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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바울의 전도법(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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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7.02 10:40 조회수 5,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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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4분)

기억절: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22).

연구범위: 행 11:19-26, 13:16-42, 17:18-34.

중심 사상: 사도 바울은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애쓰면서, 우리에게 상황에 맞는 기별 전파 방법을 배우라고 권한다. 이것은 기별 그 자체와 다양한 문화를 함께 접목시키는 문제이다.

안식일 오후
재림교회 초창기에 외방 선교사들은 우리의 현대 진리 메시지를 선교지 현장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리고 오늘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전 세계적인 ‘글로벌 미션 프로젝트’(Global Mission project)는 다른 종교와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에게 다리를 놓는 방법들을 개발하고 있는 세계 도처의 여러 연구센터들을 후원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의사소통을 하려면 먼저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우리의 기별을 다른 배경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맞도록 조정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탐구할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예수님의 기별을 다양한 군중들과 나눌 때에 사용했던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찰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더 잘 전하기 위해 바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핵심본문: 고전 9:22

학습 목표
깨닫기: 바울이 진리의 기별을 당시 문화에 접목시켰던 사례들을 확인한다.
느끼기: 기별 자체를 변경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상황에 맞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한다.
행하기: 재림 기별을 다양한 현대인들에게 제시하는 방법들을 궁리해 본다.

교과 개요
I.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고전 9:22)
        A.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B. 바울의 다음 두 설교는 어떻게 다른가?(행 13:13-41과 17:16-31).
        C. 시리아 안디옥의 새 교회에서는 이전의 다른 초기 교회들에서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II. 기별의 순수성을 유지함(딤전 4:16)
        A. 어떤 사람이 내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르게 재림 기별을 제시하는 것을 듣고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는가?
        B. 비록 기별을 독특한 방법으로 제시한다 할지라도 재림 기별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은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

III. 아덴의 철학자들과 상대함
        사례연구: “뭔가에 탐닉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즐기든지 아니면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말하는 현대판 아테네 철학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요점: 만약 우리가 말하는 용어를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들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교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모본을 남겼으며, 우리가 재림 기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증거하는 데에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었다.

일요일(7월 6일) 바울이 선교사업에 가담함(행 11:19-26)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을 경험한 후에도 어떤 사도들은 그가 참된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행 9:26). 아마도 그들은 바울이 교회를 파괴하고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 첩자로 보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때 바나바가 일어나 바울을 옹호하고 나섰다(27-28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였다(행 11:24).

1. 안디옥 교회는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행 11:19-24). 그 교회에서의 사역은 얼마나 성공적이었습니까?
행11:19-24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답: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로 환난을 피해 흩어진 자들이 그곳에 이르러 복음을 전파함으로 시작되었고,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바나바를 통해 더욱 많은 무리가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안디옥에 있는 신자들의 새로운 모임에 관해 들었다. 안디옥은 그 당시 로마제국의 3대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교회 지도자들은 유명한 바나바를 신속히 파송하여 안디옥 교회를 강화하고 세우는 일을 돕게 하였다.

2. 사도행전 11:25-26에 따르면, 바나바는 왜 바울을 그의 동역자로 선택했습니까?
행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답: 바나바는 바울의 회심과 소명을 듣고 의심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바나바가 바울을 받아들이고 그와 동역한 사실은 기독교 역사에서 참으로 다행스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도행전은 놀라운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핍박자 사울이 선교사 바울이 되고, 구원의 복음이 단지 유대인들에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자신의 지난 날 핍박의 결과로 생겨난 교회를 위해 일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의 상황을 듣고 바나바를 보내어 그곳의 교회를 위해 일하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바나바는 바울의 소명에 관해 듣고 그를 데려와 함께 일하였다. 1년 동안 바나바와 바울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교회가 점점 더 든든해지면서 자비의 정신도 배양되어 다른 이들을 돕기에 이르렀다. 이 교회의 신자들은 심한 기근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유대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구호금을 보냈다(행 11:28-30). 그들은 자신들의 축복을 이기적으로 간직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나바와 바울의 상봉
“바나바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지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하여 그의 재산을 헌납한 사람인데, 그는 바울이 신자들의 대적이 되어 있을 때부터 그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때 그가 나아와서 바울과의 친분을 새로이 하고 바울의 기적적인 회심에 관한 그의 간증과 경험을 들었다. 그는 바울을 완전히 믿고 받아들였으며, 그의 손을 잡고 사도들 앞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바나바는 그가 금방 막 들은 바울의 경험을 말하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58).

<부가설명> 바나바는 참으로 교회에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가 아니면 바울이 이처럼 큰 봉사를 하는 일이 아주 지체될 뻔하였다. 바나바는 너그러운 정신의 소유자였고, 사람을 수용하는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자기 재산을 교회를 위하여 기꺼이 드린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울이 거절한 마가를 인도하여 마침내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일꾼이 되게 한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의 허물을 오래 기억하는 대신에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재기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이런 사람이 이 시대에도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정신을 가졌는가?

교훈: 성도를 핍박하고 교회를 파괴하던 사울이 그리스도의 선교사가 되어 교회를 부흥케 한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월요일(7월 7일)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고전 9:22)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22).

고린도전서 9:22에서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바울이 말한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그가 타협을 권장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바울은 복음과 교리, 원칙과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변경하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에게 진리를 매력적이고 이해할 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바울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그는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어느 도시에 도착하면 회당을 방문하여 거기서 가르쳤다(참조, 행 9:19-22, 13:14-16).

1. 사도행전 13:16-42에 나오는 그의 설교에서 바울은 성경 역사의 어느 부분을 언급하였습니까? 바울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을 권위의 근거로 사용하였습니까? 바울은 유대인들을 가르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습니까?
행13:16-42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약 사백오십 년간)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42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답: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던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거쳐 침례자 요한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이 익히 아는 역사를 언급한 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이 성경 예언의 성취임을 구체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였다.

2. 사도행전 14:8-18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말할 때와는 달리, 이방인들에게는 어떻게 했습니까?(이방인들은 구약성경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십시오.).
행14:8-1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13 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답: 바울은 이방인들 앞에서 성경 역사를 언급하는 대신 천연계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하고자 했다.

여기서 바울은 성경을 권위의 근거로 사용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15절에서 구약을 응용하기는 하였다). 그는 시인의 시구(詩句)를 인용하기도 하고, 천연계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함으로 우상숭배의 무익함을 지적해 주고자 하였다.

다양한 은사를 통한 다양한 접근
“신자들은 다양한 은사들을 받았다. 그것은 각자가 개별적인 직무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각 신자는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증거하고 믿음을 나누어주고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에서 무슨 일을 이루셨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각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그 은사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소유자로 하여금 복음 전도를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300).

<부가설명> 바울을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는 말은 그들과 같은 삶에 동화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 방법을 택하여 접근하였다는 말이다. 이런 바울의 설명에 오해하지 않도록 그는 진리 위에 서 있는 자기 태도를 기록하고 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20,21)고 밝힌 것이다. 그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한 자기의 위치를 밝히고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기의 처지를 확고히 밝혔다. 접근 방법의 다양성을 그가 어디서든지 그들과 동화되었다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바울은 어디 있든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 원칙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변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자기가 그리스도인 아닌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울은 이 원칙을 잘 알고 잘 지켰다.

교훈: 바울은 진리의 원칙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상에 따라 전도의 방법을 달리했는데,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에도 응용되어야 한다.

화요일(7월 8일) 철학자들에게 전도함(행 17:18-34)

바울의 선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는 아덴(Athens)에서의 활동이다. 아덴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세계적으로 위대한 철학자들의 본고장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철학과 지성과 자유로운 사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하였다(행 17:16). 이것은 궁극적으로 철학이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만족시켜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1. 사도행전 17:18-34에는 바울이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는 무엇을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사역은 얼마나 성공적이었습니까?
행17:18-34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19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답: 바울은 이교 철학자들에게 전도할 때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복음을 소개하였다. 성경의 진리를 그 철학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차원에서 설명해 주었다. 그 결과로 몇 사람의 신자를 얻게 되었다.

에피쿠로스(Epicureans, 행 17:18 ‘에비구레오’) 철학자들은, 지고(至高)한 행복이 아픔과 두려움이 없는 삶에서 온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그들은 몸과 마음에 두려움과 아픔을 일으키는 일은 무엇이든 피했다. 여기에는 남을 해하는 것, 과식과 과음, 지나친 성관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토아(Stoics, 행 17:18 ‘스도이고’) 철학자들은 모든 지혜와 자제력과 선량함이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또한 나쁜 판단과 인생의 그릇된 길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생기는 격정과 흥분으로부터 영혼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신을 스스로 성찰하고 선량한 삶을 통해 이러한 격정으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다고 믿었다. 스토아 철학자들과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바울이 시장거리에 전도하는 소리를 듣고 그와 논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울을 ‘말쟁이’라고 불렀다(행 17:18). 그러나 그들은 바울을 ‘마르스의 언덕’(Mars' Hill)이라 불리는 아레오파구스(Areopagus, 행 17:19, 22 ‘아레오바고’) 모임에 초청하여 말하게 하였는데, 그 모임은 새로운 가르침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의 회집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를 그들의 문화와 연결시켰다(22-25절). 그는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해 세워진 단을 가리키면서,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3)고 말했다.

자연 계시만으로는 불완전함
“인간이 배워야 될 가장 어렵고 가장 굴욕적인 교과는 인간의 지혜를 의지할 때 인간은 완전히 무능한 존재라는 것과 천연계를 정확하게 읽는 데에는 인간의 노력이 틀림없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죄는 인간의 시력을 어둡게 하였고, 인간을 저 혼자 내버려 두면 자연을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자연을 하나님보다 우위에다 올려놓게 된다. … 하나님은, 자연을 숭배하려고 제단을 세웠던 아덴 사람들이 살던 그때나 오늘날에나 꼭 같은 위치에 계신다. 바울은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아테네 사람들 앞에 그들이 우상 숭배와 대조를 이루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엄하심을 제시하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68).

<부가설명> 바울은 누구를 만나든지 그들의 지식과 문화를 바탕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역사와 종교를 바탕으로 루스드라인들에게는 천연계의 사실을, 헬라 철학자들에게는 그들의 철학과 시인들의 말을 인용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그렇게 할 만큼 학식이 있었고 순발력 있는 판단으로 복음을 증거할 실마리를 이끌어 내었다. 모든 전도자들이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울은 자기 복음에서 결코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고 굳게 서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을 복음으로 이끌었지, 자기가 복음 밖으로 나간 일이 결코 없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교훈: 바울은 유대인 청중들에게 말할 때와는 달리 이교 철학자들에게 말할 때는 성경을 사용하는 대신 그들이 익숙히 아는 문화를 진리와 연결시켜 말하였다.

수요일(7월 9일) 마르스 언덕에서의 기별(행 17:18-34)

1. 사도행전 17:18-34에 나오는 바울의 설교를 다시 읽으십시오. 이 설교에서 창조, 구속, 심판 등의 기본 교리가 어떻게 제시되었습니까? 그 교리들이 마치 재림교회 기별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행17:18-34 앞 화요일 문제에서 읽어요.

답: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을 거리낌 없이 소개하였고, 그 창조주의 영광을 우상의 모양으로 바꾸어 버린 잘못을 기탄없이 지적하였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허물을 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회개의 기별을 선포하였다.

바울은 이교의 문학을 알고 있었고, 암송하고 있던 일부 내용을 인용하였다. 첫째로 그는 크레타(Crete)의 시인이 쓴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28절)는 시를 인용했다. 두 번째로 그는 그리스 철학자 클레안테스(Cleanthes)가 제우스신에게 바친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28절)는 사랑의 시를 한 구절 인용하였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청중의 문화에서 한 부분을 취하여,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진리와 연결시켰다.
“바울은 우상이 가득 찬 신전을 향하여 손을 펼치고는, 그의 심령의 부담을 토로하면서 아덴 사람들의 종교적 오류를 폭로하였다. 그의 청중 가운데 가장 슬기로운 사람들도 그의 정연한 논리를 듣고 놀랐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의 예술 작품, 문학 그리고 종교에 정통하고 있었음을 나타내었다”(사도행적, 237).
엘렌 화잇 여사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바울의 말에는 교회를 위한 지식의 보배가 담겨 있다. 바울은 자신의 말로 교만한 청중들의 분노를 일으켜 스스로 어려움을 초래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만일 그의 설교가 직접적으로 그들의 신들과 그 도시의 위인들을 공격하였더라면 그도 소크라테스와 같은 운명을 맞을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얻은 기지(機智)를 가지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참 하나님을 나타냄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이교의 신들로부터 돌아서게 하였다”(사도행적, 241).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그들의 위치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바울은 알고 있었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할 수 있다. 즉 우리는 그들의 필요와 관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그들의 관심을 우리의 기별과 연결시켜 전할 수 있다. 이것은 기별을 은폐하라는 뜻이 아니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라는 의미이다.

단순한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함
“바울은 이 설교(행 17:18-34)를 마칠 즈음에 자신의 전도 결과를 살펴보았다. 그는 자신의 웅변적인 변론을 경청한 큰 군중 가운데서 단 세 사람의 회심자만 얻었을 뿐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단순한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하였다. 세상 학문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과 복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그는 확신하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62).

<부가설명> 바울은 대상의 지식과 문화를 이용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참고해야 할 태도이다. 우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복음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것이 효과가 클 것이면 그 방법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면 바울이 취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우리가 바울처럼 상대방의 문화와 지식에 미치지 못해도 가장 상식적인 사실을 기초로 증거할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서 있는 확고한 자리에 튼튼히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훈: 사도 바울은 이교도들에게 전도할 때에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익숙히 아는 사실로부터 시작하여 매우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진리로 전환해갔다.
목요일(7월 10일) 바울의 교회 개척 방법(롬 15:18-23)

1. 로마서 15:18-23에 보면,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바울은 어떻게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19절)고 말할 수 있었습니까?
롬15:18-23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답: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9). 바울은 지역의 주요 중심지에 등대가 될 교회를 세우고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교회를 확산해 나가는 전략을 택하였다.

바울은 그 광활한 지역에서 주요 도시들에 먼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로마의 중요 도로와 항구에 위치한 중심지들을 선별하였다. 이 도시들은 무역과 행정의 중심지들이었다. 바울은 그 지역에 중요한 등대가 될 교회들을 설립하였다. 그는 신자들의 새 그룹들이 이 중심지에서 주변 지역으로 복음을 전달하도록 계획하였다. 교회를 개척하는 바울의 사역이 마쳐졌을 때, 지역선교의 사역은 새 신자들을 통해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와 함께 한 제2차 선교여행 때에 마게도냐에서 가장 큰 도시인 데살로니가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웠다. 그 도시는 로마의 두 간선도로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그 지역의 주요 항구도시이기도 했다. 이 도시에 세워진 신자들의 튼튼한 모임은 하나의 견실한 중심점이 될 것이었다. 이 중심점으로부터 시작하여 다른 교회들이 개척되면서 그 지역 전체로 복음이 확산될 것이었다.
예측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났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 1:7-8).
이 교회는 다른 교회들의 본이 되었다. 교회를 가리키는 에클레시아(ekklesia)라는 헬라어 단어는, 본래 그리스도교의 용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러 장소에 모인 사람들의 모임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에클레시아는 단지 함께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교회는 특별한 사역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들은 복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할당된 지역사회로 뻗어나가야 한다.

새로운 지역에서의 교회 개척
“성령에 의해 감동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새로운 지역들이 개척되어야 한다. 새로운 교회들이 서고, 새로운 회중이 조직되어야 한다. 지금 모든 도시마다 그리고 세상 끝의 무너진 곳에도 현대 진리를 제시하는 대표자들이 있어야 한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진리의 영광으로 밝혀져야 한다. 그런데 빛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그 빛이 발산되게 되어 있다”(교회증언, 6권, 24).

<부가설명> 바울은 복음 전파의 센터를 먼저 세우는 전략으로 전도하였다. 그 지방의 중심지에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에서 사방으로 복음이 퍼져나가도록 일을 하였으며 성령의 역사로 그 일을 성공적으로 전개되었다. 한국에 재림 기별이 전해진 것은 바울의 방법대로 된 것 같지 않다. 성경이 제시한 방법이 복음을 확산시키는데 최선의 방법인 것이 확실하다.

교훈: 바울의 교회개척 방법은 먼저 주요 도시에 중심적인 교회를 세우고 그것을 거점으로 하여 전 지역으로 복음을 확산시켜 나가는 전략이었다.

금요일(7월 1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이와 같이 바울은 때와 경우에 따라 일하는 방법과 기별 전하는 법을 달리하였다”(복음 교역자, 118).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일하는 데 상투적인 한 가지 방법만을 사용하지 말고, 상대하는 사람의 신분과, 또 만나는 때와 처지에 따라 진리를 소개하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복음 교역자, 119).
“바울은 유쾌하고 끈기 있는 친절과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는 그들의 편견을 잠재우고, 그들의 감정을 격동시키지 않으면서 진리를 가르치려고 노력하였다. 바울이 이렇게 한 것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기를 간절히 원했다”(엘렌 G. 화잇, 바울의 생애의 소묘, 16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무신론자인 대학생에게 어떻게 진리를 소개할 수 있을까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믿지만 재림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좋습니까? 이전에 재림교인이었던 사람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신앙이나 하나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성경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잘 살펴보면 다양한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기가 생활하는 중에 경험한 것들을 자세히 검토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하며 지혜를 발휘하도록 노력해보자.

2. 우리가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지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때 항상 기억해야 할 기본적인 사항은 무엇입니까? 즉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의 증거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다.

3. 현재 출석하는 교회는 선교 중심의 교회입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를 향해 더 널리 손길을 펼칠 수 있을까요?
* 각 교회가 스스로 생각해 보자.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바울의 선교방법은 성령의 인도로 진행되었고, 우리도 그런 방법을 성경에서 배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즉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증거해야 하며 생활의 중심지에 증거하고 거기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도록 지경을 넓혀야 하는 것이다.

요약: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상대가 우리의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다면 의사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전파할 때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 가지 모본을 통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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