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과 한 백성을 준비시킴 > 안교교과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안교교과

제 2과 한 백성을 준비시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9.30 02:29 조회수 4,520
글씨크기

첨부파일

본문

제 2과 한 백성을 준비시킴

10월 10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2분)

도입)

민수기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1절의 시작인 ‘광야에서’라는 제목으로 돼 있었으나 70인 역에서 민수기란 말로 제목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것은 광야생활에서 두 번이나 인구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민수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간의 광야 생활(시내 산에서부터 가나안 접경 모압까지)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수기는 광야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영적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민수기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돼 있다. 제1부에서(1-21장)는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모습, 제2부에서(22-25장)는 이스라엘에 대한 외국인들의 음모, 제3부에서(26-36장)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을 위한 준비가 기록되어 있다.

 

기억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연구범위: 민 5~6장, 겔 33:15, 눅 19:8~9, 행 17:28, 고전 6:19~20.

안식일 오후

피난민이 되어 보지 않고는 이스라엘 자손이 처했던 형편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많은 난민들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은 추방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애굽을 떠난 이들이었다. 그러나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 황량한 사막에서 유리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통하여 우리는 이 백성에게 주어진 율례와 규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규례들은 그들이 광야에서 생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광야에서 주어진 것들 중에 어떤 것은 그들이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끝난 것도 있었으나(만나 같은 것), 많은 규례들은 그 속에 원칙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유지되었다. 그들이 만일 그것을 잘 따르기만 했더라면 죄와 우상숭배로 가득한 세상에서일지라도 큰 복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여호와께서 옛날 당신의 백성을 위해 제정하신 몇 가지 규례들, 이를 테면 질병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배우자의 부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개인적인 분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일요일(10월 4일)

질병 관리(민 5:1~4)

 

도입)

하나님께서는 개인적 정결의 필요성을 가장 인상 깊은 방법으로 가르치셨는데 시내산에 모여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율법의 선포를 듣기 전에, 백성들은 그들의 몸과 의복을 씻도록 요구하셨다. 그 지시를 위반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조건으로 강요되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불순한 것은 아무것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었다. 광야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들이 밀집해 있는 곳보다 불결한 것들이 해로운 영향을 적게 미칠 옥외에서 거의 계속적으로 지내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장막 안과 밖에서는 꼭 같이 청결에 대하여 가장 엄격한 주의가 요구되었다. 장막 안이나 주위에 쓰레기를 놓아두도록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신23:14).”

시내산 앞 광야에 당도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수십만 명의 유목민들이 가축과 함께 사람도 도시도 없고,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이동해 왔다. 그 당시에 그들은 어떤 종류의 의료시설을 가지고 있었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의약품도 거의 없었으므로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복을 받고 있었는지가 입증되었다. 어쨌든 그런 환경에서는 어떤 종류의 전염병이든 쉽게 퍼질 수 있었다.

 

1. 여호와께서는 어떤 세 부류의 사람들을 "진 밖으로 내어 보내라"고 모세에게 명하셨습니까?(민 5:1~4)

답:

심각한 피부 질환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일단 나병환자로 의심되었다. 진짜 나병(현재는 한센병으로 불림)도 이 부류에 포함되었다. 어떤 종류의 피부 질환이든 확산되기만 하면 공동체의 위험 요소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피의 유출이나 광야의 뜨거운 열기 아래서 부패한 시체를 만지는 것도 진 전체에 전염병을 퍼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이 중 어느 한 경우에라도 해당되는 사람은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진 밖에 머물러야만 했다. 여호와께서는 몸의 질병을 가진 이 사람들을 결코 미워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민족 전체의 건강을 위하여 그들을 진 밖에 머물게 하신 것이다. 일종의 격리수용이었다. 오늘날의 병원에도 전염성 질환자를 위한 특별 병동이 있다.

2. 이렇게 전염병에 걸린 이들을 한 동안 진 밖에 격리시킨 것은 어떤 신학적 이유에 근거한 것이었습니까?(민 5:3). 여기서 우리는 어떤 영적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

답:

이 모든 것을 영적인 관점에서 보라.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전염병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제거해야 한다. 죄에 감염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규례를 제정하셨는데 이러한 병자들을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부가적용)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교훈에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 세심한 주목을 하고 있다. 노예 생활에서 형성된 불결하고 불건전한 습관을 가지고 나온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가장 엄격한 훈련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건강 원리를 가르쳐 주었고 위생 법칙이 강조되었다. 그들의 종교적 의식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업무에 있어서도 깨끗한 것과 불결한 것이 엄격히 구별되었다. 전염성 질병 혹은 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질병과 접촉했던 모든 사람은 진영에서 격리되었으며, 사람과 의복을 다 같이 철저하게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진영으로 돌아가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거하는 곳에 전염병의 위험이 크게 있었지만, 그 어떤 전염병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바이러스가 있었다.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는구나! 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사는 불신 바이러스가 발생하기도 했다. 병리학적인 바이러스의 독성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거듭 거듭 지적하고 있는 죄가 지니고 있는 독성인 것이다.

 

월요일(10월 5일)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

 

도입)

일상에서 규칙적인 생활은 삶의 안정성을 보장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저녁에 자는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이라든가, 세끼 식사의 분량과 시간을 잘 지키는 것, 운동과 취미생활을 적절하게 하는 것은 삶을 훨씬 안정되게 만든다. 규칙적인 삶은 일종의 개인적인 법으로서 삶의 안정성이라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렇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은 유익한 것이지 결코 귀찮은 것이 아니다. 사회의 법도 일차적으로 안정성을 목적으로 삼는다. 법이 없으면 사회는 문란해지고 불안해진다. 예를 들어 교통법이 없으면 거리는 항상 무질서하고 복잡하여 많은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법은 개인적인 법과 달리 상생(相生)이라는 한 가지 의미를 더 가진다. 개인의 법이 단순히 자신의 안정성에 유익한 것이라면, 사회의 법은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의 안전성에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교통법이 있기 때문에 나도 그렇고 남도 그렇고 도로에서 서로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운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법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법이란 개인적인 것이든지 사회적인 것이든지 법을 지키는 사람의 신분을 보장해준다. 개인의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아끼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사회의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보장받는다. 법의 준수는 그 사회에 속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해서 어떤 사람이 한 사회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 그 사회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는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사회를 거부하는 것이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소떼와 양떼를 이끌고 대이동을 할 때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따랐을지 우리는 감히 짐작조차도 하기 어렵다. 그들은 이제 시내산 앞 광야에 빽빽이 모였다. 질병에 감염된 이들은 민족 전체의 건강을 위해 격리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그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지시(레위 19:18)를 받았을지라도, 단체 생활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심지어 가장 평화로운 때에도 분쟁은 일어난다.

 

1. 이스라엘 진영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범했을 때에 사실은 누구에게 그 죄를 범한 것입니까?(민 5:6, 참조 시 51:3~4). 우리는 이러한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답:

이웃에게 범한 죄는 곧 하나님께 범한 죄이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창조와 구속을 통해 그분의 소유가 되었다(행 17:28, 고전 6:19~20). 만약 어떤 사람이 나의 재산에 손해를 입혔다면 그것은 단지 나의 재산에 대한 죄가 아니라, 그 소유주인 나에게 죄를 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죄를 범하면 그것은 그 사람을 창조하시고 십자가에서 당신의 피로 사신 분에 대해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짓는 죄는 하나님께 짓는 죄라는 개념이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데, 이것은 당연한 논리인 것이다.

2. 죄를 범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민 5:6~8, 참조 겔 33:15, 눅 19:8~9)

답: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힌 것에 대한 배상의 원칙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행한 잘못은 어떻게 갚을 수 있는가? 사실 우리는 갚을 길이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예수께서 우리 대신 행하신 것이다(골 1:20)

 

교훈: 이스라엘의 큰 무리가 공동체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수반되는 사회 제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규례를 마련해 주셨다.

 

부가적용)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이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할 것을 구한다. 특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규례와 법도를 준행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하나님의 백성은 무법한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 비로소 규례와 법도를 주신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무법자가 되어 약속의 땅에 정착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소지하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이미 법의 백성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벌써 법적으로 잘 갖추어진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이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을 가지게 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법을 지닌 자로서 나타나게 하신다. 사회의 법이 사람들 사이에 수평적인 관계에서 나온 것인 반면에,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수직적인 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출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법은 사회의 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의 법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유익하게 하려는 자익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백성을 유익하게 하려는 타익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회의 법은 이득을 얻기 위한 법이라면, 하나님의 법은 은혜를 베풀기 위한 법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약으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사회의 법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생을 위한 법이라면,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언약을 위한 법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법은 언약의 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율법은 두 당사자를 전제로 하는 언약이다. 언약적인 율법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당사자이다. 두 당사자에게는 각각 의무와 책임이 있다.

 

화요일(10월 6일)

결혼관계에서의 성실성

 

도입)

결혼 제도는 저절로 생겨난 인간의 관습이나 풍습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여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제정하신 하늘의 제도이다. 7일만에 끝난 세상의 창조는,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정을 통하여 탄생되는 생명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므로 결혼은 제2의 창조요, 가정은 생명이 창조되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결국 창조와 결혼의 목적은 동일한 것인데, 첫째는 하나님의 창조의 이상(理想)을 실현시켜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고, 둘째는 그 이상을 실현하는 실현한 결과에서 오는 성취감, 즉 행복을 경험하는 것이다.

 

창조주께서는 에덴에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들의 첫 번째 결합을 경축하심으로써 결혼제도를 수립하셨다(창 1:26~28, 2:21~24). 십계명 중 두 명령 곧 일곱째와 열째 계명이 결혼제도를 보호해 준다. 신정시대에 음행을 범한 두 당사자는 죽음의 형벌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레 20:10)

1. 오늘날 우리는 민수기 5:11~31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답:

여호와께서는 가족의 행복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배우자의 부정(不貞)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셨음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는 분명히 초자연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었는데 그 핵심은 물에 있었다. 제사장은 성막 바닥에서 티끌을 취하여 그 거룩한 물에 넣었다. 거룩한 물과 티끌이 쓴 맛을 더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의 거룩함이 강조되었을 뿐이다. 두루마리에 기록한 저주의 말을 그 물에 빨아 넣은 것은 그 속의 쓴 맛을 상징하였다. "모든 것은 그 여인이 거룩한가 혹은 거룩하지 않은가에 달려 있었다. 만약 거룩한 것이 부정한 것과 만나면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만약 거룩한 것이 정결한 것과 만나면 조화로움이 나타난다."(레이먼드 브라운, 민수기의 기별, 인터바시티 출판사, 2002년, 46)

(이상스럽게 보이는) 이 과정은 하나의 즉흥적인 마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에 노예였던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생생한 시청각 교육이었다. 그녀를 정죄하거나 누명을 벗게 하는 것은 그 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으시는 하나님이셨다.

2. 이 과정은 또한 남편의 부당한 의심에 의한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여인을 어떻게 보호해 주었습니까?

답:

우리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과정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결혼 서약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직 하나님만이 배우자의 부정으로 인해 생겨난 고통과 상처를 아신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결혼 서약을 참으로 소중히 여기신다. 하지만 결혼 서약을 그저 악수하는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오늘날의 세태는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부가적용)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0장 8~9절에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했다. 결혼은 죽음 외에는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종식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그가 기록한 서신서를 통해 결혼관계의 신성성을 강조했다. 바울은 부부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로 비유했다. 이 말은 목숨을 내놓고 사랑한다는 의미로, 가장 사랑하는 관계, 결속력이 강한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수요일(10월 7일)

평민의 성별

 

도입)

여호와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기로 서원한 사람. 이 서원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금지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곧 포도에서 산출되는 모든 것을 먹지 말고 어떠한 시체도 만지지 말며, 머리카락을 자르면 안된다는 것들이다(민 6:1~21). 서원에 대한 내용은 '미쉬나'에 더욱 상세하고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나실인의 서원은 남자나 여자나 심지어는 이방인을 제외한 종까지도(단 이방인은 제외) 할 수 있었다(민 6:2). 서원은 특정 기간을 정할 수도 있고(최소한 30일 이상이어야 한다) 일평생일 수도 있었다(미쉬나 '나실인'). 일정한 기간만을 서원한 자는, 그 특정 기간이 끝날 때 서원 기간 동안 자라난 머리털과 함께 율법이 정한 대로 여러 가지 제사들을 여호와께 드렸다(민 6:13~20). 서원한 규례들을 어긴 자도 역시 이와 유사한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6:9~12).어떤 학자들은 나실인의 서원이 가나안 우상 종교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로 본다. 포도의 소산을 먹지 말라는 규정은 과음으로 인한 지나친 만용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하다(레 10:8~11; 참조. 창 9:20~21; 잠 20:1; 호 4:11). 아모스 선지자는 나실인과 선지자들이 감소하는 원인이 이스라엘의 배반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암 2:11~12).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더불어 나실인(한글 개역성경 - "존귀한 자")의 죽음을 애도하였다(애 4:7). 삼손은 최초의 나실인이었다(삿 13:2~7; 참조. 16:17). 그가 나실인으로서 발휘한 무서운 힘과 카리스마적인 지도력과 블레셋을 쳐부순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의 개념을 예시해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삼손은 나실인의 서원 가운데 적어도 두 가지를 범하였다, 곧 사자의 몸에서 나온 꿀을 먹을 때 죽은 시체를 만진 일과(삿 14:8~9), 들릴라에게 자기 머리카락을 깎도록 허락한 일(삿 16:15~19)이 그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폭넓은 의미에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조직하고자 목적하셨다.(출 19:6)

따라서 그들은 원근에 있는 여러 민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 곧 만물의 창조주에 관한 진리를 증거할 것이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시내산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만을 특별히 성막 예배와 관련하여 당신을 섬기도록 임명하셨다.

 

1. 평민들은 어떤 서약을 통해 특정 기간 자신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었습니까?(민 6:1~21). 이러한 사실들은 주님께 오늘날 더 깊이 헌신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어떤 영적 교훈을 줍니까?

답:

 

나실인(Nazarite)은 '성별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특정한 기간 자신을 여호와께 바치기로 작정한 사람을 가리킨다. 부모가 자녀를 평생 동안 나실인으로 바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삼손의 어머니는 천사의 지시를 따라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기 시작할 것을 기대하며 삼손을 봉헌하였다(삿 13:2~5, 16:17). 이와 같이 가브리엘 천사는 스가랴에게 (침례자)요한을 나실인으로 양육하여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섬기도록 지시하였다(눅 1:15). 한나도 사무엘을 평생 동안 나실인으로 바치기로 서약하였다.(삼상 1:10~11)

흥미로운 사실은 나실인의 서약이 마시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포도원, 포도, 포도즙, 포도주 등은 고대인들에게 경작하는 땅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나실인이 포도원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더 나은 땅'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신앙의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포도원은 정착된 삶의 상징이었는데, 나실인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통해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을 사모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다.(히 11:16)

 

교훈: 평민은 나실인 서약을 통해 특정 기간 자신을 바칠 수 있었다. 그들이 포도원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은 것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었다.

 

부가적용)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신 거룩한 자들로서 열방을 향해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하는 민족으로서 부름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몸을 온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나실인들은 더욱 성결한 자들이었으며, 이 같은 나실인 제도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의 경건 생활을 더욱 촉진시키는 하나의 방편으로 작용했다. 결국 이러한 나실인 제도는 오늘날 세속화 된 문화권 아래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온전한 헌신을 통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성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성경적 원리에 근거해 제시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나실인이란 ‘구별하다’ ‘분리하다’란 뜻을 가진 ‘나자르’에서 유래된 말로서 곧 ‘구별된 자’, ‘성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 ‘세상과 분리된 자’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세상적으로 육체적인 욕망을 끊어버리고 자신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성도는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못박은 새로운 피조물, 곧 이 시대의 나실인의 신분으로 존해하는 것이다. 성도가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함으로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이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성도의 나실인적 삶의 결국은 하나님 앞에 착하고 충성된 종의 삶으로 열납될 것이다.

 

목요일(10월 8일)

아론의 기도

 

도입)

아론은 이스라엘의 초대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복을 간구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아론의 기도와 아론의 희생 제사를 통해 백성들에게 복을 주셨다. 아론에게는 백성들을 축복할 권한을 주셨다. 복이라는 것은 자신의 수고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절대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는 것을 말이다. 물질이나 건강은 하나님의 복 가운데 한 부분에 불과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 다양한 복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복을 주신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위해 오셨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 6:24~26)

1. 위의 축복 기도에는 하나님의 속성이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마 28:19)

답:

2. 이 기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요 15:5)

답:

3. 제사장들이 직접 백성을 위해 이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은 어떤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까?(히 7:25)

답:

이 기도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각 행은 하나님의 개인적인 언약의 이름인 '야훼'(Yahweh)로 시작된다. 여기서 회중은 단수(單數)로 언급되어 있다. 즉 각 사람이 개별적으로 언급된 것이다. 각 사람은 개인적으로 그 축복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즉 이스라엘의 공동체 안에 비록 많은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각 사람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종살이에서 해방되고 홍해를 건너며 양식과 물을 공급받은 기적적인 일들을 통해 여호와의 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성막에는 번제와 분향, 그리고 밤낮으로 불을 밝히는 촛대가 있었는데, 이곳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그분의 보호를 느낄 수 있었다.

구약시대도 온통 은혜로 충만하였음을 우리는 분명히 보게 된다(갈 3:7~14, 히 4:1~2). 셋째 행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미소와 평안을 확신시켜 준다.(참조 마 11:28~30)

 

교훈: 아론의 축복 기도에 나타난 대로 여호와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며, 우리 각자는 그분과 더불어 밀접한 관계를 맺음으로 그 복을 누릴 수 있다.

 

부가적용)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이 나타난다. 얼굴에는 우리가 숨길 수 없는 그림이 그려진다. 여호와의 얼굴은 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된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 얼굴을 향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얼굴을 향하여 복을 주신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은 ‘살롬’(평화, 평강)이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걱정, 근심, 불안, 절망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최고의 권력자 대통령에서부터 가난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런 것들이 없는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걱정, 근심, 불안, 절망이 최고조에 이르면 인생을 포기하게 된다. 사울 왕이 그랬다. 하나님의 얼굴이 가리어진 그의 삶의 걱정, 근심, 불안, 절망의 연속이었다. 악신이 그를 괴롭혔다. 오늘 우리가 찾는 행복(평화)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얼굴은 곧 우리에게 복이요 기쁨이 되며,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금요일(10월 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아침마다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라. 그리고 이 일을 그대의 첫째 일로 삼으라. 또한 기도하기를 '오, 주님 나를 받으사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삼으소서. 나는 나의 모든 계획을 당신의 발 앞에 놓나이다. 오늘 나를 당신의 일에 써 주시옵소서. 나와 함께 하여 주시고 나의 모든 일이 당신 안에서 성취되게 하옵소서.' 할 것이다. 이것이 날마다 행할 일과이다. 아침마다 그 날을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라. 모든 계획을 하나님께 맡겨 그의 섭리에 따라 행하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할 것이다.”(정로의 계단, 70)

“환경이 친구들을 헤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넓은 바다의 출렁이는 물결이 우리와 그들 사이에 가로놓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환경도, 어떤 거리도, 우리를 구주와 분리시킬 수는 없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분께서는 우리 우편에 계셔서 우리로 쓰러지지 않게 해 주시고, 옹호해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위로해 주신다.”(치료봉사, 7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 모두는 이 세상 사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하늘 본향을 잊어버릴 위험성이 있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반면에 하늘의 소망에 집착한 나머지 이 세상에서의 의무를 소홀히 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2. 우리 사회에는 성경의 원칙과 맞지 않는 결혼생활에 관한 어떤 관례가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신 결혼의 신성성을 유지하면서 이러한 문제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요?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요약: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원하신다. 육체적 및 영적인 강건함은 그분께서 주신 생명의 법을 순종하고, 배우자와 이웃과 더불어 사랑의 좋은 관계를 맺으며,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의지를 바침으로써 얻어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