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예언의 은사와 하나님의 남은 교회(1/24/09)
페이지 정보
본문
1월 24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7분)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기억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연구범위: 계 12장, 14:1-12.
학습 포인트: 요한계시록 12장의 상징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장(章)의 사건들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예수의 증거’(the testimony of Jesus)와 ‘대언의 영’(the spirit of prophecy)은 무엇을 뜻하는가?
안식일 오후
남은 자의 개념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처음으로 나타나며(창 7:23),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반복해서 나타난다. 사도 바울도 남은 자에 관해 언급하였는데(롬 11:5),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인들을 포함하는 이 남은 자들이 후에 그리스도 교회의 주축을 이룬다. 요한계시록에도 두아디라 교회(계 2:24)와 사데 교회(계 3:4)에 남은 자가 있을 것이 언급되었고, 이번 주에 연구하려는 12장에도 남은 자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신실한 남은 자는 항상 가시적인 하나의 무리로 존재한 것은 아니다. 즉 초기교회로부터 마지막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 신앙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당신의 신실한 자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계 18:4)고 부르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님의 남은 자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핵심본문: 계 12:17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예언의 은사를 허락하셨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예수께서 당신 자신에 관해 증거하신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그분의 증인이 되고자 열망한다.
행하기: 예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
교과 개요
I. “예수의 증거”(계 1:1-3, 19:10)
A. 이 구절들은 계시의 과정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B. 요한은 어떤 면에서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었는가? 우리는 어떤 면에서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II. 예수님을 옹호함(계 12:8-17)
A. 선지자가 핍박받는 교회를 위한 축복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B. 요한계시록 1:9, 2:13, 6:9, 20:4의 ‘증거’라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마르투레스(순교자)인데, 여기에 어떤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가?
III. 마지막 시대의 예언(요 1:6-9, 계 22:20)
A. 우리는 예언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증거할 수 있는가?
B. 우리의 증거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어떻게 보완해 주는가?
요점: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심으로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러한 계시는 예수님에게서 절정을 이루었으며, 사도들과 초기교회의 순교자들을 통하여 계승되었다.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은 이 예언의 기별을 보존하고 회복하는 특징을 가졌다. 그들은 마지막 시대에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을 옹호할 것이다.
일요일(1월 18일) 선악의 싸움: 제1막(계 12:1-6)
1. 요한계시록 12:1-6을 읽으십시오. 여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계12:1-6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답: 여자의 아들과 붉은 용의 싸움이 계시되어 있다. 그것은 곧 하늘에서 미가엘과 용의 전쟁으로 시작된 싸움이다. 여자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용과 싸우던 미가엘이 세상에 사람으로 탄생하시고 또 승천하신 것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12장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 즉 그리스도의 시대로부터 마지막 때까지의 대쟁투가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1절에서 요한은 눈부신 광경을 보았는데, 그것은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이 있는(계 12:1) 아이 밴 여인의 모습이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였다는 것은 이 여자가 단순히 한 여자가 아니라 교회 즉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상징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참조 사 54:5-6, 고후 11:2). 그 여자의 장려(壯麗)한 모습은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말 4:2, 계 1:16)과 연결된다.
2. 요한계시록 12:6에 따르면, 그 여자는 용을 피해 광야로 도망하여, 그곳에서 1,260일 동안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1,260일은 무엇을 상징합니까?(단 7:25, 계 12:14, 13:5)
계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단7: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계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계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답: 여기서 말하는 1,260일은 교회가 박해를 받던 중세 1,260년간의 종교암흑시대를 가리킨다.
19세기까지 대부분의 예언 연구 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의 예언적 기간을 해석하기 위해 ‘1일=1년 원칙’을 적용하였다. 그들은 이 1,260일을 교회가 박해를 받던 중세 1,260년의 기간으로 이해하였다.
예언 연구 학자들이 ‘1일=1년 원칙’을 적용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요한계시록 12장 전체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이 기간도 실제적인 기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둘째,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는 같은 기간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나오는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단 7:25, 12:7, 계 12:14), ‘마흔두 달’(계 11:2, 13:5), ‘일천이백육십 일’(계 11:3, 12:6)과 같은 표현들은 문자적 3년 반의 기간을 가리키는 부자연스런 표현방식이다(참조 눅 4:25, 약 5:17).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1,260일을 1,260년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 1,260년의 기간은, 교황권이 지배하던 6세기로부터 18세기 후반까지 지속된 1,260년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렇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드문 형편이다.
1,260년의 박해 기간
“주님의 천사는 말하였다.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계 11:2-11).
여기에 기록된 ‘마흔 두 달’혹은 ‘일천이백육십 일’ 이란 말은 같은 기간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로마교의 압박을 받을 기간을 나타낸다. 법왕권이 최상권을 쥐게 된 일천이백육십 년은 기원 538년에 시작되어 1798년 마치게 된다. 그 때에 프랑스 군대가 로마에 침입하여 법왕을 사로잡았는데, 그는 유배 중에 죽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266)
<부가설명> 예언상 1일이 실제 역사적 연대로 1년을 가리킨다는 것은 다니엘서 9장 24-27의 70 이레 기간을 계산하면 분명하여진다. 이것은 벧전1:10,11의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역으로 계산하여 올라가면 이론의 여지가 없어진다. 벧전의 말씀은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이다. 예수께서 받으실 고난과 영광에 대하여 어느 시 어떤 때를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다. 구약성경을 면밀히 살펴도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실 “때”와 “시”에 대한 예언은 다니엘 9장 70 이레에 계시된 것 외에는 없다. 그 25절에 예루살렘 중건령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받은 왕(원문 메시야)가 일어날 때까지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나는데, 62 이레 후에 메시야가 끊어진다고 예언하였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으실 때 곧 침례 받으실 때부터 거슬러 계산하면 1일 1년 원칙이 아니면 이 예언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7 이레에 62 이레를 보태면 69 이레인데 날 수로는 483일이다. 이것은 1년이 조금 넘는 기간인데, 예루살렘 중건령이 난 BC 457년부터 483일이 되었을 때 메시야가 탄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일 1년 원칙을 적용하면 BC 457년부터 483년이 되었을 때 곧 AD 27년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다. 곧 성령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은 것이다. 아주 정확하게 성취된 것을 본다. 베드로의 기록이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적 1,260일은 역사적 연대로 1,260년이 옳은 것이다.
교훈: 요한계시록 12장의 1,260일 기간은 ‘1일=1년 원칙’에 의거하여 교황권이 지배하던 중세 1,260년의 기간으로 교회가 핍박받던 기간임 알 수 있다.
월요일(1월 19일) 선악의 싸움: 제2막(계 12:13-17)
요한계시록 12:7-12에는 사단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어 쫓기는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서 시작된 대쟁투에 관해 희미하게나마 엿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12장의 배경이 하늘과 땅을 오가는 것은 이 사건이 하늘과 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말해 준다. 참으로 우리는 이 우주적인 전쟁의 중심에 서 있다!
1. 요한계시록 12:13-17은 6절에서 바로 연결되는데, 그리스도 교회가 당한 박해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먼저 로마제국에 의해 박해를 받았고, 후에는 배교한 로마 교회에 의해 박해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상징들은 무슨 뜻입니까?
계12:6, 13-17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답: 1,260일은 참 교회가 박해를 받는 1,260년을 상징하고, 용은 교회를 핍박하는 사단과 그의 동조 세력들을 상징하며 광야는 고난 받는 교회의 처지를 상징하고 물은 성도들을 핍박하는 집단을 상징하며 땅은 성도들의 피난을 도운 신대륙을 상징한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토해진 물은 핍박하는 군대를 상징한다(렘 46:7-8, 47:2, 단 9:26). 반면에 요한계시록 12:16의 땅은 핍박받는 교회를 도와주었다. 1620년에 첫 필그림(pilgrims)이 유럽의 종교 박해를 피해 미국 대륙에 도착했다. 이 신대륙에서 그들은 유럽의 핍박하는 군대가 미치지 못하는 안전한 피난처를 발견하였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신대륙 미국은 핍박하는 군대를 삼킨 것이다.
요한계시록 12:17에서 우리는, 18세기 말에 종료되는 1,260일의 기간이 끝난 후에, 사단이 더 이상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쓸어버릴 수 없음을 알고 “그 여자의 남은 자손” 또는 “그 씨의 남은 자”로 불리는 특별한 무리에 대하여 분노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2. 요한계시록 12:17을 주의 깊이 읽으십시오. 이 특별한 남은 무리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다음 구절들은 "하나님의 계명"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마 24:20, 롬 3:31, 엡 6:1, 약 2:9-11, 요일 3:4)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마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엡6:1,2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약2:9-11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요일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답: 남은 무리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 곧 십계명을 그대로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것이다.
요한계시록 12:17에 묘사된 대로, 하나님께서는 남은 무리의 특징을 단순하게 서술하셨다. 마지막 때의 남은 자는 제칠일 안식일을 포함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특징지어진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1,260년 간의 배도와 환난에도 불구하고 사도교회의 순결을 계속 간직해 왔던 얼마간의 신자들이 있었다. 1,260년 간의 압제가 서기 1,798년에 끝났을 때 용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전멸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 분명해졌다. 이들에 대하여 사단은 그의 파괴적인 노력을 계속하고있다. 요한은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다(계 12:17)고 말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233-234)
<부가설명>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나 땅으로 왔다. 그가 직접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쫓겨났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므로 하나님을 대적한다. 사단은 변장의 명수이다. 하나님을 백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속여서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도록 하여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일이다. 사단은 바로 이 일을 한 것이며 교회는 보기 좋게 속아서 긴 세월동안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참 성도들을 핍박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때가 되었을 때 들통나게 되었고,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는 기별이 전파되고 그것을 위하여 예언의 신께서 예수의 증거를 주시며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표고 제칠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분명한 기별을 주시고 그 기별을 받아들이는 무리들을 그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 확인하신 것이다.
교훈: 유럽에서 박해를 받던 하나님의 백성은 신대륙 미국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발견하였는데, 마지막 때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특징을 가진다.
화요일(1월 20일) 예수의 증거(계 12:17)
어제 우리는 남은 교회의 첫 번째 특징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다. 남은 교회의 두 번째 특징은 “예수의 증거”(마르투리아 이에수스)를 가진 것인데, 이 표현은 요한계시록에 여섯 번 나온다.(계 1:2, 9, 12:17, 19:10, 20:4)
1. 다음 구절들에서 '예수의 증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계 1:2, 9, 19:10, 20:4)
계1:2,9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계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답: 여기서 ‘예수의 증거’는 예수께서 자신에 관하여 증거하신 말씀을 가리킨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계 1:2)
문법상 “예수의 증거”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에 관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하여 우리에게 증거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이와 동일한 문법적 구조를 가진 경우(요 1:19, 3:11, 32-33, 5:31)를 연구해 보면, ‘예수의 증거’는 언제나 예수님 자신의 증거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12:17에 나오는 “예수의 증거”는 예수님 자신에 관한 그분의 증거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몇 구절들을 연구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요한계시록 1:2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다 증거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리키는데, “예수의 증거”와 평행을 이룬다. 그러므로 “예수의 증거”는 단순히 예수께서 자기 자신에 관하여 증거하신 말씀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1:9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한은 자신 신원을 소개하고 자신의 신임장에 관해 진술한 다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다(계 1:9)고 말한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가 함께 등장하는 대구(對句)가 다시 나타난다. 따라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원칙에 따라,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의 증거”라는 모든 표현은 언제나 예수께서 자신에 관하여 하신 증거를 가리킨다.
예수의 증거로 인해 유배된 요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계 1:9) 정죄당해 황제의 칙령에 의하여 밧모섬으로 추방당했다. 그의 원수들은 여기서는 그의 감화가 더 이상 끼쳐지지 않을 것이며 마침내 그는 고난과 고통 중에 죽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에게해 가운데 있는 바위로 덮인 불모의 섬인 밧모는 로마 정부가 죄수들의 정배지로 택한 곳이었으나 하나님의 종에게는 이 침울한 거처가 하늘의 문이 되었다. 분주한 생활환경에서 그리고 이전 생활의 활동적인 수고에서 차단된 채 이곳에서 요한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그리고 하늘의 천사들과 교제하였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미래의 모든 시대를 위한, 교회를 위한 가르침을 받았다.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일어날 사건들이 그의 앞에 요약 제시되었고 거기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계시들을 기록하였다.”(사도행적, 570)
<부가설명> 계시록에 예수의 증거라는 말이 여러 번 나타나는데 몇 번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나타나고 또 한 번은 하나님의 계명과 함께 쓰였다. 이런 비교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계명은 같은 사상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장에 나타난 예수의 증거는 기록된 그대로 요한이 본 것이다. 요한이 본 것은 계시록의 내용이기도 하지만 1:9에 기록된 사실을 보면 2절의 예수의 증거는 계시록의 내용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밧모 섬에 가게 되었으니 밧모 섬에 가기 전에 요한이 본 것들이 틀림없다. 그것은 요한이 요일1:1에 기록된 사실 곧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일 것이다. 그것들이 바로 예수의 증거이다. 곧 신약성경의 내용이다. 그러나 계12장 이후에 남은 자손에게 주신 예수의 증거는 신약성경 이후의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1,260년간 핍박을 받은 후에 형성된 그 여자의 남은 자손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은 자손들에게 특별히 주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말씀이다. 그것은 예언의 신이신 성령의 증거이며 곧 마지막 때의 세 천사의 기별을 듣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성경을 바르게 깨닫도록 인도하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특별히 증거한 말씀이다.
교훈: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원칙을 적용해 보면, 요한계시록 12:17에 나오는 ‘예수의 증거’는 예수께서 자신에 관하여 증거하신 말씀을 의미한다.
수요일(1월 21일) 대언의 영(계 19:10)
1. 요한계시록 19:10에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대언의 영’이라는 표현은 오직 이곳에만 나오는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고전 12:8-10, 28, 엡 4:11)
계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고전12:8-10, 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답: 대언의 영은 예언의 은사를 가리키며,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를 선지자라 부른다.
성경에서 ‘대언의 영’(the Spirit of prophecy)과 가장 가까운 표현을 고린도전서 12:8-10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여러 은사들(카리스마타) 가운데 ‘예언의 은사’도 주시는데, 이 은사를 받은 자를 선지자라 부른다. 고린도전서 12:28에서도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고전 12:10)를 선지자라 불렀으며, 요한계시록 22:8-9에서도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계 19:10)를 ‘선지자’라고 불렀다.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계 19:10)
“나 요한이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계 22:8-9)
이 두 구절에서, 요한은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였는데, 이때에 천사가 한 말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요한계시록 19:10에서는 ‘형제들’을 ‘예수의 증거를 받은 자들’이라 하였고, 22:9에서는 ‘형제들’을 그냥 ‘선지자들’이라고 불렀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원칙에 따르면, 요한계시록 19:10의 ‘대언의 영’은 예언의 은사로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선지자들에게 주신 은사를 가리킨다.
루터교의 한 학자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요한계시록 19:10에 나오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형제들’은 평행절인 22:9과 비교해 볼 때. 일반 신자가 아니라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만약 그들이 마르투리아 이에수스(예수의 증거)를 가졌다면 그들은 예언의 신을 가진 것이다. 그들은 선지자들이다.”(헤르만 스트라트만, 신약 신학사전, 4권, 501)
<부가설명> 예언의 신 혹은 대언의 영이라는 말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재림교인들은 엘렌 화잇의 글을 언필칭 예언의 신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바른 개념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화잇의 글들은 예언의 신이신 성령의 증언들이다. 예언의 신 혹은 대언의 영은 성령이시다. 화잇은 자신의 글에게서 자기에게 지시하고 계시와 영감을 주신 분을 “예언의 신”이라고 기록하였다(자서전 373, 396쪽, 교회 권면 93쪽 참고). 우리는 이런 사실을 바르게 인식하고 예언의 신이라는 말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정확한 표현은 화잇의 글들은 예언의 신의 증언이고 예언의 신은 성령이시다. 그러나 예언의 신의 증언이라는 말을 줄여서 예언의 신이라고 말하는 것인 줄 알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면 용인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 교과의 저자는 예언의 신을 예언의 은사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을 선지자라고 말하는 것은 옳다. 엘렌 화잇은 자신을 인도하고 영감하신 분을 예언의 신이라고 친히 말하였다. “나의 사업은, 하나님의 인을 지니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단의 인을 지니고 있다. 이 사업에는 양편에 다 관련된 일이 없다. 증언들은 하나님의 영에서 나온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마귀에서 나온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의 신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나타내셨을 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내 앞에 지나갔다.”(교회에 보내는 권면 93).
교훈: 요한계시록 19:10에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고 했는데, 평행절 연구를 통해 보면,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는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목요일(1월 22일) 남은 교회(계 14:6-12)
지금까지 한 공부를 통해, 우리는 요한계시록 12:17의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이 하나님의 가시적인 남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남은 교회가 가지는 두 가지 특징은 (1)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대로 안식일 계명을 포함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2) 예언의 은사 혹은 예언의 신을 의미하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임을 확인하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1863년에 조직되었는데 이미 그 전부터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으며, 이 안식일 준수자들은 자신들이 남은 교회의 일원임을 믿었다. 우리 재림교인들은 제칠일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을 준수하며 전파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교회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엘렌 G. 화잇의 생애와 사역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단지 여러 교회들 중 하나가 아니라, 성경에 예언된 특별한 교회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어가는 세상을 향해 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할 특별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이 교회를 부르셨다.
1. 요한계시록 14:6-12은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특징이 무엇이라고 말해줍니까? 우리가 남은 교회의 일원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계14:6-1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세상에는 예수 믿음을 지키되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교파도 있고, 반대로 하나님의 계명은 지키되 예수 믿음을 지키지 않는 종교도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이 둘을 다 지킨다.
우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하나님의 남은 교회의 일원임을 믿는다. 그러나 남은 교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남은 교회의 일원이면서도 잃어버린바 될 수 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구원받으며, 단체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거룩한 부르심을 받아 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에는 큰 특권과 함께 책임이 수반된다. 하지만 고대 히브리인이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였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지 않았던 것처럼(렘 8:20), 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기별
“우리가 전해야 할 기별은 ‘평안하다 안전하다’(살전 5:3)는 기별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고대하는 백성으로서 우리에게는 해야 할 사업이 있고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 4:12)고 전해야 할 기별이 있다. 우리는 표준을 높여야 하며 셋째 천사의 기별,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전해야 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81)
<부가설명> 남은 자라는 말은 노아의 식구들에게 처음으로 적용되었다(창7:23). 남았다는 말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구원을 받은 자들이라는 말이 된다. 홍수 후에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고 기록하였을 때 그들은 살아남은 자들, 곧 구원받은 자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종말에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그들이 구원을 받은 특징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곧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곧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에게도 같은 사실이 있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 곧 십계명을 주실 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20:2)고 하셨다. 즉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었다는 사실을 선포하신다. 그래서 십계명을 지킬 특권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애굽에서 십계명을 받아 그것을 지켜야 애굽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이 광야에서 성령의 증거로 지도를 받아 구원의 믿음을 지키게 하셨다. “주께서는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저희를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사 떠나게 아니하셨사오며 또 주의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로 저희 입에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의 목마름을 인하여 물을 주시사”(느9:19,20).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선한 신(성령)d로 가르치셨다고 계시한다. 1,26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한 교회의 남은 자손에게 계명을 지키게 하시고 선지자를 주셔서 성령의 가르침을 받게 하신 것은 바로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우리교회가 남은 자손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은 아주 성경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특권을 잃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하면 잃게 될 것이다. 지키는 방법은 세 천사의 기별을 음성과 생활로 증거하는 하는 것이다. 이 기별을 전파하는 자들이 바로 성도이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인 것이다. 잘 지켜야 한다.
교훈: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여러 교회들 중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지막 기별을 선포하시기 위해 부르신 특별한 교회이다.
금요일(1월 2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엘렌 G. 화잇, 초기문집, 역사적 서문(vii-xxxii)
“성령의 은사들 중에 하나는 예언하는 것이다. 이 은사는 남은교회임을 확인하는 표징이며, 그것은 엘렌 G. 화잇의 봉사를 통해 나타났다. 하나님의 사자로서, 그의 저술들은 지속적이고도 권위있는 원천으로서 교회에 위로와 인도와 교훈과 교정을 제공한다. 또한 그의 저술들은 성경이 모든 가르침과 경험들을 시험하는 표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305)
구약에 나오는 남은 자의 개념을 연구해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남은 자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빛을 받고 살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노아는 닥쳐오는 홍수에 관한 빛을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참되신 하나님에 관한 빛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성소에서 여호와를 경배하고 있었으나, 주변의 이방 민족들은 자식을 제물로 바치거나 고양이나 송아지, 또는 다른 짐승의 형상을 숭배했다. 간단히 말해서 ‘남은 자’란 진리와 하나님의 품성에 관한 더 많은 계시를 가진 자들을 말한다. 목요일 교과에서 언급했듯이 남은 자손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큰 빛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빛과 함께 중대한 책임을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며, 한편 남은 자에 속하지 않은 자들은 다 잃어버린바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슬프게도 성경 역사에서 하나님의 남은 자에 속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빛대로 사는 일에 실패하였으며, 종종 그 빛을 거역하고 말았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누가복음 12:48에는 남은 교회의 일원이라고 믿는 자들을 위한 어떤 중요한 기별이 주어져 있습니까?
* 눅12: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많은 빛을 받은 사람은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일깨우는 기별이다.
2. 남은 자손에 속했다는 것이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그 일원이 되는 것은 이점은 무엇입니까?
* 남은 자손은 구원을 받은 자이며 그 받은 구원을 잃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구원을 쟁취해야 하는 자들이 아니고 이미 받은 구원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자들이다. 얼마나 큰 이점인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방치해도 하나님이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우리교회가 남은 교회라는 것을 확인하고 확신하였다. 여자의 남은 자손의 위치를 잃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하겠다.
- 이전글제4과 예언의 은사와 하나님의 남은 교회 (파워포인트용) 09.01.17
- 다음글2009 기억절 MP3 파일은 어디서? 09.01.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