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과 선교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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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과 선교의 여인들
9월 6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54분)
도입)
성경에는 하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스라엘의 홍해를 건넌 후에 여인들을 이끌고 기쁨에 념쳐서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라“(출 15:2)하고 노래한 것은 미리암이었다.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침내 다윗왕의 증조할머니가 된 룻이었다(룻 1:16, 4:17). 능력 있는 사내들이 없을 때 이스라엘을 지도한 것은 드보라였다(삿 4:4-5:31). 기도로 얻은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 맡긴” 사람은 한나였다(삼상 1:1-28). 최후를 맞게 된 동포를 구하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서 용감히 나선 사람은 에스더였다. 선지자 엘리야를 봉양하여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게“ 만든 것은 가련한 과부의 자비심이었다(왕상 17:9-16). 예수께서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육신의 병을 치료받고, 영혼까지도 구원을 얻은 것은 주님의 옷자락을 잠깐 만졌던 소심한 여인의 믿음이었다(마 9:22). 값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리게 한 것은 한 여인의 감격어린 사랑이었다(막 14:3).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은 것은 한 여인의 애통하는 마음씨였다(눅 7:38). 예수님으로 하여금 ”이 가난한 과부는 모든 사람이 연보궤에다 넣은 것보다 더 많이 넣었도다.” 라고 말씀하시게 한 것은 과부의 동전 두푼이었다(막 12:43) 왕중의 왕, 주님중의 주님 되시는 예수께 생을 주신 분은 여인들 중에서 축복을 받은 마리아였다(눅 1:26-56). 봉사한 것은 마르다였고 주님의 발밑에 있었던 것은 마리아였다(눅 10:38-42).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나보고 “가서 알리라”는 첫 번 부탁을 받은 자는 주님의 시체에 바르려고 향유를 가지고 갔던 막달라 마리아였다(요 20:17-18, 막 16:9). 바울의 전도여행시 “두아디라성의 자주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여...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행 16:14)구라파의 첫 신자가 된 것은 루디아였다. 항상 선행을 힘썼고 그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구제란 단어의 동의어로 남아있는 사람은 도르가이다(행 9:36). 뵈뵈는 “교회의 일군”이라고 일컬어졌고, 브리스길라는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불리워졌다(롬 16:1-4). 디모데를 가르친 것은 로이스와 유니게였다. “사랑하는”(롬 16:12)라고 불리어진 것은 버시였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도 주를 위해 수고했다고 알려져 있다(롬 16:12)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그 이름을 성경 남긴 여인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
기억절: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연구범위: 눅 8:41-55, 요 4:1-40, 행 16:14-16, 18:1-3, 24-28, 롬 16:3-5.
중심 사상: 신약에서 비록 여인들이 눈에 띄는 역할을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안식일 오후
성경 역사에서 여인들은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였다. 그들 중에는 선한 여왕들과 악한 여왕들, 정직한 하녀들, 기도하는 어머니들, 능력 있는 지도자들, 영향력 있는 아내들, 관대한 자선가들, 매춘부들, 선지자들, 여집사들, 친절한 여주인들, 예수님의 충실한 후원자들과 친구들이 있었다.
에스더와 드보라 같은 여인들은 무대의 중심을 차기하기도 했다. 성경이라는 커다란 캔버스에서 사명을 가진 여인들이 여러 방면에서 하늘 왕국을 촉진시킨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된다.
신약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여인들을 대하신 모본을 본다. 한편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을 재정적으로 돕고(눅 8:1-3), 그분의 필요를 보살펴 드린(막 15:41) 모습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특별히 여러 경우에 여인들을 위한 사역을 하셨다. 예수님의 많은 제자들이 그분의 죽음에 이르러 그분을 버렸을 때, 여인들은 신실하게 남아 있었으며 십자가 곁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여인들은 그분의 부활을 목격한 첫 번째 사람들이 되었다.
이번 주에 비록 짧은 기록이긴 하지만 신약에 나오는 몇 여인들이 교회의 선교를 위해 담당했던 중요한 역할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일요일(8월 31일)
관습을 깨뜨리심(갈 3:28)
도입)
성경을 읽어본 사람들이면 한 번씩 느꼈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일화와 설교가 여성을 비하하고 있는 듯한 느낌. 여자라면 더 많이 느꼈을 만하다. 믿음이 있는 여자라면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왜 이렇게 말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당신의 느낌은 그다지 틀린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그 당시 여자를 남자보다 못하게 취급하였던, 더욱 적나라하게는 소유로서, 도구로서 취급하였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 사실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이다라는 말과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을 문화적인 비평을 통해 읽어야 한다는 점이 요즘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예전보다는 이것이 그다지 "불경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성경이 등장인물의 장점 뿐 아니라 단점까지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기록이라는 생각을 하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또한 성경을 보면 그 여자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으며, 그 당시의 그런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울림이 담겨있다. 낮고 울림이 큰 소리는 높은 소리보다 덜 전달되는 듯 하여서 여러 가지 소리 중에서 그 울림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수세기를 통해 계속 확장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전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여성, 소수민족, 이방인, 장애인 등에 대해서 점점 인식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모든 인간이 사랑받고 존중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모든 우상 위에 (우상에는 제도적인, 무의식적인 차별과 선입견이 포함된다)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측면에서 성경의 여자들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처했던 상황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다시 파악해보고, 나아가서는 요즘의 상황은 어떠한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제도를 변화시켜야 할 점은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사회에서 여자들은 대체로 공적인 활동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식일 예배에서 그들은 참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불과했으며, 이방인들처럼 회당의 바깥뜰에 머물도록 지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자들의 뜰은 남자들의 뜰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
공적인 자리에서 남자들은 심지어 자기 아내라 할지라도 여자와는 말하지 못하도록 제한되어 있었다. 여자들은 토라(Torah)를 공부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성경을 만지는 것조차도 금지되어 있었는데, 이는 그들로 인해 성경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는 다르게 접근하셨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사랑스런 자녀들이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남자들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여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 랍비들은 여자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기쁘게 가르치셨다. 한 가지 예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그분의 제자로서 그분의 발아래 앉았었다(눅 19:38-42).
여자들에 대한 편견은 생활 전반에 걸쳐 침투해 있었다. 남자들은 아주 하찮은 사유로도 여자와 이혼하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여자들은 아무리 중대한 사유로도 남자와 이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마치 여자를 남자의 노예처럼 취급하는(마 19:3-8) 그 당시의 관습을 신랄한 어조로 책망하셨다.
1.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의식(儀式)상 부정한 여자들을 접촉하심으로 율법의 규례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살리셨고(눅 8:41-42 49-55),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당신께 손을 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눅 8:43-48). 그분께서는 평판이 좋지 않은 한 여인이 당신의 발을 씻기도록 허락하셨습니다(눅 7:37-39). 그분은 어떤 원칙을 따르신 것입니까?
답: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신 동안 인간적인 편견의 벽을 깨뜨리셨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다(갈 3:28).
교훈: 예수께서는 그 당시의 보편적이었던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관습을 깨뜨리시고 여자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로 동등하게 대하셨다.
부가적용)
여성들을 남성들에 비해 하급한 존재로 보는 유대교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랍비 유다 벤 엘라이(주후 150 년 경)의 기도문에서 단적으로 찾아 볼 수 있다: “매일 세 가지 찬양을 드려야 한다: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지 않으신 이는 찬양을 받으소서! 나를 여자로 만들지 않으신 이는 찬양을 받으소서! 나를 무식한 자로 만들지 않으신 이는 찬양을 받으소서!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지 않으신 이는 찬양을 받으소서: 모든 이방인들은 그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나를 여자로 만들지 않으신 이는 찬양을 받으소서: 왜냐하면 여자는 계명을 지킬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무식한 자로 만들지 않으신 이는 찬양을 받으소서. 왜냐하면 무식한 자는 죄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Tos. Berachot 7:18. J. Leipoldt, Jesus und die Frauen. Leipzig 1921, 3-4에서 재인용.
여성에 대한 유대인들의 평가 절하는 그들의 종교 생활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유로서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이라고 여기는 모세 오경 중 창세기 2장의 창조이야기와 3장의 타락이야기에 두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여성들을 남성보다 하급한 존재로서 인식시키고, 그리하여 남성들, 즉 아버지와 남편에게 소속되고 그들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가르쳐왔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유대인으로서 이러한 문화권 안에서 살아온 예수께서는 이들과는 다른 견해를 취하고 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비유로써 가르치고, 병고침과 귀신축출로써 하나님나라의 현존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여자와 남자를 차별 없이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그 나라의 백성은 남자만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여자도 차별 없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예수는 당대 유대인들과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의 창조신학에 있다. 즉 일반 유대인들이 창 2장과 3장에 기초해서 여성들을 비하했다면, 예수는 창 1장에 근거하여 남녀가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 되었다는 창조신학에 그의 사상과 행동의 기초를 두고 있다. 창세기 1 장에서 하나님이 그의 피조 세계를 창조하시고 나서 매번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감탄하고 있는 반면, 창세기 2장에는 이러한 표현이 없다. 예수께서는 창세기 1 장의 창조신학을 하나님의 창조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별히 그의 지상 활동 중 메시지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창조의 뜻과 질서가 회복되는 시공간적 영역이다. 이런 점에서 바로 하나님이 창조의 원 뜻, 남녀가 동등하게 하나님의 귀한 형상으로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일이 그의 나라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예수께서 선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월요일(9월 1일)
우물가의 여인-1(요 4:27)
도입)
`사마리아인'의 기원은 BC 721년 사르곤 Ⅱ세에 의한 사마리아 점령 후 각지에서 이(異) 민족을 옮겨 잔존 이스라엘 사람과 혼혈하여 출생된 것이라고 한다(왕하17:24-40). 그러나 이스라엘적 요소가 우세하여 이 혼합 종교 중에도 여호와예배의 한 변형으로서의 특질을 가졌다. 열왕기하 17:29의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언급은 그들을 비이스라엘인의 혼합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것은 후대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의 적대시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랍비 문학에는 사마리아인을 `구데인'(Gutheans)이라 부르고 있다. 그들이 바벨론의 성읍 구다(Cuthah) 출신이라는 견해에 근거한 명칭인데(왕하17:24참조), 이것은 모멸적으로 이방인을 지칭하였다. 벤 시라의 지혜서 50:26에는 사마리아인을 `세겜에 사는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고, 요한복음 8:48에는 유대인이 주 예수에게 너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라고 하여 사마리아인에 대한 유대인의 모멸은 고질적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 자신의 견해에 의하면, 그들의 명칭은 사마리아성읍 이름에서가 아니고(somerim)에서 온 것으로서 `(참 율법을) 지키는 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유대 당시 사마리아인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혼혈아들을 말한다. 히브리라는 곳은 북쪽에 이스라엘과 남쪽에 유다로 나눠져 있었는데 남쪽의 유다인 들은 북쪽에 이스라엘인들이 여호와 아닌 다른 신을 믿고 있다고 타락했다고 믿었고 북쪽에 이스라엘인들도 이미 등을 돌린 동족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사마리아는 바로 이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였다. 히브리는 중동 전체적으로 볼 때는 아주 작은 지역이었다. 주변에 강대국들이 많았는데 앗시리아와 바벨론이 대표적인 강대국들이었다. 앗시리아는 북쪽이스라엘을 먼저 멸망을 시켰다. 그리고, 신흥 바벨론의 세력이 남쪽 유다를 노리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집어 삼키지는 않고 처음에는 공물을 바치며 화친을 맺었었다. 그러나, 결국 바벨론에게 남쪽 유다도 망하고 말았다. 주민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갔고 정복민인 바벨론 인들과 구분을 받았다. 바벨론도 몇 년 뒤에 페르시아에 정복되었고 남 유다인들은 페르시아에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페르시아의 황제는 너그러운 정책을 써서 남유다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서 여호와 신전을 지으라고 허락해주었다. 이때 고향에 돌아와 보니 이미 먼저 와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앗시리아인들과 혼혈인 사마리아인들이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혼혈 그자체로도 유다인들에게 거슬렸지만 앗시리아인들과 어울리면서 앗시리아의 폐쇄적인 풍습을 따르기 때문에 문란한 사람들이었다. 이리하여 유다인들은 이들을 거부하였고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이때부터 서로 갈라서게 되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분쟁은 몹시 오래되었고 원한 또한 깊었다(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열왕기하 17:24-41을 읽으라).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려 했을 때 사마리아인들은 그 역사(役事)를 그치도록 방해했다(참조 스 4:7-22, 느 4:1-5). 이와 같은 사건들과 성전의 정확한 지점에 대한 논쟁은 이들 사이에 증오심을 일으켰다. 유대인이 동료 유대인에게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독한 욕이었다. 한번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귀신들린 사람 혹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분을 모욕하려 한 적이 있었다(요 8:48).
남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북쪽 갈릴리로 가는 가장 짧은 지름길은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런 여행을 할 때에는 오래되고 원한이 깊은 원수를 피하기 위해 불편을 무릅쓰고 사마리아를 우회하여 더 먼 길을 택하곤 하였다.
1. 누가복음에 나오는 다음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셨음을 보여줍니까? 이 사실은 문화적 전통으로 인해 멸시되어 온 사람들을 우리가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 것을 말해 줍니까?(눅 9:51-56, 10:30-37, 17:11-19).
답:
복음서 기자들은 여러 곳에서 사마리아를 직접 통과하신 예수님의 여정을 보여준다. 한번은 예수께서 유다에서 갈릴리로 가는 여행 중에 수가(Sychar)라는 사마리아 동네에서 멈추셨는데, 그곳은 사마리아인들에게 거룩한 장소인 그리심 산이 가깝고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이었다. 거기서 그분께서는 사마리아인, 그것도 사마리아 여인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셨다(참조 요 4장).
유대인이신 예수께서는 놀랍게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셨는데 이 사실은 그녀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돌아온 제자들은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는데(요 4:27) 이는 비록 종교적인 교사에게조차도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훈: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요청하시고 그녀와 대화하심으로 유대인들의 오랜 전통을 깨뜨리시고 편견의 장벽을 허무셨다.
부가적용)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기전에는 아무 기쁨이 없이 살던 여인이었다. 진실한 친구도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싫어한 외로운 여인이었다. 마음에는 상처뿐이고 본능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이며 날카로운 발톱을 치켜세우는 여인이었다. 여인이 사는 동네는 수가라고 불리었다. 수가 마을에는 야곱의 우물이라는 오래되고 깊은 우물이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이날도 한 낮에 이 여인이 물을 길으러 우물로 물동이를 이고 걸어갔다. 중동에서는 저녁에 선선할 때 우물가에 와서 물을 긷는다. 그들은 한낮에는 활동하지 않는다. 낮잠을 잔다. 이 여자는 대낮에 남들이 물을 긷지 않는 시각. 정오에 우물가로 물을 길러 나왔다. 자신을 향해 수근 수근 하는 것이 거슬려서 아무도 없는 한 낮에 물 길러 온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우물가에 낯선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낯선 유대남자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물 좀 주시겠습니까?" '이 남자 혹시 나에게 맘이 있어서 말을 붙이는 것 아냐?' 하고는 순순히 물을 주지 않고 "당신은 유대인으로써 어찌하여 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쏘아붙인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방인과 피가 섞인 혼혈이고 유대인은 순수한 혈통을 지켜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항상 사마리아인들을 천대하고 멀리했다. 지나갈 때도 사마리아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서 다녔다. 그런데 왜 유대인이 아쉬운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다. 무슨 관계가 있다고 다정하게 말을 거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 물 이야기로 시작하여 영생에 관한 구원에 대한 이야기로 이끄셨다. 예수님은 남들이 물을 길러 오지 않는 정오에 물을 뜨러온 여인의 영혼의 갈증을 보셨기 때문이다. 이 여인이 영혼이 마르지 않는 영생의 물을 찾고 있음을 보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지고 갈등하고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영혼에도 이 여인같이 갈증으로 목마른 것을 주님은 아신다. 우리는 하이 테크롤로지 시대에 산다. 우주시대에 산다. 인터넷 시대에 산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풍요롭게 산다. 이처럼 19세기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던 놀라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행복한가? 문제가 없는가? 가진 것과, 아는 것과, 부요함만으로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요일(9월 2일)
우물가의 여인-2(요 4:1-40)
도입)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정관념이 있다. 목사는 검은 양복이나 곤색 양복을 입어야 한다는 목사 스스로의 고정관념이 있다. 안식일날 대부분의 목사들은 검은 양복을 입거나 곤색 양복을 입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거기서 탈피해 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불안한 다른 색깔보다 익숙한 어두운 색이 편안하다. 지방에 대한 고정관념도 있다. 미국의 남부 사람들은 북부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똑같은 백인이지만 독일계나 영국계 사람들은 라틴 민족을 내려다보는 고정관념이 있고, 똑같이 영국 안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잉글랜드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열등하게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을 용서하시는 것이 버릇이요 사람을 돕고 사랑하는 것이 고정관념이었다. 예수께서는 많은 고정관념들을 깨뜨리셨다. 어린이는 어른의 선생(마태복음 18:1-7)으로 본 것이라든지, 여성을 남성과 동일한 존재로 상대한 것이라든지(요한복음 4:11-42), 세리나 창녀 집에 들어가 먹고 마신 사람들은 그 당시의 고정관념을 파격적으로 깨뜨리신 것이다. 잘못된 고정관념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여성을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로, 열등한 존재로 생각하는 남성들의 고정관념이 있다. 취업의 불평등, 임금의 불균형, 성적 희롱 등은 남성이 우월하다는 고정관념의 표현이다. 예수께서 복음을 전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는 제자들의 고정관념을 깬 사례 중의 하나이다. 사마리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제자들의 의식에도 변화를 준 대단한 사건인 것이다. 이 우물가의 여인의 사건은 남녀의 차별에 대한 고정관념이라든지 나라와 지방색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생각을 깨뜨려야 할 중요한 사건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 요한복음 4:1-40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기사를 읽으십시오. 예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그 여인의 매일의 삶과 그분께서 나누고자 하신 영적인 진리를 연결시키셨습니까? 즉 그분께서는 어떻게 그녀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셨습니까?
답:
그 여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에 대해 너무 흥분하여 동네로 달려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물동이를 가져가는 것조차 잊어버렸다(요 4:28). 그녀는 메시야를 만났으며, 그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증언한 첫 부분은 자신의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 사람을 만나보라는 초청이었다(29절). 이것은 단순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입증된 증거의 방식이다. 우리의 사명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며, 그들을 예수께로 데려오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성령께서 그들의 심령에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신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줄 앎이니라”(요 4:42).
그 여인의 증언의 두 번째 부분은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는 질문이었다. 헬라어 원문은 그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부정적으로 나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그녀의 질문은 문자적으로 “그분이 혹 메시야가 아닐까요?”라는 의미이다. 그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100퍼센트 확신하지 못하였거나, 이와 같은 사실을 주장하는 그녀에게 반감을 품을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아주 조심스럽게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이 기사에서 많은 교훈을 취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중요한 핵심은, 예수께서 그 행하신 일을 통해 분명히 그 시대의 전통을 깨뜨리시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증거하시며 그녀를 사용하셔서 복음의 기별자와 전도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이다.
교훈: 관습을 깨뜨리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신 예수께서는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관습의 장벽을 뛰어 넘어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요청하신다.
부가적용)
제자들이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십니까? 묻는 자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자기 아내와 노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수치스럽고 무례한 일로 여겼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를 하심으로 관습을 깨뜨리신 것이다. 그들이 속으로 이상하게 여겨도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한 존경심으로 거론치 않은 것이다. 당시 유대 랍비들은 여자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느니 차라리 불에 태우는 것이 낫다 하였다. 유대 격언에 사람이 여자와 이야기가 길어지면 그때마다 그에게는 재난이 올 것이요 율법을 저버리게 되고 결국에는 음부를 상속받게 되리라는 격언까지 갖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여자와 남자의 구별이 없으며 구원도 은사도 여기에 포함됨을 알게 하셨다. 남녀의 차별은 비성경적이고 남성위주와 고대 권위주의적 유물일 뿐이다. 이 여인이 우물에 온 것은 물을 긷고자 함인데 그녀가 예수님과의 대화 후에 즉시로 그것을 포기한다. 예수님이 메시야 됨을 믿었기 때문이다. 버려두다는 말은 포기하다 돌보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세상적인 욕구를 충족하려는 옛 생활에 머무는 이들은 참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즉시 예수님을 떠나 동네로 갔다. 빌립도 안드레도 그러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전해주려고 그분 앞을 떠난 것이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녀처럼 행동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행동이 있어야 그리스도와 만난 사람이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현장감 있게 매우 생생하게 말한다. 좋은 소식은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안된다. 영적 사망에서 놓임 받는 구원의 기쁜 소식은 가능한 대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하며 성도의 의무이다.
수요일(9월 3일)
초기교회의 여인들(행 16:14-16)
도입)
바울이 처음에 선교여행을 시작할 때 자신이 가야할 곳은 아시아 지방으로 생각했지만 환상 중에 마게도냐 지방으로 인도함을 받아 첫 성인 빌립보 지방에 이르게 된다. 막상 그 곳에 가보니 전혀 전도의 여건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이 강가에 앉아있는 여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 자주장사 루디아 여인의 마음을 열어 단순 간에 기도처가 마련되고 빌립보 지방의 선교지의 교두보가 확보됐다. 복음은 믿는 자에 의하여 전파되고 증거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전하는 자나 받는 자에게 다 축복받는 구원을 체험하게 되었다. 루디아는 소아시아 두아디라에서 온 이방인 여자였다. 루디아는 자주 천 장사하는 사업가였다. 그 당시 자주 천은 왕실이나 상류층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아주 비싼 천이었다. 루디아는 사업에 성공했고 어느 정도의 부를 누리고 있었다. 크고 좋은 집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죽었지만 자녀들을 거느리고 여유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루디아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루디아는 공허했다. 몸은 평안했지만 영혼의 만족과 기쁨이 없었다. 그래서 루디아는 유대인들이 모이는 기도 처소에 가보곤 했다. 빌립보에는 아직 회당이 없었기 때문에 빌립보에 와서 살던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빌립보 강변 나무 그늘에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곤 했다. 거기에는 유대인들을 따라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방인들도 있었다. 이들을 가리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으로 안식일마다 강변 기도 처소에 가서 영혼을 열고 하늘을 향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의 문을 열고 이미 하나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영혼이었다.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에는 여인들이 종종 초기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않고 사람들의 가정에서 만났는데, 종종 식탁에 둘러앉았다.
이 가정들 중의 상당수는 자주(紫朱)장사 루디아(Lydia)와 같은 여인들이 소유한 집이었다.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 등이 안식일에 한 무리의 여인들과 함께 강가에서 예배드리려 할 때에 루디아는 그들에게 마게도니아의 빌립보에 위치한 자기 집을 제공하였다.
1. 루디아는 초기교회에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행 16:14-16)
답:
이 짧은 구절 뒤에는 분명히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두 절 속에 루디아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믿음을 온 식구들에게 증거하고, 식구들과 함께 자신도 침례를 받고, 자신의 집을 사도들을 위해 제공하였다. 루디아는 유럽에서 얻은 첫 회심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녀의 가정은 그 지역의 선교 사역을 위한 사도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2. 사도행전 18:1-3, 24-28, 로마서 16:3-5, 고린도전서 16:19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에서 주님께서는 브리스길라를 어떻게 사역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으셨습니까?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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