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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사도 요한(8/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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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8.13 09:49 조회수 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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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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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 1:4).

 

연구범위: 마 8:21-22, 막 10:35-45, 요일, 요이, 요삼.

 

중심 사상: 사도요한은 성경의 여러 인물들 가운데 가장 사랑 받은 이들 중에 속한다. 우리는 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에베소에 살고 있던 연로한 사도 요한이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서 제자들이 그를 옮겨주어야만 교회에 갈 수 있었다. 제자들이 다 모이면 요한은 늘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어린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요한이 항상 같은 말만 하자 제자들은 싫증이 나서 이렇게 물었다. “스승님, 왜 항상 이 말씀만 하십니까?” 그러자 요한이 대답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다. 이것만 행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아무튼 성미 급한 ‘우레의 아들’이 어떻게 ‘사랑과 은혜의 아들’로 변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성경에 나오는 요한의 세 편지서에서, 우리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그의 삶의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또한 이 편지서들에서 용기를 주는 성경절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구절은 다음 말씀일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이번 주에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거인이었던 요한의 생애와 사명을 공부할 것이다.

 

핵심본문: 요삼 1:4

 

학습 목표

깨닫기: 요한은 초기교회와 2세대 사이에 실제적 및 영적인 연결 고리 역할을 했음을 확인한다.

느끼기: 예수님에 의해 요한의 품성이 꼴 지어졌듯이 우리도 품성이 변화되기를 열망한다.

행하기: 요한의 생애와 그의 성취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 본다.

 

교과 개요

I. 로고스: 그 최선의 신학(요 1:1-3)

A. 헬라어 ‘로고스’의 다양한 적용에 대해 살펴본다(화요일 교과).

B. 요한은 로고스의 개념을 어떻게 예수님께 적용했으며, 예수님의 지상생애가 30년이나 지난 후에 이 특정한 단어를 왜 예수님에 관해 언급하면서 사용하였는가?

 

II. 부르심을 받음(눅 5:1-11)

A. 만약 당신이 ‘베드로-요한 어업협회’라는 합자회사의 사장이라고 가정한다면 베드로와도 잘 지내면서, 한편 호전적인 민족주의자요 성미가 급하고 야심만만한 출세주의자인 요한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III. 품성의 정련(막 10:35-45, 요일 2:10)

A. 사복음서에 기록된 요한의 품성과, 요한 1, 2, 3서에 기록된 그의 품성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B. 요한의 품성이 변화된 근본 요인은 무엇이었는가?

 

요점: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경험은 그의 말과 행동에 그대로 나타났다. 그의 말년의 생애와 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삶 속에서 나타내야 할 기본적인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일요일(8월 10일) 특별한 부르심(막 1:20)

 

예수께서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를 제자로 부르셨을 때 그들은 배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막 1:20).

 

1. 우리는 마가복음 1:20에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의 의미에 관해 어떤 중요한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까?(참조 마 8:21-22, 눅 14:26, 빌 3:8).

막1:20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마8:21,22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답: 예수님을 따르려면 그분께 대한 전적인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부친의 일터에서 떠나기로 한 요한의 결정은 그의 인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누가는 예수님의 이 부르심에 관해 잘 묘사하고 있다(눅 5:1-11).

 

2. 누가복음 5:1-11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 줍니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입니까?

눅5:1-1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답: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눅 5:11).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적인 복종이 따라야 한다. 주님께 전적으로 복종하지 못한 어떤 부분이 있으면 사단은 그것을 이용하여 우리를 넘어뜨린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전적이고 완전한 복종이 요구된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우리는 많은 은혜를 입고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 우리에게 마음을 바치라고 하시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이 얼마나 맹렬한 것인지를 아신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 굴복하지 않은 자아의 어떤 부분을 가지고 있다면, 사단은 그것을 이용하여 우리를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께 복종해야 한다.

요한은 그렇게 하였다. 그는 고기를 잡는 대신, 그의 나머지 인생을 사람 낚는 어부로 헌신하였다. 이제 세상은 그의 선교지가 되었다. 요한은 소망의 기별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며, 복음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그는 주님께 신실하기 원했기 때문에 그가 배워야 할 어떤 힘든 교훈들도 기꺼이 배우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어떤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그 교훈들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자신을 두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의 대가

“예수께서는 당신의 희생의 생애가 제자들이 따라야 할 생애의 모본이 됨을 그들에게 설명하셨다. 근처에서 서성대고 있던 사람들을 제자들과 함께 가까이 부르시고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 말씀은 비록 희미하게 밖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가장 치욕적인 수욕,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까지 그들이 복종해야 할 것을 지적하신 것이었다. 이 말씀보다 더 완전한 자아 포기를 묘사한 말씀은 있을 수 없었다”(시대의 소망, 416).

 

<부가설명> 요한은 안드레와 함께 침례요한의 제자로 있다가, 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언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찾아가서 만나고 맨 먼저 에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다. 안드레가 요한보다 먼저 그의 형 시몬을 예수께 인도하는 것을 보고 그도 자기 형 야고보를 예수께 인도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초기 예수께서 가나 잔칫집에서 표적을 행하실 때 함께 있었던 제자였다. 그들은 틈이 있을 때 예수께 와서 배웠으나 여전히 생업인 어부의 일을 하고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파타임 제자였다. 예수께서 그의 활동 지역을 갈릴리로 옮겼을 때 그들이 어부로 일하고 있던 배에서 부르셨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때 부른 것은 두 번째 부른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자 이제는 부모와 가정을 떠나서 전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우는 전업(專業 풀타임) 제자들이 된 것이다. 이렇게 헌신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은 신속히 전파될 수 있었다.

 

교훈: 예수께서 요한을 부르셨을 때 그는 고기 잡는 어부였으나, 그 부르심에 응함으로써 그는 주님을 위해 사람을 낚는 어부로 거듭나게 되었다.

 

월요일(8월 11일) 우레의 아들(막 10:35-45)

 

예수께서는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에게 ‘우레의 아들’(아람어로 보아너게)이라는 특별한 별명을 주셨다. 이 이름은 이 두 형제의 성미가 급하다는 것을 뜻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떻게 이들의 급한 성질을 부드럽게 고칠 수 있는지를 알고 계셨다.

 

1. 마가복음 10:35-45에 따르면,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였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이 일화는 두 형제들의 성격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막10:35-4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침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답: 예수님의 나라에서 좌우 총리를 원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물으시고, 그 자리는 준비된 사람이 맡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이 사건에서 이 두 사람이 세속적 욕망이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요한과 그의 형제는 건강치 못한 자만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요구에 대해 예수께서는 당신의 최후의 고난에 그들도 참여할 수 있느냐고 되물으셨다. 그들은 자랑하는 태도로 “할 수 있나이다”(막 10:39)라고 대답했다.

한번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처럼 사마리아 사람들을 증오하여 그들을 피해 먼 길로 돌아가지 않으시고, 평소의 습관대로 직접 사마리아를 통과하실 계획이었다. 그분께서는 밤에 쉴 곳을 찾기 위해 야고보와 요한을 미리 보내셨다. 야고보와 요한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 마을 사람들은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행인 것을 알아채고 그들을 환대하지 않았다.

 

2. 사마리아인들의 태도에 대해 야고보와 요한이 나타낸 반응은 이들의 성격의 어떤 면을 드러내 줍니까?(눅 9:54). 이 사랑받는 제자는 아직도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했습니까?

눅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답: 이 사건에서 우리는 이들의 불같은 적개심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난 요한의 모습은 성경 뒷부분에 나오는 그의 편지서에 나타난 모습과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가! 그는 참으로 많이 변화되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의심할 바 없이, 그 변화는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요한은 위대한 선교사가 되기 위해 자신이 배워야 했던 힘든 교훈들을 기꺼이 배웠던 것이다.

 

우레의 아들이 변화됨

“요한과 그 형제는 우레의 아들들이라고 불리었다. 저희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그분을 멸시하면 저들은 분노하여 도전하였다. 악한 성질, 복수심, 비평하는 정신이 이 사랑받던 제자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요한은 자존심이 세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첫째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품었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자신의 포악한 정신과 대조하면서 예수의 온유하심과 관용하심을 보고 겸비와 인내의 교훈을 들었다. 요한은 신령한 감화에 마음 문을 열고 구주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가 되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 주석, 막 3:13-19).

 

<부가설명> 인간의 노력으로도 소위 수신(修身)하여 인격을 도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변화는 자아를 예수님께 완전히 굴복시킬 때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신다(고후5:17). 도덕적 수양과 종교적 훈련을 통하여 인격을 도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새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요한복음이나 요한 서신을 읽어보면 요한이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것이 확실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예수님이 생명이라고 강력히 소개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새 생명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그가 그런 경험에 있었기 때문에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요한처럼 사랑의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의 새 생명을 확실히 소유해야 한다. 그 생명은 우리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도록 주장할 것이다.

 

교훈: 우레의 아들이요, 자만심이 강했던 요한이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주님의 가르침을 순종의 자세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화요일(8월 12일) 요한의 증언(요 21:25)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많은 시간 그분과 동행했던 목격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할 얘기가 많았다.

 

1. 요한복음 21:25에서 요한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했습니까? 이 구절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요21:25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답: 요한은 예수님의 많은 행적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의 소망’이라는 주제로 압축하여 기록하였다.

 

요한은 모든 이야기를 다 기록할 수 없었다. 그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모든 진리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이다. 요한은 어떤 철학들도 결코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없었던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첫 절에서 ‘말씀’(헬라어로 로고스)에 관해 언급하였다. 유대인 독자에게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었다. 그 로고스는 또한 우리에게 삶의 길을 안내해 주는 하나님의 가르침, 혹은 율법을 의미했다(참조 신 32:45-47).

헬라 독자에게 로고스는 다른 의미로 이해되었다. 그들에게 로고스는 우주를 결속시키는 생명의 힘이었다. 그들은 로고스가 나뭇잎과 계절과 별들의 균형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헤라클레투스, 플루타크, 필로, 플라톤 같은 헬라 철학자들도 로고스에 관해 말했다.

유대와 헬라 독자들에게 요한은, 이 로고스가 인간의 구원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인류 역사에 뛰어드신 한 분이시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였다.

 

2. 요한복음 1:13-14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깨닫고 이해한 것을 자신의 언어로 적어 보십시오.

요1:13,14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답: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중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사람 중에 사시면서 하나님을 잘 보여주었으며, 그분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이 되셨다. 그것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성육신의 놀라운 신비

“구속의 계획은 인간의 지성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한다. 하나님 편에서 그토록 낮게 몸을 낮추심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신비이다. 우리는 그 계획이 얼마나 큰지를 충분히 깨달을 수가 없고,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분께서도 그보다 월등한 계획을 세우실 수 없다. 그것은 신성에다 인성의 옷을 입히는 것이었다. 곧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죄가 만들어 놓은 진노를 당하심으로써만 성공할 수가 있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33).

 

<부가설명> 요한은 창조주이신 말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고 증거한다. 그분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로고스의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인격적 존재이신 하나님이셨다. 헬라인들은 로고스를 질서와 논리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 말씀을 영원한 논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요한은 로고스가 인격체이신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한다. 그분은 논리나 창조의 능력이 아니라 창조자이시며 만물을 친히 붙드시는 인격적 개체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런 분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려고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시고 죄 자체가 되시는 치욕을 당하셨다. 전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교훈: 요한은 예수님을 로고스로 소개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성육신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유대인과 헬라인 독자들에게 소개하였다.

수요일(8월 13일) 생명의 시여자(요 20:31)

 

요한복음 20:31에서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삶의 목적이 사람들을 이끌어 예수님을 믿게 함으로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약 전체의 핵심 주제는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영생이 이르러온다는 것이다.

 

1. 요한이 그 핵심 단어인 ‘생명’에 관해 말한 몇 가지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다음 구절들을 찾아 읽으십시오(요 6:35, 63, 10:28, 12:25, 14:6, 17:3). 여기서 말하는 ‘생명’이란 영원한 생명뿐 아니라 현재의 생명도 의미하는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요6:35,63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답: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라는 말씀은 이 생명이 이 땅에 사는 현재의 생명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생명이 있는 동안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의 생명도 아주 중요하다.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 생명의 때를 허락하신 것이다.

 

영생의 약속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죽지만 오직 인간만이 영생의 개념을 이해한다. 우리 인간만이 이 땅에서의 짧은 삶과 영원한 삶 사이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동맥경화나 술 취한 운전사나 에이즈 등에 의해 어느 때라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소망인가! 죽음은 마치 몇 초 동안의 잠과 같을 것이다. 그 다음에, 부활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영생의 소망을 가짐

“칭의는 정죄의 반대 개념이다. 은혜를 받을 자격이 도무지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값없는 자비가 베풀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죄가 되신 예수님 때문에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허물 많은 죄인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70).

 

<부가설명> 성경은 창세기 1:1부터 생명과 존재에 대하여 선포한다. 성경은 생명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교인들이 생명은 제쳐놓고 도덕적 성품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는 것 같다. 성품은 예수의 생명을 얻었을 때 그 생명이 나타내는 열매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열매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라고 표현한다. 진정으로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당연히 생명의 열매가 열리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오셨으며, 그렇기 위하여 우리의 사망을 친히 몸으로 담당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우리 사망은 처리되고 예수 안에서 그의 생명으로 우리가 살게 되는 것이다. 즉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을 믿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이다. 아멘.

 

교훈: 사도 요한은 자신이 쓴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의 진리를 강조하였다. 생명의 시여자이신 예수님 안에서는 죽음도 잠에 불과하다.

 

목요일(8월 14일)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냄(요삼 1:11)

 

1. 요한삼서 1:11에서 요한이 말한,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 자들이란 누구를 가리킵니까?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까?

요삼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답: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예수님을 뵌 사람은 하나님을 뵌 사람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뵌 사람은 악을 행치 않는다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요한은 여전히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때때로 요한은 자신의 최고 관심사를 예수님의 관심사보다 우선순위에 놓았었다. 요한은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냉혹한 생각을 품기도 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자 요한은 그것을 금지시켰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예수님의 공식적인 제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다(막 9:38). 예수께서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막 9:40)고 말씀하시며 요한을 부드럽게 타이르셨다.

요한은 스승의 곁에서 품성이 강하게 자라났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다른 모든 제자들은 도망하였으나, 요한만은 십자가 곁에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그런 요한을 인정하셨다는 사실은 그분께서 당신의 모친을 요한이 돌보도록 의탁한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요 19:26-27).

 

2. 고린도후서 3:18에서 우리는 어떤 중요한 원칙을 발견하게 됩니까? 우리는 이 원칙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답: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봄으로써 그분의 형상으로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간다.

 

요한의 편지서들에 나타난 요한의 모습은 친절하고 부드러우며 자비로운 모습임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사복음서에 묘사된 요한의 모습과는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가! 요한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는지 안다.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그의 생애와 품성은 크게 변화되었던 것이다.

 

요한이 변화된 비결

“그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들었으며 그의 품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될 수 있었다”(성화된 생애, 59).

“믿음이 강해지려면 은밀한 기도에서 하나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교회증언, 4권, 235).

 

<부가설명>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분이 생명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 그의 복음서의 시작이나 그의 첫 편지서의 시작에 태초부터 계신 생명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다(요1:4). 그는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 빛이 바로 자신의 생명이 되는 경험에 이르렀다. 그의 이런 경험들을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서와 편지서에 기록하여 놓았다. 중생에 대한 도리와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복음서 중에는 요한복음에만 강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요한이 바로 중생의 생명을 철저히 경험하고 그것을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물론 다른 성경 기자들도 다 성령으로 거듭났겠지만, 요한은 자기의 성격과 생활을 통하여 나타낸 야심과 과격한 태도와 그의 너무나 죄인적인 것들을 예수 안에서 다 없애고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한 그 경험이 그에게 너무 중하고 크게 다가왔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요한의 이런 봉사를 통하여 예수 안에서 품성의 변화 이전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경험을 먼저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경험을 확실히 했는가?

 

교훈: 우레의 아들이었던 요한이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것은 그가 예수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그분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자.

 

금요일(8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사도행적, 제53장 ‘사랑받은 제자 요한’(539-545).

 

“계속된 무서운 박해 중에서도 사도 요한은 신도들의 신앙을 굳게 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다. 요한은 그의 원수들이 논박할 수 없는 한 증언을 하였으며 이 증언은 그의 형제들에게 닥친 시련들을 용기와 충성심으로 대처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저희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극렬한 반대 아래 동요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 노련하고 연단 받은 예수님의 종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의 이야기를 능력과 웅변으로 되풀이하였다”(사도행적, 568).

“요한은 장수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파멸과 웅장한 성전의 멸망을 목격하였다. 구주와 친밀히 교제한 제자들 중 마지막 생존자인 그의 기별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시요, 세상의 구주이시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무도 그의 성실성을 의심할 수 없었으므로 그의 가르침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불신에서 돌아섰다”(사도행적, 56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의 품성을 변화시키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많은 행위를 보여주지만, 그분의 행위에 의해 개인의 품성이 갑자기 변화된 사건이 있었습니까? 이를테면 앞을 못 보는 이가 시력을 회복하고 나병환자가 고침을 입었지만 그들의 품성도 함께 변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품성을 계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의 품성을 변화시키신다. 우리의 품성을 계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생명의 말씀 앞에 자기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굴복할 때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생명의 성령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2.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성경이 가르치는 중심 내용이 예수 안에서 영생의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이 생명을 더 풍성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생명의 말씀을 부지런히 먹어야 하겠다.

 

요약: 요한은 생명을 주시는 구주의 사랑을 직접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경험을 자신의 말과 행동에 흘러나오게 하였다. 요한의 생애와 글들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 사랑이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며, 그 사랑이 우리의 모든 선교 사역의 기초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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