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과 하나님의 소통 수단 > 안교교과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안교교과

제 1과 하나님의 소통 수단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12.30 02:01 조회수 4,246
글씨크기

본문

 

제 1과 하나님의 소통 수단

1월 3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26분)


도입)

계시란 "비밀한 것을 열어 보여 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란 하나님께서 비밀에 부쳐 두었던 사항들을 직접 열어 보여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계시를 통하여 보여 주시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사역과 자신의 뜻이다. 이렇게 자신을 보여 주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이다. 자연계시란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성품을 보여 주시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은 알 수 있으나 그의 계획과 뜻은 알 수 없다. 더욱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은 알 수 없다. 따라서 자연계시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지는 못한다. 자연계시를 나타내는 말씀은 시 19:1-6에 기록되어 있다. 반드시 찾아 읽도록 한다. 특별계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구체적인 뜻을 계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창 18:2)을 비롯하여 천사를 보내기도 하며, 환상이나 꿈, 혹은 음성이나 선지자에게 주는 영감 등등 많은 방법이 동원되어 왔다. 특별계시에 대하여는 시 19:7-14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찾아 읽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기억절: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연구 범위: 창 18:1-15, 32:30, 출 4:10-17, 시 19:1-6, 요 1:14, 3:16, 골 2:9.


핵심 포인트: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는 무엇인가? 우리가 천연계를 통하여 하나님에 관해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은 각각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는 하나님의 다른 계시들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안식일 오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두 가지 방법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이다. 그분께서는 천연계와 양심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데 이것이 일반계시이다(참조 시 19:1, 롬 1:20). 또한 그분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들의 글들을 통해 당신을 나타내시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시는데, 이것이 특별계시이다. 이러한 수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부조들과 선지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셨다. 한편 그분께서는 당신의 능력과 목적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계시하셨다. 그런 후에 그분께서는 인성을 입으신 당신의 아들을 보내심으로 특별하고도 힘 있는 방식으로 아버지를 계시하게 하셨다.

이번 주에 우리는 이 두 종류의 계시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 교과에 인용된 예언의 신의 증언들과 재림교 성경 주석의 엘렌 G. 화잇 언급 부분은 모두 영문 페이지로 표기됨.



일요일(12월 28일)

태초에(창 3:8)


도입)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아담과 하와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뵙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그분을 직접적으로 뵐 수는 없을지라도 그분은 여러 방법을 통해 우리와 대화를 하신다. 페스탈로치는 취리히 사람으로 위대한 교육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어린이 교육에 헌신하여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가 죽자 교육자로서의 봉사의 일생을 기리는 기념동상을 세우게 되었다. 동상의 베일을 벗기는 날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전 모습을 그리며 동상 앞에 섰다. 그 동상은 한 어린 아이가 무릎을 꿇고 페스탈로치 선생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고, 그는 그 어린이를 따스한 얼굴로 바라보는 형상이었다. 어린이를 그토록 사랑한 선생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 선생의 친구들은 몹시 불만 섞인 태도를 보였다. 이 동상은 페스탈로치의 평소 소망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의 소망이란 후세들이 그가 교육에 있어서 이룬 업적들을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성취하지 못한 더 귀한 목표를 향해 시선을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결국 동상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동상의 베일을 두 번째 벗기는 날이 왔다. 새로 만들어진 동상은 어린이가 선생을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위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선생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선생의 친구들은 그제야 만족스러워했다. 페스탈로치는 어린이는 물론 어느 누구나 하나님을 잃지 않고 그분을 향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고 하나님과 늘 대면하며 그분과 교제하며 살아야 한다. 바로 이것을 페스탈로치는 가르치고 싶어한 것이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대면하여 말씀하셨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더라(창 3:8). 그러나 곧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머물 수 없었고(창 3:23-24), 그분과 얼굴을 대하고 이야기할 수도 없게 되었다.


1. 다음 구절들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일에 관해 무엇을 말해줍니까?(창 8:1~15, 32:30,  33:10, 삿 6:22, 13:2~3)

답:

구약에는 종종 하나님의 사자(angel) 혹은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되곤 한다. 야곱도 하나님과 사자를 동일한 분으로 언급했고(창 48:15-16), 모세에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이는 여호와의 사자였으나 그에게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출 3:2-6). 기드온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와 동일시되었고(삿 6:11-14),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나타났던 여호와의 사자도 하나님과 동일시되었다(삿 13:11-22).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는 언제든지 육신의 형상으로 나타나셨으며, 항상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요한복음 1:18에서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고 하였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거룩한 존재는 성부 하나님이 아닌 성자이신 예수님이시다. 엘렌 G. 화잇은 말하기를, “아담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사람과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지 않으셨다. 인류는 그리스도의 손에 주어진바 되었으며,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뜻이 세상에 전달되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말씀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237-238)


교훈: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과 대면하여 이야기하셨으나, 타락한 후에는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교통의 통로가 되셨다.


부가적용)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선지자를 통해서(암 3:7), 폭풍과 우뢰 중에서(출 19:19, 신 5:22이하), 또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기도 하신다(왕상 19:12). 구약에서 다양하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말세에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라는 말은 ‘말세에 최종적으로’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이며 계시의 최종 결론이다. 그 분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 분 자신이 계시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그 분은 천지만물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을 가진 분이시며, 태초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한 분이시다. 그 분의 능력의 말씀이 땅과 하늘을 붙잡고 계시며, 우리를 붙잡아 주신다. 동시에 그 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는 우리들의 죄를 단번에 정결케 하셨다.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구속사역을 승리로 종결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통해 만나고, 우리의 삶과 생각의 중심에 모셔야 한다.


월요일(12월 29일)

천연계를 통하여(시 19:1-6)


도입)

계시에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두 가지가 있다. 일반계시란 자연과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의미한다. 계시란 말은 얼굴의 마스크를 벗는다, 감추었던 것을 벗겨 보인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여러 방법을 통해 주시는데 일반계시는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유용했고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자연과 역사를 통한 계시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자연에는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이 잘 나타나 있다. 꽃과 나무, 산과 들에도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있다. 자연의 세계는 하늘과 땅과 바다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원자(atom), 유전자(DNA)와 리보핵산(RNA), 200개가 넘는 은하계를 포함한다. 그 창조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뜻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또 시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천연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계시하셨다.


1. 천연계는 하나님에 관해 무엇을 나타내줄 수 있습니까?(시 19:1-6, 33:6-9, 롬 1:19-23)

답: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모든 면에서 완전했다고 성경은 말한다(창 1:31). 그러나 죄가 천연계를 망가뜨리고 말았다(창 3:17-18). 타락 이전에 땅에는 오직 아름답고 유용한 식물들만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가시나 엉겅퀴나 가라지를 만들지 않으셨다. 이것들은 사단의 작품으로서, 타락의 결과”이다(교회증언, 6권, 186). 그럼에도  가을 낙엽의 화려한 변화 속에, 붉게 물든 일몰의 광경 속에, 신선한 아침에 피어나는 꽃봉오리 속에 아름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성경 기자들은 종종 천연계의 현상을 하나님의 장엄하고 위대한 능력에 대한 계시로 언급한다(시 8:, 104:) 우주를 생각해 보라. 청명한 밤하늘에 우리는 수천 개의 별들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은하계에는 2,000만 개나 되는 별들이 있는데, 이 은하계는 지금까지 알려진 수천만 개의 은하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망원경 저 너머에 얼마나 더 많은 별들이 존재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광대한 우주는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준다. 태양을 제외하고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인 알파 켄타우리(Alpha Centauri)까지는 4.28광년이 걸린다(1광년은 빛의 속도로 1년간 여행한 거리이다). 이것은 시속 16만 km(약 10만 마일)를 달리는 우주선을 타고 29,000년을 달려가야 그 항성에 도착한다는 이야기다. 한편 우리가 속한 은하계는 직경이 10만 광년이나 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큰 은하계인 마르카리안(Markarian)은 직경이 130만 광년이나 된다.

그런데 전자현미경을 통해 인체 속에 있는 수십억 개의 유전자를 연구해 보면 이와 같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유한한 머리로는 창조 세계의 신비를 다 깨달을 수 없다.

하지만 천연계만으로는 하나님의 품성을 온전히 나타내지 못한다(롬 1:25). 비록 창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장엄하심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그분이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분(출 34:6)이시라는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


교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연계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능력과 장엄하심에 대해 알 수 있지만, 그분의 자애로운 품성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부가적용)

모든 사람은 천연계와 인간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에 관해 배울 수 있다. 다윗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라고 기록했다. 요한은 천연계를 포함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각 사람을 계몽시킨다고 주장했다.(요 1:9) 그리고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롬 1:20)라고 선언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동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다."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아테네 사람들의 경배가운데서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증거를 보았다.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3). 바울은 또한 비그리스도교인의 행동이 "그(들의) 양심"의 증거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롬 2:14-15)겨져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이러한 직관은 성경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에 관한 이러한 일반적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수많은 고전적인 이성적 논증들을 불러일으키곤 하였다. 그것은 그분의 자애로운 품성을 이해하는데 천연계가 가진 한계 때문일 것이다.


화요일(12월 30일)

선지자들을 통하여(출 4:10-17)


도입)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나타내는 방법으로서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전하여 주셨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거나 선포하지 못했다. 다만 바람결에 날려버리고 말 겨에나 비할 수 있는 꿈 이야기만 전했다. 렘 23: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한 에스겔 시대에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자신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전했다. 겔 13: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3: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13:3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 13:4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이와 같이 전파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지 않고 선지자들의 헛된 꿈 이야기나,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지다 보니 이스라엘은 기갈이 걸려 황폐해지게 되었다. 암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선포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야 할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니 이처럼 영적인 기갈이 찾아오게 되었다. 예레미야 시대나 에스겔 시대의 여러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무 유익을 줄 수가 없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없었기 때문이다.


1. 인류가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인류와 더불어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선지자(삼상 9:9)라 불리는 남녀들을 통해 교통하셨습니다. 다음 구절들은 이 선지자들에 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삼하 23:2, 렘 1:5, 호 4:1, 암 7:14~15, 요 1:13)

답:

선지자(히브리어로 나비)라는 단어는 (하나님에 의해)‘부르심을 받은 자’ 또는 ‘소명을 가진 자’라는 뜻을 지닌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기별을 선포하는 자로서, 그 기별에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경고, 교훈, 위로, 예언 등을 전달하였다.

영어의 선지자(prophet)라는 단어는 헬라어 프로페테스(prophetes)에서 파생되었는데, ‘~을 위하여’의 뜻을 가진 전치사 프로(pro)와 ‘말하다’를 뜻하는 동사 페미(phemi)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선지자란‘~를 위하여 말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2. 출애굽기 4:10-17은 선지자의 역할을 더 잘 이해하도록 어떤 단서를 제공해 줍니까?

답:

여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의 바로를 대면하여 만나도록 부르셨을 때, 모세는 그 부르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출 4:10)고 그는 변명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입을 지으신 자로서, 말할 능력을 주시겠다고 하셨으나 그는 계속 거절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을 함께 보내시겠다고 하셨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출 4:16). 모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듯이, 아론은 모세를 대변하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누군가를 위해 말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거나 혹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성경에서 선지자의 주요 임무는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높이고 그것을 백성에게 가르쳤다.


교훈: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하나님의 뜻을 경고와 위로, 교훈과 예언의 그릇에 담아 전달하였다.


부가적용)

이 시대에도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에서 선포되지 않는다면 성도나 교회나 영적인 기갈에 처할 수밖에 없고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시설이 크고 훌륭한 건물을 짓고 많은 사람이 모여 예배드린다 할지라도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불행한 교회고 그 안에 성도는 불행한 성도이다. 비록 지하실 작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라 할지라도 그 교회에서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그 교회는 복된 교회이며 그 안에 있는 성도는 복된 성도이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하게 하심처럼 이 땅의 모든 목사들에게 선지자와 같이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목사들은 이 시대의 선지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여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안에 우리를 지으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기르시고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또한 말씀으로 날마다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 말씀으로 임하고 계신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내게 말씀하시는 말씀으로 깨닫는 사람이다.


수요일(12월 31일)

말씀을 통하여(요 20:30-31)


도입)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성경은 그것을 당연한 일로 치고 있다. 성경의 첫 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고 선언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창조주, 유지자, 모든 피조믈의 통치자로 묘사하고 있다. 창조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너무 강력하여 무신론은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신론은 신적 진리를 억압하거나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마음에서 발생하는 것이다.(시 14:1; 롬 1:18-22.,28)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발견하고자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확신시켜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증거들이 충분하게 있다. 그러나 믿음이 선행 조건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히 11:6)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맹목적이 아니다. 이것은 성경과 천연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에서 발견되는 충분한 증거위에 기초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요, 그 계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인류에게 계시하시기 위해 처음에는 꿈과 이상과 현현(顯現)을 통해 나타내셨다. 모세의 시대(BC 15세기)로부터 많은 계시가 기록되었는데,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구원의 필수적인 지식을 내포한 66권의 성경을 갖게 되었다.


1. 다음 구절들은 성경 자체에 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마 1:22, 2:15, 17, 4:14, 요 20:30~31, 딤후 3:16~17)

답:

성경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질은 다음과 같다. 1) 내용의 통일성: 얼핏 보기에 성경은 고대 문헌을 수집해 놓은 것에 불과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책이 약 40명의 기자들에 의해, 거의 1,600년간에 걸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그 통일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구원의 계획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드러났다. 주제의 통일성을 보자면, 구약은 메시야를 예언하였고 신약은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강림하셨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구약과 신약의 교리는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2) 묘사된 역사: 구약은 세계 어느 민족의 역사보다도 오래된 역사를 담고 있다.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고고학자인 올브라이트(William F. Albright)는 기록하기를, “히브리 민족의 전승(傳承)은 부족과 가계의 기원을 명확하게 그려주었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 민족의 역사보다도 뛰어나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와 페니키아,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이와 견줄 만한 것을 발견할 수 없다. 독일이나 인도, 혹은 중국에서도 이와 대등한 것은 없다”(아브라함으로부터 에스라까지의 성경 역사, 27). 3) 성경의 생존력: 로마제국시대에 성경을 박멸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다른 고대 문서에 비해 많은 필사본을 가지고 있다. 가령, 신약의 사본은 5,000개 이상 존재하지만, 그 다음으로 많은 사본을 가진 호머의 일리아드(Iliad)는 단지 643개뿐이다. 이는 성경의 진정한 저자이신 성령께서 그것이 보존되도록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교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통로 중 하나인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며, 또한 그것이 잘 보존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셨다.


부가적용)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마 4:4). 이 말씀은 주 예수님께서 신명기 8장 3절에서 인용하신 놀라운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양식을 예비해 두셨다는 것이 이 구절의 주제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양식 이상의 것을 제공하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자주 인용하신 구약성경과, 구약성경에 기록된 많은 약속들의 성취를 담은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완성된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대하게 된다(딤후 3:16; 벧후 1:19-21). 그것은 "주께서 가라사대"와 같은 표현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그러한 책이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안에서, 혹은 자신의 대리인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히 4:12). 그것은 살아 있고 항상 있다(벧전 1:23). 그것의 영화로움이 시편 119편에서 칭송되어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의사소통 통로요, 인간의 소유자와 창조자께서 지으신 교훈 지침서이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모든 날 동안 부지런히 그것을 상고해야만 한다. 다름 아닌 성경 자체가 그러한 한결 같은 주의와 순종을 명하고 있다(신 6:6-9).

목요일(1월 1일)

그리스도를 통하여(요 1:9)


도입)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렇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오셨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신학적 표현은 성육신(Incarnation)이다. Incarnation이란 단어의 의미는 어떤 일을 구상(Concept)해서 현실화(Reality)하는 것이다. 빌딩의 꿈을 꾸다가 실제로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어떤 상대에게 사랑을 품다가 실제로 결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Incarnation이란 영적인 것을 손에 잡히는 실체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오셨다.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 예수, 그분께 있다. 하나님의 때가 차매 예수께서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 아래 나”셨다(갈 4:4). 그분께서는 약 33년간 팔레스틴에서 사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무덤에서 부활하여 당신의 아버지께로 승천하셨다.


1. 다음 성경절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이번 주에 공부한 다른 계시들과 어떻게 구별된다고 말해 줍니까?(요 1:14, 3:16, 14:8~9, 골 2:9, 히 1:1~2)

답:

성경은 천연계보다 월등히 나은 하나님의 계시이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의 직접적인 임재와는 비교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을 우리의 삶에 성취하기 위한 그분의 도구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성경을 단지 하나의 흥미로운 역사책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책의 지속적인 가치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만일 성경이 우리를 예수께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성경 연구는 별 다른 유익을 주지 못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씌어졌다.


2.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이 구절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답: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