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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과 예언의 은사의 신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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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2.19 10:57 조회수 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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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과  예언의 은사의 신빙성

2월 28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25분)


도입)

예언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몸의 나머지를 세우도록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를 통해 주님으로부터 임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14:3~5) 그러나 예언의 말씀을 받았다 할지라도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은 것은 위험하다. 예언하는 자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 채는 것은 예언사역의 큰 위험이다. 예언의 위험한 가장 함정은 예언의 조작이다. 이것은 교회를 지배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기를 조장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려 한 것이다. 예언의 또 다른 함정은 위장된 예언이다. 하나님이 주신 참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장된 기름부음으로 사탄이 위장하여 예언을 복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의 신빙성과 그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에 대하여 깊이 기도하며 살필 필요가 있다.


기억절: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대하 18:13)


연구범위: 삼하 7:1-7, 왕상 22:10-18, 렘 43:2-4, 단 8:27.


학습 포인트: 성경은 선지자들의 사역의 신빙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만약 성경과 엘렌 G. 화잇의 글이 같은 성령에 의해 영감 받은 것이라면 이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선지자를 전혀 오류가 없는 사람으로 믿는 것에는 어떤 위험이 따르는가? 선지자들도 잘못된 조언을 줄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현대의 성경 비평서들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하게 되는 사실은, 성경에 대하여 퍼부었던 거의 같은 공격이 엘렌 화잇의 글에 대해서도 가해졌다는 것이다. 비평가들은 엘렌 화잇이 다른 자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을 뿐 아니라, 정직하지 못하다고 공격하였다.

그러나 엘렌 화잇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글을 어떻게 그리고 왜 인용했는지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기록을 남겼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이 글을 쓸 때에 인용한 어떤 책을 읽어 보도록 사람들에게 추천하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분명히 그녀가 다른 자료를 사용한 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번 주에 우리는 성경의 기자들과 엘렌 화잇에게 어떻게 영감이 임했는지를 좀 더 자세히 탐구할 것이다.


일요일(2월 22일)

선지자의 신빙성(왕상 22:10-18)


도입)

가끔은 이 세상의 예언자들에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있다. 예언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은 이상한 행동이나 옷, 신기한 환상, 기괴하고 비자연적인 것으로 집행하는 예언자들이다. 이런 예언을 판단하는 말씀을 바울이 하였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14:29) 예언이란 이름하에 말해지고 행해지는 일부 광적인 일들 때문에 신도들은 모든 일들을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언의 가장 위험한 함정은 예언을 남용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비도덕적인 생활과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배우자와 이혼하고 영혼의 짝을 찾아야 한다고 예언하거나 여성들에게 봉사의 행위로 음란에 빠지게 하거나 탐닉하게 하는 것이다. 선지자 발람과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 앞에 올무를 놓아…행음하게”(계2:14)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언하는 것은 예언의 목적과 정반대이며 거짓 예언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질투하거나 분노하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사울은 일시적으로 예언하는 능력을 받아 예언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말년에 다윗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격분하기도 했다.(삼상 18:10~11) 그렇다고 사울이 한 예언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선지자들이라고 그의 인격이나 삶이 언제나 완전하지는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엘리야 자신도 낙망 중에 빠져있었던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요 요나 자신도 인격적으로 불완전한 사람이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전 853년,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아람 군대를 대항해 싸우러 함께 가자고 요청했고, 여호사밧은 동의하였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전장으로 나가기 전에 여호와께 여쭈어 보자고 제안하였다. 여호사밧이 아합의 선지자 400명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자, 여호와의 선지자 미가야가 호출되었다.


1. 열왕기상 22:10-18에 따르면, 아합의 신하는 미가야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며, 그 선지자는 왕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어떤 예언을 하였습니까?

답:

미가야의 기별이 그 왕을 기쁘게 하지 못하자, 왕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왕상 22:27). 아합 왕은 선지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장으로 나갔다가 죽임을 당했고, 무력한 순간에 아합 왕을 도우려 했던 여호사밧 왕도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선지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연약한 순간이 있겠지만, 여기에 나오는 미가야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기로 결심하였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자신의 증언을 바꾸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엘렌 화잇의 생전에 비평가들은 그녀의 사역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그녀의 사후에도 공격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사기, 허위진술,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비난이 생긴 이유는, 선지자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떤 비평가들은, 선지자의 예언은 변경될 수 없고, 그 글에는 전혀 오류와 모순과 실수가 없어야 하며, 영감 받지 않은 자료가 포함되어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선지자는 결코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허버트 E. 더글러스, 주님의 기별자, 퍼시픽 프레스, 1998년, 468). 성경의 선지자들에 대한 연구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주장은 언어 영감설로서 재림교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사상이다.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엘렌 화잇에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교훈: 선지자들은 때때로 인기 없는 기별을 전함으로 고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글은 모든 오류에서 벗어난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부가적용)

“거짓 예언은(false prophesy) 사람들 자신의 영감으로부터 오고, 그들은 실제로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고 단순히 말을 만들어 하는 것이다.(겔 13:1~3) 거짓 예언은 종종 그들 자신의 상상이나(렘23:16~18) 생각에서 꿈꾸어진 말을 전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속 거짓을 말할 때가 있다.(렘23:26) 이러한 사람들은 뿌리까지 근절하여 바르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이 일하는 영역을 잘라 버려야만 한다.” 서투른 예언은(poor prophesy) 종종 무경험과 체크하지 않고 정정하지 않은 미약한 연습에서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모든 예언은 바르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올바른 예언도 거짓 예언을 다루듯 취급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거짓 예언도 그 진위를 가려 분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된 예언을 경청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매우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월요일(2월 23일)

기별의 신빙성(렘 43:2-4)


도입)

기별의 신빙성을 분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는 성경지식이다. 말씀에 기인하지 않은 힘을 파하여야 한다. 우리는 종종 거짓된 말이 영적인 힘을 갖는 것을 본다. 그 상황과 성경 말씀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께서 주시는 분별력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 지식은 있으나 하나님의 임재함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서 거짓과 참된 영분별을 구해야 한다. 둘째는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하여 응답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 이것이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보여 주시옵소서.”하면 주께서 주시는 응답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분별되어 사용하는 예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크나큰 유익이 된다. “예언을 멸시치 말며”(살전5:20),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하려고 하라”(고전14:1, 5, 39)고 하셨기 때문이다.


주전 586년,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지 몇 달 되지 않아서 느부갓네살에 의해 총독으로 임명된 그다랴가 살해되었다.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지도자들과 백성은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피난처를 찾아 애굽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하였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그들의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1. 예레미야의 기별은 무엇이었으며, 백성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예레미야가 준 경고가 누구에게서 왔다고 주장했습니까?(렘 43:2-4)

답: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지시를 싫어하여 예레미야의 기별이 하나님이 아닌 그의 서기관 바룩에게서 왔다고 주장했다.

흥미롭게도 수천 년 후에 엘렌 화잇도 예레미야처럼 조력자를 사용한 것과 그녀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한 것에 대해 표절(剽竊)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각 시대의 대쟁투(The Great Controversy) 서문에서 다른 사람의 책을 인용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어떤 역사가가 주제의 총괄적 견해를 간단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사건들을 분류하거나 편의상 세부(細部)들을 요약했을 경우에 그 역사가의 말을 인용하였다. … 또한 우리 시대에 종교 개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견해를 기술함에 있어서도 그들이 출판한 저서에 대하여 그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였다.”(각 시대의 대쟁투, 12)

1981년에 대총회는 비재림교인인 저작권 전문 변호사에게 이 문제를 연구하도록 의뢰하였다. 3,000시간 이상의 조사가 실시된 후에 이런 결론이 내려졌다. “엘렌 화잇은 표절을 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저작은 저작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애드벤티스트 리뷰, 1981년 9월 17일자). 그 이유는 첫째, 엘렌 화잇이 사용한 책들은 저작권이 걸린 책들이 아니며; 둘째, 설령 저작권의 제한이 있는 경우라도 그녀는 단 하나의 문장도 저작권에 위배되게 인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훈: 하나님의 기별을 거부하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기별의 기원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다. 엘렌 화잇은 정당한 방법으로 자료들을 인용하였다.


부가적용)

1827년 11월 26일에 미국 메인(Maine)주 골햄(Gorham)에서 태어나 87세 되던 1915년 7월 15일에 서거하였다. 그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빛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2,000여 회의 계시를 받았고 4,600개 이상 되는 기사들과 10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가 보낸 편지만 해도 무려 5,500통에 이른다. 이렇듯 방대한 자료의 저술가요, 교육가요, 영적 지도자인 그의 영향은 오늘날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이 미치고 있다. 화잇 여사는 본 교단에서 한 번도 공식적인 교회 직임을 맡은 일이 없었지만 70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들을 그의 백성들을 위해 충실하게 전하고 1915년 7월 15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사랑과 경고의 기별은 더 이상 발해지지 않고 그칠 줄 모르던 펜은 거두어졌지만 그녀의 영감적인 글들은 오늘도 하늘을 향해가는 우리들의 길을 안전하게 인도하고 있다. 그녀가 전한 기별에서 다른 사람의 기록이 인용되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그녀가 그것을 인용하여 자기의 기별로 취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기별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을 확인시키고 다시 한 번 그 기별을 강조하고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서이다. 당시에는 남의 글을 인용하는 표기법조차 없었던 시대에 그녀가 의도적으로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의 기별을 자기의 것인양 도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미 주어진 그 기별을 통해서 더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끄는 역할로 다른 기록들을 사용한 예는 있다. 그녀의 모든 기록이 다른 사람의 기록의 도용이 아닌 인용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가 이미 주어진 성경의 말씀을 인용해 기별을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화요일(2월 24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렘 1:4)


도입)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주도록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말을 통해서 모인 사람들과 소그룹, 또는 개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별한 능력이다.” 사도 바울은 예언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였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14:1)”, “예언하기를 사모하며(고전14:39)” 구약 시대의 예언은 주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던  매우 보편적인 것이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권위로 말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고 선포할 수 있었다. 그들의 예언들은 때로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이상과 특별한 계시였다. 신약에서는 침례 요한과 예수님 자신이 선지자의 사역을 하였다. 예수님의 예언에는 권위가 뒤따랐다.(마7:28) 신약 교회에서는 성령 강림과 더불어 예언의 은사가 계속 되었고,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말씀을 들어 확증하였다.(행2:16~18)


1. 선지자들은 종종 그들의 기별이 누구에게서 왔다고 말했습니까?(렘 1:4, 겔 7:1, 호 1:1). 이 사실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답:

선지자들은 반복해서 그들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시사했다. 그들의 역할은 지상 통치자에 의해 보냄을 받은 대사(大使)나, 개인이나 기관의 대변자로 위임된 사람과 흡사하다 하겠다. 그러한 자격을 가지고 그들은 주어진 지시를 철저히 따라야 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는 표현은 (a) 그들의 기별이 하나님의 권위를 가졌다는 것과, (b)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았다는 것과, (c) 그 기별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으며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호와께서 사라사대”라는 표현은 구약에만 400번 이상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강력히 증언해 준다. 선지자의 임무는 그 기별을 백성에게로 가져가서 그 백성이 처한 상황에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엘렌 화잇은 성경의 영감에 대해 아주 많이 강조했다. “나는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 받아들인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7).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글에 대해서도 거룩한 영감을 주장하였다. “내가 쓰는 편지들과 증언들 가운데 주님께서 나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것을 그대들에게 증거하고 있다. … 내가 쓴 서신과 증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시를 통해 보여주신 것으로 이 계시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고귀한 광선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9)

엘렌 화잇은 자신의 글을 가리켜, 남녀들을 더 큰 빛인 성경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이라고 불렀다. 둘 다 빛이지만 그 역할은 다르다. (1) 성경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기별이다. 엘렌 화잇의 글은 특정한 시대 곧 마지막 시대의 특정한 백성 곧 남은 교회를 위한 기별이다. (2) 그녀의 글은 교리에 새롭게 추가된 표준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교회를 돕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녀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성경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며, 결코 성경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교훈: 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기별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했듯이, 엘렌 화잇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별을 여러 매체를 통해 백성에게 전달하였다.


부가적용)

화잇 여사는 언제나 성경을 영감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높였으며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표준이 됨을 명백히 했다. 그녀가 받은 계시나 글들은 단지 성경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작은 빛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받은 계시의 기별들, 즉 교육, 건강, 그리스도인 신앙, 성경 연구, 및 예언에 관한 기별대로 생애 하였으며, 끊임없이 저술하고 가르치고 전도하였다. 화잇 여사의 영감의 글들은 책과 소책자의 형태로 24권이 생전에 출판되었고, 여사가 작고한 후에도 100여 권의 책들이 편집되어 1990년대까지는 128권의 책들이 그녀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그 중에서도 “정로의 계단”은 146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복음의 진수를 전했다. 이러한 그의 저술들은 계속하여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예언의 선물이 되고 있다.


수요일(2월 25일)

지식 안에서 자라감(단 8:27)


도입)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빛으로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모든 곳을 밝힌다. 그리스도인이 존재하는 곳에 밝아짐이 없는 것은 그리스도인 안에 하나님의 빛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 안에서 행하지만, 하나님은 빛 안에 계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빛이시기 때문이다. “빛은 하나의 요소이며, 하나님은 그 안에 거하신다. 그분께서 빛 안에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다만 하나님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의 본질적인 요소가 영원한 존재이신 빛이신 하나님의 본질적인 요소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방이 아니라 바로 그 생명의 분위기가 일치하고 동일한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회심하는 순간에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히려 사람이 자신을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바칠 때, 그는 완전히 새로운 생명,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롬 6:4).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삶에는 그 중심의 영적 성장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냥 멈추어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더 많이 반영하면서 언제나 변화의 과정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체적인 성장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그리고 왜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하는지(벧후 3:18)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빛을 한꺼번에 받지 않았다. 그들이 주님의 종으로서 신실하게 봉사함에 따라 그들은 더 많은 빛을 받았으며, 지식 안에서 자라가게 되었다.


1. 다음 구절들은 선지자들의 영적인 성장의 경험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단 8:27, 9:2, 갈 2:11-16, 벧전 1:10)

답:

성경 시대에 예언의 은사를 소유했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나 다른 문제에 관하여 완전한 지식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증가된 빛을 받아 그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였다. 다니엘의 경우처럼(단 9:2), 선지자들은 또한 성경을 연구해야만 했다. 다니엘 8:27에는,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고 하였다. 약 10년 후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와서 전체적인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단 9:20-23)

선지자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만 알 수 있었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하도록 허락받았다. 대개 한 선지자에게 주어진 기별은 다른 선지자들에게 주어진 기별을 보완해 주었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온 기별에 대해 균형지고 포괄적인 이해를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계시를 연구하고 비교할 필요가 있었다.

엘렌 화잇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60년 동안 나는 하늘 사자들과 교제해 왔으며 계속하여 거룩한 사물에 대하여 배워 왔고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그들의 잘못된 길에서부터 하나님의 빛 안의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배워 왔다.”(가려 뽑은 기별, 3권, 71)

엘렌 G. 화잇의 초기 기록과 후기 저술들을 비교해 보면 수정되거나 확대된 경우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기별 안에서 더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녀는 조직신학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별자였다. 그녀의 신학적 이해는 성경에 기초했을 뿐 아니라, 수년에 걸쳐 성경 외의 글들을 함께 연구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자라나게 된 것이다.


교훈: 선지자들은 모든 빛을 한꺼번에 받지 아니하고 점진적으로 받았다. 엘렌 G. 화잇 또한 영적 및 신학적으로 점차 장성해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부가적용)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속사람이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후 4장16절) 왜냐하면 우리는 지상에 있는 동안 "부분적으로만" 알기 때문이다.(고전 13장12절)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감에 따라" 남아 있는 어두움이 점차 제거되기 때문이다.(베드로후서3장18절) 비록 선지자라 할지라도 모든 빛을 한꺼번에 받지 않았고 점진적으로 받았다. 다니엘 역시 계시를 받았지만 그 계시를 이해하는 데는 여러 날이 걸려야 했다. 엘렌지 화잇도 그의 영적인 경험에 있어 초창기의 신앙생활에서 보여주었던 신앙의 자세와 다르게 세월이 깊어질수록 그의 경험도 깊어졌던 것을 볼 수 있고 기별 역시 깊어졌던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 땅에서는 모두가 다 장성해 가는 과정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엘렌 G. 화잇의 선지자로서의 초장기의 글을 읽어보면 그 글이 경직되어 있고 딱딱하며 율법주의적이고 아주 엄격한 어조가 물씬 풍기고 있다. 자신의 아들을 향하여 죄를 책망하는 글을 보면 매우 신랄하고 날카로웠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에 자신의 자녀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자상한 사랑과 깊은 은혜를 보여주며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전하고자 힘썼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의 글을 통해 그녀의 영적 그리고 신학적인 관점이 점차 장성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영적 체험은 성장해 가고 선지자 역시 자신의 삶의 끊임없는 성장을 이룩해 가는 것이다.


목요일(2월 26일)

선지자들이 과오를 범할 때(삼하 7:1-7)


도입)

성경에 등장하는 출중한 인물들, 소위 우리 믿음의 모범이 되는 영적 지도자들이 있다.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대략 들어보자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갈렙, 사무엘, 다윗, 솔로몬, 그 외 여러 선지자들...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구약 성경을 보면 저들 여러 유명 인물들의 삶이 상세히 소개되기도 하는데 성령께서 그들을 등장시켜 성경 말씀이 되게 하신 이유는 그들 개개인의 믿음과 인격이 남보다 뛰어났기에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본받으라는 의도가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은 비록 그가 선택을 받은 자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대로 그들의 삶을 모방해야 할 본보기로 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주님의 삶만이 그 전체로 우리의 본보기가 될 뿐이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그들의 삶을 통하여 한 영혼이 단계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배워야 하는 것이지 이 땅에 실존하던 어느 특정 인물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배우려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 표현된 각 인물들의 생애가 그 실존 인물의 인격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은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그러하다. 비록 선지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 개개인의 삶을 우리가 따라 살아야 하는 모델로 보아서는 아니 되고 거기서 주님과 교회, 그리고 한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원리를 찾아야 한다. 성경은 하늘에 있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들에게 친근한 이 세상 안에 있는 것들을 도구로 동원하였기에 우리는 이 세상 안의 표현들을 통해 하늘의 참 형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1. 사무엘하 7:1-7에는 나단이 다윗에게 어떤 잘못된 조언을 준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이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대상 22:8)

답:

선지자 나단은 사려 깊고 지혜로우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선지자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영감 받은 것은 아니다. 나단이 다윗의 계획을 찬성한 것은 왕의 친구로서 한 말이며, 선지자의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구적인 처소를 짓는 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의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밤의 이상 가운데(삼하 7:4-17) 나단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다윗에게 했던 말이 잘못되었으므로 가서 그렇게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엘렌 화잇은 과오가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자신도 그렇게 주장한 적이 없다. 그녀는 어떤 문제에 관해 생각이 바뀐 경우도 있었으며, 끊임없이 더 많은 빛을 받기 위해 마음을 열어 놓았었다.

한 예를 들면, 남부에 있는 출판소가 경영이 어려워졌을 때 엘렌 화잇은 그 출판소를 리뷰 앤드 헤럴드에 귀속시키는 것을 지지하고 “그렇게 하라”(미간행 원고, 17권, 270)고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24시간이 못되어 정반대의 이상을 받았다. “남부 지역에도 책을 발행할 수 있는 건물이 있어야 한다”고 그녀는 대총회에 말하였다.(아서 L. 화잇, 엘렌 G. 화잇: 엠스헤이븐에서의 초기의 생애,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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