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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죄(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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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4.30 13:20 조회수 4,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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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월 9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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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

 

연구범위: 사 14:12-14, 마 23:23, 25:45, 빌 2:6-8, 히 1:1-5, 계5:9-12.

 

중심 사상: 죄와 그 결과는 인간의 삶에 부인할 수 없는 고통스런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위해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신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안식일 오후

세상만사가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던 이전 세대의 낙천주의는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되었다. 냉전 이후에 세계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하고 있다. 테러의 위협은 우리 모두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으며,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주리라고 기대했던 과학은 황폐화될 세상을 우리에게 예견해 주고 있다. 에너지원은 고갈되어 가고 있으며, 만년설은 녹아내리고 있다. 도처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삶의 슬픈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지난 세기들 동안 인류는 도덕적 향상의 징후를 거의 보지 못했다.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화되고 있으며, 흉악하고 퇴폐적인 소식은 매일 뉴스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누군가 말했듯이,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교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가르침이 되고 말았다.

비록 죄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다. 아무리 죄가 세상에 팽배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풍성하기 때문이다.

 

핵심본문: 롬 5:18

 

<학습 목표>

깨닫기: 죄는 우리의 본성 속에 내재하고 있는 고통스런 실체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죄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한다.

행하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신 거룩한 은혜를 받아들인다.

 

< 교과 개요 >

I. 죄의 실체(롬 7:21-24)

A. 세상에 편만한 죄는 우리 본성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날마다 죄로 기우는 성향을 피하고 그리스도를 반사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그러한 성향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B. 죄에 빠져들기는 너무나 쉽다. 성경은 불법, 반역, 생각의 죄, 태만의 죄 등 여러 종류의 죄를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죄의 위험성을 인식해야만 한다.

 

II. 죄로부터의 자유(행 4:12)

A. 한 사람의 행동으로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듯이, 하나님께서는 한 분 곧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피할 길을 제공해 주셨다. 왜 예수님 외에는 죄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없는가?

B. 죄로부터의 자유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매일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III. 그리스도 안에서 피난처를 발견함(요 3:16)

A.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그분의 품성을 드러내 준다. 그분의 거룩한 사랑과 무한한 은혜는 그분의 행위 속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더욱 충만히 받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요점: 죄에 눌린 무서운 세상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로써 예수님을 통하여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다. 이 선물을 받아들이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자.

 

일요일(5월 3일) 죄는 반역임(요일 3:4)

 

죄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경은 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요한일서 3:4은,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깨뜨린 다른 어떤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가리킨다. 인간은 조물주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에 겸손히 굴복하고 신뢰하는 대신, 주제넘게도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1. 다음 구절들은 죄의 본질에 관해 무엇을 밝혀줍니까?(창 3:1-7, 사 14:12-14, 계 12:7-9)

창3:1-7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사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계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답: 하늘에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일으킨 루시퍼는 땅으로 쫓겨나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죄에 빠지게 했다. 본질적으로 죄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교만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왜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문제를 가지고 아담과 하와에게 벌을 내리셨는가?'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중요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 포함되어 있었다. “과일 그 자체에는 아무런 독소가 없었다. 죄는 식욕의 방종 때문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시조를 죄인으로 만들고 이 세상에 악에 관한 지식을 가져 온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심, 그분의 말씀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분의 권위에 대한 도전 때문이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모든 종류의 거짓과 오류의 문이 열린 것이다.”(교육, 25)

 

2.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주요한 특징은 무엇이며, 여기서 순종의 문제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까?(계 14:12)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구원받은 성도는 자원하여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으로써 행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셨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는 그분께 사랑과 순종을 바친다. 세상은 불법으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상황과 기호에 따라 선과 악을 분별하는 상대주의적 사고가 팽배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거룩한 표준인 십계명을 담대히 옹호해야 한다.

 

죄가 발생하게 된 원인

“죄의 발생은 이해하기 어렵고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 뿌리는 루시퍼의 교만에서 찾아낼 수 있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겔 28:17). 루시퍼는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신 높은 지위에 만족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는 이기심을 품고 하나님과 동등하기를 몹시 탐하였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3, 14). 그러나 정작 그가 갈망한 것은 하나님의 지위였지 그분의 품성은 아니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138)

 

 

<부가설명> 죄 문제를 바르게 이해해야 하는데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죄를 설명하려고 하면 곧장 죄를 옹호하게 된다고 대쟁투에 기록되어 있다. “죄는 오묘한 것이며,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그것을 옹호하는 것이다. 만일 죄의 원인과 그 존재 이유를 밝힐 수 있으면 죄는 죄가 될 수 없다.”(쟁투 492). 이 말씀에 위하면 죄에 대하여 깊이 연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죄의 근본적인 원인과 존재 이유는 현재로서는 밝히 알 수 없다고 해도 성경 여기 저기 나타난 계시를 종합하여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하는 것은 성경적인 사상일 것이다. 위에 인용한 교육에 있는 말씀이나, 본 교회 교리에 있는 말씀은 이미 있게 된 죄를 도덕적 관점에서 설명한 것처럼 보인다.

도덕적 관점으로 설명하면 이런 설명이 되지만 과연 그렇구나! 라고 마음이 시원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천사의 마음에 왜 불신과 의심이 생기게 되었을까?

성경이 말하는 죄 문제는 이런 심리적 도덕적 실마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존재성과 기타 피조물의 피조성에서 찾는 것이 합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성경이 계시하는 근본적인 죄 문제는 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생각된다. 즉 어떤 자가 여호와라 이름 하신 하나님의 창조와 상관없이도 존재하고 존속한다는 것으로 피조물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만 존재하게 하셨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시90:1).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7).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만유이시다. 물론 성령도 그렇다고 믿는다. 그도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만유이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6).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3:11). 그러므로 어떤 피조물도 창조주 안에서 나가면 그 존재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루시퍼는 스스로 창조주를 떠났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6). 루시퍼와 함께 한 천사들이 다 자기 처소를 떠났다. 즉 창조주가 있게 한 장소를 떠난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는 말씀은 사람은 물론 천사와 모든 피조물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6). 사람뿐만 아니라 천사도 마찬가지이다. 루시퍼가 그리스도를 떠나서 밖으로 나간 것이다. 그것이 죄이다. 그래서 그는 그 존재를 잃게 된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2:14). 마귀 곧 루시퍼와 그의 부하들은 마침내 없어진다. 창조주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모든 이성적인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천사는 사람보다 조금 낫게 창조 되었으니(시8:5), 사람보다 더 이성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성적인 피조물들에게는 창조해 주신 사실 안에서 자유를 주셨다. 이런 사실로 루시퍼는 외형상 자기와 같아 보이는 그리스도가 여호와 회의에 참석하는데 외형상으로 그분과 같은 루시퍼 자신은 왜 그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외형이 같다 해도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고, 루시퍼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이신 여호와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 여호와 회의에는 오직 여호와이신 분만이 참석하는 것이다(렘23:18). 그런데 루시퍼가 그 회의에 참석하려고 시도한 것이다(사14:12-14). 그도 계명성이라는 이름이 있고(사14:12), 그리스도도 새벽별이라는 이름이 있다(계22:16). 그러므로 외형상 완전히 동등해 보인 것이 루시퍼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가 아닐까? 그래서 성경은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겔28:17)라고 계시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권고를 받았다. 여호와께서는 루시퍼에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셨다(대쟁투 제29장 죄의 시작을 참고하라). 그래도 그는 마침내 집회의 산에 올라 지극히 높으신 자와 비기리라고 주장하여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를 들어올 수 없다고 제재했을 것이고 마침내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루시퍼가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이야말로 엄청난 불법이었다. 그래서 창조주가 존재하도록 하신 그 자리를 완전히 떠났고 그는 영원히 없어지게 되었다. 그것이 사망이며 그것이 죄의 본질이다.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가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는 여호와를 떠난 자들이며 그들은 그 존재를 상실하게 되고 생명을 잃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한 자들은 여호와께서 창조해 주신 그 존재를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들의 주장이 증명된다. 그러나 창조주가 창조해주신 존재를 반납하면 그들은 없어진다. 그래서 루시퍼는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가 되고, 사람들은 사망이 되어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자가 되고 그와 함께 사람에게 주신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이 되었다(롬8:21). 생명이 있다가 생명을 잃은 것들은 곧 썩게 된다. 이 세상에서 이 썩는 현상이 바로 도덕적 죄들이다.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성경에는 죄(하마르티아=單數)와 죄들(하마르티아이=複數)이 있다. 죄들은 죄의 열매이다. 죄는 창조주를 떠나 사망한 상태이고, 죄들은 이 사망한 것의 썩는 현상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4:22), 유혹의 욕심, 곧 마귀가 여자를 유혹하여 떨어진 그 상태에 있는 자는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들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다(고전15:22). 인류는 이미 아담 안에서 다 죽은 자들이며 그래서 죄인이고 당연히 썩는다. 그 배후에 썩어짐의 총사령관 루시퍼가 있다. 이 모두는 그날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 때에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은 사람만 영생하는 생명으로 존재할 것이다. 루시퍼와 그에게 동조한 천사들에게는 은혜의 기간이 벌써 지나갔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돌아올 수 있는 지점을 지나갔다. 그래서 지금 최후의 발악을 하지만 자기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고 있다(계12:12). 성경에 나타난 사실을 자세히 설명을 해야 하겠는데, 지면 관계로 간단히 죄가 무엇인지 설명해 보았다. 더 자세한 것을 알기 원하면 졸저 “죄, 예수, 그리고 구원”과 “숨 쉬는 것은 썩지 않는다”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교훈: 죄는 불법이며,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불법이 성행할 것이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을 옹호하기 위해 담대히 일어서야 한다.

 

월요일(5월 4일) 표적에서 빗나감(롬 8:6)

 

죄의 심각성이 간과될 때가 종종 있다. "어차피 우리는 완전할 수 없잖아?"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죄는 심각한 것이다.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가 얼마나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때에만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존 맥퀘리, 크리스천 신학의 원칙들, SCM 출판사, 1966년, 238)

죄는 단지 그릇된 행동을 저지르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열망하거나 상상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마 5:28).

 

1. 지난 24시간 동안 무엇에 대하여 공상(空想)에 잠겼습니까? 만일 그 생각이 공개된다면 부끄럽지는 않을까요? 내가 공상했던 내용은 내 마음이 어디에 있었음을 말해 줍니까?(참조 롬 8:6)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답: 공개되면 부끄러운 생각을 많이 한다. 그것은 육의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롬8:13).

 

죄의 종류 가운데 '태만의 죄'로 불리는 것이 있다. 이것은 고의로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을 말하는데,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알면서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2. 마태복음 23:23과 25:45에 예수께서도 태만의 죄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문맥을 고려하면서 이 구절들을 읽어 보십시오. 이 말씀 속에 내포된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답: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는 '태만의 죄'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도 성실해야 한다.

 

3.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에서 달란트를 감추어두었던 종은 어떻게 태만의 죄를 범하였습니까?

마25:24-30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답: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음으로 '태만의 죄'를 범한 종에게 주인은 다음과 같은 책망의 말을 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마 25:26-27)

우리 모두는 달란트를 받았다. 그리고 그 달란트를 최대한 지혜롭게 활용해야 할 청지기 직분을 받았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일을 이행하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는 답변해야 한다. 사도 베드로가 한 다음의 말을 기억하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표적에서 빗나간 일들이 기록됨

“각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심사되어 성실한 것과 불성실한 것들이 기록된다. 하늘의 책들에는 각 사람의 이름 아래 온갖 악한 말, 모든 이기적 행위, 온갖 의무 태만, 모든 은밀한 죄, 모든 기만 등이 무섭게도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경고와 견책을 등한히 한 것, 시간을 낭비한 것, 기회를 놓친 것, 선악간의 감화와 그 결과가 멀리까지 미친 일이 모두 기록하는 천사에 의하여 기록되어 진다.”(각 시대의 대쟁투, 481)

 

<부가설명> 죄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타아”이고 헬라어는 “하마르티아”이다. 두 말이 동일하게 “과녁을 빗나간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사나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하셔서 하나님이 있게 한 그 자리에 그냥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과 평화 중에 살기를 목표하셨다. 그것이 과녁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래서 과녁 곧 목표를 빗나간 것이다. 그것이 불법이다. 이렇게 빗나간 화살은 아무데나 꽂힌다. 이렇게 제멋대로 꽂히는 것이 바로 도덕적인 죄들이 된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이미 목표를 빗나가서 아담 안에서 생명에서 사망으로 옮겼다(고전15:22). 그들은 썩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도덕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썩는 냄새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은 썩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주지는 못한다. 모든 도덕론적인 종교나 세상의 도덕 윤리 교육과 훈련은 이 썩어져가는 사망이 된 인생을 더디 썩도록, 썩는 냄새가 덜 나도록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아담 안에서 죽어 썩으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이 시체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요5:24).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썩지 않는 사람들이 된 사람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나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며, 죄를 지을 수 없다는(요일3:9) 말씀의 뜻이다. 그들은 생명을 얻었고 더욱 풍성하게 되기 때문이다(요10:10).우리는 단수 죄와 복수 죄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교훈: 죄는 표적에서 빗나간 것을 말한다. 죄의 결과는 참으로 심각하다. 그 중에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한 '태만의 죄' 또한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야 한다.

 

화요일(5월 5일) "원죄"(롬 5:12)

 

신학자들은 우리가 범하는 '죄의 행동'과 우리가 지닌 '죄의 본성'을 구분하곤 한다. 우리 모두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부패했으며, 심지어 죄를 짓기 전에도 죄인으로 간주된다. 유아세례는 이러한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갓 태어난 아이가 세례를 받지 않고 죽으면 그 아이는 죄인이기 때문에 영원히 잃어버린바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전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며, 죽은 그 아이가 멸망 받는다는 개념 또한 성경과 맞지 않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지은 '최초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죄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죄를 짓게 되었다.(롬 5:12)

 

1.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가 선천적으로 죄로 기우는 성향이 있음을 어떻게 묘사했습니까? 이러한 성향을 자신의 삶에서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롬 7:21-24, 8:7-8)

롬7:21-24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답: 사람은 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사망의 주장 아래 있다. 그래서 썩는다. 이것을 교과 저자는 선천적으로 죄로 기우는 성향이라고 표현하였다. 죽은 자는 썩는다. 죽은 자는 죽은 행실을 한다(히6:1). 그것이 바로 썩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완전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완전을 주장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말한다. 바울은 시편 106:6을 인용하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진술하였다. 사도 요한도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요일 1:8)고 강력히 주장한다.

“성화는 한 순간이나 한 시간 혹은 하루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은혜 가운데서 계속 자라나는 과정이다. 우리는 다음 날의 투쟁이 얼마나 강할 것인지 모른다. 사단은 살아있고, 활동적으로 일한다. 우리는 그를 저항할 힘을 얻고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열렬히 부르짖을 필요가 있다. 사단이 통치하고 있는 한 우리에게는 굴복시켜야 할 자아가 있고, 극복해야 할 '빠지기 쉬운 죄'가 있을 것이며 정지할 곳은 없다. '이제 우리는 다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없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47)

 

<부가설명> 재림교회는 일반적인 의미로 원죄를 주장하지 않는 것 같다. 죄의 영향을 받아서 죄성을 가졌지만 그것이 죄인이 되게 하지 않으며 그가 죄를 행동으로 지을 때 죄인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 교과의 저자도 어렴풋이 그런 사상을 풍긴다. 오늘(火)의 공부의 시작하는 설명이 바로 그런 사상을 풍기는 말이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지은 '최초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죄가 되는지는 해석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사실을 그대로 정확하게 읽을 때에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성경 말씀 자체가 아니라 신학에 물들어서 성경의 기록을 해석하여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성경은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롬5:12)라고 말한다. “죄를 지었으므로”는 직설 과거형이다. 이미 과거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같은 말은 롬3:23에도 나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말은 5:12의 말씀과 꼭 같은 표현이고 직설 과거형이다. 그러므로 이미 과거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모든 사람이” 누구인가? 바울이 편지를 쓸 때 세상에 살고 있던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아담부터 바울이 살고 있을 때까지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아담의 후손으로 이 세상 마지막에 태어날 사람까지 가리키는 것일까?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세상 마지막에 태어날 사람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일 태어날 아이도 이미 죄를 지었다. 어떻게?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 어떻게 그가 아담 안에서 죄를 지을 수 있는가? 도덕적 율법적으로 말하면 말도 안 된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생명과 존재에 근거를 두고 계시한 것이다. 그 아이도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난, 곧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자로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는 본질이 사망이기 때문에 썩는 것이다. 이것을 영향이라는 말로 표현할 것인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아담 안에서 죽은 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지, 만일 아담 안에서 죽은 자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는 이미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인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는 한 이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날 길이 없다. 성경이 계시하는 근본적인 죄는 아담 안에서 죽은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마8:22)고 하셨다. 또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5)고 하셨다. 구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생명에서 사망으로 옮긴 상태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모신 사람들은 생명이 있는 자이지만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는 자이다(요일5:11,12). 즉 죽은 자 시체라는 말이다. 시체는 썩는 것이 당연하지만 생명이 있는 자는 결코 썩을 수 없다. 재림성도들은 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는 죄로 기우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결코 완전함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죄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수요일(5월 6일) 집단적인 죄와 개인적인 죄(전 9:10)

 

인류가 타락한 이래, 세상은 죄로 더럽혀졌다. 죄의 결과는 천연계에도 나타나 있으며 전쟁, 노예제도의 해악, 여러 형태의 착취, 천연 자원의 남용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세상은 모두 물질주의와 자아중심주의, 부정과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우리는 개인적으로 아무 책임이 없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만연한 죄악의 상태에 대해 떳떳한가? 다음 내용들을 숙고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얻기 바란다.

1.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집단적인 죄악은 대쟁투를 배경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기억하라. "나라들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이권에 따른 상호작용은 하나님과 그분의 충성된 천사들이 사단과 타락한 천사들과 벌이는 보이지 않는 싸움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모든 인간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라울 데더린 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학 핸드북, 리뷰 앤드 헤럴드, 2000년, 995)

2. 죄는 철저히 파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라. 죄는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파괴해 버리려고 한다. 죄와 죽음은 동의어로서 어디든지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개입이 없다면 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 왜냐하면 죄와 죽음의 세력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이다.

3. 한편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비록 작을지라도 이 세상의 악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작은 결정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평화와 정의를 위해 일할 수 있다. 우리는 동정심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환경을 보호하는 사람들과 협력하기로 결심할 수 있다.

 

1. 다음 구절들은 우리의 바른 선택과 작은 실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전 9:10, 눅 16:10, 빌 4:8-9)

전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빌4:8,9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답: 우리는 매사에 성실함을 나타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주께 하듯 해야 한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작은 사랑의 실천

“사람들은 신자들의 생애와 행동이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있는지 보기 위하여 주시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일을 겸손하고 열렬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리가 들어간 모든 마을과 도시에서 진리를 알려 주는 감화를 끼치게 될 것이다. 만일,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이런 일을 하고 그들이 거주하는 이웃에서 작은 사랑의 행동을 날마다 실천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이웃에 드러날 것이다.”(증언보감, 2권, 501)

 

<부가설명> 사람이 참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의 삶을 주장하게 된다. 바울은 이것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고 고백하였다. 그것이 바로 사랑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들인데(요5:24), 이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활하는 것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교과 저자가 위에 열거한 모든 것들, 집단적인 죄나 개인적인 죄는 다 도덕적 윤리적인 것들로 사망이 된 존재들의 썩는 모습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생명강물을 마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훈: 이 세상에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죄악들이 많이 일어난다. 우리 개인들은 비록 미약하지만 악을 감소시키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목요일(5월 7일) 죄 문제에 대한 유일의 해결책(요 10:7)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란 없다. 죄는 인간의 결심이나 인내심으로 이겨낼 수 없다. 우리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죄는 사망이기 때문에 죽은 자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특히 생명을 스스로 얻을 수 없다. 부가설명). 그러므로 해결책은 우리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구원의 문제에 관해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이르는 여러 가지의 길이 있다고 주장한다. 길은 비록 다를지라도 같은 목적지에 이를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옳지 않다. (이런 주장 들은 죄를 도덕론적으로 이해할 때 생긴다. 죄가 사망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없다. 생명은 생명이신 분에게서만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1.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 오직 하나 뿐임을 얼마나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까?(요 10:7, 14:6, 행 4:12)

요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답: 예수님을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이 없으며,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고 확고하게 계시한다.

우리는 누가 하늘 왕국의 문을 통과해 들어갈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사랑과 공의이신 분,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분의 손에 모든 결정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은, 영생을 얻게 될 자들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구주에 대해 배울 특권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할지라도 그들이 구원 받은 것은 오직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받은 것이다.

 

2. 왜 오직 예수님만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까?(빌 2:6-8, 히 1:1-5, 계 5:9-12)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히1:1-5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4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계5:9-12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답: 그분만이 생명이시다. 그러므로 그분만이 아담 안에서 죽은 그 죽음을 대신 하실 수 있으시다. 그래서 그분은 마지막 아담이 되어 오셨고(고전15:45), 아담 안에서 죽은 그 죽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처리하심으로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아담의 후손들의 죽음도 처리되었다. 또한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복음으로 드러내셨다(딤후1:10). 그분 안에서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이로서는 결코 구원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경험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만이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생제물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희생제물이 되도록 강요당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거나 취하실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속죄의 사역을 담당하셔야 할 아무런 의무가 그분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자원하여 희생제물이 되셨다. 그분의 생명은 타락에 빠진 인류를 구출하기에 넉넉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엘렌 G. 화잇, 그분을 높이라, 24)

 

죄인의 유일한 구원의 길

“이스라엘을 위한 유일한 안전은 문설주에 바른 피였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서만 죄인을 위한 구원이 있다. 그 피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 계발된 지성을 가진 사람은 광범한 지식을 쌓을 수 있으며 신학적 사색에 종사할 수도 있고 위대하며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을 수도 있고 지식의 보고로 생각될 수도 있으나 그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붙들지 않는다면, 그는 잃어버린바 된다.”(가려 뽑은 기별, 3권, 172)

 

<부가설명> 예수님이 어떻게 모든 인류의 개인적 구주가 되실 수 있는지 바른 이해를 하지 않고 있는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반드시 이런 이해를 해야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들은 지각을 사용하라고 성경은 권고한다(히5: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합당하다. 이 사실을 가장 간단명료하게 계시한 것이 고전15:22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아담 안에서 죽은 그것 때문에 죽어야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이 누구든지 예수께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로 영원한 생명을 드러내신 사실을 믿기만 하면 아담 안에서 죽은 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 이제는 예수께서 이렇게 하신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냥 사망 안에 있게 된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라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하신 것이다(요16:9). 우리는 참으로 예수 안에서 영생의 생명 곧 부활의 생명을 얻었는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는가? 참으로 구원을 얻었는가? 예수께서 다 이루신 사실을 믿는가?

 

교훈: 죄 문제에 대한 유일의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속죄밖에 없다. 그분은 타락한 인류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기로 자원하셨다.

 

금요일(5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초기문집, '사단의 타락,' '인류의 타락,' '구속의 경륜'(145-153). 이 짧은 세 장은 하늘과 땅에서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구속의 경륜이 맨 처음 어떻게 계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 재림교인들은 세상이 점점 더 살기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세상의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냥 어깨를 으쓱이면서, "글쎄, 세상이 점점 악해질 거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무슨 손을 쓸 수 있겠어?"라고 말하면서 무관심해도 됩니까? 아니면 직접 나서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붙여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을 유일한 해결자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 일상생활에서 구원받은 아름다움을 드러내어서 사람들이 그런 삶을 선망(羨望)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2. 죄의 모든 결과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인간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죄는 오로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을 만큼 파괴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죄를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 죄를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나타내는 성질이다. 즉 모든 도덕적 율법적 죄를 대항하는 것은 예수 생명의 가장 뚜렷한 성질이다. 그래서 정말 구원을 받았으면 싸우게 된다. 비록 찔리고 넘어지는 경험을 할지라도 죄 싸운다. 그들은 결코 썩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 발을 씻기기 위하여 준비하고 계신다. 예수께서 나를 씻기기 않으면 나는 예수와 상관이 없는 자이다(요13:8)

 

3. 하나님이 죄와 그 결과를 어떻게 취급하시는지 우주의 거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대쟁투의 관점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죄 없는 우주 거민들은 죄의 영향력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은 죄의 결과를 보면서 어떤 교훈을 얻을까요?

* 그들은 죄가 침입한 지구와 지구의 존재들을 위하여 안타까워할 것이다. 그들은 죄의 무서움을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존재를 영원히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죄의 실상에 대하여 좀 더 조명을 받았고 구원의 실상에 대하여서도 분명해진 것 같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 그 생명을 일상생활을 하여 예수님을 드러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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