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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제 2세대를 위한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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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12.10 11:50 조회수 5,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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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제 2세대를 위한 충고

12월 19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6분)


도입)

출애굽기는 이집트 탈출 후 1년간의 역사를 다룬다(B.C. 1445년으로 추정됨).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후 이스라엘의 예배와 삶의 기초인 성막의 건축 과정을 다룬다. 레위기는 한 달 정도의 기간에 관계된다. 성막 제사와 관련된 율법 제정에 대한 자세한 사항들이 나온다. 반면 민수기는 무려 39년의 기간에 벌어진 일을 다룬다. 물론 39년 역사 전반을 다 상세하게 기록한 것은 아니다. 39년 전반의 내용은 20장과 21장에서 짧게 기록하고 있고, 오히려 그 앞과 끝부분의 기록에 더 치중한다. 시내 광야에서부터[1:1] 40일의 정탐이 40년으로 연장되는 비극의 현장이었던 가데스까지의 기록이 1장부터 19장까지 등장하고, 40년 이후 그들이(물론 2세들 중심) 가나안 입성 직전 모압 평지에서 겪었던 상황들을 무려 22장부터 36장까지 열네 장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수기는 성경 전체뿐만 아니라 모세오경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단지 신학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다. 신앙의 실제적인 적용 면에서 더욱 그렇다. 신앙은 하나의 여정이 아닌가? 출생(거듭남)의 정거장에서 출발하여 재림(영화)의 정거장까지 가는 여정이 곧 신앙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을 배반하는 불신의 장면이 어떠한 것인지, 또 우리의 불신과 불순종이 가져다주는 아픔이 어떠한 것인지, 이에 대해 그래픽하게 잘 그려주고 있는 책이 민수기다. 동시에 이 책은, 그러한 불신과 배반에도 불구하고, 한번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의 신실한 의지를 걸고 40년의 광야생활을 성실하게 마감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기억절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연구범위
: 민 26~32장, 롬 5장.


안식일 오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하는 반역하는 세대는 그곳에 못 들어가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은 사실이었고, 이제 그분께서는 새로운 세대를 그 땅의 경계로 인도하였다. 그곳에서 그분께서는 모세와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20세 이상의 남자를 계수하라고 명령하셨다(민 26:2). 신기하게도 이 두 번째의 계수 인원은 601,730명(51절)이었는데 40년 전에 처음 계수했던 603,550명(민 2:32)과 거의 비슷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제1세대의 멸망이라는 민족적 심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심으로 모압 평지에 소집된 이스라엘의 군대는 제1세대와 같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스러운 것은, 부모들의 실패의 결과를 보면서 자라온 이 새로운 세대는 그 부모들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배웠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그들은 어떤 교훈을 더 배워야 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일요일(12월 13일)

땅의 분배(민 27:1~11)


도입)

애굽에서 해방을 받은 이들이 그들의 조국인 가나안까지 들어가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애굽에서 해방된 민족이 축복의 땅을 밟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까? 해방의 기쁨을 경험한 그들이 왜 고국의 땅을 밟지도 못하고 묘비 없는 무덤만 남겼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3일을 걸어 “다베라”라는 곳에 도착을 했을 때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소리를 들어보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민11:4-6)라 부르짖었다. 민수기 기자는 이러한 사건을 탐욕의 부르짖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만나라는 고운 가루를 주어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도 감사하고 감사해야 하는데 저들은 지금 지금 정력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그네이며 피난민인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고기와 생선 부추 파 마늘 참외 수박 등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자신들의 정체성을 모르는 사치스러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저들의 탐욕과 욕심이 저들을 배제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탐욕과 교만은 반드시 스스로 무덤을 타는 결과를 낳는다. 탐욕과 교만은 육신의 생각을 따르게 하고, 고집하게 한다. 탐욕과 교만은 영의 생각을 거부한다. 탐욕과 교만은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려 한다. 탐욕과 교만은 열방을 향한 우리에게 광야에서 죽게 만드는 덧이다. 탐욕과 교만은 우리의 이상을 좌절시키고 목표달성을 지연시킨다. 탐욕과 교만은 무서운 독소와 같아서 우리를 병들게 한다. 이제 첫 번째 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죽고 두 번째 세대를 계수할 시점이 이르렀다.(63-65절 참조) 12지파 모두를 계수하였다. 2차 인구조사의 목적은 1차 조사 때의 전쟁계수 목적과는 달랐다.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할 때 사람의 많고 적음에 따라 공평하게 배분하려는 것이었다. 많은 숫자의 지파는 더 큰 땅을, 적은 숫자의 지파는 더 작은 땅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단, 어느 지역의 땅을 갖느냐는 제비를 뽑아 정하기로 함이었다. 새로운 세대를 설명하는 26-36장의 핵심은 “과연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었고 “그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각 지파와 족속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것과,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거룩과 율법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 26-36장의 목적이다. 레위 지파도 계수하였다.


싯딤에서의 슬픈 사건이 있은 후, 20세 이상 남자에 대한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다(민 26:1~4). 단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1세대들은 다 죽었고(64~65절),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였다.

1. 인구 조사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이 시점에서 인구 조사는 왜 필요했습니까?(민 26:52~56)

답:

제2세대가 땅을 정복하자 그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분쟁과 혼란의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다행히도 모세가 여전히 살아 있었고, 이 중요한 문제를 지시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본문에 언급된 대로 인구가 많은 지파들은 더 많은 땅을 받게 되고, 인구가 적은 지파는 적게 받게 될 것이었다. 이보다 더 공평한 방법이 있겠는가?

2. 민수기 27:1~11을 읽으십시오. 여기에 나타나 있는 중요한 원칙은 무엇입니까?

답:

여기에 나타난 핵심 요소는 가족의 신성한 권리, 특히 재산과 유업에 있어서의 신성한 권리이다. 분명히 이 개념은 가능한 한 가족 내에서 재산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땅은 '유업'이었으므로 가족에게 속하였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것은 또한 한시적인 분배가 아니었다. 이 여인들이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기본적인 형평성의 문제를 가지고 모세에게 나아갔을 때, 여호와께서는 “판결의 율례”(민 27:11)를 세우사 후세에까지 미치게 하심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인들을 보호하게 하셨다.


교훈: 기나긴 40년의 광야 생활이 마쳐갈 무렵에 실시된 2차 인구 조사는 땅의 분배가 목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여인들의 권익이 보호된 점이 주목된다.


부가적용)

민수기 27장 1절에는 슬로브핫의 딸들이라고만 표기하지 않았다. 가계나 기업에 관련해서 여성의 이름이 이렇게 기술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다섯 사람의 이름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연약한 여자라도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이 차별 없이 받아 주심을 보여 준다. 므낫세 지파였던 슬로브핫의 딸들은 상속법에 따라 기업을 분배받을 수 없었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가계가 단절되고 기업을 분배받을 권리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그의 딸들이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기 위해 모세와 지도자들 그리고 회중 앞에 나섰다. 그 딸들에게서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 대한 간절한 소망, 용기 있는 항변, 정당한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우리에게도 반드시 구하고 누려야 할 신앙적 권리들이 있다. 약속된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용기 있는 일이다. 모세와 엘르아살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올린 탄원을 무시하지 않았다. 모세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탄원에 대해 정당하다고 인정하셨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가계의 언약 계승 원리는 남성을 대표로 하지만 그 언약의 복에서 여성을 제외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도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복에 함께 참여하며 그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이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자세한 규정을 세우셔서 가계와 지파 안에서 기업을 영원히 상속받도록 하셨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은 약속하신 기업이 유지되고 그것을 이어 가도록 배려하셨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을 유업도 이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월요일(12월 14일)

후계자(민 27:12~23)


도입)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지도한 하나님의 종은 모세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과정에서의 지도자는 여호수아였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버금가는, 모세를 계승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종으로 모세의 뒤를 잇게 된 것은 모세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었다.(민 27:18) 여호수아는 성령으로 감동된 사람인 것을 하나님이 밝혀주시고 그에게 기름 붓도록 지시하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지배된 사람이었다. 이러한 영적인 축복이 그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갖고 있었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깊은 교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좌우한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쏟은 마음의 충심이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는 사랑의 깊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모세가 성막을 떠난 뒤에도 청년 여호수아는 성막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다는 표현 속에서 그의 영성을 읽을 수 있다.(출 33:11)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깊은 친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함으로 사귐을 더하고 영감이 지배하는 대화식 기도를 통해 사귐의 깊이를 더해 가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경우 청년 시절에 이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분이 그를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이 선민을 위한 중요한 사역을 맡길 때 누구를 택하시겠는가? 이때에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큰 계획을 추진한 것처럼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큰 섭리를 진행하는 적임자였다. 이와 같이 누구나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그 나름대로 거치는 과정이 있다. 여호수아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는 원리로 생각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쓰임 받은 모든 하나님의 종들이나 오늘날 하나님과 잘 어울려 일하는 모든 일꾼들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 자신을 영적으로 잘 적응시키는 훈련을 쌓아가자.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서 수십 년을 보냈으나 이제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었다.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으며, 수 세기 전 아브라함 때에 처음 약속된 땅(창 17:8)을 얻게 될 것이었다. 이 백성의 실패와 반역과 불평과 믿음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성취하실 예정이었다. 그분께서는 그 약속을 제2세대를 통해 이루실 것이었다.


민수기 27:12~23을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1. 민수기 27:12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들어갈 땅을 가리켜 그들에게 '준'(과거 시제)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에 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답:

2. 여호와께서는 모세가 자신의 죄로 인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즉 모세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이었습니까? 모세의 반응은 그의 품성이 어떠함을 말해 줍니까?

답:

3. 여호수아가 온 회중 앞에서 책임을 위탁받은 사실은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까?

답:

모세의 임박한 죽음과 함께 그의 일은 마쳐질 것이다. 이제 그 책무는 지명된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넘겨질 것이었다. 모세의 아들들 중 하나가 아닌 그 능력이 입증된 다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여호수아를 택한 것은 모세나 회중이 아닌 하나님이셨다.

또한 본문에 의하면 모세와 같이 여호수아도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백성을 이끌 것이었다. 즉 그는 기록된 율법과 계명 외에 “우림의 판결법”(21절)으로 여호와께 물어야만 하였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시고 온 회중 앞에서 위임하게 하심으로 백성으로 하여금 그의 지도를 따르도록 권위를 부여하셨다.


부가적용)

여호수아는 모세의 손에 물을 붓는 시종자 역할을 하면서 조용히 배우는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믿음이 강한 사람이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에 보면 모세의 수종자가 되어 항상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고 회막 곁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가까이 있으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가나안 정탐꾼 12명중 10명이 낙심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이고 갈렙은 유다지파 사람이다. 이 두 지파는 이 사람들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게 되었다. 한 시대에 위대한 인물이 있었던 것 때문에 역사 가운데 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중에 민수기 역사를 모두 살펴보면 에굽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가서 칼을 뺄만한 사람들이 603550명이었는데 광야에서 다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았다. 나머지는 신세대 새로 태어난 사람들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된다. 훗날 모세가 죽기 전에 여호와의 명령으로 제사장 엘르아살이 회중 앞에서 여호수아에게 안수하고 모세의 후계를 삼는 장면이 민수기27장 18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고 하시고 너는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와 함께 있으리라 몇 번이나 말씀 하셨다. 이처럼 위로가 되는 말이 없을 것이다.


화요일(12월 15일)

희생 제도가 재확인됨(민 28:1~8)


도입)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에 나의 물질과 나의 시간 등 내 것을 드린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너의 것, 너의 헌물, 너의 음식을 바치라”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내 헌물, 내 음식, 내 향기로운 것을 바치라”고 하신다. 예배의 가장 첫 단계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것이라는데서 출발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나의 재능, 나의 재산, 나의 시간, 나의 사랑하는 가족, 심지어는 나의 소중한 생명까지도 다 하나님이 주셨다. 다윗은 역대상 29:11절에서 ‘영광도 승리도 위엄도 권능도 위대하심도 부귀도 주권도 다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고백했다. 욥도 욥기 1:21절에서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라” 고 했다. 이사야는 이사야 43:1절에서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14:8절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조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빈손으로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이 주신 것, 빌려 쓰고 살다가 다 놓고 가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청지기이지 주인이 아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빌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은혜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백성의 귀에 들리도록 십계명을 말씀하시고(출 20장), 성막을 짓도록 명령하셨을 때(출 25장), 제2세대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인이 된 그들에게 간략하게나마 희생 제도를 다시 설명해 주고자 하셨다.

민수기 28:1~8에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어린 양 하나를 드리는 '상번제'에 관한 묘사가 나온다. 이 제사는 언제나 번제(燔祭)로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레 6:9, 13). 매일의 제사 또는 '상번제'를 드리는 것은 성소 봉사 중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다른 희생 제사들보다 가장 중요한 이것은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이었다. 이 희생은 이 제사를 통해 예표된 구속자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용서와 용납을 나타내 주었다.

1. 로마서 5장의 말씀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의 완전함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답:

안식일에는 매일의 제사 외에 특별한 희생이 드려졌는데, 두 마리의 어린 양이 드려졌다(민 28:9~10). 그리고 민수기 28:11~15에는 매 월삭에 드리는 제사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이어서 유월절과 칠칠절, 나팔절과 속죄일, 그리고 초막절에 드릴 희생 제사가 차례로 언급되어 있다.(민 28~29장)

“어떤 이들은 왜 하나님께서 그처럼 많은 희생 제물을 원하셨으며 유대인의 제사 제도에서 그처럼 많은 피 홀리는 제물을 바치게 하셨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모든 죽어가는 희생 제물은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었고 가장 엄숙하고 거룩한 의식으로서 정신과 마음에 감동을 주는 교훈이 되었으며 제사장들은 이런 의미들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희생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이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는 이 위대하고 중대한 진리를 가르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명백하게 계획하신 것이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07)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종류의 희생 제도를 재확인시키셨다. 이 모든 의식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용서를 예표하였다.


부가적용)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되는 화제, 나의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지니라”(민 28:2) 이런 말에서 독자는 민수기의 이 부분 전체를 열어 볼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된다. 그것은 분명하고 단순하다.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나의 화제”(火祭), “나의 향기로운 것”, 이 모든 것은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우리는 여기서 주된 아름다운 사상은 하나님을 향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복되게도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지만 여기서 소개되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충족시키고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시다. 그것은 하나님의 식물이다. 진실로 놀라운 표현이다. 이런 말은 생각하거나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그리스도를 단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 우리를 사죄해 주시는 분 지옥에서부터 구출해 주시는 분, 모든 축복을 안겨다 주시는 통로 되시는 분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음식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분은 마치 그분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음식을 잊지 말라고 구하고 계시는 것 같다. 그분은 백성들이 그분께서 드실 수 있는 어떤 것을 기억하기 원하신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많은 것을 행했다. 나는 음식과 음료를 예비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나의 음식을 관심하기를 구한다. 나의 음식은 너희가 내게 드리는 제물이다. 이 제물들은 나를 만족시키는 향기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분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으신 결과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시는 것 같아 보인다.


수요일(12월 16일)

서원한 것을 이행함(민 30장)


도입)

서원이란 하나님을 그 약속의 대상으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인간의 자발적인 헌신의 맹세이다. 서원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지만 서원한 것을 이행하는 것은 의무이다. 시편 15편에는 여호와의 장막에 거하며 주의 성산에 오를 사람들의 특징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서원하고 이행하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잠간 동안은 손해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더 큰 축복으로 되돌려 받게 되기 때문이다. 서원은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바치기로 자발적으로 약속하는 것이. 따라서 한번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죄가 된다. 그런즉 우리는 서원을 할 때에는 미리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겠다. 사람 사이에도 약속한 것은 지키는 것이 도리이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

1. 서원과 서약에 관한 내용이 민수기 30장에 나옵니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를 위한 어떤 중요한 원칙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어떤 교훈과 경고를 발견하게 됩니까?

답:

전적인 거짓말은 분명히 잘못이고 죄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진지한 약속을 하거나 주님의 이름으로 서원하여 정한 기한까지 틀림없이 지키겠다고 해놓고 결국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약속을 깨뜨리고 마는가?

문맥을 살펴볼 때, 민수기 30장에 나오는 사례는 “여호와께” 한 서원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일을 행하겠노라고 서원했다면 반드시 그것을 이행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에게 언제까지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가 나중에 가서 원래 약속한 것과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사람은 우리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우리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약속과 서원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떤 모습으로 나타내는 것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한 바를 지키지 않는다면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이나 서원을 할 때 매우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 할지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당황스런 입장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서약이 기만으로 이루어졌을지라도 그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말로 서약한 의무는 그가 그릇된 행동을 하도록 속박하지 않은 한 신성하게 지켜져야 한다.”(부조와 선지자, 506)

이스라엘의 문화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태만의 죄'에 해당하였다. 진정한 의미에서 서원을 이루지 못한 것은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른 것과 같다. 모든 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교훈: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리스도께 욕 돌리는 것이 된다. 우리는 약속을 잘 지키는 성도가 되자.


부가적용)

성경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매우 주의하고 조심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서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서원만이 아니라 도대체 하나님 앞에서 하는 모든 말에 있어서 우리는 매우 주의해야만 한다는 것을 성경은 매우 강조한다. 하나님의 엄위(嚴威)와 거룩하심[구별되심]을 생각할 때 이것은 매우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성경 시대에나 역사 가운데서나 현대에도 하나님의 엄위성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행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기에 성경에서는 아주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전 5:2).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도대체 하나님 앞에서는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도서 5:2)고 하신다. 그리고 서원에 대한 성경의 이렇게 고도(高度)한 입장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전 5:2)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서원에 대해서는 존재 전체를 다해 책임을 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아예 맹세조차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초대 교회에는 아나니아, 삽비라와 같이 약속을 해 놓고 지키지 않아 죽음을 당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행 5:1-11). 우리가 하나님께 약속한 일이 있다면 반드시 지키는 것이 지혜로운 자들의 처신이다. 비단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맹세를 스스로 어기고 생활한다면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버림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진실해야 한다. 책임질 말을 하고 맹세하지 않으며, 혹 맹세했다면 반드시 실행해야만 한다. 여호수아가 보여준 기브온 족속에 대한 약속의 이행을 바로 이러한 모범을 보여 준다. 비록 자신이 실수한 것일지라도 약속을 지킴으로서 진노를 피하고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미루지 말라. 이는 그분께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 네가 서원한 것을 갚을 지어다."(전 5:4) 하나님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자를 우매자라 표현하고 계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면 결코 맹세를 소홀히 여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약속일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목요일(12월 17일)

가나안 접경에서(민 32:1~5)


도입)

여호수아는 출전 명령을 내리기 전에 요단강 동편을 차지하고 있던 두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모세와 한 약속을 상기시킨다. 이 약속을 상기시킨 것은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여호수아의 지도력을 확인 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해 명령을 내렸는데 두 지파 반이 자신들은 요단 동편에 기업이 있고 또 가족들이 남아 있으므로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을 하면 자칫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전에 모세와 두 지파 반 사이에 한 언약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그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다. 르우벤과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그 약속이 전에 모세와 한 약속이기는 하지만 여호수아 하고 한 약속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세와 한 약속이기 때문에 여호수아하고 한 약속은 아니었으므로 지키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을 제지할만한 특별한 조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와 한 약속은 곧 하나님과 한 약속이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와 약속을 했지만 그것은 모세와 한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과 한 약속이다. 우리가 주의 종과 약속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주의 종과 한 약속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주의 종과 한 약속이므로 그 약속은 하나님과 한 약속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약속을 함부로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약속을 할 때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특별히 그것이 주의 종과 하는 약속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약속 이면에는 하나님의 권위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의 종이 바뀌어도 그 약속은 계속 유효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있은 후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이들은 광야를 떠나 마침내 가나안을 정복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지금의 장소에 정착하기를 원했다.

1. 민수기 32:1~5을 읽으십시오. 그들이 그와 같은 요청을 한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답:

민수기 32:6~15에서 모세는 그들에게 대답한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으며, 그들의 행동을 죄 된 것으로 여겼다. 그는 그들의 행동을 40년 전 그의 백성이 가나안 접경을 건너지 못했던 사건과 비교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땅의 거민들을 두려워하고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았던 까닭이었으나 이번의 경우는 달랐다. 그들은 그 땅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그들이 있는 곳을 정착지로 분배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2.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족장들은 어떻게 대답했으며, 모세는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민 32:16~42)

답: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대답은 그들이 나머지 동족들과 함께 기꺼이 싸우러 가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그들은 이미 그들이 정복한 땅을 원하기는 하지만 이기적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이 소유한 땅이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정착하기 전에 다른 지파들도 각각 땅을 얻도록 도울 것이었다.

모세는 이러한 자원하는 정신을 보면서 비록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 32:23)는 경고를 발하면서도 그들의 서원과 약속한 바를 받아들였다.


교훈: 가나안 접경에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요단강 이편에 정착하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지파들도 땅을 차지할 때까지 함께 싸우기로 자원하였다.


부가적용)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은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여호수아에게 이것만큼 힘이 나는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특히 요단 동편의 기업을 얻은 지파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힘이 생겼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시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무리한 약속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되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호텔들은 그 이름을 다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호텔로 신라호텔, 롯데호텔, 하얏트 호텔, 힐튼 호텔 등 유명한 호텔이 많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호텔 가운데 홀리데이 인이라는 호텔이 있다. 이 호텔은 고급호텔보다 저렴한 숙박비를 받지만 서비스는 고급호텔의 버금가는 호텔로 미국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호텔이다. 이 호텔의 회장이 클라이머 라는 사람인데 그는 미국의 수백 개의 호텔 체인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텔에 카지노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는 호텔 사업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호텔 내에 사행성이 짙은 카지노를 설치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단, 라스베가스의 호텔만큼은 카지노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호텔 내에 카지노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호텔을 운용하고 수익을 창출하는데 꽤 큰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회사의 간부들이 사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계속 카지노를 설치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의 큰일이고 보니 클라이머 회장이 가족들과 회의를 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은퇴식에서 다음과 같은 고별사를 남겼다고 한다. “제가 운영하는 호텔에 카지노를 두지 않기로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중요한데 하나님과의 약속은 얼마나 소중합니까? 저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길은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길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지금 마음이 무척 평안합니다.” 클라이머 회장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가질 수 있었던 세상의 명예와 부를 다 내려놓았다. 그러나 하늘에서 받게 될 면류관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생각을 한다.


금요일(12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모세가 이스라엘의 제2세대에게 상기시켜 주고자 했던 구체적인 교훈들을 연구해 보라. 그의 말은 다음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인도해 오신 길과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교훈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엘렌 G. 화잇의 자서전, 196)

* 2만 4천 명이 죽은 싯딤의 염병(민 25:9, 26:1)

*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민 26:9~11)

* 유다의 아들들인 엘과 오난(19절)

*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61절)

*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세대들이 광야에서 죽음(63~65절)

모세에 의해 열거된 이 사건들의 대부분은 제2세대가 경험한 사건들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들은 왜 히브리 역사에 자주 언급되는가? 사도 바울은,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고 설명한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자신들의 가치관과 신앙과 열정을 물려 줄 수 있습니까? 다음 세대로 하여금 이전 세대가 가졌던 동일한 믿음을 경험하게 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2.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행진하는 과정을 보았고, 그들이 저지른 실수 곧 우리도 저지르기 쉬운 과오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행한 일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는 그들이 빠졌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혹 우리가 이미 그와 같은 함정에 빠져 있다면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인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요약: 모세가 살아 있을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제2세대에게 줄 마지막 지시를 주시고 믿음을 재확인하시며, 또한 여호수아를 세워 당신의 지시를 받는 새로운 지도자로 임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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