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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7/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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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7.16 14:47 조회수 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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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6분)

기억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연구범위: 마 23장, 막 9:12, 눅 24:7, 요 1:1-14, 29, 히 2:9.

중심 사상: 역사상 예수님보다 더 큰 영향력을 세상에 나타내셨던 분은 없다. 우리 각자의 미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고 물으신 예수님의 중대한 이 질문으로 귀결된다.

안식일 오후
오늘날 많은 이들이 예수께서 역사적으로 존재하셨다는 분명한 사실에는 동의를 표한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분이 누구이셨으며, 왜 이 땅에 오셨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분은 단지 위대한 스승이셨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셨는가?
“한낱 인간에 불과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했다면 그는 이미 도덕적으로 위대한 스승이 아닐 것이다. 그는 분명히 미친 사람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지옥의 악마일 것이다.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C. S. 루이스, 단순한 기독교, 맥밀란 출판사, 1960년, 52).
우리 재림교회는 처음부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에 관해 기록된 말씀이 진리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이 과연 참으로 그분의 말씀과 사역이었는가 하는 논쟁으로 어리석게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우리 재림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그대로를 믿는다. 결국 우리가 성경을 믿을 수 없다면 과연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핵심본문: 요일 1:1

학습 목표
깨닫기: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관한 말씀은 진실하고 정확하다는 절대적인 확신을 갖는다.
느끼기: 예수님을 인류의 유일한 구주로 찬양하며 사모하는 마음을 갖는다.
행하기: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본다.

교과 개요
I. 인류의 구주이신 그리스도
        A. 유럽의 저명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달력 체계는 어느 한 시작점을 갖지 아니하고 한 중심점으로부터 나누어진다. 그것은 누구나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는 하나의 중심 되는 사건에서 비롯되어 연대기적으로 고정된 것인데, 바로 그 사건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인 것이다”(오스카 쿨만, 그리스도와 시간 - 시간과 역사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근본적 개념, 웨스트민스터 출판사, 1964년, 17). 이 진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토의해 보라.

II. 사랑의 구주 예수님
        A. 예수께서 위선자들을 책망하셨다는 말씀과 그분께서 그들까지도 사랑하셨다는 말씀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B. 금요일 교과에 나오는 엘렌 G. 화잇의 인용구(복음전도, 565)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요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달력 체계가 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하여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누어져 있다. 그분의 사역과 구원의 계획은 참으로 인류를 위한 유일한 희망이다.

일요일(7월 20일) 예수님은 누구이셨는가? - 1 (막 9:12)

수백 년에 걸쳐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해 논쟁했고, 그분에 관해 노래했으며, 그분에 관해 글을 썼다. 사람들은 그분에 관해 설교했고, 다른 이들은 그분을 저주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분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그분을 위해 죽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에 관해 무지하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알지 못한다.

1.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답: 하나님으로서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운 천국을 건설하시려고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죽을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의 구주시며 나의 구주이시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신 동안 위대한 일을 행하셨고, 능력의 말씀을 선포하셨으며, 하나님의 품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는 사실도 좋지만, 그분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지 않으셨다면 그 모든 것들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2. 예수님이 누구이셨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분이 왜 죽으셨는지를 아는 것은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막 9:12, 눅 24:7, 요 1:29, 롬 5:15-21, 히 2:9).
막9:12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눅24: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롬5:15-21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답: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정된 것이었다.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역사상 놀라운 일들을 행한 위대한 남녀들이 많이 있었다. 나사렛 예수께서 행하신 것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일들도 많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로마의 아주 작은 관할지역에서 출생하신 공인되지 않은 랍비셨다. 그분은 두려움과 실의에 빠진 몇몇 제자들만을 남겨 두신 채 젊은 나이에 처형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으며 그분이 지상에 계신 동안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이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다. 결국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예수님과 그분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온 세상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곧 죄의 창시자의 파멸을 확실하게 하였다. 사단이 멸망하면 죄를 지으라고 유혹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속죄는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우주 안에는 또 다른 반역이 일어날 위험이 완전히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죄를 효율적으로 금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하늘에서도 죄를 막아줄 것이다. 천사들과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깊은 뜻을 알게 될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없이는 하나님의 낙원에서 집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높이지 않아서야 되겠는가?”(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32)


<부가설명> 예수님의 봉사는 도덕적 본을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도덕적 본이 되셨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아담이 죽은 그 죽음을 대신 죽어주시고 부활하시므로 아담과 아담 안에서 죽은 아담의 모든 후손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는 것이 그의 중심 봉사이다. 그리고 모든 지선한 도덕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들에게 맺히는 열매이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라고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와 봉사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과 희생정도로 이해한다면 예수님의 생애의 의미를 진정으로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모든 도덕적 선행보다 가장 근본적인 봉사이다. 이것을 깨닫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교훈: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분이시다.

월요일(7월 21일) 예수님은 누구이셨는가? - 2 (막 10:42-44)

인류 역사에서 예수님이 그처럼 특별하신 까닭은 무엇인가? 그분은 대단한 홍보 마케팅 팀을 보유하지도 않으셨고, 이 세상의 재물이나 돈을 많이 소유하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정치적 세력을 가지신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정치적 권력의 언저리에 머무셨다.
예수님은 능력을 가지고 계셨으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상한 자들을 회복하시며, 종교적 위선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셨다. 한번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2-44). 정치적 권력을 원했던 자들에게는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1. 인류 역사상 예수님이 그토록 특별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요 1:1-14)
요1: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답: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사람 가운에 사신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신 분이시다. 그분은 아무에게서 받지 않은 자기 자신의 자존적 생명이시며 그 생명으로 사망이 된 인류를 생명으로 옮기신 분이시다.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도 이 일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이 유명한 말씀을 자주 읽기 때문에 진정 그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를 잊어버린다. 요한복음 1장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이 구절들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현대 과학은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엄청난 우연의 결과라고 가르친다. 순전히 우연 때문에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요 1:14) 살아계신 하나님에 의해 우리가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과학은 우리가 이 지구 표면에 우연히 형성되어진 화학물질의 합성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과학은 우리의 존재에 대해 어떤 의미나 목적도 제시하지 않으며, 삶과 죽음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갖게 된 소망과는 얼마나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가?
(과학은 이라는 말은 진화론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창조주와 구속주와 유지자이신 그리스도
“순결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감화력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 되었다. 그분의 성품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였고, 추호도 죄의 흔적이 없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나타내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은 깨뜨리고 심판하고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약하고 불완전한 모든 품성을 고쳐 주고 남녀들을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은 인류의 창조주요, 구속주요, 유지자이시다.”(구호봉사, 53).

<부가설명> 예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다. 그가 사람이 되셨지만, 아담의 후손이 아니시다. 남자와 상관없이-아담에게서 이어져 오는 생명이 아닌- 오직 여자에게 탄생하신 분은 인류 역사에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그는 순결한 처녀에게서 탄생하셨다. 성령으로 잉태되셨는데, 자기 자신의 생명으로 잉태하신 것이다. 그는 마지막 아담이시다. 그에게서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의 죄인 사망을 처리하셔서 인류를 사망에서 해방시키시고 그가 부활하시므로 인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다. 그를 믿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인류가 되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이면서 그 생명에 있어서 전혀 아담과 상관없는 예수의 생명을 얻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독특하신 분이시며 유일하신 분이시다. 그가 도덕적으로 성인이기 때문에 종교를 창시한 분이 아니시다. 인류를 재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석가, 공자, 마호메트 등 누구도 이런 사람이 아니다. 그들도 다 우리와 똑 같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일 뿐인데, 도덕적으로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이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다르신 분이시다.

교훈: 예수님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을 통해 우리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자.

화요일(7월 22일) 죄인들과 세리들과 섞이신 예수님(마 11:19)

예수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또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어울리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들과 섞이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분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섞이셨다는 사실이다.

1. 다음 구절들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섞이셨습니까?(마 11:19, 막 2:15-16, 눅 15:1-2). 오늘날 사회에서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부류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마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막2:15,16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눅15:1,2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답: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고 함께 음식을 먹고 하셨다. 오늘날 가치 없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 사람들이 없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있고, 폭력배와 부도덕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과 어울려서 복음을 전하려면 엄청난 실력이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 하나는, 그분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분께서는 무가치하다고 여겨지는 자들과 섞이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시고, 그분께서 무엇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시는지를 보여주셨다. 우리 인간들은 사람들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자주 간과해버리는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2. 마태복음 21:28-32은 예수께서 왜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섞이셨는지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우리는 여기서 어떤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까?
마21:28-32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답: 예수님 당시의 세리들과 창기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자기들의 그릇된 길에서 돌이켰지만,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교만한 길에서 돌이키지도 않았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마음을 보신다. 그분께서는 외관상 무가치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자들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외관상 매우 의롭고 경건해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꿰뚫어 보셨다. 우리는 서로를 속일 수 있고, 심지어 자신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분만큼은 결코 속일 수 없다.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잡수심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앉으사 식사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 그분은 조용하고 침착하였으며 친절하고 예모가 있었으며 우의에 넘친 모습이었다. … 거만한 바리새인들은 자고하면서 그들이 가진 것과 같은 특권과 빛의 축복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하였다. 그들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미워하고 멸시하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들의 죄가 더 컸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088)

<부가설명> 도덕적으로 선하게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도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멀리한다. 이런 태도를 취하므로 자신을 그들과 차별화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똑 같이 사망이 된 사람들이고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는 자들이다. 도덕적으로 죄인이나 선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로 인하여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기지만, 도덕적으로 선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선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다.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상태에 빠지면 새 생명을 얻을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교훈: 예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속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지상에 계신 동안 자신의 죄를 슬퍼하는 모든 자들을 감싸 안으셨다.

수요일(7월 23일) 종교적 위선자들을 폭로하심(마 23:13-14)

우리는 종종 예수께서 가장 악한 죄인들까지도 부드럽게 대하신 그분의 친절에 대해 듣는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보여주는 그림의 전부는 아니다. 때때로 예수께서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향하여 매우 강한 경고의 기별을 발하셨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매우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어떤 면에서 그분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은 강렬한 이미지를 나타내셨다. 물론 그분이 구약 선지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사역을 하도록 영감을 주신 분이시기 때문에 결코 놀랄 일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백 년 동안 당신의 백성에게 돌이키도록 호소하셨다. 그분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호소하고 계신다.

1.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께서는 지도자들의 어떤 면을 책망하셨습니까? 그 책망은 얼마나 신랄한 것이었습니까? 그 책망 가운데 가장 신랄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마23:1-39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답: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外飾)을 책망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천국 문을 닫아버리는 자”(마 23:13), 사람들을 “지옥 자식으로 만드는 자”(15절), “소경된 인도자”(16절), “독사의 새끼들”(33절)이라고 부르시면서,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면서 겉만 깨끗하게 보이려는 그들의 위선을 꼬집으셨다.

예수께서 그들의 행위를 질책하신 말씀을 주의 깊이 읽어보면 놀라울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분께서 지적하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바로 위선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종교적 위선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영혼은 참으로 가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신실하고 경건한 것처럼 행동하였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부정직을 감추기 위하여 공중 앞에서 긴 기도를 드리고 경건한 모양을 크게 자랑하였다. 이 위선이 그들에게 더욱 큰 천벌을 가져 올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는 선언하셨다. 그와 같은 책망이 오늘날 경건하다고 크게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임한다. 그들의 생애가 이기심과 탐욕으로 더럽혀졌을지라도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순결한 것처럼 보이는 예복으로 가려서 한 동안은 저희 동료들을 속인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모든 목적을 아시고 모든 사람을 저희 행위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시대의 소망, 614).

<부가설명> 예수께서 가장 신랄하게 책망하신 것은 위선이다. 이들은 겉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꾸몄으나 속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찼는데, 그것을 회개하지 않고 외식으로 속을 감추며 살았다. 이것이 문제였다. 자신들의 실상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즉 드러난 죄인들을 정죄하는 것으로 자기들의 의로움을 과시하려고 하였다. 우리는 다 위선자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주님 앞에 솔직히 시인하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여야 한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나 주님 앞에서 자기의 선함과 의로움을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주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로 주님과 사람 앞에 설 수 있을 뿐이다.

교훈: 예수께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그토록 강력한 말씀으로 책망하신 까닭은 그들이 위선적 행동으로 자신들의 가련한 모습을 감추려 했기 때문이었다.

목요일(7월 24일) 위선자들을 향한 사랑(롬 5:8)

1. 로마서 5:8의 기별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말씀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악한 죄인들을 위해서도 죽으셨다는 사실을 참으로 믿습니까? 그 죄인들 중에는 어제 우리가 살펴본 위선자들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답: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 죄인에는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포함되었다. 마태23장에 예수께서 책망하신 그들을 위하여서도 죽으셨다.

예수께서는 매우 힘든 상황들을 통과하시면서도 그분의 사명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 그분의 사명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사실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온 세상의 죄의 무게가 그분을 짓눌렀다.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다른 이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셨다(참조 눅 23:34, 42-43, 요 19:26). 그분을 따르는 우리에게 얼마나 힘 있는 교훈이 되는가? 이 말씀은 또한 어제 우리가 마태복음 23장을 통해 살펴본 종교 지도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2. 마태복음 23:37은 이 장의 나머지 부분과 어떻게 다릅니까?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께서 책망하신 자들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어떤 중요한 원칙을 발견하게 됩니까? 여기서 발견한 원칙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에 관하여 전하는 우리의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답: 이 말씀은 예수님의 책망하시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말씀이다. 그는 그들을 권고하여 하나님의 품에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예수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대하여야 할 것이다.

선교사의 일은 쉽지 않다.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계실 때에 그분께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별을 거절했는지 생각해 보라. 그러나 예수께서는 가장 악한 죄인에게까지도 사랑과 돌봄과 긍휼을 나타내셨다.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 대해 노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그들에게 동정과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의 말 듣기를 거절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랑으로 견책하셨음
“예수께서는 외식과 불신과 불의를 단연히 견책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렇게 심한 견책을 하실 때마다 그분의 말씀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그분은 사랑하시는 성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셨나니 이 성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을 거절하였다. 저들은 구주이신 그분을 배척하였지만 그분은 저들을 불쌍하게 여기셨다. 그분의 생애는 극기적이고 남을 생각하여 돌보시는 생애였다. 각 영혼은 그분이 보시기에는 귀여웠다. 그분은 몸을 언제나 위엄있게 가지셨으나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각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셨다”(정로의 계단, 12).

<부가설명>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고하였다(빌2:5). 그 마음이 바로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은 사람을 살리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성질이다.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며, 자기 쾌락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도록 주님께 겸손히 간구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고 그런 마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아가 살아나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교훈: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간주하는 계층의 사람들뿐 아니라, 스스로 의롭다고 여긴 위선자들까지도 사랑하시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셨다.

금요일(7월 2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시대의 소망, 제67장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음(610-620)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교훈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 현명하고, 구원을 필요로 하기엔 너무 의로우며,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존귀함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나 큰 존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구주께서는 하늘의 기별을 받고자 하는 다른 무리들을 찾기 위하여 그들에게서 돌아서셨다. 예수께서는 무식한 어부와 장터에 앉은 세리와 사마리아 여인과 당신의 말씀을 기쁘게 듣는 백성들 가운데서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발견하였다. 복음 사업에 쓰이는 도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빛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런 영혼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을 세상에 전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이다”(시대의 소망, 279).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가 일을 한다면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주님이 가르치신 방법을 따를 수 있다. 주님께서는 서민들의 마음과 접촉하고자 노력하셨다. 주님의 방법은 분명하고 단순하여 이해하기가 아주 쉬웠다. 주님께서는 예화를 들 때에 청중들에게 가장 친밀한 사물을 이용하셨다. 주님께서는 천연계의 사물로 예화를 들어 영원한 진리를 설명하므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셨다”(복음전도, 56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만약 예수님이 위대한 종교적 스승이실 뿐이라면 우리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이다.

2.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진정한 사랑은 사람을 살리는 것임을 깊이 생각하고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도록 훈련해야 하겠다.

요약: 예수님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다. 그분의 생애와 가르침은 우리에게 삶의 방식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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