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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봉사를 위해 은사를 받음: 빌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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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9.10 11:17 조회수 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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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봉사를 위해 은사를 받음: 빌립

9월 20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32분)


도입)

신약 성경의 인물만 보아도 이름과 함께 별명 혹은 칭호가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바울 하면 사도, 스데반 하면 순교자, 사도 요한하면 사랑의 사도, 요한 하면 침례자 등이다. 이어서 예루살렘 교회의 7 일꾼 중의 하나인 빌립하면 전도자이다. 요즈음교회에 전도를 많이 하는 전도왕이 있다. 그런데 전도왕의 그 원조는 바로 빌립이다. 빌립은 전도왕 보다도 더 명예로운 전도자(행 21:8)라고 칭해졌다. 한글 개역 성경 사도행전 21:8에는 빌립은 집사라고도 칭해져 있는데 그것은 원문에 없는 것을 넣은 것이다. 원문에는 7명의 (일꾼 중의 하나인) 전도자 빌립이라고만 했다. 사도행전 8장은 전도자 빌립이 사마리아와 유대 지역에서 전도한 내용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도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도행전 1:8의 약속이 사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키운 7명의 일꾼 중의 하나였던 빌립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약속에 따라 성령을 체험하고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 와서 처음으로 전도한 이를 사도행전은 빌립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름은 영원히 전도자로 기억되는 것이다. 

기억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행 8:6).


연구범위: 행 6:3, 8장, 롬 12:6-8, 고전 12:1-11, 27-31, 딤전 3:8-12.


중심 사상: 빌립은 그의 사역을 통해 사마리아를 복음으로 뒤엎었으며, 영향력 있는 에디오피아인을 회심시켰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삶을 바친다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왕국을 진전시키는 일에 우리를 제한 없이 사용하실 것이다.


안식일 오후

빌립의 생애는 핍박을 피해 도망하고, 마술사와 대면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를 고치며, 에디오피아 왕궁에서 온 부자를 회심시키고, 성령에 이끌려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가는 등 분주하고 흥미진진한 삶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교회에서 긴 설교나 듣고, 하라 또는 하지 말라는 조목에 얽매인 시무룩하고 재미없는 사람들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은 전혀 사실과 맞지 않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것이다.

한 예로서, 이번 주에 우리는 빌립의 활기 넘치는 생애와 선교적 사명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가 봉사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을 때 전혀 새로운 경험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초기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택함을 받은 빌립은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직접 사마리아에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고, 간접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복음을 전하였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일요일(9월 14일)

봉사를 위해 부르심을 받음(행 6:3)


도입)

[빌립]은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서 열심으로 전도 활동을 한 평신도 전도자로 유명하다. 예루살렘교회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빌립은 모든 성도들의 귀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즈음 초대교회 내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구제품이 불공평하게 분배된다는 이유로 원망의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인 사도들은 구제사업을 전담할 일곱 집사를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성령과 지혜가 세우기로 진실한 빌립은 성도들에 의해 집사로 선택받고 사도들에게 인수받아 구제와 봉사에 힘쓰게 되었다. 그 후 교회는 점점 성장해 갔으나 교회에 대한 유대인들의 핍박도 이에 비례하여 심해져 갔다. 핍박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목숨을 노리게에 이르렀고 그 첫 희생자로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기화로 박해는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결국은 성도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복음을 확산시키는데 헌신할 사명감을 느꼈다. 사마리아 지방으로 내려간 빌립은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기시작했다. 당시 사마리아에서는 우상을 섬기고 술객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중에도 예수님께서 전하셨던 복음을 싹틔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4:39-42 참조) 빌립은 예수 이름으로 병든 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 내는 등 많은이 적을 행하였다. 술객들마저 극복할 수 밖에 없는 빌립은 능력 앞에 사마리아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침례 받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무리가 빌립을 따르게 되고 사마리아에는 기쁨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빌립을 사마리아에 그대로 머물게 하지 않으셨다. 사마리에서 누릴 수 있느 다모든 명예를 버리고 성령의 인도대로 빌립은 광야길로 떠난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빌립이 가는길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 계획된 길이었다. 광야길에서 빌립은 이디오피아 여왕 간디게의 내시를 만난다. 마침 성경을 읽고 있던 내시는 빌립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듣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다. 하나님께서 그의 충성된 일꾼 빌립은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복음화의 장을 열게 하신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빌립과 여섯 명의 사람을 택하여 집사로 봉사하게 하였다. 여기서 ‘집사’로 번역된 헬라어는 디아코노스(diakonos)인데,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는 ‘종’ 혹은 ‘섬기는 자’로 번역되었다. 예수께서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 23:11)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라(요 12:26)고 말씀하셨다.


1. 우리는 다음 구절들에서 빌립이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까?(행 6:3, 딤전 3:8-12).

답:


2. 다음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그 당시 초기교회의 분위기가 어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행 2:46-47, 4:32-33).

답:

그러나 좋은 시간은 계속되지 못했다. 마침내 커다란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참조 행 6:1). 이 당시에는 모든 신자들이 유대인이었는데, 거기에는 두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이스라엘에서 출생하지 않고, 헬라어를 사용하며, 헬라의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헬라파 유대인이었고, 다른 한 부류는 아람어나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철저한 유대교적 세계관을 가진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다. 교회가 급속히 성장함에 따라, 헬라파 유대인들은 음식을 분배할 때 자기들의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에 비해 소홀히 취급당하고 있다고 불평하였다.

공동체 안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이 큰 문제를 직면하면서, 열두 사도들은 함께 모여 좋은 리더십의 핵심 전략 중 하나인 ‘위임(委任)’을 실천하였다. 집사의 역할을 고안해낸 것이다.


교훈: 빌립은 초기교회에 봉사를 위해 세움을 입은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며, 사람들에게 칭찬 들을 만한 특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부가적용)

사도들이 결의한 끝에 예루살렘 교회에는 일곱 집사들이 선임되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빌립이 임명되었다. 믿음이 부족했고 계산적이고 그렇게 흠모할만한 사람이 못되었던 빌립이 일곱 집사에 선택을 받은 것은 무척이나 놀랍고 영예로운 일이다. 그런데 사도들이 집사를 임명하는 기준, 즉 집사의 자격은 성령이  충만할  것, 지혜가 충만할 것, 사람에게 칭찬을 들을 것, 세 가지였다. 예수님을 좇았을 때 그는 여러 면에 있어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훗날 빌립은 믿음이 크게 성장하여 이런 모든  자격에 부합한 집사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는 스데반을 제외한 다른 다섯  집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집사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그는 정녕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만인에게 칭찬받는 자가 되었다. 빌립의 생애는 교회 재정을 관리하고 봉사와 구제를 하는 집사라기보다는 복음을 위해 헌신한 전도자가 되었다(행 21:8). 예루살렘 교회에서 집사로 일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교회에 핍박이 나서 흩어진 이후 다시 예루살렘 교회를 섬겼다는 기록도 없다. 그러나 그의 가정을 복음으로 인도하여 딸들 네 명 있는데 이들 모두 처녀 예언자로서 주님의 일을 위해 살게 하였던 것으로 보아 그는 가정도 잘 이끈 집사였음을 보여준다.


월요일(9월 15일)

사마리아에서의 선교(행 8:15)


도입)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사마리아의 선교는 다소 의외의 사건처럼 비쳐진다. 왜냐하면 사마리아는 그 당시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는 거의 버려진 도시였다. 어느 누구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로 복음을 들고 사마리아로 가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사마리아가 땅 끝과도 같았던 곳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집사인 빌립이 복음을 들고 사마리아로 찾아간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마리아 전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듯이 말이다. 참된 전도자라면 오히려 남들이 찾지 않는 소외된 복음의 사각 지대를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빌립은 바로 이런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전도자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빌립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복음을 들고 간 더 큰 이유는 예루살렘에서의 핍박이었다.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에 채찍을 들어 사방으로 흩으시는 주님의 뜻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는 사마리아로 내려갔다. 그리스도를 사마리아 백성들에게 전파했다. 성령님이 도우셔서 갖가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성에는 큰 기쁨이 있었다. 이것은 주님의 뜻을 알고 실천한 빌립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 하나님의 편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핍박이 온다면 그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고난이 온다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주님의 뜻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일 것이다.


빌립이 성경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그가 유대의 북쪽 지역인 사마리아에서 활동하던 때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예루살렘뿐 아니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행 1:8) 선교사들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이제 빌립이 이 예언의 일부를 성취시키게 되었는데, 이 일은 빌립 자신이나 다른 신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지도자들은 빌립을 사마리아의 선교사로 파송하지 않았다. 그는 초기교회의 미개척지 복음화를 위한 계획을 맡은 사람도 아니었다.


1. 어떤 사건이 빌립으로 하여금 사마리아로 피신하게 하였습니까? 흩어진 신자들은 어떤 일을 하였습니까?(행 8:1-5).

답: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사건이 있은 후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울의 박해는 더욱 거세어졌고, 열두 사도를 제외한 모든 신자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첫 번째 ‘지하교회’의 표본이다. 그때로부터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그들의 신앙 때문에 도피해야 했던 수많은 상황들을 우리는 보게 된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지역의 재림교인들은 비밀리에 예배드려야 하는 형편 가운데 처해 있다.


2.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행 8:4). 아이러니하게도 박해는 복음을 더 널리 전파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사례를 알고 있습니까?

답:

이 때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운 시기였는데, 그들은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흩어져 또 다른 박해를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했다. 네 딸의 아버지였던 빌립(행 21:9)은 틀림없이 자신의 가족을 염려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빌립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신실하게 예수님의 복음을 나누는 일을 계속하였다.


교훈: 초기교회에 혹독한 핍박이 닥쳤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빌립은 사마리아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부가적용)

스데반의 순교를 신호로 예루살렘 교회는 큰 핍박이 시작되었고 빌립은 예루살렘에서의 핍박으로 인해 사마리아로 내려갔다. 피를 본 사울은 교회를 진멸하려고 집집마다 수색하여 신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잡아다 옥에 가두었다. 결국 죽기를 각오한 사도들 외에는 유대로, 사마리아로 각기 다 흩어졌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피 흘려 사신 교회(20:28)요 그리스도의 몸(엡1:23)이다. 더구나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의 뿌리요 모체이다. 그러니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셨겠는가? 이 예루살렘 교회를 출발점으로 하여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것을 보았다. 그러니 얼마나 관심이 많겠는가? 그런데 왜 하나님은 교회에 큰 핍박이 나도록 허락하셨을까? 이제 막 돋아나는 교회의 싹을 꺾으려는 사울 일당을 그냥 두셔서 교회가 흩어지게 만드셨을까? 이것은 행 1:8의 말씀을 이루려는 주님의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다. 이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셨다.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은 권능을 받았다. 예루살렘 교회는 점점 부흥되었다. 수천 명, 수만 명 이상의 교회로 성장했다. 은혜가 충만했고 사랑이 넘쳤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와 사마리아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이들을 흩어 내보내신 것이다.


화요일(9월 16일)

증거를 위한 기회들(행 8:26-39)


도입)

핍박을 통해 예루살렘의 전도에 위기가 닥쳤다. 그러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예루살렘에서 전도가 막히면 다른 곳에서 전도가 되었다. 인생길에 있어서도 한 길이 막히면(안되면) 다른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을 본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안된다고 할 때는 안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한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갔다. 복음이 전파된 순서는 첫째는 유대인과 동질문화권, 그리고 유사문화권인 사마리아에 전도된 후, 마지막으로 타문화권 순으로 전파되었다. 복음이 우리나라 북한에 먼저 들어와서, 동질문화권인 중국, 몽골에 전도하기가 쉬운 것이다. 빌립은 헬라파 유대인이었고, 그의 언어와 문화 배경이 헬라에 젖어 있었고 또한 유대 종교예식을 습득하고 있었다. 다른 이보다 여러 면에 있어 전도하기가 유리하였다. 빌립은 전천후 전도자로서 주님의 뜻을 행하며 살았다.


재림교인들은 종종 선교의 문을 열기 위한 ‘쐐기’에 관해 이야기하곤 한다. 왜냐하면 편견 때문에 곧바로 성경과 예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없는 여러 지역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영적인 것에 관해 이야기를 듣자마자 편견의 벽을 쌓아버린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건강 기별은 이러한 편견의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을 준다. 개인적인 우정은 아마도 가장 효과적인 선교의 쐐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람들과 친구가 될 때 그들은 종종 우리의 그리스도인 신앙에 대해 물어오기 시작한다.


사도행전 8:26-39에 나오는 빌립과 내시의 이야기를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1. 빌립은 무엇 때문에 그곳으로 가서 그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답:


2. 빌립은 어떤 방법을 써서 내시에게 증거하기 시작했습니까? 빌립은 내시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였습니까?

답:


3. 내시는 침례를 받기 위해 어떤 요구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끌어낼 수 있습니까?

답:

에디오피아 내시는 경배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실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는 이방인이요 내시였기 때문에 유대인의 뜰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이중적으로 부적격했다(참조 신 23:1). 그러나 이제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신(엡 2:14) 한 분에 관하여 들었을 때, 실망한 그에게 희망의 빛이 비쳐왔다. 그는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빌립에게 침례를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것은 이방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첫 번째 사례이다.


교훈: 편견의 벽에 가로막혀 있던 에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침례를 받음으로 최초의 아프리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부가적용)

사마리아 교회가 점점 부흥되고 한창 재미있을 때 주님의 사자가 빌립에게 나타났다. 일어나 사마리아를 떠나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길로 내려가라 하셨다. 순종하여 내려가 보니 그곳은 마을이 아니었다. 광야였다. 사람이 있어야 전도를 하고 마을이 있어야 교회를 세울 텐데 광야였다. 그 때 에티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책임진 권세 있는 내시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는 털털거리는 병거 위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성령의 지시를 받은 빌립이 가까이 가서 “읽는 글이 무슨 내용인지 깨달아 지십니까” 하고 물었다. 내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빌립은 병거 위로 올라가 내시가 읽고 있던 이사야 53장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이렇게 복음을 받아들인 내시는 침례를 자청하여 받고 기쁨으로 본국에 돌아갔다. 성령께서 광야로 보내신 데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사랑하시는 주님의 뜻이 담겨 있었다. 수가 성에 사는 사마리아 여인을 전도하기 위해 사마리아를 찾아가신 주님이 한 명 내시를 전도하기 위해 빌립을 이 광야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한 명이 아니었다. 한 나라를 전도한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내시는 에티오피아 최초의 전도자가 되었고 많은 사람을 전도했으며 여왕까지 믿게 했다고 한다. 지금도 아프리카 지역의 유일한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이 결코 우연의 일은 아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국가의 신앙적 초석이 된 것이다. 우리는 종종 주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저 이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면 순종하여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그 뜻을 깨닫게 된다. 만약 빌립이 “나를 왜 이 광야로 보내시는지 알려주십시오”하고 몇 일씩 작정기도를 한 뒤에 내려갔다면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빌립은 주님의 뜻을 안 뒤에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순종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다.


수요일(9월 17일)

봉사를 위해 은사를 받음(고전 12:1-11)


도입)

에티오피아 내시를 전도한 후 빌립은 아소도 지방의 여러 마을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주님은 그를 가이사랴에 머물게 하셨고 후에 바울이 찾아갔을 때까지(행 21:8) 20여 년간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주님의 뜻을 따라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복음을 들고 어디든 나서던 빌립을 주님은 이제 한 지역에 머물게 하셔서 한 교회를 섬기면서 집사로 전도자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것은 주님을 위해 어디든 순종하고 나갔던 빌립에게 내리신 주님의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이사랴에는 로마 총독부가 위치해 있는 곳이어서 복음 전파가 쉽지는 않았겠으나 이곳은 교통과 행정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중요한 곳이었다. 예수님의 뜻을 헤아려 알아야 한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살라는 이것이니라”(요6:39) 하셨다. 이런 주님의 뜻을 알아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중히 여기고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을 주님은 또한 귀히 여기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각자는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도록 은사를 받았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영적은사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으며, 특히 새로운 신자들의 선교사적 열정에 불을 붙여 주는 역할을 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이 영적은사에 대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였다(고전 12:1). 여기서 바울이 ‘은사’라는 말로 사용한 헬라어는 카리스마타(charismata)인데, 이 단어는 영적은사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중 다섯 번째 신조는 성령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성령께서는 교회에 영적은사를 부여하신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중요한 개념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통해 은사를 주시지만 그것은 참으로 교회를 위한 은사이다.

영적은사는 결코 신자 개개인의 유익이나 발전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선교와 봉사라는 맥락에서 주어진다. 영적은사는 교회라는 더 넒은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여 신자들에게 주어졌으며, 세계 선교라는 틀 안에서 교회의 유익이 되도록 주어졌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경험한 이야기(행 8:4-8)는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의 어떤 단계에서 특별한 은사를 허락하셨음을 말해 준다. 그리하여 그는 집사 빌립에서 전도자 빌립으로 변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 빌립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교회의 관리자에서 사마리아의 전도자로 변신하여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하게 한 중요한 단계였다.


1. 성경에서 영적은사에 관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곳이 두 군데 있는데(롬 12:6-8, 고전 12:1-11, 27-31), 이 구절들을 읽고 사도행전 8:4-8과 비교해 보십시오. 빌립은 어떤 영적은사를 발휘했으며,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답:


교훈: 영적은사는 신자 개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인데, 빌립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며,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은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부가적용)

 전도자 빌립은 복음을 전하되 동시에 많은 표적을 행하였다. 그리하여 더러운 귀신들이 나가고 중풍 병자와 앉은뱅이가 일어났다. 이는 곧 빌립이 큰 능력의 소유자임을 보여 준다. 마치 우리 주님께서 기사와 이적으로 많은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선호했듯이 그렇게 빌립도 큰 능력을 행하여 많은 무리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도자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복음으로 돌아온다. 고대 당시 복음의 초창기에는 말로서는 도무지 전도가 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들에게 이런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으로 기록된 현대에는 이런 능력들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은 말씀의 능력을 주셔서 세상 사람들이 복음으로 돌아오게 한다. 따라서  전도자들은 말씀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이런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사역을 힘 있게 그리고 능력 있게 수행할 수 없다. 빌립의 표적과 능력의 행사 때문에 많은 사람이 복음을 믿게 되었다. 중풍병자가 낳고 앉은뱅이가 낳는 표적을 보고 많은 이가 따라왔다.


목요일(9월 18일)

빌립과 마술사 시몬(행 8:9-25)


도입)

마술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는 술법, 또는 여러 가지 도구나 손재주로 사람의 눈을 속이는 술법'이다. 브리태니커 사전에서는 마술에 대하여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는 외부의 신비로운 힘에 접근함으로써 인간이나 자연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의식이나 행동"이라고 하였다. 마술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의 주장이 있다. 하나는 마술을 종교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외부의 교묘한 조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마술사나 요술사를 '눈속임을 위해서 사람들의 심리와 손재주를 교묘하게 결합시키는 배우'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쇼라는 것이다. 그러나 빌립의 표적은 쇼가 아니고 마술이 아니었다. 빌립이 많은 표적을 행하였을 때 그 중 시몬이라는 사람은 마술사로 사람들의 추앙과 칭송을 받던 사람이다. 그는 빌립의 능력을 보자 그의 능력으로 인해 빌립을 따라 다녔다. 그가 예수를 믿고 빌립을 따라다녔다. 왜 따라 다녔을까? 마술은 속임수이나 표적은 속임수가 아니라 진짜이다. 시몬이 빌립을 쫓아다닌 것은 자기 것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빌립에 의해 침례를 받은 마술사 시몬의 관심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기적과 놀라운 일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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