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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예언의 은사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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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3.14 19:53 조회수 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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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예언의 은사의 축복

3월 21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45분)


도입)

성경은 하나님의 비밀로 가득 차 있는 인류구원의 책인데, 아직도 다 드러나지 않는 비밀들과 이루어지지 아니한 비밀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그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는 시대시대 마다 이 비밀을 맡은 자들을 세우시고 그 비밀을 알리시고 계시는 것이다. 아모스 선지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아모스3:7)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이 비밀을 맡기시겠는가? 창세기24장에 아브라함은 자기의 집에 늙은 종에게 모든 소유를 맡겼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인, 이삭의 아내 구하는 일을 그 종에게 맡기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바로는 요셉에게 애굽의 총리로 그 모든 나라 일을 맡기었다. 비밀은 절대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면 나누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비밀은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에만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 때의 진리를 깨닫고 그 비밀을 맡은 자 들은 하나님의 신뢰를 받는 자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셨던 비밀이시다. 골로새서에서 이를 말하고 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 비밀이 예수님이 오신 이후 교회와 사도들을 통해 나타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기억절: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연구범위: 출 17:14, 34:27, 레 11:1-8, 신 6:4-7, 사 44:8, 49:6.


학습 포인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하신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건강에 관한 권면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는가?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유익이 되도록 예언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셨는가?


안식일 오후

성경 역사를 살펴보면,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격려하시고 향상시키시며 경고하신 사실을 알 수 있다. 선지자들은 그들의 기별이 아무리 인기가 없고, 아무리 그들의 동기가 오해를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교회에 축복과 유익을 주기 원하는 한 가지 목표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이는 분명히 엘렌 G. 화잇과 그녀의 예언의 은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주에 우리는 예언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몇 가지 축복들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예언의 신의 증언을 통해 허락하신 안내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제칠일 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요일(3월 15일)

선교(신 7:7-8)


도입)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택하시고 이방인을 저주한 다는 것은 성경과는 다른 것이다. 유대인을 택한 것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증인으로 택하신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백성을 다 택한다는 것은 택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유대인만 택하면 이방인과 구별이 있으나 모든 백성을 다 택하면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을 택한 것은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을 증거 하게 하여 믿는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 저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곧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고자 택한 것이다. 즉 선교를 통하여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1.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을 당신의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까?(신 7:7-8, 사 44:8, 49:6)

답: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증인으로 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분의 영광을 만민 앞에 선포하며(사 66:19), 이방의 빛이 되어야만 했다.


2. 예수께서 주신 지상사명은 얼마나 잘 수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마 28:19-20)

답:

그리스도교 역사상 두 번의 위대한 확장의 시기가 있었다. 첫째는 교회가 세워지던 1-2세기였고, 둘째는 선교의 세기로 불리는 19세기였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에 있었던 위대한 부흥에 이어 그리스도교는 유럽과 미국에 성서 공회들과 선교사 협회들을 많이 설립함으로 세계 인구 대비 18퍼센트에 불과하던 그리스도인 비율을 100년 후인 1900년에는 34퍼센트로 끌어 올렸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처음 몇 십 년 동안 북미지역으로 유입되는 이민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그 사명을 다 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1871년에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젊은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른 나라에 사는 이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외국어에 숙달함으로써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엘렌 G. 화잇 자서전, 204)

그러던 중 1874년에 세 천사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는 인상적인 꿈을 꾸었다. “그대들은 이 시대를 위한 사업에 대해 너무 제한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 이 기별은 세계 각처로 강력하게 퍼져 나갈 것인데, 오리건 주로, 유럽으로, 호주로, 대양의 많은 섬들로,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될 것이다”(엘렌 G. 화잇 자서전, 208-209). 같은 해에 앤드루스(J. N. Andrews)는 재림교회의 첫 번째 공식 선교사로 그의 자녀들과 함께 스위스로 떠났고, 3년 뒤에는 매트슨(John G. Matteson) 가족이 스칸디나비아로 보내졌다. 


교훈: 오늘날 제칠일 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세계 229개국 가운데 200개국 이상에서 선교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비전을 주셨기 때문이다.


부가적용)

제 칠일 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몇 가지 특별한 신조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결코 그 자신을 단지 하나의 또 다른 교회, 또 다른 종파로서 여긴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재림교회는 바로 그 시작부터 자신을 예언의 백성이요 세계 역사의 종말의 사건들에서 특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열렬하게 믿어왔다. 1848년과 1850년 사이에 제임스 화잇은 예언의 백성이 되게 하는 세 천사의 기별과 안식일준수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앞장서서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 기별들을 연속적인 것으로 보게 되었는데, 윌리암 밀러는 첫째 기별을 전했고(“그의(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찰스 피치는 하나님의 말씀(성경)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들로부터 분리하라는 부르심을 이끌었다. 화잇은 “둘째 천사의 기별은 우리에게 타락한 교회로부터 이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곳으로 나오도록 부르셨다. 엘렌 화잇은 다시 기록하기를 “우리 재림교회의 과거 경험과 현재의 위치, 그리고 미래의 일은 계시록 14장에 설계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 장을 “예언의 펜이 그것을 기록할 수 있었을 만큼 명백”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해는 화잇과 다른 초기 안식일준수 재림교인들에게 전 세계 선교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흩어짐의 시기가 1844년과 1848년 사이에 일어났다면, 1848년과 1849년은 안식일준수자들이 그들의 특별한 마지막 때 기별을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모이는 시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한 흩어짐의 시기는 이미 과거이며, 이제는 성도들이 한 신앙으로 모아지고, 하나의 거룩하고 연합시키는 진리로 인 처지는 시기가 도래하였다.”고 1849년 11월에 화잇은 기록하였다. 1871년에 세계 선교에 대한 엘렌 화잇의 첫 번째 광범위한 호소에서 그녀는 “희생적인” 재림교인들을 “암흑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기별을 제시하는 일에 “자신들을 전적으로 바치”도록 촉구하였다. 그녀는 셋째 천사의 기별의 전파를 홍수 이전의 사람들에게 대한 노아의 사명과 비교하였다. 그러한 가르침은 다른 교회들에서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고 선지자는 계속하여 말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재림교인들에게 “경고의 기별을 모든 나라에 전파하여 진리의 빛으로 그들을 시험하고.... 남녀들이 빛을 보고 그들의 죄악된 생애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도록” 가르치라는 소명이었다. 이것은 느긋한 임무가 아니었다. 반대로 “우리는 일순간이라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만일 이 문제에 대하여 무관심했었다면 우리의 옷에 영혼들의 피가 묻게 되지 않도록 잃은 시간을 만회하기 위하여 열심을 내야 할 절호의 기회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다른 민족에게까지 확장시키는 선교 사명은 “적지 않은 비용이 들겠지만 비용 때문에 이 사업의 수행이 방해받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월요일(3월 16일)

교육(창 18:19)


도입)

이스라엘의 교육은 300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유대교육의 전통으로 계승되어왔다. 예로부터 배움을 항상 생활의 일부로 여겼고 재산을 모으는 일보다 지혜나 지식을 쌓는 일을 더욱 가치 있고 훌륭한 일로 여겨왔다.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항상 일상 속에서 성경이 함께 있기 때문에 타민족들은 유대민족을 ‘성서의 사람들’ 이라고 불렀다. 독서와 배움은 항상 유대민족들의 생활의 중심이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잠언 22:6)라고 성경 말씀에도 있는 것처럼 유대민족은 일찍이 고대 성경시대 때부터 어린이들의 능력에 맞추어서 그 눈높이로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교육전통을 가져왔다. ‘배운다’는 뜻에서 유래된 《탈무드》는 성경시대 이후부터는 유대이즘의 풍부한 백과사전 역할을 하며 유대교육 전통을 계속 이끌어 주었다. ‘탈무드’는 ‘배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탈무드가 학생, 즉 배움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지만 이제는 독특한 유대교육 방법을 지칭하게 되었다. 《탈무드》는 전체적으로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알고자 하는 바를 재차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져,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역사와 전설을 언급하고 결론을 연역해내도록 서로의 문답으로 진행된다. 《탈무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는 무지를 깨닫는 배움이 기본자세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사물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며 그 의문점에 대하여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얻고자 스스로 관찰하고 따져보아 마침내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야말로 진지한 배움의 자세로 지식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히브리어는 ‘과학’은 ‘왜’라는 말과 관련된 어원을 가지고 있다. 과학의 기본은 호기심과 질문과 그 답을 얻기 위한 탐구 정신에 있기 때문이다.


1.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어떻게 교육을 받았습니까? 다음의 성경절들에서 우리는 교육의 영적인 측면에 관한 어떤 중요한 원리들을 발견하게 됩니까?(창 18:19, 신 6:4-7, 20-25)

답:

히브리의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분의 백성을 위해 행하신 일들에 대해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그들은 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야 하며, 미래를 위한 그분의 약속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배웠다. 그들은 또한 그들 공동체의 훌륭한 일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기술들도 배웠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적이고 신앙적인 지도를 받았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기술도 배웠던 것이다.

재림운동 초창기에 우리의 선구자들은 재림 신자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개별적인 노력을 기울인 경우가 있었으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872년 초에 엘렌 G. 화잇은 적합한 교육의 원칙들에 관한 이상을 받았고, 이 이상에 기초하여 30쪽짜리 교육 원리를 저술하였다. 그 무엇보다도 화잇 여사는, “목회에 입문하려는 자들에게 교육의 일반적인 분야들을 가르칠 수 있으며, 그들이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보다 철저히 배울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하다”(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45-46)고 강조하였다.

1872년 5월에 대총회의 위원회는 미시간 주 배틀크릭에서 교회 자체가 운영하던 교회학교를 대총회가 맡아 운영한다는 안건에 동의하였고, 6월 3일에는 제칠일 안식일예수재림교 첫 번째 공식적인 학교가 문을 열어 12명의 학생을 받게 되었다. 2년 후에는 새롭게 설립된 배틀크릭 대학에 100명의 학생들이 등록하였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6,000개 이상의 재림교회 초, 중, 고등학교들과 대학들이 있으며, 10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교육 받고 있다.


교훈: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에게 특별한 교육 지침을 주셨듯이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를 위해서도 특별한 교육의 비전을 허락하셨다.


부가적용)

가장 장엄하고 축복된 기회의 시대가 지구 역사의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주어졌다. 그들의 생활과 마음은 성령의 역사로 굴복되었으므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빛과 영광의 불꽃에 반사될 영광 즉 그리스도의 품성을 가진 일원이 될 것이다. 완제품을 만들기 위하여 성공을 입증하는 많은 제조공정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현대 제조 용어 중에서,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로 고려되고 있는 것은-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품질관리”를 위한 책임을 진 사람이다. (제조)사업의 생명은 그의 충실함에 크게 좌우된다.

마찬가지로 재림교회 교육 행정자들의 사업은 통제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는 데 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 세상으로부터 출애굽 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준비시켜야 할 책임이 교회에 주어져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충성된 모든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한 저택에 큰 무리의 우주 여행자들을 데리고 갈 것이다.


화요일(3월 17일)

건강(출 15:26)


도입)

건강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 현대의 구약성경 독자는 구약에 몸(body)이라는 단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몸이라는 단어는 영어 성경에 아주 드물게 나온다. 그 단어는 14개 이상의 다른 히브리어의 단어들을 번역하기 위해 흠정역 성경에서 37회만 사용될 뿐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몸을 이루는 구성 물질에 대한 단어를 하나 갖고 있다. 그것은 몸을 구성하는 신체적 물질(예: 육, Flesh) 중 눈에 보이는 부분을 의미하는데 사용되는 단어는 바사르(basar)다. 바사르는, 비록 이것에 대한 적합한 단어가 없기 때문에 그런 단어가 요구될 때(예: 렘 13장, 민 8:7; 욥 4:15; 2잠 4:22) 드물게 이런 의미를 사용되기는 하지만, 하나의 분리된 육체적 실재로서의 몸에 대해 사용되지는 않는다.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몸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 것은 구약에서 건강이 원래 신체적인 맥락에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 성격상 주로 육체적인 현대의 건강 개념과 대조를 이룬다. 이런 관점에서, 만일 우리가 구약의 통찰에 충실하려면, 우리는 단순히 몸의 건강에 대해서가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의 인간의 건강에 대해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의 사상은 무엇보다도 종합적이며, 전체의 서로 다른 부분을 별개의 부분들로 나누기 보다는 그 각각의 부분들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므로 구약은 인간을 하나의 전체로서 생각하고, 인간 내의 분할이나 부분들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전체로 간주되는 한 존재의 서로 다른 부분들만을 인정한다.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건강에 관한 어떤 권면을 주셨습니까?(출 15:26, 레 7:22-26, 11:1-8, 13:46)

답:

수세기 동안 나병과 흑사병은 중세기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성경에서 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었던 사실을 교회 지도자들이 기억하고 그 원리를 나병과 흑사병 희생자들에게 적용했을 때 마침내 이 무서운 전염병은 그쳤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선구자들은 대부분 건강 개혁자들이었다. 1848년까지만 해도 안식일 협회가 개최되었을 때 그들 대부분은 점심식사로 돼지고기를 먹었었다. 엘렌 G. 화잇은 1848년에 받은 이상에서 담배, 홍차, 커피가 해롭다는 것을 지적했으나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엘렌 G. 화잇은 1863년 6월 6일에 건강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상을 보았다. “스스로 건강에 주의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일깨워 주는 것이 우리의 신성한 의무임을 나는 보았다”(가려 뽑은 기별, 3권, 280). 1865년 12월 25일에 건강 협회를 조직해야 한다는 지시가 주어졌고, 이듬해인 1866년 배틀크릭에 서부 건강 개혁 협회를 조직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운영하는 300개 이상의 병원, 의원, 진료소의 초석이 되었다.


2. 엘렌 G. 화잇이 그 당시의 다른 건강 개혁자들의 건강 기별을 모방했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답:

엘렌 G. 화잇의 건강 원칙과 그 당시의 다른 건강 개혁자들의 주장이 크게 달랐다는 사실이 최근에 실시된 그녀의 건강 기별에 관한 연구 결과에서 밝혀졌다. “현대 의학은 화잇 여사의 건강 원리를 높은 비율로 검증해 준 반면, 그녀가 모방했다고 하는 건강 원리에 대해서는 낮은 비율로 증명해 주었다. 이러한 차이는 그녀가 그 당시의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건강 정보를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돈 S. 맥마흔, 선지자와 비평가들, 퍼시픽 출판사, 2005년 87-88)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순종하기만 하면 유익을 얻었을 귀한 건강 기별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남은 교회에도 귀한 건강 기별을 주셨다.


부가적용)

제칠일 안식일교회가 전해야 할 건강기별은 무엇인가? 우리가 전해야 할 건강기별의 진수는 창조주이시다. 건강기별은 창조주께서 주신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건강 기별 속에 창조주를 발견하게 된다면 건강기별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건강기별 속에 나타난 창조주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의 건강기별과 하나님의 건강기별의 차이를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헬라적 건강기별과 히브리적 건강기별은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개념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이들 간의 건강에 대한 개념의 차이는 막대하다. 우리의 건강개념에는 히브리적 사상이 들어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건강기별에는 헬라사상이 들어있다. 헬라사상으로써의 건강기별과 히브리적 사상으로써의 건강기별의 차이는 완연하다. 어떤 면에서? 히브리적 건강기별은 건강이라는 것은 창조주로부터 온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헬라 건강기별은 건강과 기별은 없는 두 다른 분야로 말한다. 목회자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목회자는 영적인 부분을 다루고 의사는 육적인 부분을 다룬다는 생각이 그렇다. 몸을 다루는 의사와 영적인 부분을 다루는 의사가 히브리적건강개념에는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건강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니까..하나님의 말씀 속에 건강이 있으니까...그러므로 제사장이 의사여야 한다는 개념이다. 당시는 의학이 덜 발달되었기 때문이거나 제사장이 교육을 더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헬라적 접근방식이다. 모든 질병은 죄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의사여야 한다. 죄사함과 질병의 치유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 온 것은 신학적 원칙인 질병이 죄의 결과라는 것을 깔아뭉개는 것이다. 교리는 히브리적 교리인데 삶 속의 개념들은 헬라적이기에 우리의 교리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히브리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다르게 볼 수 있다. 이것이 안 나타나는 것이 정체성이 안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범 교단적인 숙제이다. 철저히 순종을 안 해서 정체성이 안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적인 가르침, 기별을 헬라적으로 보고 헬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헬라사고인 건강과 하나님의 무관함이 우리의 기별의 힘을 약화시킨다. 세상 사람은 약을 이야기하고 재림교인은 현미를 이야기하는 차이일 뿐이다.


수요일(3월 18일)

출판(신 6:1-9)


도입)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성경이라는 형태로 존재하게 된 것은 인간의 발상이 아니었다. 최초의 성경인 오경은 성경을 기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한 것이다. 십계명 돌판에 하나님이 친히 쓰신 기록이 성경의 원형이며,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 역사적 배경을 동시에 기록하라고 명령하였다(출 34.27, 민 33.2). 그리하여, 말씀과 상황,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함께 기록되어 성경을 형성하였는데, 이는 컨텍스트 없이 텍스트가 올바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과 상황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이 두 요소가 결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둘이 결합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최초의 사람이었다(출 17:14, 34:27, 신 31:24). 오늘날 성경은 역사상 가장 많이 출판되고,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되었다.


1.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어디에 기록해 두었습니까? 그러한 명령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신 6:1-9, 11:18-20)

답:

중요한 말이나 진술을 집안의 잘 보이는 곳에 새겨두는 것은 고대 중동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관습이었다. 이것은 무슬림 국가들뿐 아니라, 심지어 서방 국가들에서도 그러했으며,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그리고 영국의 섬들에서도 이러한 관습이 유행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집 문설주에 새겨둔 목적은 계속 하나님의 명령을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으로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항상 마음에 둘 수 있었다.


2. 재림교회의 초기 역사에서 출판사업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답:

우리 교회의 출판 사업은 인간의 지혜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1848년에 엘렌 G. 화잇은 매사추세츠의 도체스터에 있는 오티스 니콜스(Otis Nichols)의 집에서 이상을 받고 남편 제임스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작은 간행물을 인쇄하여 백성에게 보내야 합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인쇄할 수 있는 재정을 보내 줄 것이므로 그 일은 처음부터 성공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미미한 시작이 온 세상을 뒤덮을 빛의 흐름으로 발전될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엘렌 G. 화잇의 자서전, 125)

과연 어떻게 ‘온 세상을 뒤덮을 빛의 흐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믿지 않았다. 재림교인들 중에는 부유한 사람들이나 위대한 학자들도 없었다. 하지만 6개월 후에 제임스 화잇은 빚을 내어 8쪽 짜리 소식지 1,000부를 인쇄하였다. 오늘날 재림교회는 50곳 이상의 출판소에서 220개 이상의 언어로 기별들을 인쇄하여 전파하고 있다.


교훈: 오늘날과 같이 재림교회의 출판 사업이 크게 번창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비전을 주시고 그 일을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부가적용)  화잇여사는 출판 사업에 대하여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만일 다른 사업보다 더 중요한사업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출판물을 대중 앞에 가져가서 그들로 하여금 성경을 연구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교회는 문서전도 사업에 그 주의를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 사업의 중요성은 목회사업의 중요성과 전연 동일하다(리뷰앤드헤랄드 1902년10월7일.) 문서전도는 특정한 사람들만 하는 사업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우리가 말로 증거 하거나 외칠 수 없어도 무언의 사자인 서적이 그들에게 전달될 때 성령께서 그들을 말씀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의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출판물들에는 영원하신 분의 도장이 찍혀있다.  그것들은 각처에 배포되어 영혼들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다.”(엘렌G. 화잇자서전 193)고 말씀하셨다.

목요일(3월 19일)

신학(창 1:1-3)


도입)

신학은 신앙이라고 하는 가장 큰 일과 관련된 모든 진리와 법칙을 포함하는 학문 또는 교리이다. 신학은 다른 학문처럼 단지 인간의 자연적 이성을 계발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신학지식을 얻는 데 있어 길잡이를 삼도록 세상에 주신 법칙이며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본질적인 것에 대한 요약한 것이 교리이다. 기독교 신학은 본성의 빛으로 분명히 알 수 없다. 지금 우리의 타락한 상태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어떤 것도 본성의 빛으로는 전혀 알 수 없다. 본성의 빛은 예수님에 대한 어떤 진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자연적(natural) 지식과 영적(spiritual)지식 중에 전자는 신학에 대한 이론적 또는 자연적 지식-머리만의 지식-을 구성하고, 후자는 신학의 영적 또는 실천적 지식-마음과 관련되어, 느끼고 맛보는 것-을 구성한다. 예를 들면 설탕을 보는 것과 맛보는 것과의 차이와 비슷하다. 영적 혹은 실천적 지식을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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