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과 예언의 은사를 신뢰함 > 안교교과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안교교과

제 13과 예언의 은사를 신뢰함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3.19 21:35 조회수 4,445
글씨크기

본문

 

제 13과  예언의 은사를 신뢰함

3월 28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51분)


도입)

하나님께 받은 말씀 중에는 미래 일을 예언하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실제 많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예언이란 장래 일을 말한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말하는 것이라고 알고 계시는게 좋겠다. 구약 당시에 선지자들은 타락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예언하였다. 마치 제사장들이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과 비교하여 그 반대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 것이다. 이것이 구약의 예언이다. 그리고 구약 예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물론 메시야 예언이다. 신약에 나오는 예언의 은사는 구약의 예언과는 약간 다르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믿는 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셔서 교회에 유익을 끼치게 하셨다. 구역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지던 예언의 말씀이 신약에서는 교회에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권면하기 위해 예언이 주로 주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 덕을 끼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의 마지막 백성들에게 주셨다. 우리는 예언의 신을 통해 주신 기별이 미래의 사건을 예언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의 백성들에게 가르치실 기별과 이 백성들이 올바른 길로 살아가도록 빛을 더하여 주신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물론 미래의 사건을 예언한 말씀을 포함한 말씀도 담고 있지만 말이다.


기억절: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대하 20:20)


연구범위: 시 41:9, 사 53:4-6, 마 23:28-31, 요 5:39, 행 10:9-16, 44-48, 17:11.


학습 포인트: 왜 성경이 우리 교리의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성경 연구는 얼마나 중요한가? 사람들이 예언의 말씀을 무시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 이적은 우리의 믿음을 세우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때때로 사람들은 왜 예언의 은사를 거절하는가?


안식일 오후

어떤 사람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교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성경 연구를 통해 교회의 모든 가르침을 받아들였으나, 엘렌 화잇에 관해서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세상에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신중한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그들의 염려를 알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 담임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이것은 성령께서 개인적인 확신을 주심을 통해 스스로 깨달아야 할 문제입니다. 시간을 내어 그 글들을 읽어 보십시오. 어떤 구절은 금방 진한 감동을 주기도 할 것이며, 어떤 구절은 의문을 갖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 책들을 읽어 보시고 스스로 결론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화잇 여사의 글들 자체가 그 근원을 말해 주는 가장 좋은 증언이 될 것입니다.”


일요일(3월 22일)

성경의 권위에 기초함(눅 24:13-27)


도입)

 성경에 보면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을 세우신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보통 사람에 의해 일상적인 인간의 언어를 사용한 인간의 말임에도 성경의 권위와 진실성이 축소된 것이 아니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도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 못지않게 권위 있고 신빙성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 말씀들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란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어느 한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은 거짓말이나 틀린 말을 하실 수 없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온전히 진실하여 어떤 부분에도 오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궁극적인 진리의 기준이다. 그러므로 기록된 성경은 우리의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다.


1. 십자가 후에 제자들이 겪은 경험과 1844년의 대 실망 후에 초기 재림 신자들이 겪었던 경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눅 24:13-27, 행 10:9-16, 44-48)

답:

제자들은 십자가 사건에서 큰 실망을 경험했다. 그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분께서 스가랴의 예언대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광경을 보았을 때 그들은 그분이 친히 왕으로 취임하셔서 로마인들을 몰아내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지상에 세우실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분의 죽음 후에 그분께서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니(눅 24:45) 비로소 그들은 그분께서 다른 목적을 위해 오셨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 중에 계실 때에 하셨던 명백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성경이 그들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야 함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2. 심지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그분의 오심의 의미에 관한 어떤 그릇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까?(행 1:6)

답:

초기 재림 신자들도 큰 실망을 경험했는데, 이는 윌리엄 밀러가 다니엘 8:14의 성소를 지상 성소로 보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 연구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잘못된 견해를 벗어버리도록 도와주었듯이, 초기 재림 신자들도 성경 연구와 엘렌 화잇의 선지자적 사역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를 통하여 성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었다.

비록 아무리 예언의 은사가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선구자들은 예언의 은사 대신 성경을 교리의 기초로 삼기로 결심하였다.

오늘날도 우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들의 신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한다. 우리의 교리가 성경의 견고한 기초 위에 세워졌음을 확신할 때, 우리는 참으로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교훈: 예언의 신의 증언이 우리의 교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리의 진정한 기초는 성경, 오직 성경뿐임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


부가적용)

성경은 인간 저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권위를 가진다. 베드로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사람들이 지어낸 신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 왔다. 권위라는 말은 통치권을 의미하는 관계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학문의 권위, 책의 권위, 부모의 권위, 통치자들의 권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이 의미는 그 위치를 인정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권위들이 무너지고 있다. 사람들이 대체로 이러한 권위를 부정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권위에 대하여 좋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패하고 잘못된 권위인 권위주의(authoritarian) 때문이다. 대개가 인격적으로 순종하게 하지 않고 여러 가지 폭력이나 물리적으로 정신적인 압력을 통하여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며, 우리 생활 전반에 대한 통치수단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 생활 영역에서 지배원리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월요일(3월 23일)

성경 속으로(행 17:11)


도입)

성경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베스트셀러)이다. 그 이유는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주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탁월한 문학 저서는 모두가 성경과 관련된 책이다. 예컨데 천로역정, 신곡, 고백록, 팡세 등이 그러하다. 역사상 가장 유영한 미술작품, 조각, 건축물, 그리고 유명한 작곡이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윤리 의학 철학 사상 등에서 성경을 능가할 만한 책은 없다. 그래서 성경은 종합예술이라고도 일컫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이 성경이 영향력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세상의 모든 책 중에서 믿음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책은 성경 밖에 없다. 그것은 허망한 믿음을 말하는 미신적인 책과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성경은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정의 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 증거를 제시한다. 성경은 사람에게 지혜를 제공하는 책 중에서 가장 으뜸인 책이다. 성경을 연구하던 랍비들의 글을 모은 책이 탈무드인데 이 책을 교과서로 사용하는 유대인의 교육을 능가하는 교육 방법이 없으며, 첨단의 교육을 말하는 미국과 독일 대학교육의 시작이 바로 성경을 가르치던 신학교였다면 성경이 온전한 지식을 제공하였다는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1. 베뢰아 사람들은 왜 바울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인하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까? 그들은 왜 바울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행 17:11)

답:

바울은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성경으로부터 설교하였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사실인지를 배우기 위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기 원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성경을 통해 바울의 말에 대한 신빙성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2. 다음 구절들은 성경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잠 2:1-6, 사 34:16, 마 4:4, 계 1:3)

답:

엘렌 G. 화잇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높였고, 교인들로 하여금 말씀을 연구하도록 권장하였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들의 믿음과 행위의 규범으로 추천하는 바이다”(초기문집, 78). 각 시대의 대쟁투 서문에 그녀는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인간에게 위탁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권위 있고 확실한 계시로 받아 들여야 한다. 성경은 품성의 표준이요, 교리의 계시자요, 체험의 시금석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9)

선지자들은 왜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을 읽고 연구하도록 권면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자신의 품성에 대한 계시로 사람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리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잘 알게 되어 있다. 성경 연구는 인류로 하여금 창조주와 더욱 밀접히 연합하게 해주고, 그분의 거룩한 뜻에 관하여 더욱 명확한 지식을 얻게 해주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에 있어서 매개자 역할을 해준다.”(각 시대의 대쟁투, 69)

엘렌 G. 화잇의 글들은 결코 성경을 대신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녀는 일생 동안 신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읽고 그것을 신앙생활의 규준으로 삼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교훈: 엘렌 G. 화잇은 우리에게 말씀을 깊이 상고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품성을 발견하며 구원의 지식을 얻으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부가적용)

화잇 여사는 언제나 성경을 영감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높였으며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표준이 됨을 명백히 했다. 그녀가 받은 계시나 글들을 단지 성경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작은 빛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받은 계시의 기별들(교육, 건강, 그리스도인 신앙, 성경연구 및 예언)에 관해 기별대로 생애 하였으며, 끊임없이 가르치고 전도하였다. 화잇 여사의 영감의 글들은 책과 소책자의 형태로 24권이 생전에 출판되었고, 작고한 후에도 100여권의 책들이 편집되어 현재까지 128권의 책들이 그녀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화요일(3월 24일)

예수님을 가리킴(시 16:9-10)


도입)

글을 읽을 때,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주제가 있다. 수필을 읽든 소설을 읽든, 그 글 속의 주제를 모르면 주제 파악을 못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글을 읽어도 소용이 없다. 어려운 글이든 쉬운 글이든, 그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성경에도 주제가 있다. 성경의 주제는 무엇이겠는가? 예수님께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 하신 것처럼 성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그러니까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경의 주인공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은,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책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는 책이다. 성경을 읽다가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1. 다음의 구약 성경절들은 예수님에 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시 16:9-10, 41:9, 사 53:4-6, 미 5:2)

답: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였고(요 8:56), “모세도 …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으며(요 5:46), “다윗도 (나를 가리켜) 주라 칭하였”다(마 22:45)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을 읽으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셨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 그런 다음에 그분께서는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구약이 그분에 관한 언급들로 충만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분은 이스라엘이 소망해온 표상의 중심이셨다.

모세로부터 사도 요한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경 기자들은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초림하시고(마 1:21), 그들을 죄의 존재로부터 구출하시기 위해 재림하실 한 분을 가리켰다(계 21:4).

선지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엘렌 G. 화잇도 사람들에게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일관되게 제시하였다. “과거의 경험이 어떠하든지, 그리고 현재의 환경이 얼마나 절망적이든지 간에 연약하고 속절없고 낙담한 지금의 상태 그대로 예수께 나아가면, 우리의 자비하신 구주께서는 멀리서부터 우리를 맞아 당신의 사랑의 팔과 의의 두루마기로 감싸 주신다.”(산상보훈, 9). 그리고 그녀는 목사들에게 그리스도를 모든 것의 중심이 되게 하라고 권면했다. “모든 설교에 그리스도를 포함시키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혼 안에 거하게 되고 영광의 소망이 될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하심과 자비와 영광이 설교의 주제가 되게 하라”(복음전도, 186)

예수님은 화잇 여사에게 매우 실제적인 분이셨다. “나는 나의 구주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알며, 나도 나의 예수님을 사랑한다. 나는 자신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안식을 얻는다”(미발행 원고, 4권, 245). 엘렌 G. 화잇은 예수님을 자신의 사역의 중심으로 모셨다.


교훈: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듯이, 엘렌 G. 화잇은 자신의 사역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일생 동안 그분을 높였다.


부가적용)

재림교인들이 엘렌 G. 화잇의 저서들을 선지자의 글로 존중하고 있다할지라도, 이것들이 우리의 주석의 근본은 아니다. 모든 참된 기독교 교리의 유일한 기초인 성경이 우리 가르침의 근거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께서 중요한 사건들을 그녀의 심령에 보여주시고, 이 마지막 때를 위한 분명한 교훈을 주시기 위해 그녀를 부르셨다고 믿는다. 우리가 이해하기로는 이러한 교훈들이 구원에 관해 우리를 지혜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므로 우리는 그 글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감적인 교훈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일부 잘못된 교훈들에 한해서는 그 교훈들을 성경과 동일시 한 적이 없다. 화잇 스스로는 성경과 그녀의 저서의 관계에 대한 결말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더 큰 빛으로 이끄는 더 작은 빛을 주셨다." (리뷰 엔 헤랄드 1903. 1. 20) "주님께서는 주신 바 증언들을 통하여 그대들을 경고하고, 책망하고, 권고하시며, 또한 그분의 말씀의 진리를 그대들의 마음에 새겨 주고자 하신다."(교회증언 5권, 665) 재림교회는 성경의 완성은 예언의 선물을 통한 하늘과 사람의 교통을 종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히 인간 역사의 마지막 도전적인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봉사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계발하시며, 강화하신다고 믿는다. 


수요일(3월 25일)

선지자들의 피(마 23:28-31)


도입)

과거의 선지자의 역할은 백성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기별을 선포해야 하는 메시지지가 있었다. 백성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백성들이 들어야할 말을 선포하는 메시지 전달이다. 때로는 최고 권력자의 잘못도 과감하게 책망해야 하는 것이 선지자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선지자에게는 핍박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마음을 전달할 도구들로 선지자들을 사용하셨다. 선지자들은 대개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거나 저들의 타락한 삶을 지적하여 회개하도록 하는 일이다. 백성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저들 중에는 칼로 베임을 받고 톱으로 켬을 당하고 맞아 죽은 사람들이 많고 핍박을 받아 죽은 사람들의 수효가 많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마 23:28-31)


1.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선지자들에 대하여 가졌던 많은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 말씀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어떤 교훈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답:

엘렌 G. 화잇의 사역에 대한 모든 증거와 정직성과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우리 교인들 중에도 어떤 의미에서 ‘선지자의 피’를 흘리고 있는 이들이 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우리 가운데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화잇 여사의 선지자적 사역의 신빙성을 파괴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러한 일은 처음부터 있어왔고, 끝 날까지도 있을 것이다. 화잇 여사와 그녀의 사역을 겨냥한 모든 공격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겨냥했던 공격들과 흡사하다.

이러한 태도를 갖게 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금요일 교과를 참조하라). 어떤 이들은 그녀의 글들을 지나치게 높였고, 그래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글들을 너무 비하하는 이들이 생겼다. 어떤 이들은 영감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가졌고, 그 글들이 자신들의 이해와 맞지 않자 그 기별에서 돌아서고 말았다. 어떤 이들은 무지에서 나온 말들을 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적대감을 가지고 악의에 찬 말들을 하였다. 우리는 그들의 동기나 마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베드로가 말했듯이, 우리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벧전 3:15). 마침내 우리 각자가 듣고 믿는 바에 따라 스스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 중에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이들이 있었듯이, 오늘날에도 남은 교회에 허락하신 선지자를 줄기차게 공격하는 이들이 있다.


부가적용)

구약과 신약을 통해 살펴보면 선지자와 예수님과 사도들은 성령과 함께 동행 했던 분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기초했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성도들을 가르치고 인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경건하게 살고자 했을 때 핍박이 뒤따랐다. 그 핍박은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됐으며 또한 말씀을 거절하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이 이루어졌다. 엘렌지 화잇의 말씀은 이 시대에 듣기 좋은 말만 하여 아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야할 말씀의 원칙들을 정확하고 세심하고 충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다 진지하게 이 말씀을 살펴볼 것이고 성실하게 그분의 말씀을 대할 것이다. 오늘날 선지자를 가진 이 교회를 핍박하는 모습이 과거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목요일(3월 26일)

은사와 이적(마 4:24)


도입)

성경의 절대 진리성을 거부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이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과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또한 매사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만 중요하게 여기는 이성주의도 교회를 뒤흔들고 있다. 한편으로는 오로지 은사와 이적의 체험만 추구하는 신비주의 신앙 또한 우리를 위협하기도 한다. 더욱이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만 추구하는 기복주의 신앙도 한국 교회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가 철저히 조심하고 경계해야 될 현대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과 같다. 누룩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급속도로 확산되고 주변을 오염시킨다. 그럼으로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올바른 분별력이 필요하다. 영적 분별력을 가짐으로써, 우리의 신앙을 오염시키는 누룩과 같은 요소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육신으로 계실 때에 행하신 사역에 대해 생각해 보라. 그분께서는 계속해서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물이 포도즙으로 변하게 하시고(요 2:1-11), 5천 명을 먹이시며(마 14:14-21), 병자들을 고치시고(마 4:24), 죽은 자들을 살리셨다(요 11:1-45). 이적은 그분의 거룩한 능력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서 이 땅에서의 그분의 사역에 힘을 더해 주었다.


1. 예수님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가 기록된 누가복음 24:13-27을 읽으십시오. 그분께서는 당신이 참으로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무엇을 제시하셨습니까? 그 사실은 특별히 예언의 은사라는 맥락에서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계신 동안 행하신 모든 이적들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두 제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하셨으며, 오직 성경에서만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가르치려 하셨다.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수년에 걸쳐 주님께서는 엘렌 G. 화잇을 통해 기적적인 방법으로 일해 오셨다. 그러한 일들 중 어떤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것들도 많다. 하지만 예언의 은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기적적인 일들에 의존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러한 일들도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겠지만, 최종적인 시금석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하며, 그 은사가 정말 성경과 조화를 이루느냐가 중요하다. 이적들도 좋지만 그 가르침이 비성경적인 것이라면 그 이적들은 최종적 시금석이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성경의 영감성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엘렌 화잇을 통해 나타난 예언적 은사에 대해서도 계속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은사 자체가 그에 대한 신빙성을 제공하고 있다. 비록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고전 13:12) 밖에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금방 대답하지 못할 문제들이 있다하더라도, 그 은사의 신빙성을 믿을 만한 증거는 이미 충분히 주어져 있다.


교훈: 엘렌 G. 화잇의 생애를 통해 무수한 이적들이 있었지만, 기별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것이 성경과 일치한다는 데 있다.


부가적용)

기적을 보았다고 해서, 그리고 기적을 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