서 우리와의 관계와 활동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말씀한다. 그분께서 자신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분에 관하여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성경은 말한다. 즉 그분의 속성의 본질은 자기를 내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다른 이들의 행복에 관심이 많으시다.

 

1. 다음 구절들은 하나님의 품성과 속성에 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시 118:1-4, 롬 5:8, 8:37-39, 요일 4:8-9, 16)

시118:1-4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8:37-3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요일4:8,9,16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답: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며, 죄인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8)는 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깨닫게 된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은, 그분에 관해 탐구하면 할수록 그분이 본질적으로 사랑이심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속죄의 교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2)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은 그분이 피조물들과 더불어 교제하기를 기뻐하시는 지성적 존재이심을 말해 준다. 그분께서 사랑을 나타내시는 것은 바로 개인적인 상호관계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안 하시는지를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감정이나 느낌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그분께서 죄 많은 우리를 어떻게 취급하셨는지를 보면 된다. (3)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은 그분께서 그 어떤 존재로부터 강요를 당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가납되기 위해 우리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리고 구원의 계획보다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더 잘 나타내는 것은 없다. 참으로 우리가 죄에 빠진 바로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중보자와 구속자가 되셨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주신 것은 다만 인류 가운데 사시고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인류의 희생제물을 죽게 하신 것만이 아니다. 그는 그 아들을 타락한 인류에게 아주 주셨다.”(정로의 계단, 14)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심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사랑하신 것처럼 죄인을 사랑하실 수 있으실까? 물론 있으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그리스도께서 그같이 말씀하셨으며 주님의 말씀에는 추호의 꾸밈이나 거짓이 없으시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00)

 

 

<부가설명> 사실 사람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적인 것을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이 넘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랑에는 정이 아주 짙다. 그러나 정(情) 그 자체가 사랑은 아니다. 사랑에 정이 있는 것이다. 사랑의 본질을 우리는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고전 13장 외에 성경에 나타난 사랑을 살펴보면 사랑은 용서하는 정신이다(엡4:32). 사랑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살리는 것이다(요일4:9).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려는 정신,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정신, 진정으로 사람을 잘되게 하려는 정신이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기의 욕망이나 감정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정신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욕정일 뿐이다. 우리는 욕정이나 정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이 사랑이시다. 그분이 나타낸 것이 바로 사랑의 참 모습이다.

 

교훈: 사랑이신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류의 불행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구원의 계획을 시행하셨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이시다.

 

화요일(9월 30일) 창조주이신 하나님(시 100:3)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사실에 대해 성경은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이 근본적인 진리가 없이는 성경의 기별은 무의미해진다. 한편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사실은 그분이 창조와 구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그분은 창조 과정의 한 부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말은 그분 이전에 혹은 그분의 창조사역(롬 4:17, 히 11:3)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말은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하였고 그분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그분의 은택을 입고 있음을 뜻한다(시 24:1-2, 104:10-14).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말은 창조주의 영광과 능력이 그 지으신 만물 가운데 나타나 있음을 의미한다.(시 19:1-3, 롬 1:20)

 

1.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손상된 세상에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사 65:17, 계 21:1)

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답: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능력을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진술하고 있다(요 1:1-3, 히 1:2-3). 속죄란 하나님께서 이 창조의 세계 안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이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죄와 반역의 궁극적 결과인 영원한 파멸을 당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에 구원의 계획을 수립하셨다.

2.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 대해 어떻게 묘사했습니까?(고후 5:17)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답: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묘사하였다.

 

우주를 창조하실 때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타락한 인류를 당신의 형상으로 재창조하실 때에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말씀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셨는데(시 33:6), 이제 그분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하신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를 재창조하신다.(요 1:1, 12-13, 고후 4:16)

 

창조와 재창조

“성경의 최초의 두 장은 하나님이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셔서 인간의 본향으로 주신 것에 관하여 알려준다. 성경의 마지막 두 장 역시 하나님이 인류를 위하여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심에 관하여 말해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창조, 곧 죄가 초래한 폐허에서 지구를 회복시키는 것에 대한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508)

 

<부가설명> 구원은 재창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 외에는 구주가 될 수 없다. 어떤 죄 없는 피조물이 와서 죄가 된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 죄 없는 거룩한 천사들이라도 대속할 수 없고, 구주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구원은 창조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어 죄인 대신 죽으시겠다는 사실을 발표했을 때 죄 없는 거룩한 천사들이 자원하여 그 일을 맡겠다고 애원하였다. “천사들은 그들의 사령관의 발 앞에 부복하여 그들이 사람을 위한 희생이 되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천사의 생명은 죄의 빚을 갚을 수 없었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께서만 인간을 속량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다.”(부조와 선지자 64).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의 요구를 충만히 만족시키기 위한 충분히 가치 있는 유일한 희생이었다. 천사들은 죄가 없었으나 하나님의 율법보다 가치가 못하였다. 저들은 율법을 순종해야 했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기 위한 메신저였으며, 그분 앞에서 섬기기 위한 메신저였다. 저들은 피조물이었으며 유예 자들이었다. 그리스도에게는 아무런 의무사항이 놓여있지 않았다. 그는 생명을 내려놓을 수 있고, 다시 취할 수 있는 권세가 있었다. 그가 한 것은 자발적인 희생이었다. 그의 생명은 인간을 타락한 상태에서 구출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Review & Herald-December 17, 1872)”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의 창조라고 분명히 계시하였다.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사45:8).

교훈: 말씀의 능력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육신 하신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를 재창조하신다.

 

수요일(10월 1일) 거룩하신 하나님(사 40:25)

 

1. 이사야 40:25과 이사야 57:15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사40:25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사57:15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답: 이 구절들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 또는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분의 특별한 속성 중 하나이다. 그분의 거룩하심은 적어도 두 가지 근본적인 개념과 연결된다.

첫째,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분을 매우 특별한 분으로 나타낸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여호와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해 놓으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거룩'이라는 말이 하나님께 적용될 때에는 그분이 비길 데 없이 특별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주에는 하나님과 같이 장엄하고 위엄 있는 분이 없으며(참조 사 46:5, 9),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둘째,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분이 멀리 떨어져 계셔서 우리에게 다가오실 수 없고 우리와 교제하실 수 없는 분이시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분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사랑은 분리할 수 없다. 그분은 회개하고 자신을 낮추는 이들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써 당신의 피조물들도 그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신다.

 

2. 다음 성경절에서 어떤 약속을 발견하게 됩니까?(고후 5:21)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님을 죄인을 대신하여 죄가 되게 하심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를 묵인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반대한다(사 5:24, 호 9:15, 롬 1:18).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신다(합 1:13).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은 중보자의 역할을 필요로 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거룩하게 되어 그분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이 일은 속죄와 거룩함이 신비롭게 결합되어 있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해졌다. 거룩하신 분께서 당신의 대속적 죽음의 능력을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자 죄로 더러워진 이 세상에 아기로 탄생하셨다(눅 1:35).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됨

“지극히 거룩한 곳,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렀던 시은소가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모두에게 공개된다. 그리고 그분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교 관계를 맺는다. 휘장은 찢어졌고, 막힌 담은 헐렸으며, 의문에 쓴 증서는 제하여졌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원수된 것은 폐하여진 바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다 같이 생명의 떡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08)

 

<부가설명>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말은 더 쉽게 표현하면 “다르다”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과 다르신 분이다. 그가 거룩하다는 것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존재 문제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그의 거룩하심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외에 스스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주 만상이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이름 그대로 스스로 있는 자이시다. 그러니까 어떤 피조물과고 다르신 분이시다. 그래서 거룩하시다. 이런 가장 근본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다른 거룩한 모든 속성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의 거룩하심은 모든 피조물을 재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도 포함된 속성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못한 믿는 않는 사람들과 다르다. 그래서 성도 곧 거룩한 무리들인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을 그 안에서 단번에 이런 거룩한 사람이 되었은즉 이 상태를 계속 잘 지켜 나아가야 한다.

 

교훈: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묵인하는 대신 죄인들과의 교제를 회복하시기 위해 유일한 구속자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목요일(10월 2일)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시 139:1-4)

 

1. 다음 구절들은 하나님의 지식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시 139:14-16, 사 46:10, 마 10:30)

시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139:14-16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사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마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답: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숨은 생각까지도 간파하신다. 그분은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아신다. 그분의 눈앞에 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다. 즉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다(요일 3:20). 그분의 시야에서 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그분께서는 창조하신 우주를 바라보시며, 그 모든 부분을 세세히 아신다(시 139:7-10). 우리에 대한 그분의 지식은 완전하고 정확하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분만이 객관적이시고 공정하시다. 여호와께서는 현재를 완전히 아실뿐 아니라 미래에 어떻게 될 것도 정확히 아신다(사 46:10, 마 26:34, 74-75). 과거와 현재가 그분의 눈앞에서 숨겨질 수 없듯이 미래도 마찬가지다.

 

2. 죄가 발생할 것을 하나님이 미리 알고 계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벧전 1:19-20)

벧전1:19,20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답: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하실 일에 대하여 창세전부터 알고 계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속죄의 교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죄의 발생에 대해 놀라지 않으셨다. 모든 피조물을 완전히 아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천사 중 하나가 타락할 것을 미리 아셨다. 그래서 죄가 인류에게 퍼지기도 전에 죄의 문제를 다룰 계획을 세워 놓으셨던 것이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느니라(롬 5:20).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결정은 영원 속에 숨겨져 있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다. 이 비밀의 경륜은 "영세 전부터 감취"어져 있었으며(롬 16:25),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어져 있었다(엡 3:9).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죄의 발생을 미리 보셨으며, 그것을 피하는 대신 정복하기로 결정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리스도는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계 13:8)이시다.

 

구속의 경륜의 더 깊은 목적

“구속의 경륜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광범위하고 깊은 목적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만을 위하여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오신 것은 단순히 이 작은 세계의 거민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마땅히 생각해야 할 대로 생각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시기 위해서였다. 당신의 위대한 희생의 이와 같은 결과 즉 이 세상 사람뿐 아니라 다른 세계들의 지성적 존재들에게 그것이 끼치는 영향을 구세주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미리 내다보셨다.”(부조와 선지자, 68)

 

<부가설명>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인간이 생각하는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세밀하게 아신다.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이시다. 이 이름 안에는 성경에 계시된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이름에는 구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죄가 발생하지 않으면 구원하는 일은 나타날 필요가 없다. 죄가 발생했을 때 여호와의 이름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구원의 일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이 부모가 되었을 때에 자녀의 모든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과 같다. 자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을 변상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부모 몫이다. 왜냐하면 부모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상받을 일을 하면 그 영광도 부모의 몫이다.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가 아들이 잘못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어떤 계획을 짜놓지 않는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부모라는 위치가 당연히 그것을 해결하는 위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바로 이런 사실이 들어있다. 그러나 죄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이런 조처는 필요가 없다. 그래서 성경은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딛1:2,3)라고 계시한다. 즉 죄가 발생했을 때에 나타내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올바르게 알면 이런 문제들이 그 이름 안에 다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책 “숨 쉬는 것은 썩지 않는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교훈: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의 발생을 미리 아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할 대비책을 세우셨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속죄의 계획이었다.

 

금요일(10월 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오직 우리가 위대한 구속의 계획을 명상할 때만 하나님의 품성을 올바로 식별할 수 있다. 창조의 사업은 그분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범죄하고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만이 참으로 무한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깊이를 나타낸다.”(교회증언, 5권, 739)

“우리가 십자가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품성을 연구할 때 우리는 공평과 공의가 섞인 자비와 친절과 용서를 발견한다. 우리는 보좌 가운데서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시키고자 손과 발과 옆구리에 고통의 흔적들을 가지신 분을 본다. 우리는 가까이 하지 못할 빛 가운데 거하시나 당신의 아들의 공로를 통하여 우리를 받으시는 무한하신 아버지를 본다. 다만 비탄과 절망만 가져올 것처럼 보인 복수의 구름은 십자가에서 반사된 빛 가운데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기록을 나타낸다. '죄인이여, 살지어다! 살지어다! 너희 회개하고 믿는 영혼들이여, 살지어다! 내가 대속하였노라.'”(사도행적, 33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이번 주에 배운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의미는, 우리도 거룩하게 되라는 명령의 의미를 깨닫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때문에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바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능력이 있음을 나타낸다.

 

2.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우리의 자유의지 문제를 놓고 볼 때, 만약 우리가 선택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미리 알고 계신다면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운 것입니까? 토의해 보십시오.

* 우리의 선택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선택은 중립지대에서 좌나 우를 선택하는 그런 선택이 아니다. 태어나는 것부터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택되는 것이며, 그 선택된 것을 수용하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선택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창조로 아담을 선택하셨다. 아담은 이 선택을 수용하든지 거절하든지 할 수 있다. 아담이 거절했을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또 한 번 우리를 선택하셨다. 지금 우리는 이 선택을 수용하든지 거절하든지 선택해야 한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수용한 것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거절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선택을 수용할는지 거절할는지 아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선택을 수용하라고 호소하신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나 한 주일 동안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이 여호와 되심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되었고 그 이름 안에 구원이 포함된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구원이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선택이 제한적이라는 것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선택한 그 선택을 감사함으로 수용하며 거룩하게 살아야 하겠다.

 

요약: 생명이신 하나님만이 죄인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주실 수 있으시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그분이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며, 우리의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재창조하기 원하실 뿐 아니라, 재창조하실 수 있으신데, 이는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죄를 묵과하실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도 거룩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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