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청지기 직분(6/13/09) > 안교교과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안교교과

제11과 청지기 직분(6/13/09)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6.03 12:22 조회수 4,713
글씨크기

본문

 

6월 13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4분)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기억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마 25:29)

 

연구범위: 신 8:18, 시 50:12, 마 24:46, 25:14-30, 눅 4:16, 고전 6:19-20.

 

중심 사상: 나의 달란트, 나의 시간, 나의 물질, 하나님께서 청지기 직분으로 맡겨주신 모든 것을 나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나는 참으로 창조주와 구속주에 대한 의무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청지기의 직분이다.

 

안식일 오후

청지기 직분은 재물을 관리하고 하나님께 속한 10%를 확실히 드리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청지기 직분의 일부이지만 그 이상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

"청지기(steward)라는 용어는 오해되고 심지어 우리 사회에서 생소하게까지 느껴지는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그 용어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없다. 관리인(caretaker)은 청지기에게 놓인 책임을 포함시키기에 뭔가 부족하다. 지배인(manager)은 주인과 청지기와의 관계를 묘사하기에 부적합한 듯이 보인다. 대리인(agent)은 오늘날 너무나도 자기 잇속만을 차린다. 대사(ambassador)는 너무 정치적인 냄새가 나고 종의 신분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느껴진다. 감독자(warden)는 너무 행정적인 경향이 있고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 후견인(guardian)은 단지 부모로서의 책임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경향이 있다."(R 스코트 로댕, 하나님의 왕국의 청지기들, 인터버시티 출판사, 2000년, 27)

 

핵심본문: 마 25:29

 

<학습 목표>

깨닫기: 청지기 직분이란 하나의 생활 방식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신실한 청지기의 삶을 살 때에 오는 기쁨을 만끽한다.

행하기: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자원들을 잘 관리한다.

 

< 교과 개요 >

I. 청지기의 삶(눅 16:1-12)

A. 이 구절은 달란트와 돈을 같은 것으로 보고 청지기 직분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비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청지기 직분은 돈을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다. 나의 삶에서 더 나은 청지기가 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B. 예수께서는 3년 반 동안의 사역을 통해 가족, 친구, 개인적인 영적 성장 등에 균형을 유지하시면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성취하셨다. 나의 삶에서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고 싶은 분야는 무엇인가?

 

II. 청지기 직분의 기쁨(롬 12:1)

A. 바울은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라고 우리에게 권면한다. 바울의 권면을 따르기 위해 어떤 단계를 밟아갈 수 있는가?

B. 청지기의 삶은 계속적인 예배의 삶이다. 나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기쁨을 주는가?

 

III. 균형 잡힌 청지기 직분(전 3;1)

A. 성경은 모든 것에 때와 기한이 있다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은 균형진 삶에 대해 가르쳐 준다. 나의 삶에는 어떤 균형이 필요한가?

 

요점: 청지기 직분은 제자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나의 의무들과 가치관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가자.

 

일요일(6월 7일) 달란트(마 25:14-30)

 

청지기 직분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 있다면 아마도 그 상은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께 돌아갈 것이다.

 

1. 마태복음 25:14-30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청지기 직분에 관한 어떤 기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까?

 

 

마25:14-30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답: 인생은 예외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달란트를 받았으며 그것을 사용하면 반드시 이익을 남기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으면 있는 것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이익을 남겼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달란트를 얼마나 활용하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실 1: 우리 모두는 달란트를 받았다. 비유에서 모든 종들이 한 달란트 이상을 받은 사실을 주목해 보라. 전혀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려 하신 첫 번째 교훈이다.

사실 2: 우리는 모두 똑 같은 수의 달란트를 받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인생의 진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은사를 받은 반면, 다른 이들은 적은 달란트를 받았다. 여러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적게 받은 자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요점은 분명하다. 달란트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3: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하기를 거절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가진 달란트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슬프게도 아무도 그들의 은사에 대해 상기시켜주지 않았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은사들을 인식한 자들조차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들을 계발하기를 거절하였다.

사실 4: 우리의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무익한 종"에게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겨,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 25:30). 이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즉 영원한 죽음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말이다.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우리에게 손해이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충실한 청지기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 사소한 일이 아니며, 제자로서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주님의 소유물을 맡은 청지기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안 계실 동안에 주의 소유물을 우리에게 관리하라고 맡겨 주셨다. 모든 청지기는 하나님의 왕국의 발전을 위하여 각자가 해야 할 특별한 일이 있다. 아무도 변명하지 못한다.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명하셨다. 그는 당신의 지혜로 우리에게 그 선물의 사용을 위한 지시를 주셨다. 언어, 기억력, 감화력, 재물 등의 달란트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의 전진을 위하여 축적되어야 한다. 당신의 선물을 올바로 사용할 때 그분은 축복하실 것이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116)

 

<부가설명> 우리는 달란트를 재능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도 달란트이다. 많든 적든 간에 재물로 달란트이다. 이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고전4:7). 인생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활용되어야 한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을 위하여 활용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극대화하여 능력 있게 사용하도록 이끄신다. 그것을 은사라고 한다. 은사는 이미 주어진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할 때 성령께서 그것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사람에게 그 소질을 하나님을 위하여 능력 있게 사용하도록 이끄시는 것이다.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출31:6), 지혜 있는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 또 자비한 자를 더 자비하게 하시고(시18:25), 능력 있는 자에게 능력을 더하신다(시89:19). 그렇기 때문에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면 반드시 이익을 남기게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얼마나 남겼는가를 물으시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활용하였는가를 물으신다.

 

교훈: 예수께서는 달란트 비유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충실한 청지기가 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셨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부지런히 활용하자.

 

월요일(6월 8일) 시간(마 4:23)

 

시간 관리법을 주제로 한 책들과 교육과정이 오늘날 홍수를 이룬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시간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러한 책들을 읽거나 세미나에 참석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오직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함으로써만 배울 수 있는 그리스도인 시간 사용법이 있다.

 

1.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시간 사용법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그분께서 설교하시고 병자를 고치신 분주한 시간표 외에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추가할 만한 다른 구절은 무엇입니까?(마 4:23, 막 1:29-31, 눅 4:16, 요 2:1-11, 12:2)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막1:29-31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눅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요2:1-1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답: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이 말씀 속에 예수님의 사역이 요약되어 있다.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자를 고치신 것 외에도, 죄인들과 섞이시고 그들과 잡수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셨다. 그분은 또한 기도하는 시간을 구별해 놓으셨다(14:23, 막 1:35, 눅 5:16). 그리고 틈을 내어 고단한 몸을 쉬시기도 하였다.(마 11:28, 막 6:31, 눅 21:37)

 

오늘날과 같이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에서 예수님의 모본은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분께서는 부지런히 일하셨고, 자신의 사명에 온전히 전념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안식일의 축복을 놓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하늘 아버지와 친구들을 위한 시간, 휴양과 좋은 식사를 위한 시간을 가지셨음이 복음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시간 관리(혹은 시간의 청지기)를 실천하는 모든 사람들은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일 중독자'를 찬양하지 않으며, 항상 빈둥대는 사람들을 칭찬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균형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수행해야겠지만, 한편 우리 자신이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소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시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맨 먼저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기도와 예배를 위해 매일 시간을 바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우리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일하는 시간, 휴양의 시간, 그 외의 일들을 위한 시간을 계획해야 한다. 교회 일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항상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간의 달란트의 사용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매 순간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 가운데 시간에 대해서만큼 엄격하게 따지실 것은 없다.

시간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매분 매초의 시간을 귀히 여기셨으므로 우리도 시간을 그와 같이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인생은 헛되이 보내기에는 너무도 짧다. 우리가 영생을 위하여 준비할 은혜의 기간은 불과 며칠밖에 없다. 우리는 낭비할 시간도 없고, 이기적 오락을 위하여 쓸 시간도 없고, 죄에 방종할 여가도 없다. 내세 즉 영생을 위하여 품성을 개발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조사 심판을 위하여 준비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실물교훈, 342)

 

<부가설명> 시간에 대하여 무슨 다른 할 말이 있겠는가. 시간은 곧 삶을 뜻한다. 시간을 바르게 쓴다는 말은 바르게 산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시간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신다. 창세기 4장과 5장에는 각각 가인의 후손과 아담과 셋의 후손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가인의 족보에는 나이가 없는 대신 그들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고, 셋의 족보에는 나이가 기록되어 있고 업적은 없다.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날을 바르게 계수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기록이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업적을 이루느라 하나님께서 영원을 위하여 준 날을 계수할 줄 모른다. 이것을 기록한 모세는 날 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라고 기도하였다. 우리도 우리 날 계수하는 지혜의 마음을 얻어서 영원을 위하여 이 세상 시간을 바르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는 시간을 잘 관리함으로 신실한 청지기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인데, 성경적 우선순위에 따라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다.

 

화요일(6월 9일) 우리 몸의 청지기(고전 6:19-20)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몸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자기 마음대로 낙태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불법적인 약물을 복용하거나 '정크 푸드'(칼로리 공백 식품)를 마음껏 섭취하거나 원하는 상대라면 누구와도 성적인 관계를 가짐으로 자기 몸을 망가뜨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1. 고린도전서 6:19-20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이 구절은 우리의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까? 이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무엇입니까?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답: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권고한다. 이유는 우리 몸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사셨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 몸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은 합당한 음식물과 운동과 활동과 휴식으로 건강을 바르게 관리 유지하며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데 몸이 연약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특히 성적인 부도덕을 통하여 우리 몸을 욕되게 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일은 타락한 고대 도시로 알려진 고린도에서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 여러 지역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므로 우리는 모든 행위에 대해 그분께 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로 그분은 우리를 “값으로” 사신 구속주이시다.

우리 몸에 대한 청지기 직분에는 건강을 잘 돌보는 것도 포함된다. 거기에는 우리의 먹는 것 뿐 아니라, 적절한 휴식과 운동을 통해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중독성이 있거나 해로운 약물을 금하는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런데 몸의 청지기 직분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건강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방식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자연스럽게 실천되어져야 한다. 건강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족스런 관계를 가로막는 우상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건강은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가능하게 해야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레오 R. 반 돌슨, J. 로버트 스팽글러, 건강하고 행복하고 거룩한 삶, 리뷰 앤드 헤럴드, 1975년, 43)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님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소유물이다. 우리 마음대로 몸을 사용할 자유가 없다. 사람들은 몸의 법칙을 어겨도 벌이 없는 듯이 몸을 마구 다룬다. 부패한 입맛을 통하여 그 기관과 힘은 연약해지고 병들고 불구가 된다. 사단의 그럴듯한 유혹에 의해 생긴 이 결과들을 사단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데 사용한다. 사단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소유물로 사신 인간의 몸을 하나님께 제시한다. 인간은 자신의 조물주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형편이 아닌가! 사람이 자기 몸에 죄를 짓고, 부패한 길을 걸음으로 하나님은 욕을 당하신다.”(교회증언, 6권, 369)

 

<부가설명> 몸은 인간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구이다. 정신상태가 아무리 탁월해도 몸이 병들고 허약하면 그 정신을 실현하기 힘든다. 신앙심이 아무리 좋아도 몸이 아프면 그 신앙을 생활로 실천하여 사랑을 베풀 수 없다. 그러므로 건강한 몸은 인간 생활의 가장 중요한 기구이다. 뇌가 건강한 것도 결국 몸의 지체로서 건강한 것이다. 몸의 모든 지체가 건강할 때 몸 전체가 건강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자기의 인간적 기능을 온전히 나타내려면 건강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야 두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에 관심이 많으시다. 가장 건강하게 몸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위하여 하라고 지시한 것을 기쁨으로 따르자. 그것이 몸을 주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몸의 청지기의 직분에 성실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바 된 그분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함으로 하나님의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수요일(6월 10일) 우리의 물질적 소유(레 27:30)

 

그리스도인 청지기 직분은 돈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돈은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이며, 청지기 직분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1. 다음 구절들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레 27:30, 신 8:18, 시 50:12, 말 3:8-10, 마 6:31, 23:23). 자신의 대답과 아래에 기록된 내용을 비교해 보십시오.

레27: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신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시50: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말3:8-10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마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답: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결과로 주어진 것이다.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것은 그분께서 만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표시이다. 우리는 주님의 것을 돌려드림으로써 더 많은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된다.

사실 1: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소유주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일하여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모든 것은 내가 힘들여 일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소득을 얻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사실 2: 하나님은 우리가 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뿐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과 행하는 것 등 모든 면에서 첫째 자리를 취하기 원하신다. 우리는 수입의 어떤 부분도 사용하기 전에 십일조와 헌금들을 확실히 구별해 놓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나머지를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하고, 우리에게 위탁된 돈이 얼마이든 간에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 충실한 청기기가 되고자 하는 의식을 항상 가져야 한다.

사실 3: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수입의 최소 10분의 1을 그분께 돌려드리기를 기대하신다. 그것은 구약의 관습이었으며, 그 원칙은 결코 폐지되지 않았다. 구약에서 십일조는 제사장들이 받아 성소 봉사를 지원하는 데 사용하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의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위탁하신 전 세계적인 복음전파 사업을 수행하도록 자금을 조달하는 데 사용된다.

사실 4: 우리는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은 복을 받게 된다. 일단 시도해 보라. 그러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하신 말씀의 진리를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재물의 청지기로 삼으신 목적

“우리는 그분과 우리의 동료 인간들을 위하여 성실하게 봉사하며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분의 교회를 유지하며 발전시키기 위하여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을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한다. 청지기 직분은 자애로운 품성을 계발하고 이기심과 탐욕을 극복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다. 청지기는 자신의 충성됨의 결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르러오는 축복들을 즐거워한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71)

 

 

<부가설명> 흔히 믿음 좋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맞은 말 같은데 사실은 틀린 말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도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금 제도를 마련해 주신 것이다. 우리의 재물은 우리 것이 아니다. 영원한 나라에 이를 때까지 이 세상에서 우리의 필요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도구이지 소유가 아니다. 돈을 하나님을 위하여 이 땅을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이 하나님의 나라까지 가는데 가자 요긴하게 사용할 도구라는 사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사람에게 돈은 자기를 위하여서나 남을 위하여서 복이 된다. 그러나 돈을 소유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 돈이 자타에게 결코 유익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

 

교훈: 재물은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동시에 청지기 직분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의 재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자.

 

목요일(6월 11일)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에(마 24:42-46)

 

달란트의 비유(마 25장)와 므나의 비유(눅 19장)에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주인”(19절)은 먼 여행에서 오랜만에 돌아와 종들과 결산을 했다. 므나의 비유에서 “귀인”(12절)은 먼 나라로 가서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예수님은 분명히 자기 자신에 대해 언급하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돌아오실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암시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돌아오실 때에는 우리에게 맡기신 것에 대해 결산하실 것이다.

 

1.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마 24:42-46). 실제적인 면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마24:42-46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답: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에 청지기로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봉사해야 한다. 시간, 재능, 물질, 몸 등 하나님께서 관리하도록 한 것을 주인이 돌아와서 우리를 볼 때에 만족할 만하게 관리해야 한다.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나태하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있어 충실한 청지기로서 헌신해야 한다. “우리는 깨어서 인자의 오심을 기다려야 하며 또한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다림과 일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조화롭고 균형지게 계발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밖에 어떤 일에도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니 명상하고 연구하며 기도하는 일에도 그러할 것이다. 또한 소란함과 조급함과 벅찬 일로 인하여 개인의 경건을 등한히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다리며 경계하고 일하는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재림신도의 가정, 23)

우리는 만물의 주인께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다. 머지않아 그분께서 오실 때에는 우리의 은사와 시간과 육신의 힘과 물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물으실 것이다. 그분께서 오셔서 우리의 청지기 직분을 결산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두려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묻어두었던 종은 주인을 가리켜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굳은 사람”이라고 비난하였으나 그의 말은 완전히 거짓이었다. 신실한 종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지 않았다.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재림의 때가 가까웠음을 보여 줄 징조를 말씀하시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깨어 준비하라고 명하셨다. 그분은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다시 반복하여 경고하셨다. 다음으로 그분은 당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무료하게 기다리는 일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훈을 달란트의 비유로써 가르쳐 주셨다.”(실물교훈, 325)

 

<부가설명> 아무 할 일 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얼마나 무료한 것인지 대부분의 우리는 경험했을 것이다. 책을 읽든지, 주위 경관을 살피든지, 대화를 하든지, 어떤 일을 하면서 기다리면 시간은 결코 지루하지 않고 무료하지 않다. 예수께서는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일거리를 주셨다. 그것이 바로 청지기 직무이다. 지금은 기다리는 시간이다. 머지않아 주께서 오실 것이다. 그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을 수 있도록 주신 청지기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자. “잘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라고 부르는 음성을 듣도록 하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엄청 오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생각대로 주인을 평가한 것이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우리는 주인은 아주 무른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 주님을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받은 바 달란트를 부지런히 활용하여야 한다. 충실한 청지기는 자신의 노력에 대해 큰 보상을 받을 것이다.

 

금요일(6월 1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엘렌 G. 화잇, 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제8편 '받으실 만한 예물의 참된 동기'(195-206)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탁하지 않으신 달란트로 그분께 영광 돌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실 것이므로, 우리가 가지지 못한 달란트 때문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단 한 달란트라도 주어졌다면 그것을 잘 활용하라. 그러면 그것이 증대될 것이다. 달란트를 묻어 두지 않는 한, 그들은 이윤을 남기게 될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0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라는 맥락에서 우리는 청지기 직분의 전반적인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우리는 선한 청지기가 됨으로써 구원을 받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청지기 직분이 우리 믿음의 모습을 드러내 줍니까?

* 말할 것도 없이 청지기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바로 믿음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청지기인 줄 모른다. 하나님의 청지기인줄 아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2. 만약 우리가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좋은 건강과 많은 재물'을 주실 것이라는 개념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 이것은 기복 신앙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에 따라 우리에게 보상한다는 사상인데, 이방 종교의 사상이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은 은혜로 주신 것이다. 우리는 받았기 때문에 관리하는 것이다. 바른 개념은 바른 생활을 하는데 중요하다.

 

3. "능력(ability)보다는 쓰임새(availability)가 있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은 청지기 직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합니까?

* 능력이 있어도 바르게 쓰지 않으면 능력이 없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우리에게 작은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주를 위하여 바르게 쓰면 그 능력이 크게 될 것이다.

 

4. 재정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십일조나 헌금을 드릴 수 없다고 말하는 교인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줄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어떤 다른 방법을 통해 청지기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 헌금이나 십일조는 많이 드리는 것이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도에 따라 정성을 다하여 드리면 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십분의 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과부의 두 렙돈은 부자의 많은 돈보다 하나님께 많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가난하신 분이 아니시다.

 

5.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교과가 제시한 것들에 대하여 바른 청지기 노릇을 하기를 원한다.

 

요약: 우리 모두는 한 달란트 이상을 받았다. 우리는 청지기들로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이 달란트들을 최선을 다해 '관리'해야 한다. 청지기 직분은 힘든 고역이 아니라, 우리 삶에 즐거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